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88)
288화 국면전환 (2)
“다 좋은데, 로버트 폐하가 왜 그 남쪽까지 간 거야?”
시오니아 왕성의 근위기사단장 켈러핸의 질문이었다. 그를 천막에서 맞은 에드워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악마랑 싸울 거라니까 별로 멀지 않은 데서 간 보고 있던 거지. 여차하면 끼어들 수 있는 거리에서.”
“네가 정보를 흘렸군.”
“보험으로. 사막은 악마들의 문이 적은 곳이라, 왕의 동향이 주목을 덜 받은 것 같아.”
“보통은 끼어들 수 있는 거리가 아닌 탓이 더 컸겠지.”
“보통은. 그분이 뛰어오실 거리는 되더라고. 다른 애들 다 낙오시키면서. 결국 아깝게 고대 악마 다쉬사베스를 놓치셨지만.”
“그것도 들었지. 잘 말렸어. 앵글리아 국왕이 성지까지 와서 악마의 문 너머로 혼자 사라졌다간, 보통 난리가 아니었을 거야.”
정무적 판단이었다. 에드워드는 탁자 위의 술잔을 들어 올렸다.
“덕택에 삐져 버리셨지만.”
“돌출부 북쪽 대신 남쪽에서 공격하시겠다지. 원래 그쪽은 아퀴타니아 왕세자가 맡기로 했는데.”
“그쪽 오크 대족장이 그렇게 괴물이라지? 이번엔 폐하께서 만족하시길 바라야지, 뭐.”
“선발대는 고생 좀 하겠어.”
켈러핸의 말대로, 푸른바위거성에서 죽치고 있던 앵글리아군 선발대가 남쪽으로 방향을 바꾼 왕을 따라잡기 위해 급히 출발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에드워드는 술잔을 쭉 비우고는 말했다.
“당분간 앵글리아인들이랑은 안 만날 거야. 다들 나 욕하고 있을 것 같거든. 특히 선발대 양반들.”
“공격이 성공하면 어차피 돌출부에서 만날 텐데.”
“그땐 그때고.”
주술사왕의 군세가 형성한 돌출부를 쳐내는 작전은 남쪽과 북쪽의 군대가 서로 만남으로 끝난다. 에드워드는 꺽다리 로버트가 오크 대족장한테 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에드워드가 맡아야 할 북쪽.
“그럼 경건왕께서 북쪽이지?”
“그래. 네가 선봉.”
켈러핸도 술잔을 조금 기울였다. 그는 바싹 말라가는 입술을 겨우 적시고는 말했다.
“누가 남쪽이냐 북쪽이냐는 사실 별로 의미가 없어. 적이 있고, 그 능력이 가늠이 안 된다는 점에선 어디나 똑같아.”
“주술사왕만 문제가 아닌가 보군. 그 오크놈도?”
“그 화제의 오크 대족장을 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뭔지 아나?”
“몰라.”
“늙어 죽길 기다리는 거야. 덩치가 너무 커서 후대를 낳지는 못할 테니까.”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쳤다.
“네가 농담을 다 하는 날도 있네.”
“농담 같나?”
켈러핸은 웃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켈러핸은 매우 쓴 풀을 입 안에 잔뜩 넣은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대족장이란 말도 부족해. 그건 오버로드(대추장)급이야. 그가 이끄는 무리도 호드라는 명칭을 붙여야 할 지경이고.”
“그런 걸 아퀴타니아 왕세자랑 싸움 붙일 생각이었냐?”
“아퀴타니아 기사들도 강하니까. 세자 저하도 공을 세우고 싶다는 눈치였고. 하긴, 성지까지 와서 성전 벌이는데 그 정도 욕망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럼 남쪽은 앵글리아군과 아퀴타니아군이 놈의 목을 두고 경쟁하는 구도가 되겠군.”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아.”
“북쪽은 시오니아군이 맡고?”
켈러핸은 고개를 끄덕였다.
“북쪽이 더 까다로울 거야. 오크 대추장은 늙어 죽을지도 모르지만, 주술사왕은 늙어 죽지 않을 테니까.”
“농담 같은데 농담이 아니란 게 끔찍하군.”
“성지는 항상 위태위태하지. 그러니 각국의 지원이 필요하고. 교역이 완전히 끊기기 전에는 훨씬 더 동쪽의 교권 밖 강대국들과도 연합했다고 들었어.”
“흠.”
“이젠 우리뿐이지만. 원래는 아퀴타니아군과 앵글리아군을 같이 놔두면 서로 싸울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는데, 어쩔 수 없지.”
“음. 나 때문인가.”
“신경 쓰지 마. 레피림과 고대 악마 모두 제거한 것만 해도 큰일이야.”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
“둘 다 유명세가 있는 쪽은 아니라서 문제지만.”
“윽. 그건 좀 뼈 아프군.”
레피림은 신흥악마였고 다쉬사베스는 고대악마. 둘 다 기록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그 둘이 관심을 기울였던 현세 이슈는 에드워드의 주변 한정. 즉, 실제 강함과 별개로, 에드워드 개인의 서사에 등장하는 악마로 취급되는 게 고작이다.
실제로 에드워드가 그 둘을 물리친 건, 시오니아 전체를 위해서라기보단 그의 앞길을 막기 때문인 탓도 컸다.
에드워드는 경건왕 루이의 말을 떠올렸다.
시오니아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싸움.
켈러핸은 다시 술잔을 들어 홀짝였다.
“국왕 폐하께서 소집령을 내리실 거야.”
“빛의 반격 말이지.”
에드워드가 짧게 답한 순간, 한 병사가 천막 밖에서 말했다.
“백작님. 전령입니다.”
“어디에서 온 거냐?”
“검은벽요새의 사령관 올리비아 경이 보냈습니다. 주술사왕의 수하로 보이는 것들이 공격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대규모는 아니지만 전초전으로 보인다고…… 빛으로 전향한 세트렛인들을 요새 너머 영지로 대피시키겠답니다.”
“그렇게 하라고 사전에 이야기됐으니, 그렇게 하겠지. 알았다.”
에드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정군이 왔으니 움츠러들어 방어전을 할 줄 알았더니, 그 반대군. 묘한데. 저쪽도 더는 기다려 줄 생각이 없나 보구만.”
* * *
마을이 불타고 있었다.
새로 만들어진 개척촌이었는데, 샛길을 방어할 목적으로 세워놓은 곳이었다. 아르데니아의 새 식민지로 건설 중인 케라시움에 목재를 공급할 벌목촌이기도 했다.
“이 개척촌을 봉토로 삼은 기사가 누구랬지?”
“비센테 경입니다.”
에드워드의 질문에 촌장이 답했다. 재투성이가 된 그의 손가락이 마을의 감시탑을 향했다.
피투성이 깡통 투구 하나가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낯익은 엘프 하나가 그 지붕 위에 올라타 있었다.
아가티우스. 만티코어 앞에서 부하들과 동족들을 버리고 도망친 엘프 남자. 에드워드가 그 대신 만티코어를 죽이고 헬레나를 일행에 넣었다.
에드워드는 오랜만에 보는 그 면상에 혀를 찼다.
“어디서부터인가 흔적이 끊기더니, 성지까지 도망쳤었군. 그것도 하필이면 어둠의 편으로 넘어가서.”
엘프 헬레나는 거의 눈이 뒤집어지다시피 했다. 아가티우스는 아르데니아의 체면과 이익을 크게 손상시킨 놈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소리 나게 이를 갈며 말했다.
“반드시 죽여 없애 버리죠.”
“그래도 쟤 덕택에 우리가 짝이 됐는데 너무 험하게 다루진 말아 주자고.”
“농담이죠?”
“농담이지.”
“하나도 재미없는 농담이었어요. 전 저놈 때문에 당신의 짝이 된 게 아니라고요.”
“그야 그렇지.”
에드워드는 슬쩍 마무리를 지은 다음, 아가티우스로 시선을 돌렸다.
“샛길은 대군이 몰려올 곳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타락한 엘프가 공격하기에는 충분했군. 저놈 하나뿐인가?”
“몇 놈 더 있는데, 지금은 숨은 것 같습니다.”
촌장이 말했다. 에드워드는 다시 질문했다.
“구체적으로. 몇 놈이야?”
“모르겠습니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촌장이 고개를 저었다. 드워프 가르달은 반쯤 무너진 목책을 보고 평했다.
“점령할 생각은 없는 것 같소. 재건해야겠지.”
“그래야겠지?”
“아무리 샛길이라지만 냅둘 순 없소. 케라시움이 위험해질 거야.”
“하지만 또 기사를 배치해봤자 똑같은 꼴이 날 것 같은데.”
“엘프 전사를 추가로 배치하죠. 이 길은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케라시움의 치안대장 자리를 받은 헬레나가 덧붙였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어가 보강되기 전에는 그 방법뿐이군. 다음엔 더 높은 목책과 더 치명적인 함정들을 배치하라 해. 그리고 가능하면, 지금 아가티우스를 잡는 게 좋겠지?”
“당연하죠.”
“하지만 거리가 좀 있군. 묘한데.”
“묘해요?”
“묘한 거리에서 도망치지도 않고 덤벼들지도 않고 있잖아. 자기만 모습을 드러냈고. 뭔가 할 말이 있나 본데. 들어나 볼까.”
“간악한 비겁자의 변명은 들을 가치도 없어요. 당신 귀만 더럽힐 거예요.”
“악마의 말도 한 바가지 들어봤는데, 뭘. 새삼 더러워져봤자. 나중에 네가 좀 깨끗이 해 주라.”
헬레나는 대답 없이 에드워드의 허벅지를 때렸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고는 말을 몇 발짝 앞으로 몰았다.
“어이, 아가티우스! 오랜만이군!”
바로 답변이 날아왔다.
“다시 만날 일이 없었으면 했는데.”
“나는 꼭 그 반대다. 네놈을 만나서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했지.”
“감사 인사라고?”
“네 추태 덕택에 아르데니아의 은인이 됐거든. 특산물인 올리브 씨앗도 기념품으로 받았는데. 케라시움의 개척지에 심었지.”
“씨앗? 집정관이 목에 걸고 다니던 그것?”
“그래. 아, 너 딸도 버리고 갔더라? 걔도 내가 거뒀다. 넌 시민권을 버리면서 나한테 너무 많은 선물을 안겨 줬어.”
“딸이라 자처하는 반쪽 엘프지. 살살 꼬드기면 푼돈이나 토해내던 애인데. 별로 관심 없어.”
“살던 자리에 미련이 없군.”
“없진 않아. 다만 목숨이 더 중요했을 뿐이지. 만티코어 상대로 목숨을 걸 순 없잖아.”
“걸었어야 했어.”
“넌 운이 좋았을 뿐이다, 인간.”
에드워드는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질문을 꺼냈다.
“별 고민도 없이 도망치던 놈이, 왜 주술사왕의 아래에서 검을 잡은 거냐? 거기서는 네놈이 정 붙이고 살 구석이 있던가? 목숨 걸고 싸울 만한 가치가 있던가?”
“하하! 회개했다더니 과연 소문대로군. 넌 정 붙이고 살 구석을 찾았나 보지? 목숨 걸고 싸울 만한 가치도?”
“이젠 존나 많긴 해. 그러니 답변 좀 해 주겠나?”
아가티우스는 짧게 웃었다.
“네 말대로다. 어둠으로 전향했지만 난 여기 별 애착이 없어. 주술사왕은 어쨌거나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라. 그의 군대는 좀 딱딱하기도 하고.”
“그럼 그냥 돌아오는 게 어때? 아르데니아나 케라시움이나 순혈 엘프가 부족한 편인데.”
“응? 설마 용서해 주는 건가?”
에드워드는 헬레나를 돌아봤다. 그녀는 아가티우스를 씹어먹을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감형하면 강제노역 200년 정도는 때리죠.”
아가티우스는 폭소했다.
“200년 동안 개처럼 구르다가 종마 노릇이나 하라고?”
“적전 도주 지휘관은 사형이잖아? 엘프 생애에서도 200년이면 좀 길긴 하지만, 감형도 감지덕지지. 그리고 종마 노릇이야 아르데니아 시절 때도 한 거 아닌가?”
“구미가 안 당겨. 이쪽이 더 낫겠어.”
“어떤 면에서?”
“약한 놈들을 괴롭힐 수 있다는 점에서.”
에드워드의 부대에서 성토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웅성거림과 분노. 에드워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네가 찾은 본성이냐?”
“빛에는 적당히 약한 놈들이 더 많거든. 고블린들을 때려잡는 것보다는 보람도 느껴지고.”
“구제불능이군.”
“물론 약한 놈들만 상대하는 건 아니야. 가끔은 공도 세워야 버림 안 받지. 그러니 그만 죽어라!”
아가티우스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신호임은 명백했다. 그러나 에드워드한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가티우스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왜 아무 일도…….”
그 순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화살 하나가 그의 목을 관통했다.
퍼억!
아가티우스는 비명도 못 지르고 쓰러졌다.
카치운이 그의 뒤 수풀 속에서 나타났다.
“어둠으로 전향해서 약자나 괴롭히는 엘프라. 그래서 수준이 낮구만. 아무리 주술사왕이라도, 그런 놈에게 힘을 주면 낭비니까.”
그 말과 함께 여기저기서 아르데니아 엘프 전사들, 그리고 엘프 못지않게 능숙한 유목민 사냥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방금 죽인 엘프들의 귀를 쥐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헬레나를 포함한 케라시움 엘프들한테 말했다.
“생각하는 건 똑같네. 시선 끌고 암살자 보내기. 카치운네 솜씨가 더 좋아서 다행이야.”
“케라시움 엘프들도 있었잖아요.”
헬레나의 소박한 항의였다. 카치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 치지. 그보다 기사양반. 이런 일이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으면 감당이 어렵겠는데? 이놈이 최약체일걸. 솜씨 좋은 유목민과 엘프는 널린 게 아니라고. 흩어지면 흩어지는 대로 문제야.”
“각 샛길의 방어를 더 강화해야지. 일단 하르몬 주는 그걸로 방어가 가능해.”
“하르몬 주는 말이지.”
이번엔 베로니카의 말이었다. 대열 뒤쪽에서 말을 타고 온 그녀는 헬레나와 가볍게 눈인사를 나눈 다음,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주변의 다른 주는 이야기가 좀 달라. 여덟 발톱 전사단이라는 놈들이 여기저기를 들쑤시는 모양이야. 정면 공세 이전의 사전작업인 듯해.”
“심각한 문제야?”
“돌아가는 걸 생각 안 하는 자살적 약탈과 방화라고 하면 이해하겠어?”
“골치 아픈 놈들이군.”
에드워드가 공략하던 때와는 정반대의 상황. 그리고 대규모 공세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정황. 에드워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영지 경영에 더 전념할 시간 좀 벌어보나 했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