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92)
292화 전초전 (1)
소음의 정체는 오거에 약간 못 미칠 정도로 큰 ‘거대’ 오크와 그 부하들로 만들어진 군세였다.
그 대장놈은 덩치뿐만 아니라 외관부터가 이질적이었는데, 이마에는 상아를 잘라다 붙인 ‘뿔’이 있었고, 오른손은 커다란 장도리 의수였다. 몸 곳곳은 얕은 상처와 흉터가 났는데, 상처는 노란 고름과 진물이 맴돌며 악취를 풍겼다.
본토에서는 오크 못 본 지가 꽤 된 앵글리아군은 일부 병사들이 패닉을 일으킬 정도로 낯선 모양새였다.
“나는 망치요, 곧 선봉이라!”
거대 오크는 고함을 내지르면서 앵글리아군을 향해 돌격해왔다. 앵글리아군은 중보병들이 일단 맞선다는 식으로 나섰지만, 망치질 한 번에 나가떨어지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대열은 순식간에 와해 되었고, 그 뒤를 일반적인 오크들이 뒤따라 들어와 균열을 벌렸다.
“으아아악!”
“막아라! 막아!”
“기사들이 와야 막는 거 아냐, 저거?!”
약간 늦게 몇몇 기사들이 합류했고, 그들 중 일부는 말에 올라타기까지 했으나, 오크를 막지는 못했다. 지휘부 천막 밖으로 나온 앵글리아 국왕 로버트는 그 난리통과 오크를 보고 감상을 말했다.
“고블린이 홉고블린으로 커지는 건 들어봤는데, 오크도 그게 가능한 거였나?”
“들어본 바가 없진 않으나 보기 쉬운 건 아닌 걸로 압니다.”
신하 하나가 대답했다. 로버트는 콧김을 내뿜었다.
“성지답군.”
로버트는 하인이 들고 온 자신의 도끼를 받고는 앞으로 나섰다. 앵글리아군이 왕을 위해 썰물처럼 갈라지는 순간, 거대 오크도 그 흐름을 눈치채고 로버트한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왕의 걸음이 멈추기도 전에 오크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네놈! 네놈이 바로 앵가리아 두목이구나!”
“앵글리아다. 그러는 너는 대족장, 아니, 대추장이냐?”
오크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거기까지 그분의 명성이 퍼졌구나! 그러나 고작 네놈 따위에 그분까지 나설 필요도 없다! 내 명성이 그 뒤를 따를지니, 나는 강철주먹 부족의 족장 가즐이다!”
“김 새네.”
“뭣이?! 네놈이 감히 날 얕본 거냐!”
“야, 하나만 묻자. 대추장이란 놈은 너보다 더 크냐?”
거대 오크 가즐은 대답하지 않고 콧김을 내뿜었다. 그놈은 장도리 의수를 높이 치켜들며 소리쳤다.
“육신에서 해방시켜 줄 테니, 그 좋다는 천국에서 한번 굽어보라!”
그 말과 동시에 강철주먹 부족장은 땅을 박차고 나섰다. 그러나 꺽다리왕은 뭐 이런 게 다 있냐는 표정으로 도끼를 고쳐잡을 뿐이었다.
“뭐, 대추장도 그 악마 새끼보다는 작겠군.”
다쉬사베스가 들으면 질릴 발언을 한 다음, 왕도 똑같이 땅을 박차고 나섰다. 왕의 머리로 장도리가 떨어지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에.
“흡?!”
꺽다리왕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더 빠르자, 가즐은 당황해서 숨을 삼켰다. 그가 크게 휘둘렀던 동작을 수습하기 전에, 다리에서 커다란 충격이 가해졌다.
쿠웅!
“이, 인간 주제에 이 무슨!”
“네 앞에 있는 건 한낱 인간이 아니라.”
꺽다리왕 로버트가 말했다. 짜증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곧바로 다음 일격이 반쯤 무릎 꿇은 가즐의 명치에 꽂혔다. 배에 두른 갑옷이 박살 나는 소리가 울리더니 가즐의 무릎이 땅에 닿았다.
쿠웅!
“나는 신께서 앵글리아의 국왕으로 선택하신 자다.”
꺽다리 로버트의 도끼날이 가즐의 목덜미에 닿았다.
“내가 한낱 인간으로 돌아가는 건 오로지 신 앞에 섰을 때뿐이다. 네놈들 앞이 아니라.”
“이 쬐끄만 인간이!”
꺽다리 로버트를 ‘쬐끄맣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거인급 체구들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그러나 그 특권이 무색하게도, 꺽다리 로버트의 괴력은 가즐을 상회했다. 도끼머리가 가즐의 관자놀이를 후려갈겨 그를 옆으로 쓰러뜨렸다.
자기네 부족장이 제대로 된 일격도 못 날리고 쓰러지는 걸 본 오크들은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앵글리아군도 왕이 굉장히 싱겁게 거대 오크를 제압하는 걸 보고 잠시 얼이 빠졌다.
“이게 끝? 뭔가 더 있지 않아?”
“말도 안 타고 그냥 파리 잡듯…….”
“어, 함성 질러도 되는 건가?”
“눈치 챙겨, 제리.”
쌍방이 어색하게 느끼는 순간. 꺽다리 로버트가 신하들을 향해 말했다.
“야, 이 새끼 키워도 되냐?”
“키워서 어따 쓰시게요?”
“심심할 때마다 패는 용도로 쓰게. 맷집은 좋네.”
“오크는 키우는 게 아닙니다, 폐하. 앵글리아 본토에서 기껏 박멸시켰는데 그걸 또 왜 끌고 가세요?”
“심심하잖아. 그리고 앵글리아까지 끌고 갈 거 아냐.”
“성지에서만 키우다 버리시게요?”
“더 강한 놈 나오면 갈아치워야지.”
“그렇게 갈아치우다, 제일 강한 오크는 앵글리아까지 끌고 가서 조리돌리시게요?”
“바로 그거야.”
“안 됩니다.”
“아, 왜!”
“평소에 오크 괜히 전멸시켰다고 농담하시던 것 보면 ‘오크 목장’을 세우셔도 이상할 게 없으니까 그렇죠!”
“농담이었잖아!”
“근데 지금 진짜 하려고 하시네요!”
앵글리아 궁정 사람들이 만담하는 동안 가즐은 꾸룩거리는 신음소리만 흘렸다. 오크들은 설설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때쯤, 뒤늦게 말에 올라탄 기사들은 상황 파악 못하고 오크들을 향해 돌격했다. 왕 앞에서 자기 무용을 드러내기 위해.
“오크놈들이 여기까지 왔구나!”
“내 칼을 받아라!”
바로 그 순간 오크 대열은 완전히 붕괴하고 패주하기 시작했다. 신하들이랑 잠시 더 옥신각신하던 꺽다리 로버트는 결국 ‘실험용’이라는 명목 아래 가즐을 구속한 다음, 하인들을 향해 명했다.
“그러고 보니 말도 안 탔네. 야, 내 말 끌고 와라. 일단 마저 족치자.”
“빨리 오셔야 됩니다. 이 새끼, 사슬 끊어버리고 난동부리면 저희가 감당하기 힘듭니다.”
“걱정 마. 단단히 묶어놨으니까.”
꺽다리 로버트는 곧 도착한 자기 말 위에 올라서서는, 패주하는 오크 군대를 내려다보았다.
“오래 걸리지가 않을 테니.”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는 아퀴타니아군이 있던 장소로 고개를 돌렸다. 쥐새끼 한 마리 없었다. 꺽다리 로버트는 이를 갈았다.
“속 좁은 새끼들.”
* * *
성묘수호기사단원이자 검은벽요새사령관인 올리비아는 에드워드가 출정했다는 소식에 다시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베로니카 소식에.
“공주님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안주인 행세를 하시면 될 텐데, 왜 굳이 그 위험한 전장을 바락바락 쫓아가시는지! 아아, 내가 공주님을 지키려고 그 좆같은 기사양성과정에 기사단식 수도생활도 버텼는데! 정작 이럴 때 이런 궁벽한 요새에 처박혀서!”
길고 긴 혼잣말이었다. 그녀의 아버지 파브리스가 보낸 하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 말에 간신히 동조했다.
“그러게나 말이죠. 카말라 백작님도 무장하셔라. 아가씨의 뜨거운 마음을 몰라주다니.”
“아, 그 인간은 계속 몰라주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라는 말이 목구멍 밖으로 손을 내밀 뻔했다. 그러나 그녀는 일개 하녀에게는 보기 드문 냉정함으로 간신히 조언을 붙였다.
“하지만 이 요새를 지키는 것도 베로니카 공주님을 위한 건 틀림없잖아요?”
“그래, 틀림없지. 하지만 보다 좀 더…… 가까이에서 말이야. 응? 알잖아.”
똑똑. 노크 소리. 간신히 정신을 추스른 올리비아는 퉁명스레 물었다.
“뭐냐?”
“적군이 요새 앞에 집결하고 있습니다.”
짧고 굵은 보고였다. 이미 사전정찰로 어느 정도는 그 규모를 짐작하고 있던 올리비아는 확인차 물었다.
“규모는?”
“전의 보고와 비슷합니다.”
2천에서 3천쯤. 작은 숫자는 아니지만, 반대로 요새에서 치고 나가는 걸 막을 정도는 된다. 올리비아는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과연. 이쪽으로는 안 올 모양인가 보네.”
“놈들이 사다리와 공성병기를 가져온 모양입니다.”
“그래도 공략할 준비는 다 했다 이거군. 주공은 물론이고 이쪽까지 돌릴 전력을 결국 끌어모으다니, 주술사왕도 본격적이네.”
올리비아는 본가에서 보낸 하녀를 향해 말했다.
“당분간 웬만하면 밖으로 나오지 마라. 기왓장 꽤나 깨질 테니.”
* * *
에드워드는 CPU를 밴시처럼 만든다면 어느 정도의 성능이 나올까 하는 생각을 문득했다. 리안나는 자신이 보고 온 것들을 정말 두서없이 말했고 듣는 이들을 혼란에 빠뜨렸기 때문이었다.
에드워드가 사전 공작을 벌이던 놈들을 족치는 몇 날 며칠 동안, 적지에 들어가 있다 돌아온 간첩 리안나는 두서없이 말했다.
“커다란 뱀 같고, 커다란 부채 같고, 커다란 기둥 같고, 커다란 담벼락 같고, 커다란 채찍 같은 동물이었어요!”
“세상에 그런 동물이 어딨냐?”
족제비가 깐족거리며 밴시를 놀렸다. 밴시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요정은 거짓말 잘 못한다 이 말이에요!”
“아예 못하진 않지?”
“요정은 본대로 말했다 이거예요! 예를 들면, 아저씨가 마누라 놔두고 다른 여자랑…….”
“으악, 잠깐만!”
족제비는 황급히 밴시의 주둥이를 막았다가, 무지막지한 냄새에 다시 물러섰다.
“으악! 요정은 원래 이런 냄새가 나냐?!”
“요정 냄새 아니라 늑대 똥 냄새랑 그 짐승 똥 냄새예요!”
“왜 그런 냄새가 요정한테서 나는 건데?!”
“그건 저도 하고 싶은 말이네요! 하프엘프한테 물어보라 이 말이에요!”
‘옛 검의 3기사’ 리더 하프엘프 하겐은 간단히 말했다.
“코끼리와 바르그요. 주술사왕의 주력 군대라고 해도 무방하겠지. 그의 직속으로 보이는 변종 오크들도 한가득이오.”
전직 이중간첩 유발도 한마디 덧붙였다.
“역시 처음 보는 놈들이다 보니, 제가 겪어본 오크들과는 뭔가 다르더군요. 행동양식도 다르고, 훨씬 규율이 잘 잡힌 쪽이었습니다. 탐욕만으로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백작님의 허리띠를 쫓아다니는 것도 탐욕에 미쳤다기보다는, 혹여 있을지도 모를 간첩을 색출해내려는 것 같더군요.”
“놈들의 대화는 들어봤나?”
“몇 가지는.”
“주술사왕에 대한 단서는 있었나?”
“온다는 말은 있었는데 언제인지는 놈들도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스텔라에게 말했다.
“증언들과 정보들 취합해서 문서화 해. 폐하께서 오시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할 것 같으니.”
“그러죠.”
“그리고 너한테 붙였던 하녀들 잠깐 좀 쓰자. 리안나 좀 씻겨놔.”
“으윽. 그녀들한테도 너무 고역일 것 같은데…….”
밴시는 발끈해서 스텔라한테 달려들었다.
“마법사도 당해봐라 이거예요!”
“꺄악! 저리가! 묻을라! 꺄아악”
결국 밴시는 스텔라의 하녀들이 아니라 지클린한테 붙잡혀, 그녀의 빨래통으로 다이빙 당했다.
거인의 손으로 급속세탁 당하는 밴시가 비명을 지르는 동안, 에드워드는 문득 바람이 변하는 걸 느꼈다. 서쪽으로 시선을 돌린 그는 대군이 몰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시오니아군이었다.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경건왕께서도 납셨군. 지클린 양?”
“네!”
“밴시 때 좀 확실히 벗겨놓읍시다.”
“맡겨 주시죠!”
대군에서 경건왕과 그 호위기사 무리가 떨어져나와 이쪽으로 달려오는 걸 본 지클린은 의욕을 불태웠다.
“어푸! 밴시 살려! 세탁의 요정이 세탁 당하다니!”
밴시가 아이러니 속에서 몸부림치는 사이, 경건왕 루이는 에드워드 앞에 도착했다. 에드워드는 잽싸게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지만, 루이는 거대한 빨래통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혼란에 빠진 그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결론을 내렸다.
“드디어 저 요정이 배신을 때린 건가?”
에드워드 일행은 웃음으로 그 말을 부정했다. 밴시 빼고.
나쁜 소식들은 그다음에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