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96)
296화 시선끌기와 관문돌파 (2)
미아가 만들어 준 확성기는 황동으로 만든 깔때기 형태로, 나팔 제작자 등 금속장인들이 참여해 제작한 것이었다. 전기신호로 소리를 증폭해 주는 현대적인 물건에 비하면 장난감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멀리까지 소리가 전달되는 효과는 있었다. 무엇보다도, 밴시가 쓰기에는 충분했다.
“와! 이거 재밌는데요! 나팔 방향이 향하는 대로 사람이 쓰러져요!”
리안나가 신나서 방방 뛰었다. 에드워드는 그 말에 바로 미소를 지었다.
“조준이 가능해졌단 말이군. 전화위복인데?”
“밴시 업그레이드!”
“소리가 커지는 것만으로도 원래 위력을 꽤 회복한단 말이지. 흠. 스텔라.”
“네?”
“번개마법으로 얘 울음소릴 키우는 방법 없을까?”
에드워드의 의도는 전기신호 증폭을 말하는 것이었지만 스텔라는 거기까지 짚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런 기술 따위 없으니까. 대신 무시무시한 결론에 도달했다.
“밴시를 번개로 고문하자고요?”
“아니, 그게 아닌데.”
리안나는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기사님은 악당!”
“아니, 그게 아니라고…… 됐다. 관두자.”
에드워드는 스텔라의 말을 정정해주거나 밴시를 응징하지 않고 이야기를 끝냈다. 그는 스피커의 구조 따위 모르므로 어쩔 수가 없었다. 자석이 쓰인다는 것 말고는 전혀 몰랐으니.
하지만 사정을 모르는 밴시는 바락바락 따지고 들었다.
“왜 밴시가 더 쓸모 있어지자 더 강한 고문을 받게 되는 거죠?!”
“그런 거 아니라니까.”
에드워드는 거듭 부정했다. 스텔라는 뭔가 깨달은 듯 리안나의 귀에다 대고 뭐라 속삭였는데, 밴시는 더 기겁했다.
“앞으로 시오니아에 오는 밴시들은 전부 깔때기를 들고 고문받게 되나요?!”
“무슨 상상을 한 거야? 왜 다른 밴시들까지 걱정하고 그러냐?”
“경전에서 왈, 성벽을 일곱 바퀴 돌고 나팔 불면 성이 무너진댔어요!”
“그건 나도 들은 것 같다. 그게 왜?”
“그럼 밴시 일곱이 깔때기를 들면 성도 단번에 무너뜨리는 공성병기가 되죠!”
에드워드는 잠시 하늘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밴시를 응징했다.
“공성병기들한테 사과해.”
“미안해요, 신의 작은 주먹!”
“큰 주먹한테도 사과하고.”
“걘 못 봤는데요!”
“그럼 수학과 논리학한테 사과해.”
“걔들은 요정들과 사람들한테 사과해야 할 일이 더 많지 않나요!”
베로니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봤다.
“너네 뭐하니. 그만 놀고 다음 관문으로 서둘러 가자.”
“오오, 이런 식으로 계속 관문돌파를 할 거요?”
세트렛인들의 모가지를 치고 있던 드워프의 말이었다. 베로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가능하면 우회할 거예요. 관문 수비병들 다 죽이는 것도 일이네요. 결국 흔적을 남기는 것이니 들킬 가능성도 높아지고.”
이곳의 수비병은 열에서 스무 명 남짓. 별 볼 일 없는 숫자지만, 성문을 닫고 돌과 마름쇠를 뿌리며 저항했다면 에드워드네 잠복조는 임무 실패 확률이 커진다. 이들이 반응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안 주는 게 중요했다.
“아, 가르달. 거기 한둘은 살려두쇼.”
에드워드가 말했다. 가르달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두 번째 관문은 밤에 도착할 것 같거든. 그때 써먹어 볼까 해서.”
가르달은 이해 못하고 눈만 꿈뻑거렸다. 에드워드는 삼국지에서 본 계책을 머리 밖으로 꺼냈다.
“아군인 척해서 문을 열게 할 거요.”
가르달은 자기 이마를 쳤다.
“탁월한 방법이군! 보자, 어느 놈을 살려 줄까?”
카치운은 쓰러진 세트렛인들을 힐끗 보고는 조언했다.
“이미 셋만 남았네. 셋 그냥 데려가.”
“기사 양반이 한둘이랬잖소.”
“세 명 정도가 말해야 그럴듯하게 들리지.”
“그런가?”
팔랑귀 드워프는 빠르게 납득했고, 세트렛인 셋은 목숨을 건졌다. 그들은 에드워드 앞에 무릎 꿇은 채 벌벌 떨었다.
“모, 목숨만은…….”
“저 은발 괴물과 피에 미친 드워프한테 던져 주지만 마십시오!”
“괴물 아닌데요! 요정인데요!”
“리안나, 가만히 좀 있자.”
헬레나가 리안나를 끌고 가는 사이, 에드워드는 용건만 말했다.
“아군인 척 다음 관문을 열어라. 꾀 쓰다 걸리면 죽는다. 제대로만 하면 상을 주고 풀어 주겠다.”
세트렛인들은 빠르게 납득했고, 일행은 다시 말에 올랐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백작답게 군대 지휘할 거라더니, 결국 조르쥬 경처럼 적지 한복판을 돌고 있네.”
“원래는 그랬어야 했는데 말이지. 이래저래 일이 꼬인 이상 기발한 방법으로 허를 찌르는 건 필요해.”
“순례 때 같네.”
“어째 기뻐 보인다?”
“기분 탓이야.”
뒤이어 도착한 두 번째 관문은, 돌로 지은 것이었다. 그러나 뭘로 지었든 그 견고함을 시험해 볼 새는 없었다. 에드워드 생각대로 쉽게 떨어진 것이다. 수비대는 포로들을 잠깐 의심하는 것 같았지만 곧 문을 열어버렸고, 말을 탄 잠입조는 곧바로 관문에 난입했다.
“저, 적이다!”
“봉화대!”
“불이 안 붙습니다!”
“전서구는?!”
“누가 우리를 열어놨습니다!”
수비대는 빠르게 항복했다. 밴시는 물병을 들고 중얼거렸다.
“곧 주술사왕 앞에 서겠네.”
* * *
주술사왕은 본대를 이끌고 나와 결전을 준비했다. 그는 수세로 기다리는 건 주도권을 놓치는 일이라 생각했다.
앵글리아와 아퀴타니아를 분열시키고 그들을 지연시키는 사이, 시오니아군부터 몰아서 격멸한다. 설령 꺽다리 로버트의 손에 오크 군대가 궤멸하고 대족장이 죽는 날이 오더라도, 주술사왕의 앞에 설 때쯤 성전군은 너덜너덜해져 있을 것이다.
웬만한 유목민 버일러의 천막보다 더 큰 천막 안에서, 하인들의 시중을 받아 갑옷을 입어보던 노인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입어보는군. 어디 상한 데는 없는가?”
한 하인이 비늘갑옷을 엮은 가죽끈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말했다.
“모두 새 끈으로 갈아 튼튼합니다.”
“그렇군. 삭은 끈들은 어찌 처리했나?”
하인들 사이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답이 늦다.”
주술사왕이 힐난하자, 말하던 자가 계속 말했다.
“부스러져 수습이 어려워 그냥 버렸습니다. 도로 챙겨와야 할지요?”
이번엔 주술사왕이 침묵했다. 그는 한참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그게 무엇의 가죽인지 아느냐?”
“전혀 모르겠습니다.”
“전설 속 황금소의 가죽이다. 마지막으로 진상 받은 것은 2백 년 전이었지.”
침묵. 하인들의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전설인지, 무슨 동물인지는 몰라도 뭔가 무시무시하게 희귀한 것을 버렸다는 것을 깨닫기는 충분했다.
주술사왕은 그들을 비웃었다.
“하긴 이렇게 말해도, 너희가 그 가치를 온전히 상상할 수는 없을 것 같다만.”
“살려 주십시오!”
하인들은 죄다 무릎 꿇어서 빌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입을 열었던 자가 바닥에 머리를 박고는 말했다.
“무, 무슨 수를 써서든 도로 찾아오겠……!”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주술사왕은 길어질 것 같은 애걸의 싹을 잘랐다. 하인들은 정말 죽는 줄 알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주술사왕은 당장 그들을 죽이거나, 죽이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손이나 마저 놀려라.”
“예, 예!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하인들은 황급히 일어나 하던 작업에 몰두했다. 주술사왕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귀한 것도 삭아버리면 쓸모없는 법이지. 천국과 지옥마저 그래. 그 숨 막히는 무게를 못이기는 건 천사도 악마도 마찬가지야. 그러니 신흥악마들이 기세를 못 참고 날뛰는 것이지.”
하인들은 감히 말을 덧붙일 생각을 못하고, 자기 할 일만 빠르게 끝낸 뒤 물러섰다.
“다 됐습니다.”
주술사왕은 자신의 침소를 벗어나 천막 한가운데 홀로 나아갔다. 거기엔 갖가지 양식의 옷과 갑옷을 입은 세트렛인, 오크, 오거가 수십 명 있었다. 다들 장수급. 드문드문 엘프 사교도도 보였다.
“시오니아군은 어쩌고 있는가?”
주술사왕의 첫 질문이었다. 한 세트렛 장수가 바로 대답했다.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해 세트렛 소도시들, 요새들, 개척촌들을 공격 중입니다.진격로를 확보하려는 듯합니다.”
“방향은?”
“아다시르에서 유로푸스로 이어지는 축선입니다.”
주술사왕은 지도로 시선을 내리지도 않았다. 그는 고개만 한번 끄덕였다.
“수로군. 물 보급을 우선시하고 있어. 과연 경건왕답게 견실하군.”
“연합군이 지연되고 있는데 오히려 치고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시작해버린 전쟁이니까. 앵글리아군과 아퀴타니아군이 기한 안에 도착해주기만을 바랄 뿐이겠지. 아니면 자기들만으로 어떻게 해 보려고 하던가.”
한 번 소집해제 해 버린 군대를 다시 모으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모하군요.”
“기사란 족속들이 다 그렇지. 나 역시 그에 맞설 준비는 해놨다만.”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어디선가 코끼리 울음소리가 울렸다. 한 참모가 밖을 힐끗거리다 입을 열었다.
“폐하. 코끼리들이 소모하는 식량과 물의 양이 만만치 않습니다. 매일 건초와 콩을 말하기도 힘들 만큼 먹어치우는데…….”
“그걸 어떻게든 조달해오는 게 식량담당관의 일이 아니던가? 이미 논의를 다 끝낸 문제 아닌가?”
참모는 고개를 숙였다.
“코끼리들이 예상보다 더 많이 먹습니다. 먹이를 섣불리 줄였다간 폭동을 일으키거나 탈주할 가능성도 있기에…….”
주술사왕은 얼굴을 찌푸렸다.
“어렵게 끌고 온 것들이다.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는 마라.”
“예. 그러니 폐하, 가능하면 여기서 적을 맞는 게 어떻겠습니까?”
“여기서?”
“예. 현 집결지는 각지에서 식량과 물을 조달하기가 쉽습니다. 굳이 조금이라도 움직여 대군의 부담을 늘릴 필요가 있을지요?”
“흠. 지형상 불리하다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주술사왕은 그제야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군대가 모인 집결지는 양쪽에 산을 낀 평지였다.
“기사대의 우회기동 따위 허용하지 말고, 정면으로 짓밟아버리기에도 좋은 지형입니다.”
“하지만 원래 예정지보다는 좁다.”
“약간 더 좁을 뿐입니다.”
주술사왕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약간 더 좁을 뿐. 그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화제를 돌렸다.
“적 주요 기사들의 동태는 어떤가?”
“첩자를 이용해, 우리 군이 조르쥬 경을 잡아 처형했다는 소식을 흘렸지만, 시오니아군에 별다른 동요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가 고향에서는 유망한 기사였는지 몰라도 성지에서는 그닥 명성이 높지 않은 듯합니다.”
주술사왕은 코웃음을 쳤다.
“시오니아 놈들은 애초에 별 기대를 안 한 것인가? 동향인 아퀴타니아군쪽은?”
“왕세자가 끌고 온 ‘법과 죽음의 기사대’가 아쉬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이상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렇군. 놈들은 어차피 멈추지는 않겠지. 아, 남은 사절단의 수색을 멈추지 마라. 대역을 썼을 가능성도 있다.”
“대역을요? 그리 비겁한 짓을 하는 자라고는 못 들었습니다만…….”
“희생자가 자처했을 수도 있지. 아니면 시체와 옷을 바꿔 입었다던가, 그를 잡았다는 놈이 뭔가 착각했을 뿐이라던가. 확실한 게 아니라면, 가능성은 항상 열어둬라.”
“알겠습니다. 아, 앵글리아군은 오크 족장 가즐의 군대와 맞닥뜨렸다는데…….”
“가즐이 졌겠지. 설명 안 해도 된다. 꺽다리왕 로버트가 강철주먹 따위로 어떻게 될 인간이면 이 고생 안 하지.”
“예. 다만 특이사항이 하나 더…… 아퀴타니아군이 앵글리아군을 돕지 않았답니다.”
주술사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좋은 이야기군.”
“시오니아 근위기사단장 켈러핸은 계속 경건왕의 곁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앵글리아에서 끌고 왔던 본인의 병력을 계속 지휘하는 듯한데, 모습이 자주 보이질 않습니다.”
“이상할 건 없다. 수도사 같은 자라고 했으니. 그리고 그놈들은 시오니아군의 예비대야. 섣불리 움직이진 않겠지. 그보다 카말라의 백작은?”
“백작이 선두에 서서 싸우는 걸 패잔병들과 간자들이 꾸준히 보고하고 있습니다. 다만, 여자 암살자를 보낸다는 건 효과가 없는 듯합니다.”
“그런가?”
“시오니아 공주가 끝까지 막아선 모양이더군요. 여자들은 전부 고향으로 돌아갔답니다. 그들 사이에 숨은 저희 암살자도 실패를 보고했습니다.”
“현명한 처가 남편의 목숨을 살리는 법이지. 진정 현명하다면 내 앞으로 무장한 남편을 보내진 않겠지만.”
장수들과 참모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번졌다. 세트렛인 장수는 마저 말했다.
“공주는 군대에 오래 따라붙지 못할 것입니다. 분명 후방으로 빠지겠지요. 한 번 더 암살을 시도해 볼까요?”
“그러기엔 이미 시간이 촉박하고, 놈도 더는 밤놀이에 혹하지 않을 것이다. 관둬라.”
“역시 카말라 백작은 선두에 나서서 싸울 모양인가 봅니다.”
“그게 시오니아 국왕의 눈에 띄는 가장 좋은 방법일 테니까. 게다가 놈은 호전적인 앵글리아 출신이다. 대악마의 피라미드도 거리낌 없이 들어갔다 나온 놈이니, 선봉에 안 설 리가 없지.”
주술사왕은 결심한 듯 주먹을 쥐었다.
“좋다. 여기서 붙는다. 정면에서 짓밟고 나아가자.”
“다만 좌우가 산이니 적 산병이 유격전이나 잠입을 시도할 수는 있겠습니다. 후방도 주의해야…….”
그 말에 주술사왕은 웃었다.
“거기까지 올 놈은 없다. 관문들도 있고. 설령 있어도 놈이 뭘 하겠는가?”
* * *
그 관문의 병사들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웬 기사와 그 무리가 당당하게도 관문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저게 뭐야?”
“몰라. 아군인가?”
“교회 문장을 걸쳤는데? 적 아냐?”
“바보야. 적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냐? 그것도 대낮에 당당하게?”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일지도 몰라. 변장에 능하다잖아……”
“아, 간첩…….”
“간첩 맞나?”
“아마 맞지 않을까?”
혼란에 빠진 병사들을 제치고 수문장이 나섰다. 그는 에드워드 앞으로 말을 몰아왔다.
“이름과 직책을 밝히시오.”
“편력기사 에드먼드.”
“소속은?”
“편력기사라니까.”
“어디의 누구에게 가는 길이오?”
“주술사왕.”
흠칫. 수문장은 의외의 이름이 나오자 더 긴장했다. 그는 조심스레 입을 뗐다.
“통행증을 주시오.”
“그런 건 없다.”
“주술사왕이 발행한 통행증이 없다면 아무도 통과할 수 없…… 응?”
밴시 리안나는 확성기를 들었다.
빼애애애앵!
수문장이 고꾸라지는 걸 시작으로 마지막 관문이 뚫렸다. 에드워드는 양손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면담시간이외다, 주술사왕 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