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91)
291화 판깔기 (3)
에드워드는 마지막으로 리안나를 격려하며 말했다.
“위대한 간첩 ‘리’는 슈퍼 돼지를 훔치는 업적을 세웠다.”
간첩 리안나는 뚱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래서 그 간첩, 해피엔딩 맞았어요?”
에드워드는 대답하지 않고 회피했다.
“워낙 오래전 희극이라 나도 잘은 몰라.”
그리고 리안나 간첩단은 에드워드의 명으로 적진을 향해 전진해 나아갔다. 몇 날 며칠을.
쿠룩! 크흥!
끼야아악!
문제의 한 둘레 커진 오크 전사들이, 연갈색 머리카락의 인간 여자를 뒤쫓았다. 여자는 필사적으로 발을 놀려 위기를 벗어나고자 했지만, 한 오크가 창을 던져서 맞혔다.
퍼억!
등에 창을 맞은 인간 여자는 바로 수풀 속으로 뛰어들었고, 선두의 오크가 그 뒤를 따라갔다가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나머지 오크들은 흠칫해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가, 어설픈 대열을 짜고 천천히 수풀을 향해 나아갔다. 잠시 뒤, 그들은 수풀 너머 벼랑을 볼 수 있었다. 오크들의 시선은 저절로 아래를 향했다.
휑한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에는 조금 전의 인간 여자랑 오크 전사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둘은 미동도 안 했다.
추락사.
오크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더니, 그냥 몸을 돌려 버렸다. 그 어떤 오크도 더는 뭔가 미련이 안 남는다는 듯 행동했다.
오크들이 멀어지자, 인간 여자도 사라졌다.
“헤헹. 바보 같은 오크들은 내 연기에 속네. 인간들은 나한테 감사하세요.”
한참 뒤, 허리띠 캐슬린이 허공에서 몸을 뒤틀며 말했다. 조금 전의 오크들이 질주하던 동선 밖 바위 뒤에 웅크리고 숨어있던 리안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저씨들, 방해돼요.”
“미안.”
사과한 건 한 인간 남자였다. 부사관. 그는 오크들의 행태에 대해 말했다.
“보통의 오크들이라면 인간 여자의 등장에 꽤나 흥분했을 거야. 특히, 늙은 금이빨들에게 전리품을 뺏기기 마련인 하급 전사들이라면…….”
“놈들은 충분히, 엄청 흥분한 것 같던데요.”
리안나의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보통 오크 놈들은 ‘전리품’이나 ‘노예’를 원해. 난 처음 보는 예지만, 이 커다란 오크들은 금욕주의적인 것인지도 모르겠어.”
“유발 아저씨도 몰라요? 오크들 밑에서 몇 년을 굴렀다면서?”
유발이라 불린 인간 부사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에드워드가 푸른바위거성에 부임했을 때, 그의 손으로 해방된 노예요, 전직 이중간첩이었다.
“보통 오크들의 행동이 아니야. 만약 일반적인 오크들이었다면, 다른 오크들이 방금 창을 던진 놈을 몰매 때렸을 거다.”
“확실해요?”
“확실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도망 노예를 잡으려다가 실수로 죽인 오크를 본 적이 있지. 놈은 그 노예의 주인 오크랑 싸움이 붙었는데, 다른 오크들까지 주인놈을 편들어서 승부는 빠르게 나 버렸지.”
“흠.”
간첩 리안나는 생각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작은 머리통은 대단한 결론을 내리지도 못했다.
‘옛 검의 3기사’ 중 리더이자 하프엘프 하겐이 대신 말했다.
“뻔히 따라잡을 수 있는 인간 여자한테 창을 던지다니, 잡기 싫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야. 다른 오크들도 그놈을 탓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유발도 고개를 끄덕였다.
“위기를 벗어나려고 한 연극이지만, 본의 아니게 이곳 오크들의 특성을 시험해 본 것 같군요.”
“내가 유발 씨 실수를 커버해 준 거예요.”
캐슬린이 잘난 척을 했고, 유발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하게 생각하지.”
“그래야죠. 오크들 소굴에서 간신히 꺼낸 마누라님한테 돌아갈 수 있게 해 줬으니.”
“그래놓고 부사관 되어서 다시 오크 소굴로 들어온 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겠다 이 말이에요.”
리안나가 덧붙였다. 유발은 쓴웃음을 지었다.
“직장이 마땅치 않아서.”
닭고기 소동 이후 유발의 아내는 교회의 보살핌 아래 몸과 정신을 추스르고 있었다. 교회는 분명 복지시설이지만, 돈 안 내면 서비스 수준이 확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유발은 아내를 회복시키기 위해 일자리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오크들 밑에서 구른 경험이 많은 그를 정찰병으로 재기용했다.
“개척촌은 일자리가 많지 않나요?”
“일을 아예 못하는 아내를 돌볼 만큼 고수익인 건 별로 없지.”
“돈 많이 벌어요?”
“지금은.”
유발은 자루에서 닭가슴살 육포를 꺼내 하겐에게 한 덩이, 그리고 리안나에게도 한 덩이를 내밀었다.
“일단 식사하고 가지요.”
하겐과 리안나는 찌푸린 얼굴로 그 육포를 받아들었다.
“아직도 남았네, 이거.”
“고기 먹고 싶다. 흰 고기 말고 붉은 고기 말이에요.”
야금야금 육포를 뜯어 먹는 세 주둥이 위에서, 허리띠는 빙글빙글 맴돌았다.
“다들 조심해요. 또 들켜서 내가 연극 해야 하면, 난 그냥 밴시만 챙겨서 돌아갈 거야.”
“오, 그건 솔깃한데요. 그래도 돼요?”
탈영을 꿈꾸는 밴시의 모습에 캐슬린은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물론 오크 본대를 찾은 뒤에.”
“쳇.”
오크 전문가 유발, 군사 전문가 하겐, 허리띠와 인간 여자 모습을 오가며 정찰과 미끼 역할을 하는 캐슬린. 밴시는 작아서 숨기 편한 데다 여차하면 울음소리로 오크들을 기절시키는 역할. 물론 밴시의 비공개 역할은 그보다 더 다양할 것이겠지만, 생략.
“허리띠는 좋겠네요. 식사도 못하고.”
“야, 밴시. 도발할래?”
“고기도 못 먹는 주제에 뭘 얻겠다고 그렇게 명령에 충실해요?”
“맹세했잖니. 맹세는 별수 없어. 그리고 일이 끝나면, 기사님이 기름칠을 해 줄 거야.”
“가죽제품답네요. 그딴 게 포상이라니.”
야금야금 우물우물. 제일 먼저 일어난 건 하겐이었다.
“잡담은 그만하고, 더 깊게 들어가자. 오크 본대를 찾기 전에는 못 돌아가.”
4인조는 다시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 은밀행동과 거리가 가장 먼 것은 유발이었지만, 오크 정찰병들과 맞닥뜨릴 때마다 캐슬린이 미끼 역할로 시선을 끌고 그새 숨는 방법을 썼다.
“언제까지 이 방법이 통하려나요?”
리안나의 질문에 하겐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안 통하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본대’가 가깝다는 신호겠지.”
“으아. 싫다. 목숨 건 증명이잖아요.”
“밴시는 안 죽잖아.”
“죽거든요! 죽는 방법이 비밀이지!”
“그게 그 말이구만.”
그 순간, 캐슬린이 하늘에서 날아왔다.
“오크 놈들 벙찌는 꼴 보는 것도 슬슬 질리네요. 방금 놈들은 좀 더 재밌긴 하더라만.”
“왜 좀 더 재밌어?”
“자기네 본진 쪽으로 몰아가더라고요. 거기 오크 진영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그 말을 먼저 해! 진짜 오크 진영이야? 크기는?”
“몰라요. 그런 건 군사 전문가가 봐야죠. 전 오크들한테 포위당했다가 짐승굴로 도망쳤을 뿐이에요. 오크 놈들, 제가 땅굴로 기어들어 가는 걸 비웃으며 뒤늦게 따라오더니 안에 아무것도 없는 걸 보고 벙찌더라고요. 하하.”
허리띠로 모습을 바꿔 어둠이나 틈새 속에 숨어 있다가 도망쳤을 것이다. 하겐은 뒤의 잡설은 듣지도 않고 바로 허리띠가 날아온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한참 나아간 뒤, 야트막한 언덕 위로 올라가 고개만 내민 하겐은 과연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것 같은 토굴 앞에서 웅성거리는 오크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숨어서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던 하겐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음. 더 가까이 가면 저놈들이나 초병에게 걸리겠군.”
“어쨌거나 찾았네요. 그래서, 군사전문가 하프엘프 기사양반의 판단은 어때요?”
리안나의 질문에 하겐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그 무리 너머에 커다란 오크 진영이 있었다. 조잡하지만 통일성 있는 천막들. 여기저기에 다발로 묶여 쌓여 있는 병장기들.
“조공과 주공을 헷갈리게 하는 기만전술도 있지만…… 이 경우는 아니겠지.”
“잠깐, 저게 뭐예요?!”
리안나가 깜짝 놀라 지목했다. 커다란 상아를 자랑하는 초대형 코끼리가 진영에서 걸어 나왔다.
쿠우웅!
한둘이 아니었다.
하겐은 리아나와 허리띠를 돌아보았다.
“여기가 주공이다.”
유발은 새장에서 전서구를 꺼냈다. 푸드덕. 전서구가 빠르게 날아갔다. 하겐은 좀 더 적진을 살펴보다 말했다.
“좀 더 알아보고 싶은 게 있는데, 더는 가까이 못 가겠군.”
“왜요?”
“바르그도 있어.”
거대 늑대. 리안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아는데요?”
“늑대 울음소리. 음. 가만있어 보자. 여기도 어딘가에…… 저기 있군.”
하겐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똥무더기였다. 초대형 늑대똥. 하겐은 리안나를 향해 말했다
“개새끼들은 여기저기 싸대는 게 특징이지.”
“그래서 개랑 개 키우는 사람은 싫어요.”
“개는 요정을 무니까. 뭐, 그래도 냄새를 지우면 괜찮지 않겠어?”
“네?”
“몰래 들어가서 늑대가 몇 마리인지 그것만 세어보고 와라.”
“에엑! 그걸 제가 왜 해요! 허리띠 시키세요!”
“허리띠는 유사시 미끼 역할을 하면서 우릴 살려줘야 하니까, 우리 곁을 떠나면 안 되지.”
“밴시는 들켜도 되나요?!”
“안 들킬 거야. 쬐끄만 요정이 위장하면.”
“뭘로 위장하는데요?”
“아까 말했잖아?”
밴시는 늑대똥 무더기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어째 내 차례는 없다 했다.”
* * *
“코끼리! 말로만 들었는데, 그걸 진짜 군대에서 쓰는 놈들이 있군. 흠. 무시무시한데.”
앵글리아군 총사령관이자 국왕, 로버트는 새로 들어온 소식에 혀를 찼다. 전서구 등을 이용해 빠르게 오간 소식은 그에게 감상을 일으켰다. 다만, 일반인들과는 좀 다른 감상이었다.
“그냥 내가 북쪽으로 간다 할 걸 그랬나. 오크 새끼들은 코끼리 안 키우잖아? 주술사왕의 군대만 쓰는 거잖아, 그거?”
“그렇습니다, 폐하.”
한 신하가 대답했다. 로버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 진짜. 재미난 건 왜 에드워드 그 새끼가 독식하느냔 말이다. 건방진 아퀴타니아 새끼들은 내가 한마디 좀 했다고 빡쳐서 협동도 거부해 버리고.”
“니들이 왜 지랄인지 모르겠고 니 애비의 침대와 애미의 요강이나 끌어안고 있으라던 그 말씀은, 솔직히 말해서, 아퀴타니아어로 말씀하시면 안 됐습니다.”
“놀라운 건 나도 알면서 말했다는 점이다.”
주변의 다른 신하와 기사들은 표정이 반반 갈렸다. 후련하다는 것 반, 이제 어쩌냐는 것 반.
근육형 재난 꺽다리 로버트는 분명 근접전에서는 거의 무적을 자랑했다. 그러나 길거리의 방랑 깡패가 아닌 이상에야, 함부로 주먹을 휘두를 수도 없었다. 상대가 이웃나라 왕세자요, 같이 순례를 온 자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차마 폭력을 휘두를 수 없는 상황에서 말만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은 꺽다리 로버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지 않았다.
“왕의 깃발을 두고 느닷없이 화를 내는데, 폐하께서 참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로써 아퀴타니아군이 완전히 독자 행동을 하게 됐습니다. 이러다 각개격파 당하면 형세가 위태로워집니다.”
“그럼 그 불합리한 의심을 참습니까?”
신하들이 한마디씩 얹자 꺽다리 로버트는 한결 식은 머리를 굴렸다.
“그건 그런데. 야. 잠깐만. 아퀴타니아 왕세자 새끼 말이다.”
“예?”
“분명히 자기 깃발이 부러졌다고 그랬지?”
“예. 그걸 왜 우리한테 와서 따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옆에 내 깃발이 있었다잖아.”
“있을 수도 있지요. 여기 깃발이 몇 개인데.”
“그놈 말이, 자기가 깃발 꽂을 때는 내 깃발이 없었댔거든?”
“그게 뭐 대수겠습니까?”
“야, 이 새끼야. 들어봐라. 아퀴타니아놈들 말은 결국 그거잖아. 우리 군이 아퀴타니아 왕세자 깃발을 욕보이고 내 깃발을 대신 꽂아놓은 거 아니냐는 의심 말이야.”
“왕세자한테 감정 안 좋은 기사들도 있지만, 왕의 허락 없이 그럴 놈이 있겠습니까? 바람이 불었는데 아퀴타니아 왕세자의 깃발만 부러졌다던가 그런 거겠죠.”
“그치? 나도 그렇게 말했거든. 근데 납득을 못하더란 말이야.”
“그러니 속 좁은 아퀴타니아놈들이죠.”
“그런데 그거, 진짜 우연일까?”
침묵. 머리가 좀 돌아가는 참모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다.
“어둠의 족속들이 한 짓…… 이라면 큰일이군요.”
“젠장. 그렇다면 이건 완전히 놀아난 건데. 남동쪽 오크 새끼들은 이런 수단 안 쓴다고 하지 않았냐?”
“지원 나온 주술사왕의 수하일 가능성은 무시 못하지요. 서둘러 아퀴타니아 왕세자에게 전령을 보내야겠…….”
바로 다른 참모가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그 전령을 보내면 폐하의 권위에 상처가 됩니다.”
“두 분에서 다시 이야기해서 오해를 풀면 그 문제도 해결됩니다.”
“안 되면요? 이미 서로 모욕이 오갔는데…….”
꺽다리 로버트가 발로 바닥을 탁탁 치며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순간, 그의 발소리보다 큰 발소리가 땅을 울렸다.
쿠웅!
꺽다리 로버트는 첫 비명이 들리기도 전에 벌떡 일어섰다.
“새끼들. 빠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