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97)
297화 편리한 친구 (1)
평원에서의 회전은 쉽게 성립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둘 다 각자의 이유가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 양쪽 모두 결판을 내야 하는데, 양쪽 부하들이 장기전을 꺼린다면 특히 그렇다.
양쪽 군대는 평원에서 서로 마주 보고 늘어섰다. 형형색색의 깃발이 양측에서 나부꼈다. 쇠 부딪히는 소리와 발자국 소리, 기도와 기원의 소리가 울렸다.
개시 전의 기세만 본다면 시오니아가 밀리는 것 같았다. 시오니아군 상당수가 난생처음 보는 커다란 코끼리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고, 전체 병력의 숫자도 두 배를 가뿐히 넘었다.
주술사왕이 하나 더 유리한 점은, 마지막 한 걸음을 먼저 뗀 게 시오니아군이라는 사실이었다. 물이 있는 곳을 떠나 전장까지 이동해오는 것은 항상 위험을 수반했고, 이번엔 시오니아군이 그 위험을 감수했다. 주술사왕 휘하의 궁기병들이 계속 괴롭히는 가운데 전장까지 행군해 온 것이다.
“그런 것 치고는 별로 안 지쳐 보이는데.”
주술사왕의 감상평이었다. 참모들도 마찬가지 의견이었다.
“마지막 수원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 게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 물에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나?”
“얕은 하천인지라, 약간의 방어병력을 배치해 봤습니다만,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퇴각할 때 상류에다 독을 풀었다고는 했는데…….”
“대군이 마실 정도의 수원이다. 우물 몇 개를 오염시키는 것과는 이야기가 다르지. 별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물은 때때로 그 압도적인 양으로 더러움을 희석하고 정화한다. 흐르는 물이라면 더 그렇다. 참모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을 충분히 보급하고 왔나 봅니다.”
“어쩌면 보급대를 운용하고 있을지도…….”
다른 참모도 덧붙였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주술사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병들은 충분히 휴식했나?”
“먼저 돌아온 순서대로 다시 내보낸다면, 충분합니다.”
한 참모가 바로 보고했다. 주술사왕은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수원을 직접 끼고 있는 우리보다는 물이 부족하겠지. 좀 더 괴롭혀 주어라.”
“예, 폐하.”
참모들이 고개 숙이는 사이, 주술사왕은 다른 장수들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객장들 사이에서 한 듀라한에게 시선을 멈췄다. 이미 죽은 몸인데 육신을 벌레들로 보수해 가는 자였다.
“카말라 백작은 너에게 맡기겠다. 그가 선봉으로 설 테니, 그 예리함을 꺾어라. 죽여도 좋다.”
듀라한은 고개를 끄덕이진 못하고 허리를 숙였다. 주술사왕은 피식 웃었다.
“악마년이 남겨두고 간 것들 중에는 쓸만한 것도 있었군.”
“폐하, 적 선봉이 움직입니다.”
한 장수가 말했다. 주술사왕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듀라한은 자기 말로 뛰어올랐다. 마찬가지로 머리가 없는 말이었다. 머리 없는 그의 몸은 적의 선봉대장, 카말라 백작을 향했다.
“일단 붙어보고 오겠소.”
아무것도 없는 빈 옆구리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 * *
“전쟁을 꽤나 늦게 하네요.”
“둘 다 신중하다 이거지…….”
한 세트렛인 상단이 좁은 길로 들어서며 말했다. 그들은 전쟁 중인 군대에게 현물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돈을 받아 챙기는 자들이었다. 짐은 노새에 실었고 무장은 평범한 수준.
“난 주술사왕의 군대가 졌으면 좋겠어.”
한 세트렛 상인이 말했다. 동료가 무슨 소리냐는 듯 그를 돌아봤다.
“그래서 우리가 좋을 게 뭐야?”
“주술사왕이 다급해지면 물건가격을 좀 세게 쳐주지 않겠어?”
다른 상인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한 상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주술사왕의 군대는 값을 후려치는 게 문제란 말이야. 그만큼 큰손이지만.”
“제길. 다른 군대에선 부르는 게 값인데.”
“그것들도 주술사왕의 깃발 아래로 모이기만 하면 간이 커진다니까.”
“왕의 어용상인들이 공급을 도맡아서 그래. 망할 놈들.”
주술사왕의 권능보다 현실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문제들로 두런두런 이야기하던 그들은 갈래길을 지나 한 관문 앞에 도착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이상한 것을 보았다.
“드워프?”
경번갑을 입고 투구를 쓴 드워프가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관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의아한 표정의 세트렛 상인들을 향해 말했다.
“왜? 어둠으로 전향한 드워프 처음 봐?”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
“그럼 관람료 내라.”
“뭐요, 그게.”
둘의 대화에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끼어들었다. 상인들은 관문 안쪽에서 껄렁한 표정과 포즈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유목기병들을 발견하고는 마른 침을 삼켰다.
위험하다.
질서를 중시하는 주술사왕의 영역이라 해도, 깡패 같은 병졸들은 널린 법이다. 그리고 그 대표주자 중 하나가 유목기병들이었다.
수틀리면 다 죽이고 약탈하는 게 당연한, 약육강식의 사내들.
“원래 여기 있던 병사들은 어디 갔소?”
“쉬러 갔어. 우린 보충병이고.”
드워프가 대답했다. 관문 근무가 붙박이로 1년 365일 지내는 건 아니므로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통행증은?”
드워프의 말에 상인들의 대표는 바로 통행증을 내밀었다. 그걸 받아 읽어내려간 드워프는 바로 코웃음을 쳤다.
“좋아. 통행료도 내라.”
군말 없이 통행료가 나왔다. 짤랑짤랑. 미뤄서 좋을 게 없었다. 통행증을 제시하고 돈을 내면, 관문 병사들은 이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생긴다. 유목기병들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와 수군거리는 속삭임은 충분한 위협이었다.
“통과.”
드워프가 고개를 까딱이자 상인들은 재빠르게 관문을 통과해서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가르달은 그들이 사라진 걸 확인한 다음, 관문 옆 봉우리로 통하는 산길을 올랐다. 낮은 키의 관목들 사이로 올라간 그는 큰 바위 위의 에드워드 뒤에 섰다. 그는 베로니카와 함께 적진을 굽어보고 있었다.
“통과시켰소.”
“잘했소.”
“그냥 관문 안으로 유인해서 다 죽이는 게 낫지 않소?”
“죽여봤자 시간 낭비고, 놓치면 시끄러워지기만 해. 기회가 보일 때까지 잠깐은 ‘정상영업’을 하자고.”
에드워드가 말하는 사이, 허리띠가 쏜살같이 날아왔다.
“상인들은 감쪽같이 속았어요. 의심하지를 않던데요.”
“다행이네.”
“드워프가 껄렁하고 불량한 걸 보니 어둠으로 전향한 게 확실하대요.”
가르달은 껄껄 웃었다.
“어둠의 놈들에게는 충분히 불친절함을 베풀어줄 수 있지!”
“드워프는 거짓말 못한다믄서요? 잘만 하드라.”
“하하! 놈들은 신의로 대할 친구가 아니거든!”
“친구만 아니라면, 언제든지 거짓말할 수 있으시다?”
“그건 기업비밀이다!”
허리띠와 드워프의 만담을 등지고, 에드워드는 혼잣말을 했다.
“아, 생각보다 더 가깝네…… 주술사왕이 여기서 안 움직였어.”
“좋은 일이오, 나쁜 일이오?”
“아직 모르지. 일단은, 통행량이 많다면 이 관문에 오래 있을수록 우리가 들킬 확률이 늘어나겠지만.”
“안 좋단 이야기군.”
“그 많은 통행량 중 하나를 우리가 가로채서 잠입할 수도 있겠지.”
“좋단 이야기군.”
“하지만 당장 쳐들어가자니 역전의 수가 안 보이고……”
“미묘하군.”
“직선으로 달려가도 안 될 건 없는 거리 같긴 하지만.”
“좋다는 거요, 나쁘다는 거요?”
가르달의 말에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항상 그렇지만 방법이 문제요.”
“미리 생각하고 온 것 아니었소?”
“아닌데.”
가르달은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에는 베로니카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지금 ‘아무 생각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고 한 거니?”
에드워드는 솔직하게 응답했다.
“응.”
“무슨 역전의 묘수가 있는 거 아니었어?”
“내가 하늘에서 굽어보는 신도 아니고, 본진에서 그런 게 샘솟겠냐? 관문돌파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온 건데.”
“너 그런 놈 아니잖아? 항상 승리할 가능성 정도는 꾸려놓고 오잖아.”
“그랬지.”
에드워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근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이게 성자의 안배면. 그리고 여기까지 오는 건 어떻게든 됐네.”
베로니카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보았다.
“일단 가면 방법이 생길 것이다…… 그건 사명 받은 기사들이나 할 법한 생각인데.”
“내 처지가 그들과 다를 게 뭐 있겠어. 기도나 하자고.”
“그래서, 성자가 안배한 묘수가 보여? 그것까지 안 보이면, 정말 그런 류의 기사들처럼 ‘일단 돌격’밖에 없는데.”
“아. 붙었다.”
“응?”
“젠장. 시작했어. 선봉끼리 먼저 붙는다.”
“지금 선봉이면 네 흉내 내는 중인 사람이…….”
“켈러핸. 아, 젠장. 그 친구에게 또 빚졌네.”
“그 사람의 부대는 그럼 누가 지휘해?”
“내가 아냐? 설마 걔 부하들 중 믿음직한 놈이 아예 없겠어?”
잠시 뒤, 선봉끼리의 전투는 주술사왕측의 일방적인 패배로 끝났다. 갑자기 적 선봉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에드워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묘한데.”
“묘해?”
“적 선봉이 스스로 무너졌어. 지휘관이 싸우다 말고 어디로 이탈해버린 모양인데.”
“꼭 너 같은 놈이네.”
어느 사이엔가 바위 위로 기어 올라온 리안나가 적진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어, 기사님?”
“왜?”
“저게 그 동물이네요. 코끼리요.”
“말 안 해도 알아. 젠장. 움직인다.”
주술사왕은 선봉의 어이없는 패배에 분노했고 곧바로 코끼리들이 가세한 본대를 전진시켰다. 한편 사기가 잔뜩 오른 시오니아군은 그 거대한 괴수들을 향해 정면돌격을 감행했다. 잠시 뒤 끔찍한 비명과 괴수의 울음소리가 전장을 메웠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봤다.
“시오니아군은 코끼리와 전투경험 있어?”
“있어. 전부는 아니지만.”
“대처법은 알겠네?”
“의외로 고통에 약하니까 기병창이나 투창 따위로 괴롭혀주면 돼. 다만, 적도 바보는 아니라 갑옷을 입혀놓는다는 게 문제지. 그리고…….”
한 코끼리가 광분해서 기병들을 짓밟아놓는 광경을 본 베로니카는 눈살을 찌푸렸다.
“주술사왕이라면, 코끼리의 정신에도 어떤 조작을 해놨을지도.”
에드워드는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능숙한 코끼리 조련사만 있을 세상이 아니었다.
“그래도 고통을 못 느끼는 것 같진 않은데…….”
잠시 적진을 돌아보던 에드워드는, 적의 후방에서 아직 움직이질 않는 코끼리 부대를 발견했다. 리안나가 한발 앞서 질문했다.
“쟤들은 왜 안 싸워요? 쉬는 거예요?”
“아마 공간이 안 나와서 그럴 거야.”
“공간요?”
“다 투입하기에는 살짝 좁으니까. 그냥 다 투입해서 혼란을 일으키느니, 다음 기회를 위해 아껴놓는 게 낫겠지.”
“다음 기회요?”
“뭐든지…… 예비대라던가.”
대형 코끼리 한 마리가 설치기에 적절한 공간이란 걸 어느 정도 감 잡은 에드워드의 말이었다. 그는 그 코끼리 부대가 전방의 코끼리들보다 훨씬 자유롭게, 또는 불안하게 움직이고 사람도 더 많이 달라붙어 있다는 사실도 곧 발견할 수 있었다.
“흠. 주술사왕의 정신조작이 코끼리 전부에게 붙은 건 아닌 모양이지?”
“효율을 생각한다면, 전장에 투입한 놈들에게만 주술을 부리는 게 맞지 않겠어?”
베로니카의 말에 에드워드는 바로 몸을 돌렸다.
“나 좋은 방법이 떠올랐는데.”
“어떤?”
“저 코끼리들을 날뛰게 할 수 있다면, 엄청난 혼란이 생기지 않을까?”
“어떻게? 가시로 찌르기라도 할 거야? 불이라도 질러볼까?”
베로니카가 물었지만, 답변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관문쪽에서 한 유목기병이 헐레벌떡 뛰어와 에드워드에게 보고했다.
“백작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뭔데?”
“듀라한입니다! 듀라한이 관문으로 쳐들어왔습니다!”
에드워드와 베로니카는 서로를 마주 쳐다보았다.
“너 같은 놈이네.”
“누군지 알 것 같다.”
“아까 선봉이랑 같은 놈일까?”
“그것까진 모르겠는데…….”
에드워드가 말하는 순간, 광기에 찬 목소리가 관문을 울렸다.
“야, 에디! 여기 있지? 켈러핸한테 네 흉내를 시키는 게 나한테도 통할 줄 알았냐? 주술사왕은 속여도 난 못 속여!”
똥개 찰리.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새끼는 죽여도 죽지를 않네.”
에드워드는 한달음에 봉우리를 내려가 관문으로 들이닥쳤다. 과연 몸 곳곳이 비어 있거나 그슬어서, 벌레 따위로 채워 넣은 듀라한이 서 있었다. 그는 온몸에 유목기병들의 화살을 꽂았지만, 전혀 아파하질 않았다. 들고 다녀야 할 머리통은 연기 같은 형태로 허리 부근을 맴돌았다.
“유령, 시체, 벌레의 혼합세트군.”
에드워드가 혀를 찼다. 듀라한 찰리는 폭소했다.
“악마년한테 빼앗겼던 것들을 되찾았더니 이 꼴이더라! 머리통은 엘프 마법사년이 불태워서 영영 못 찾겠지만…… 뭐 어때!”
“주술사왕한테는 왜 붙었냐?”
“악마년이 날 아직 못 써먹겠다고 두고 갔거든. 끈이 떨어지니 그가 날 주목하더라고. 내가 너랑 아는 사이랬더니, 기사마다 대응책이 필요한 법이라며 거두더라.”
에드워드는 진심으로 주술사왕을 동정했다.
“뽑아도 꽝 카드를 뽑는 거 보니 그 양반 운도 다했구만.”
“말 다했냐, 에디?”
“그쪽 선봉으로 선 게 너였지? 부대를 버리고 도망치다니, 넌 이제 어둠에서도 사형이다.”
“상관없어! 난 네 꼼수를 알아채고 뛰어온 거니까. 널 죽여버리면 주술사왕도 놀라겠지!”
“왜, 저번 소동처럼 내가 주술사왕을 죽이게 냅둔 다음 뒤통수 칠 생각은 안 하고?”
“하하. 그러기엔 아직 나도 그가 필요해서 말이야…… 어쨌거나, 에드워드. 검을 뽑아라. 규칙은 알지? 듀라한이 벽을 넘으면 무조건 한 명은 죽는다!”
에드워드는 리안나를 돌아봤다.
“해결책을 하나 찾은 것 같다.”
“네?”
“준비하고 있으란 말이다.”
“또 밴시 부려 먹을 생각하신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검을 뽑았다. 그는 찰리를 향해 말했다.
“친구.”
“응? 우리 이제 친구 아니잖아?”
“아냐. 지금은 친구야.”
“이제 와서 감성에 호소할 셈인가?”
“천만에. 그게 아니야.”
에드워드는 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온몸으로 날 도와주다니, 그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