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89)
289화 판깔기 (1)
에드워드 일행이 케라시움 근처 샛길들을 점검해보는 사이, 스텔라와 리안나는 케라시움의 밭 앞에서 몸을 비틀어대고 있었다. 때로는 비장의 카드요, 때로는 조언자의 역할을 해야 할 여마법사가 빨래하는 집요정과 함께 온갖 쇼를 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올리브여, 내 사랑에 응답하여…… 아, 닭살 돋아! 풍작의 주문은 낯간지러운 수사를 동원하는 게 대부분이라니까?”
“기사님이랑 밤놀이하는 건 사랑 아니에요?”
“그거나 이거나 남들 앞에서 대놓고 말할 게 아니란 게 문제지! 요 주둥이! 요 방정맞은 요정 주둥이!”
“아야야야야! 밴시 뺨 꼬집지 말고 주문이나 외우라 이거예요!”
“외우고 있잖아!”
“낯간지럽다는 핑계로 자꾸 멈추는 거 다 봤어요! 실은 자신 없는 것 아니에요?”
“날 뭘로 보고! 프리시아 학당의 수재가 물러설 것 같니?”
“밴시가 봐도 풍요에 더 가까운 건 마법사님이 아니라 엘프님이다 이 말이에요!”
“풍요의 주문은 가슴 크기랑 상관 없거든?!”
“왜 없어?”
마지막 질문은 에드워드의 것이었고, 헬레나는 그의 등짝을 때렸다.
짜악!
“쓸데없는 질문 좀 하지 마세요.”
“어머나, 기사님. 언제 오셨어요?”
“보다시피, 방금. 진전이 없나 보다?”
“번개의 상징 중 하나가 풍작이긴 한데, 이게 5년 키워야 할 놈을 당장 자라게 한다 뭐 그런 건 아니라서요…… 주문 자체도 고대나 한때 유행했던 구식이고, 성공확률도 많이 낮고. 주문에 따라서는 기원의 형태로 산제물을 요구하기도 한다고요. 제 전문 영역도 아닌 데다, 그거 까딱 잘못하면 이단이에요.”
스텔라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케라시움 엘프들이 곧바로 대화에 합류했다. 헬레나의 남동생 페트로스는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올리브 나무는 묘목을 심고도 3년 이상을 보살펴야 쓸만해 지죠. 농사란 결국 성실하게 임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는 사업이기도 하고.”
“시간이 많지 않은데. 어디 전설처럼 심자마자 싹이 트고 하늘까지 닿게 자라는, 그런 거 없소?”
“없지야 않겠지만, 이것도 그럴지는 글쎄요…… 두고 봐야겠죠.”
“아, 잠깐만요! 그 방식으로 해 볼게요!”
스텔라가 비명처럼 소리를 지른 다음, 다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에드워드와 페트로스는 당황해서 뭐라고 더 말을 못 붙였다. 이번엔 시간이 짧았다. 주문이 끝나는 순간, 땅이 뒤흔들리더니 올리브 나무가 거짓말같이 솟아 나왔다.
우르르릉!
무시무시한 푸른 빛이 사람들의 눈을 찔렀고, 스텔라는 환희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됐다! 난 천재야!”
“뭐야. 풍작의 주문이 성공한 거야?”
“아뇨! 이게 어떤 조건을 가진 마법의 씨앗이라는 걸 전제로 잠금장치를 해제한 거예요! 1대만 유효하고, 다음 세대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키워야겠지만요!
다들 얼이 빠진 가운데 밴시만이 사실을 정확히 지적했다.
“그러니까 마법사님이 한 건 없다 이거네요. 씨앗 만든 놈들이 잘 만든 거지. 순간 마법사님이 신이라도 되나 했네.”
“요 얄미운 꼬맹이는 끝까지 이러네!”
마법사와 밴시가 티격태격하든지 말든지, 페트로스와 헬레나, 그리고 에드워드는 급속성장한 올리브 나무를 살펴보았다.
“아르데니아의 올리브 나무랑 좀 다른 것 같은데?”
“그것들보다 훨씬…… 크군요. 아마도 개척의 첫걸음을 떼는 용도였나 봅니다. 급한 기름을 충당하고, 묘목을 만드는 데 쓸.”
하늘을 덮을 기세로 자라난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올리브 열매들을 보던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잘됐네. 원하던 대로 됐으니. 집정관 양반도 사용법 좀 자세하게 가르쳐주지. 알아서 풀게 하다니 짓궂게시리.”
페트로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마법의 씨앗이란 게 다 그런 식이죠. 뭔지도 모르고 심는 게 전설의 전형 아닙니까?”
“살기 팍팍하군. 뭐, 넘어갑시다. 우리가 순찰 도는 동안 다른 일은 없었소?”
“조금 전에 조르쥬 경이 돌아왔습니다. 폰티아의 여마법사 데스피나와 그녀의 증손녀, 그리고 일단의 엘프 전사들을 동행한 채로요.”
“빠르군. 예비 신부는 만나보셨소?”
“정략에 의한 결혼이긴 합니다만, 잠깐 만나본 바로는, 아름다운 처녀더군요.”
“안 예쁜 엘프도 있나.”
“일단 성격이 괴팍하진 않습니다.”
“둘도 없을 미녀네. 꼭 잡으쇼.”
“그러죠. 순찰 쪽은 별일 없으셨습니까?”
“많았소. 젠장. 아가티우스를 다시 만났지 뭐요.”
“아가티우스를요?!”
페트로스는 놀라서 되물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으로 전향해서 약한 사람들이나 괴롭히고 있지 뭐요.”
“엘프의 수치 같은 놈! 잡으셨습니까?”
“공을 세워보겠다고 하필 내쪽으로 온 것 같소. 암살을 시도하지 뭐요.”
“저런!”
“그러나 소년만화의 파워 인플레는 무대 초반부터 달아나 있던 놈이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아닌지라.”
“예?”
“여하튼 다행히 나와 우리쪽 엘프들과 유목민들이 더 우월했지.”
페트로스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런 류의 범죄자들은 무예를 갈고 닦지를 않으니까요. 설령 솜씨가 있어도, 많이 녹슬었겠죠.”
“아르데니아 때부터 영 별로였나 보군.”
“그러니 고블린 퇴치나 맡긴 거죠. 그마저도 자기 뱃속 채우는 데 썼지만.”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르몬과 케라시움에서 쓸 장기말은 그딴 놈이어서는 안 돼. 무슨 말인지 아시겠소? 샛길들 방어라고는 하지만, 보다 쓸만하고 성실한 친구들이 필요해.”
“안 그래도 집정관님이 개척 성공을 축하하며 추가 지원을 약속하셨습니다. 명문 씨족의 자손들이 왔으면 좋겠는데. 일단 폰티아 엘프들을 만나 보시죠.”
“그럽시다. 조르쥬 경 소식도 궁금하니. 멀쩡한감?”
당연히 나올 걱정이었다. 페트로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직접 만나보시는 게 낫겠습니다.”
* * *
신흥 개척도시 케라시움의 객관에서, 데스피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에드워드를 맞았다.
“오랜만이군요. 에드워드 경. 이제는 카말라 백작이지요?”
전에 없이 공손한 투였다. 그녀 옆에 있는 엘프 처녀는 조신하게 고개를 숙였다. 페트로스의 예비 신부는 헬레나와는 정반대 스타일로, 창백한 피부에 호리호리해 가냘퍼 보이는 타입이었다.
에드워드는 슬쩍 농을 걸고 싶은 본능을 참느라 고생했다.
‘어쩐지 페트로스가 예비 신부를 마음에 들어하더라니, 누나와는 정반대 스타일이라 그랬구나!’
물론 헬레나는 눈치를 깠다.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오랜만에 보는데 박정하게시리 왜 그래.”
“당신은 내키는 대로 입을 놀리면 ‘길어지니까’ 그래요.”
헬레나의 견제에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할 말이 없군. 신랑신부는 잠깐 둘만의 시간을 갖게 하고, 우린 우리대로 이야기를 진행하지.”
“그러죠.”
다들 동의해서, 페트로스와 그 예비 신부는 객관 밖으로 나갔다. 데스피나는 혼자 남자 바로 말을 놓았다.
“이 미친 기사놈. 친구도 미친놈만 골라 사귀어서.”
에드워드는 첫 술잔을 기울이다 말고 웃어버렸다. 술을 쏟지 않게 잔을 수습한 끝에 그가 말했다.
“그 정도였어?”
“인간 기사들이 ‘숙녀숭배’에서 피학적인 면이 있는 건 익히 아는 것인데, 조르쥬 경은 ‘진짜’더라? 거기다 솜씨도 좋고.”
“잘됐네. 잘 부려먹으쇼.”
“그것도 정도껏이지!”
“아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피투성이로 아지지야 시 광장 한복판에다 마물이랑 장미꽃이랑 잔뜩 쌓아놨더라. 내 이름은 아주 예쁘게 대문짝만하게 써놓고!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나서 내가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어!”
“그리 오래 사셨으면서 기사의 공개구애를 한 번도 안 당해 보셨수?”
“그게 끝이 아니야! 난제를 던져줄 때마다 다 해치워서는 광장에 업적전시를 하더라! 분명히 내가 제시하는 난이도는 올라가고 있는데, 그 새끼가 해치우는 속도는 더 빨라지데?”
“뭔 짓을 시킨겨.”
“그건 알 거 없고, 대체 뭐야, 그놈?!”
“아, 그거네. 난제 앞에서 더 불타오르는 타입.”
“그게 공개구애랑 결합하니까 아주 미치겠어. 나만 나쁜 년 만드는 타입이잖아!”
“나쁜 년 아니었수? 이제까지 수많은 기사를 그런 방식으로 농락하셨을 텐데.”
“자기들이 좋다고 달려든 건데 내가 뭐하러 책임을 져? 기사란 족속은 다 그래. 무리한 과제에 도전하다 제멋대로 죽어버리지. 내가 그 구애를 수락 안 하면 비극의 주인공 행세를 하며 떠나. 그게 아니어도 적당한 보상을 던져주면 희희낙락해서 떠나지. 육신의 쾌락을 원하는 자는 뜨거운 밤에 만족하면 더 볼일이 없다는 듯 떠나고.”
“조르쥬 경한테도 그러면 되잖아?”
데스피나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미 다 해봤어…… 그 새끼는 늙어 죽을 때까지 내 곁에 있을 기세던데.”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최고기록이 얼마요?”
“3년.”
“무상보증 10년.”
“제길.”
헬레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시하고 다른 기사를 선택해본 적은 없어요?”
“마조 중의 마조 새끼라 그거에는 더 흥분하던데. 게다가 결투를 벌여서 결국 내쫓더라. 걔 부하 중에 솜씨 좋은 사제도 있어서, 웬만해선 죽지도 않아! 아주 찰거머리야.”
헬레나는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었다.
“천생연분 만나신 것 같은데?”
“이 어린 년이 지 일 아니라고…… 야, 너도 기사 시험한다고 에드워드 경한테 붙은 거 아냐? 너랑 나랑 다른 게 뭔데?”
“저야 다른 종족의 전사를 여럿 갈아치우며 놀지는 않죠. 가치가 있는 짝을 찾은 것뿐.”
“달달해서 좋겠네. 젠장.”
데스피나가 투덜거리는 때쯤, 노란 서코트를 입은 거구의 사내가 객관 안으로 뛰어들다시피 들어왔다.
“에드워드 경! 여기서 뵙는군요! 카말라에서 뵐 생각이었는데!”
부담되는 남자 조르쥬 경의 등장이었다. 에드워드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환영했고, 데스피나는 머리를 싸매 쥐었다.
“온 거 보니 또 해치웠네.”
“그새 또 무슨 과제를 줬나 봐?”
“이 지방의 고대 신앙 중 오래된 나무를 숭상하는 애들이 있었는데, 그게 마물로 변했을 가능성이 높으니 조사 좀 해 보랬어.”
“실은?”
“이미 뭔가 있는 것 알고 보냈지.”
“내 영지의 문제 하나가 해결됐군.”
“널 도와줄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나무 괴물도 안 먹히다니, 이젠 뭐가 남았지…….”
“내가 도와줄까?”
“응?”
“처남댁 증조모님 한번 돕지 뭐.”
“네가 웬일로?”
데스피나의 빈정거림을 무시하고, 에드워드는 성큼성큼 걸어온 조르쥬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조르쥬 경, 돌아오자마자 미안하지만 맡길 일이 하나 더 있소.”
“뭡니까?”
“얼마 전 들어온 소식인데, 국왕폐하께서 주술사왕의 동쪽에 살아남은 빛의 국가들과 연계를 시도하고 계시오. 이미 몇 차례 사절을 보냈는데, 생환율이 높지는 않았소.”
“그야, 적지를 가로지르는 여행이니까요.”
“문제는 이번 사절이야말로 앞서 오간 어떤 사절들보다도 중요하단 거요. 연계 공격을 할 타이밍을 맞추는 거니까. 폐하께서 나보고 적임자를 좀 찾아보라더군.”
“흠. 흥미롭군요. 제가 나서면 되는 겁니까?”
“서신은 받아왔으니 맡기기만 하면 되는 판이오.”
“사절을 호위하고, 서신을 지키면서, 적지를 가로질러…… 굉장한 이야기군요. 그런데, 지금 저는 레이디 데스피나께…….”
조르쥬는 데스피나를 돌아봤다. 데스피나는 도끼눈을 뜨고 에드워드를 노려봤다.
“이게 도와주는 거니?”
“뭐. 왜.”
“하려면 나도 가야 하잖아, 그거.”
“기사만 가기엔 위험한 길이니까. 기왕지사 증손녀를 위해 힘 좀 써주쇼. 오가는 길에 조르쥬 경이랑 둘이서 대화도 좀 해 보시고.”
“악랄한 놈.”
데스피나는 툴툴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 * *
“데스피나가 오히려 조르쥬 경을 죽이고 도망치면 어떡하죠?”
객관을 나선 헬레나의 걱정이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간 자기 증손녀의 결혼에 협조할 생각 없다고 증명하는 거지. 이 일은 최전방의 안전이 걸린 거니까.”
“하긴, 그건 그렇군요.”
“폰티아든, 데스피나든, 케라시움에 투자할 거면 진심으로 해야지. 손해 보면 바로 내치고 말겠단 식으로 하는 건 내가 용납 못 해.”
“증손녀를 맡기겠단 시점에서 이미 쉽게 내칠 것 같지는 않지만, 확실한 게 좋겠죠.”
“뭐, 조르쥬 경이 쉽게 당할 것 같지도 않지만. 우리도 준비하자고. 아가티우스는 지나가던 잡병에 불과해. 하르몬 주변의 다른 주들은 사정이 달라. 좀 더 여유 있는 우리가 지원을 가야지.”
“바쁘군요.”
“별수 있나. 엘프 전사들도 준비시켜줘.”
에드워드는 조금 전 솟아 나온 커다란 올리브 나무들로 시선을 돌렸다. 엘프 남녀들이 열매를 빠르게 수확하는 게 보였다.
“여기까지 해놓고 도로 뺏길 수는 없지.”
그는 나머지 일행이 기다리는 행정청 건물로 들어서며 중얼거렸다.
“경건왕 폐하께서 군대를 소집하기 전까지는 최대한 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