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95)
295화 시선끌기와 관문돌파 (1)
경건왕의 군대는 마을과 도시들을 지키고 구원하는 것을 넘어, 어둠의 영역 안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기존 오크들의 요새는 대개 목책 수준이라 대군이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자 맥없이 무너졌다. 최전선까지 진출한 세트렛인들의 요새는 좀 더 견고한 경우가 있었지만, 도찐개찐이었다. 그들도 오래 버티지를 못했다.
“버텨라! 여기가 뚫리면 마을이다!”
세트렛인들이 소리쳤다. 그들은 빈약한 숲 안에서 대열을 짜고 장애물을 배치해서 시오니아군 선발대와 맞서고 있었다.
시오니아 보병대가 전진하며 압박하는 사이, 불사조 장식의 투구를 쓴, 붉은 서코트의 기사가 선두에서 말을 몰았다. 빈약한 숲속에서 적 군대의 측면을 마주친 ‘에드워드’는 과감하게 돌격했다.
“신과 정의를 위하여! 아, 이건 에드워드가 할 말로는 좀 어색한가…….”
뒤의 작은 말은 아무도 듣지 못했다. 기병대가 나무 사이를 쇄도하여 세트렛 보병대의 측면을 두들기자, 진형은 곧 와해되었다.
전투하기도 바빴던 백작 ‘에드워드’는 뒤늦게 원본이 하기 적합한 말을 찾아 외쳤다.
“가, 가차없이, 짓밟아라!”
“백작님, 곧 놈들의 마지막 요새입니다!”
약간 늦었다. 한 기사가 이미 도주 단계에 들어간 적들의 무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옆에 선 종자가 ‘에드워드’에게 물을 주는 척하고는, 그의 속삭임을 대신 크게 읊었다.
“백작께서 마지막 사절을 보내라 하십니다!”
* * *
“카말라 백작 에드워드 경께 항복합니다!”
잠시 뒤, 한 세트렛인이 보물과 노예들을 가져와 항복을 청했다. 그들 앞에 불사조 장식의 투구를 쓴 채로 나타난 ‘에드워드’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주술사왕이 도착할 때까지 더 버티지 않고 항복했는가?”
“연거푸 지원요청을 보냈으나, 그 응답이 늦어 그가 저희를 버렸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여 빛의 자비에 기대오니…….”
세트렛인은 ‘에드워드’의 투구 속 눈을 곁눈질하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잘 보이지도 않는 얼굴과 눈빛에 설설 기는 모습을 ‘에드워드’는 내심 못마땅해했다.
“사제들과 이단심문관들을 보내 너희 요새와 마을들을 수색하겠다. 혹여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이라면, 네 목부터 매달 것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에드워드’의 시선은 보물 뒤에 웅크린 여자들로 향했다. 크게 두 그룹이었는데, 평상복을 입은 쪽과 나름 잘 차려입은 쪽이었다. 둘 다 깔끔한 편이었지만, 특히 후자는 축제라도 벌인 것마냥 몸단장에 힘을 줬다.
“저 여자들은 무엇인가?”
“본래 빛의 진영 출신인 노예들과, 저희들의 딸들입니다.”
“너희 딸들은 왜 데려왔는가?”
세트렛인은 잠시 쭈뼛쭈뼛 하다 조심스레 말했다.
“사람들 하는 말이, 카말라의 백작께서 좋아하실 거라고 해서…….”
‘에드워드’는 침묵했다. 그의 옆에 있던 다른 기사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소문이 그렇단 이야기입니다.”
“무슨 소문?”
“그게, 혹여 에드워드 경이 왕이 된다면, 그 별명은 ‘강건왕’일 거라고…….”
좋은 뜻이 아니라, 호색한 왕에게 주로 붙는 별명이다. 투구 아래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부정은 못하겠는데…… 이걸 어쩌지?”
* * *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나?”
경건왕 루이가 물었다. 그의 천막 안에서 투구를 벗은 ‘에드워드’는 근위기사단장 켈러핸이었다. 그는 곧바로 대답했다.
“바로 거절했으나 연거푸 권했고, 진짜 에드워드의 성정상 이를 끝까지 거절하는 것도 어색할 듯하여…… 일단 받아서 천막 안에 모아놨습니다.”
“부인이 둘이나 되고 연인이 몇이나 되는 사람을 호색한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어려울 테니 말이지.”
경건왕은 쓴웃음을 지었다. 에드워드의 옛 친구 켈러핸도 동조했다.
“그리 드문 특성도 아니라, 그냥 못 이기는 척 받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공주님이 거두거나 해방시키는 걸로 처리하면 될 듯합니다.”
“아직 공주가 후방으로 떠나기 전이라 다행이군.”
왕과 귀족들이 ‘정부’를 두는 거야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부인이 둘 이상인 사례 역시 지역에 따라서는 없지 않다. 그게 일부일처를 못 박은 교권 국가라고 해도, 결혼에 대해 서로 다른 규율을 가진 집단들이 오가는 곳은 별별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니까.
“여기 와서는 내 여동생이 그를 좀 휘어잡은 듯하지만…… 남자란 별수 없는 동물이지.”
“폐하께서는 그와 반대로 금욕적인 생활을 하시지 않습니까? 왕의 모범이란 때때로…….”
“나도 마음에 두었던 여인 한둘쯤은 있네. 여러 사정으로 같이 갈 수 없을 뿐이지.”
최소 하나는 경건왕의 그 경건한 생활방식에 질려서 떠났다고 들었다. 하지만 켈러핸은 그걸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경건왕은 넋두리처럼 말했다.
“베로니카가 내 생활방식을 비난한 적이 있었지. 지금 시오니아에 필요한 건 수도사 같은 왕이 아니라 전사 같은 왕이라고. 내 기도에 신이 응답하신 이후에도 그 입장을 바꾸지 않았어.”
“공주님 나름대로의 기준일 뿐입니다.”
“그래. 재밌게도, 그 기준과 선택 때문에 걔는 나름대로 속이 타겠지만.”
남편이 오빠와 반대되는 호색한 특성을 가져도 감수할 수 있거나 오히려 필요하다고 봤다지만, 그 특성이 ‘공주’한테는 몰라도 ‘여자’한테는 위험하니까. 경건왕은 웃으면서 술잔을 조금 기울였다. 어의가 기력보충을 위해 강권해서 마시는 것으로, 물을 많이 탄 술이었다.
“적절하게 행동하는 건 항상 어렵지.”
“말씀대로입니다.”
친구 에드워드를 연기하고 있는 켈러핸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건왕은 다시 베로니카한테로 화제를 옮겼다.
“공주는 지금 뭘 하고 있나?”
“출발 준비에 앞서 에드워드 경을 위해 기도 중입니다.”
“그래. 이제야 후방으로 빠지는군.”
“생각 같아서는 바로 보내드리고 싶습니다만…….”
“그 괄괄한 애가 바로 후방으로 빠질 리가 없지. 그랬다간 모양새가 이상하니까, 주술사왕이 의심할지도 몰라.”
“그렇습니다.”
“공주의 호위는 충분히 붙이도록 하게. 과하다 싶을 정도로. 깃발도 여러 개 들고.”
“예.”
“자네가 카말라 백작의 친구인 게 다행이군. 그의 특성을 이해하니 연기도 할 수 있고, 신의를 지키는 자니 공주를 넘보지도 않겠지.”
“연기가 더 어렵더군요.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긴 합니다만.”
경건왕은 웃어 버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길지 않았다.
“혹여 에드워드 경이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도로 자네와 이야기를 진행하고 싶네.”
베로니카 공주와 결혼할 생각이 있냐는 뜻. 켈러핸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 녀석은 돌아올 겁니다.”
* * *
시르티카 백작가의 베로니카, 로니는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손질했다. 툭하면 도로 곱슬곱슬하게 돌아가려는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그녀는 서둘러 짐을 싸는 하녀들을 재촉했다.
“얼른, 얼른 서둘러! 켈러핸 경이나 국왕 폐하께서 눈치채기 전에 후방으로 가야 돼!”
“켈러핸 경은 눈치챌 일이 없을 것 같던데요.”
한 하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로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이지. 내 옆에서 남편을 연기해야 하니까. 그가 공주님에 대해 잘 알았다면 내 정체는 이미 들키고도 남았어.”
“아쉬우시겠어요? 소문난 기사님 옆에서 공주님 대우를 받는데, 이젠 못하시니.”
“넌 사제한테 무슨 소릴 하는 거니?!”
“사제는 결혼 못하나요, 뭐. 공주님도 사제신데 에드워드 경이랑…….”
“꺄악! 그만! 음담패설 금지! 빛이여, 부디 제가 탐욕을 경계케 하시고…….”
“이걸 기회로 조만간 켈러핸 경과 인연 만들어보시는 건 어때요? 정체를 밝히고 같이 고민하는 것 정도면 기회로 딱…….”
“너 나 죽이고 싶니?! 켈러핸 경은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야! 국왕 폐하께 공주님의 일탈을 바로 보고하고도 남는다고! 아, 정말! 생각 같아서는 바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그건 또 너무 어색할 것 같다면서 시간을 질질 끄는 바람에! 아아, 공주님. 제발 빨리 돌아와 주세요.”
로니는 의자를 붙잡고, 좌절한 자의 포즈를 취했다.
“괄괄하기가 시골 말괄량이 못지않으신 분이라니까. 하긴 그런 분이니 호색한을 남편감으로 고르고도 잘 지내는 것 아니겠냐마는…….”
* * *
공주 베로니카는 뚱한 표정으로 부적을 바라보았다. 양피지에 온갖 모양새의 장식물을 이거저거 달아놓은 부적이었다.
“누가 내 욕을 하고 있나 본데.”
“그게 뭔데?”
에드워드가 어깨 너머로 힐끗 보고는 물었다. 베로니카는 부적을 갈무리해 품 안으로 넣으며 말했다.
“부적.”
“엥? 부적을 갖고 다녀도 돼?”
“사제로서 들고 다니는 게 아니야. 공주로서 진상 받은 것 중 하나지.”
“하긴, 넌 순례 때도 무단으로 부적들 건드리더라.”
“난 전문가거든?”
“그래, 그런 변명을 했지. 근데 그 부적이 있으면 누가 니 욕을 하는지 알 수 있어?”
“지배자들이 가질 만한 부적이지. 앞에선 충성스러운 척하면서 뒤에서는 음모를 꾸미는 게 아랫사람들의 특징이니.”
“아이고, 무서워라.”
“너도 여기 포함될지 한번 실험해 볼까?”
“엥? 어떻게?”
베로니카는 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네 시건방진 태도를 보니, 그날 밤에 네 체액을 좀 덜 빼준 것 같은데.”
“말라 붙었거든?! 이제 회복기야!”
베로니카는 도로 부적을 꺼냈다. 그리고는 그 장식물들의 색채를 살펴보다 중얼거렸다.
“쳇.”
“무슨 의미야,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베로니카가 다시 부적을 숨기는 사이, 가르달이 말했다.
“거 우리 여기 있다고 광고를 할 셈이오? 사랑싸움은 나중에 하시라고.”
“그러고 보니 소금산의 드워프는 광고를 잘 하는 편인가요?”
뻔한 화제 돌리기였지만 가르달은 바로 낚였다.
“아니! 왕실독점계약 상인은 광고 따위 안 해도 되지!”
“편하겠군요.”
“대신 뇌물을 쓰지. 광고비보다 확실하다고.”
이 시대의 광고라는 건 끽해야 게시판에 뭔가 써 붙이거나, 간판에 신경을 쓰거나, 호객꾼을 고용하는 것. 효과가 없을 법했다.
카치운이 바로 말했다.
“그 뇌물 수수 실력을 지금 좀 보고 싶군. 전방에 적 감시탑이오. 세트렛인들이 지키고 있고. 일종의 관문 같은데.”
관문. 지배자가 길목마다 설치해서 통행세를 걷는 곳. 왕이건 영주건 통행세는 중요한 수입원이고, 그건 오크나 세트렛쪽도 마찬가지였다. 드워프는 짧은 다리를 빠르게 놀려 카치운이 가르킨 방향으로 포복전진했다 돌아왔다.
“과연. 관문이군. 우리 모두 몇 명이지?”
“20명요.”
헬레나가 말했다. 에드워드, 베로니카, 리안나, 헬레나, 가르달, 스텔라, 카치운 외 지원병력이 13명. 에드워드가 고른 기사가 다섯. 헬레나가 고른 엘프가 다섯. 카치운을 따라온 유목민이 셋이었다.
“뇌물을 받고 20명씩이나 모른 척 통과시켜줄 만큼 저기가 융통성 넘칠까?”
가르달은 굵은 손가락을 꼽아보다 말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난 아니라고 봐.”
“흠. 좋은 방법 생각나는 거 있소?”
“미염공이라는 분이 다섯 관문 통과한 방법이 있소.”
“뭔데?”
“여섯 장수의 목을 다 치고 지나갔지.”
“거 사내답고 호쾌하군! 관문 숫자보다 하나 더 베었다는 게 마음에 들어!”
드워프가 안 좋은 방식으로 호응하는 걸 스텔라가 뜯어말렸다.
“경비병이 몇 명 있어 보이진 않는데…… 그래도 조심해야겠죠. 한 놈이라도 놓치거나, 봉화를 올리거나, 전서구를 날리면 안 되잖아요. 아, 변장하면 어떨까요? 일단 엘프는 반반 가르죠.”
“뭘 갈라요?”
헬레나가 묻자 스텔라는 어깨를 으쓱였다.
“전부 타락한 엘프거나 전부 포로로 잡힌 엘프라고 하면 뭔가 좀 어색하잖아요. 거짓말 못하는 사람들이 포로 역을 하죠. 그리고 리안나는…… 어? 얘 어디 갔어요?”
요정의 행방은 베로니카가 알았다. 그녀는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요.”
리안나는 허리띠 캐슬린에 매달려 축 늘어진 채 날아가고 있었다. 소리 없이 하늘을 날아간 밴시는 잠시 뒤 관문 지붕에 내려 앉았고, 커다란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헬레나는 황급히 귀를 막으며 말했다.
“쟤 울음소리가 저렇게 강했나요?! 왜 도로 강해진 거죠?”
“출발 전에 미아 양이 ‘확성기’라는 걸 만들어줬거든요.”
베로니카가 답했다. 에드워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금속으로 만든 깔때기. 스텔라의 박사학위 심사를 엿듣는 데 쓰던 것을 반대로 응용한 것이었다. 그는 검을 들고 일어섰다.
“과연. 이런 식으로 돌파하면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