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90)
290화 판깔기 (2)
왕실의 사절은 에드워드 일행보다 한발 앞서 카말라 성에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에드워드가 준비한 철괴, 올리브 절임, 비단 등을 외교용 선물로 추가했다.
철괴는 에드워드의 매듭 문장과 하르몬 주 수복 기념 문구를 새겼다. 올리브 열매는 터무니없이 큰 크기 때문에 그 출처와 내력을 따로 표시가 필요 없었다.
시오니아의 국력을 증명하는 물건 중 일부.
베로니카는 사절단에게도 몇 가지 당부를 남겼다.
“새로운 힘이 추가되었고, 공격할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는 거지. 아, 올리브 절임은 소금물을 버리고 새 소금물을 추가해서 줄게.”
“제가 농사에 무지해 감히 여쭙습니다만, 무슨 이유입니까?”
“올리브절임은 쓴맛이 우러난 첫절임물은 버려야 해. 잠깐만 기다려.”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요? 이미 지체한 시간이 있어 급히 출발해야 할 듯합니다만…….”
“그럼 가는 길에 물을 갈아주는 게 좋겠네. 소금만 챙겨. 나머지는 동행하는 케라시움 엘프들이 알아서 해줄 거야. 아, 그리고…….”
사절단 대표는 쏟아지는 주의사항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일행에 케라시움과 폰티아 엘프들은 물론, 명망을 얻고 있는 기사 조르쥬가 추가되는 건 분명 호재였기에 참고 묵묵히 그 내용들을 숙지했다.
조르쥬는 자기 부하들과 함께 장비를 점검하다 말했다.
“큰일을 앞두니 주교께서 내린 사명이 생각나는군요.”
“그 내용을 직접 말한 적은 없는 걸로 아는데. 비밀이요?”
에드워드의 질문에 조르쥬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떠들고 다닐 일은 아닌지라 말을 안 한 것뿐입니다.”
“흠. 어떤 건지 물어봐도 되겠소?”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죠.”
“소박한 사명 같은데. 영주가 되기만 하면, 작은 건 얼마든지 세울 수 있잖소.”
“영주라면, 건물과 토지는 구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름을 붙이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성자가 되라는 이야기니까요.”
“엥? 설마…….”
“제 이름을 붙인 교회를 세워야 한다더군요.”
에드워드는 잠시 할 말을 잃고 아랫입술을 핥았다.
“그거…… 굉장히 힘들겠군. 기적을 보이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잖소.”
“주교께서 계시를 받으셨으니, 방법은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가시밭길 같은 고행길이겠지요. 전 그걸 찾아 성지로 온 겁니다.”
에드워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베니아 시에서 이단 소탕에 뛰어든 것도 그 이유였겠군. 고생이 많수다.”
“뭘요. 기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야기 속 기사들은 그렇지. 경은 그 사명 완수할 것 같군.”
“칭찬으로 듣지요.”
잠시 뒤, 사절단은 에드워드 일행보다 앞서 카말라 성을 떴다. 약 70명 정도였고 선두는 조르쥬. 데스피나는 궁시렁거리면서 자기 부하들을 이끌고 후미에 붙었다.
에드워드 옆에서 그들을 환송하던 베로니카는 사절단의 뒷모습을 보곤 말했다.
“성공할 것 같아?”
“글쎄…….”
길이 주술사왕의 영토 안이라고 해도 빈틈이 없는 것은 아니고, 이미 몇 번 사절이 오갔던 연락길로 가는 것이니 성공확률 자체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에드워드는 언젠가 봤던, 중국 황제가 흉노족 너머 서역으로 보냈다가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사절 이야기를 떠올렸다. 구체적인 건 읽지도 못했고 그 내용도 ‘죽을 고생을 했다가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 돌아왔답니다’ 정도였다.
적어도 그런 결말은 안 날 것이다.
그러나 실패한 사절들과 발각된 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극적인 순간에 등장하는 지원군 같은 건 꽤나 보기 어려운 일이다.
“봉작 전이라면, 우리가 했겠지?”
“왜? 역시 우리가 갔어야 했을 것 같아?”
백작과 공주가 가기는 격에 안 맞는데다 무모한 길인 게 확실하다. 에드워드는 쓰게 웃었다.
“백작과 공주는 따로 할 일이 있는 법이겠지.”
“더 중요한 일 말이야. 이제 좀 여기 사는 사람 같아졌네.”
“시오니아인?”
“그냥 ‘여기 사는 사람’ 이야기.”
에드워드는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나지막하게 물었다.
“진심으로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이야?”
에드워드는 어렵게 대답했다.
“네 가출 심정을 좀 알 것 같기도 하다. 자유 좋지.”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등짝을 가볍게 때리고는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섰다.
“넌 방종해서 문제였지. 뭐, 벌써 순례길이 그립기는 하네.”
에드워드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자신의 병사들로 시선을 돌렸다. 새로 합류한 전사들과 용병들까지 포함해 재편성된 부대. 부사관 하나가 에드워드한테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준비 끝났습니다.”
“좋아. 일부는 오자마자 다시 출발하다니 다들 피곤하겠지만, 시간이 촉박하니 쉬는 건 틈틈이 하자고.”
에드워드는 바로 말머리를 돌려 방향을 잡았다.
“카말라의 행정은 당분간 공주님이 선별한 대리인들이 계속 맡고, 샛길들 정찰, 방어와 지원은 무클과 로드리고 경에게 맡긴다. 우리는 푸른바위거성을 경유해 먼저 북쪽 주들을 지원한다. 출발!”
* * *
비명이 이어지는 게 전형적인 약탈전이었다. 주술사왕의 ‘여덟 발톱 전사단’ 오크들은 가지각색의 물감으로 여덟 갈래의 얼굴칠을 했고, 일반적인 오크들보다 그 갈래 숫자만큼 더 난폭했다.
“으아아악!”
“꺄악!”
농촌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도망가는 게 늦거나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보고자 싸웠던 사람들은 전부 끔찍하게 죽었다.
놈들은 여느 오크들과 달리 포로를 잡는 데는 흥미가 없었다. 당장 노예시장으로 돌아갈 생각 따윈 없기 때문이었다.
“몽땅 죽여라!”
커다란 무기를 휘둘러대던 오크들은 문득 멀리서 울리는 말발굽 소리를 듣고 모두 시선을 돌렸다. 멀리서 한 무리의 기병들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영주의 군대인가? 아직도 남았나 보군.”
“집결하라! 방어태세를 갖춰라!”
오크들은 으르렁거리더니 곧 모든 노획물을 집어던지고, 건물 사이에 자기들끼리 뭉쳐 대오를 짜기 시작했다. 그들 체구에 맞게 꽤나 긴 창이 앞으로 나서는 순간, 기병대는 돌격을 시작했다.
“짓밟아라!”
피난민들을 제치고 양측의 거리가 적당히 가까워지는 순간, 기병대는 속도를 붙이고 기병창을 내세웠다. 오크들은 기병이 주는 태생적 위협에도 놀랍게도 굳건히 버텼지만, 첫 기병창이 내리꽂히는 순간부터는 이야기가 달랐다.
에드워드와 그가 대동한 기사들이 선두였기 때문이었다.
“어디 막아봐라, 새끼들아!”
에드워드가 고함을 질렀다. 우지끈!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뒤이었고 그 직후의 비명소리는 말발굽 소리에 묻혔다. 오크 대장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버텨라! 기사놈들한테…….”
“날으는 드워프 태클!”
와지끈!
그 순간, 가르달과 그 친구들이 오크 대열 옆 빈약한 오두막을 부수며 놈들의 뒤로 등장했다. 오크들은 그런 드워프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처음으로 당황했다. 인간 기병의 신세를 지다 말에서 뛰어내린 다음 장애물을 ‘관통’한다는 심플한 전술을 정립한 드워프는 나무 부스러기를 뒤집어쓴 채 울부짖었다.
“드디어 나도 활약한다!”
오크 대장이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드워프는 도약했다.
드워프 평균 높이로.
* * *
정법과 기법을 섞은 전투는 승리로 종료. 그러나 에드워드는 웃을 수가 없었다.
“이 자식들, 내 마법의 투구가 주는 공포 효과에도 생각보다 안 흔들리던데. 그냥 잡졸이 아닌 것 같아.”
카치운은 아군 장병들 중에 나온 사상자들을 둘러보다 맞장구를 쳤다.
“동의하오. 생각보다 피해가 크군. 앵글리아 국왕까지 도착한 마당에, 주술사왕이 뭘 믿고 먼저 공세를 시작하나 했는데. 이런 수준의 오크들이 잔뜩 있다면 개의치 않을지도 모르겠군.”
에드워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외관은 좀 잘 먹은 오크 정도지만 완력과 실력에서 뭔가 좀 다른데. 신종 오크인가?”
“신종이라니, 새로운 종족만큼이나 끔찍한 이야기군.”
“소, 돼지, 말도 품종개량을 하잖소. 주술사왕이 오크로 품종개량을 하고 있었고, 이게 그 성과라면, 이제야 공격 개시를 결심한 게 충분한 숫자를 모은 거라면…….”
드워프 가르달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인간신장줄이기협회장의 오크신장줄이기협회장 겸임!”
와직!
아직 숨 쉬는 오크들의 모가지를 치느라 땀을 흘리던 그는 그 어떤 대장간의 철을 두드릴 때보다도 보람찬 얼굴을 했다.
“주술사왕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단 거군. 뭐, 덕택에 잘라내는 보람은 있겠소!”
헬레나는 오크들의 짐을 살펴보다 말했다.
“이놈들. 식량을 약탈하고 민가는 불태운 데다 수원을 오염시켰네요. 여기를 자기네 본대나 주력군의 진격로로 삼을 생각은 아닌 모양이군요.”
“모르지. 레피림이 끌고 다니던 놈들은 더러운 물이나 약간의 물만으로도 움직였댔어.”
에드워드는 박살난 것들의 순서를 살펴보았다. 이 마을은 지역 영주의 변경 요새 영향권 안에 있는 개척촌이었다. 간단한 목책도 있었고, 망루와 봉화대도 있었으며, 최후의 요새 역할을 할 교회도 있었다. 몽땅 불타 버렸지만.
“망루와 봉화대부터 파괴했군. 혼란을 부추길 셈인가.”
밴시 리안나는 오크들의 옷감을 전부 폐기처분 판정내렸다.
“냄새! 오크 물자는 정말 쓸 데가 없어! 주술사왕이 어디로 올까요?”
“왜?”
“전 거기 피하고 싶어서요!”
“꿈도 크다”
“제길!”
“너도 그런 말 할 줄 아는구나. 뭐, 앵글리아군이 도착한 이상 돌출부에서 그대로 진격한다면 남북으로 협공당해 잘릴 테니, 수세로 나설 거라고 다들 예상했는데…… 공세로 나간 걸 보면 오히려 우리더러 기어 나오라고 하는 셈이지.”
“어, 그게 그거 아닌가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서로 요새에서 나와 회전을 벌이자는 거야. 아마 집결 전 각개격파를 노리지 않을까.”
“그럼 주술사 왕이 노리는 게 북쪽 먼저냐, 남쪽 먼저냐 그게 문제겠네요?”
“내 생각엔, 북쪽인 것 같다.”
“여기 말이군요!”
“그렇다. 정확히는 여기와 내 영지. 어차피 남쪽은 오크 대족장이 있으니.”
“제길!”
행복하지 못한 밴시의 투덜거림이 이어졌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딱히 나무라지도 않았다.
“어차피 우리도 어둠쪽 요새를 정면 공략하는 것보다는 회전이 낫긴 하겠지만. 제때 집결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리스크가 있군.”
“만약 각개격파 당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모여서 패하나 각개격파 당해 패하나, 결과는 뻔해. 주술사왕이 텅 빈 요새들을 하나하나 제압하겠지. 우리가 놈의 돌출부를 잘라내기는커녕 전체 전선이 후퇴할 거다. 내 영지까지 날아갈 수 있어.”
“어렵다…… 그럼 어떻게 되죠?”
“일단 밴시의 왕실 하녀 일자리가 날아가겠지?”
“음. 안 좋은 것 맞죠?”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살펴봐야 할 진짜 문제는, 어디가 주술사왕의 주공이냐 하는 거다. 내 영지인가, 아니면 북쪽의 다른 주들인가…… 일단 단서는, 이 작지도 크지도 않은 오크 무리다. 좀 더 적진을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어.”
“조르쥬 경이 갔잖아요?”
“조르쥬 경은 틈새로 줄타기하러 간 거고. 내가 말한 건 적진 정찰이야.”
“덩치와 난폭성이 더 커진 오크 족속 가운데로요? 깊이 들어가는 걸 텐데? 에이, 그걸 누가 해요?”
에드워드는 밴시를 내려다보았다. 리안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 해요.”
에드워드는 말없이 밴시를 내려다보았다.
“안 할 거예요.”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