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3)
3화 여권 내시오
어둠이 닥쳐왔지만, 수도원은 생각보다 차분한 분위기였다. 이미 익숙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꺽다리왕 로버트에 이르기까지 역대 앵글리아 국왕들이 갖은 애를 쓴 끝에 치안은 꽤 안정되었지만, 수도원 사람들은 비상시를 대비하는 법을 잊지 않았다. 그들은 문과 창문을 모두 걸어 잠갔다.
언데드 무리는 근처를 배회하는지 곧바로 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정을 넘기자 슬금슬금 수도원 주변을 돌아다니더니, 곧 무리를 이뤄 들이닥쳤다. 그들은 닫힌 문과 창문에 모조리 달라붙어 두들겨 댔다.
쿵쿵쿵!
“들여보내 줘! 들여보내 줘! 우리 배고파!”
“추워! 춥다고! 들여보내 줘! 아직 자리가 있잖아!”
“존, 거기 있지? 우릴 들여보내 줘! 우릴 버리지 마!”
언데드들이 울부짖는 소리. 삶과 죽음 사이에서 멈춘 자들의 전형적인 외침들. 수도사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에드워드는 다시 질문했다.
“혹시, 존이라는 이름 쓰는 사람?”
“둘 있습니다.”
한 수도사가 대답했다. 에드워드는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밖의 언데드랑 아는 사이는 누구야?”
“없습니다.”
“단호하네. 어떻게 알아?”
“그동안 문 너머로 대화를 해 봤거든요. 벽하고 대화하는 기분이었지만, 확실합니다. 저 치가 말하는 존은 우리 수도원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쟤가 말하는 존은 누구야?”
“저희도 모릅니다. 망자는 사람을 유인하려고 아무 이름이나 불러 대기도 하지요. 때로는 그저 의도 없이 횡설수설합니다.”
“듣기는 꽤 절박한 게 사람을 낚아 보려고 아무렇게나 외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 횡설수설이겠군.”
“아마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부랑자들이 어둠의 힘을 빌어 일어난 듯합니다. 사령술사가 부리는 언데드는 전투의 함성을 지르니. 어느 쪽이든 지옥에서 올라오는 소리 같지만요.”
에드워드는 피식 웃어 버렸다.
“내가 듣기엔 주문이 많은 진상 고객들 같은데. 초여름에 춥다고 지랄이라니.”
“나쁘지 않은 비유군요. 그나저나 놈들이 올 때마다 하는 걱정이지만, 인근 마을에 피해가 갈까 두렵습니다.”
“사례 있어?”
“아직은 없습니다. 거리가 약간 있거든요.”
“그럼, 이번에도 괜찮기를 빌어.”
기사 에드워드 드 클레어는 수도사들한테 시선을 던졌다.
“하루빨리 이 언데드들을 해결하고 싶다면, 오늘 싸워서 단서를 잡아야 한다.”
“저는 반대입니다.”
젊은 수도사 하나가 바로 의견을 꺼냈다. 에드워드는 계속 말하라는 의미로 침묵했다. 수도사는 말을 이었다.
“여기는 수도권과 그리 멀지 않습니다. 이단심문관님과 기사님이 어떤 단서를 잡는 데 실패했더라도, 이변을 고하러 우리 형제 하나가 도시로 갔으니, 왕의 행정관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괜히 수도원의 문을 여는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있습니까?”
다른 수도사가 바로 반박했다.
“아니오, 형제여. 우리가 에드워드 경께 이 일을 의뢰한 이유를 벌써 잊으셨소? 왕의 행정관은 아무리 빨라도 며칠이 더 걸려야 올 거요. 그사이에 어떤 변고가 생길지 모르오. 조금 전에 이야기가 나왔듯이, 저 망자들이 인근 마을에 행패를 부릴 수도 있소. 그건 우리 수도원의 명성에 누가 되는 이야기요.”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문을 열면 수도원은 확실히 위험해집니다. 저밖에 망자들만 있는지 어찌 압니까? 술사나 악령이 있다면?”
“망자들만 있으면, 내가 버텨 주면 문을 열 수 있겠냐?”
에드워드가 끼어들었다. 수도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늙고 키가 큰 수도원장이 입을 열었다.
“다들 힘쓸 줄은 압니다.”
“역시 원장님은 이야기가 통하는군. 베로니카!”
“왜?”
에드워드의 외침에 베로니카의 대답이 돌아왔다. 지붕 위였다.
“뭐 다른 것 보여?”
“신성한 빛이여!”
번쩍. 문틈과 창문 틈으로 번개 같은 섬광이 번뜩였다. 베로니카가 다시 외쳤다.
“시체들뿐이야! 술사나 악령 같은 건 안 보여!”
에드워드는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들었지?”
“다들 무기를 꺼내 오게. 장애물로 쓸 것도.”
원장이 명령했다. 수도사들은 바로 수도원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원장은 에드워드를 향해 질문했다.
“계획 있습니까?”
“해 뜨기 전에 문을 열어서 유인하죠. 이 문짝서 한 놈씩만 통과시킨 다음, 쓸 만한 놈은 포획. 나머지는 뭉개 버리고.”
“어떻게 한 놈씩만 통과시킬 겁니까?”
에드워드는 허리춤에 찬 굵은 밧줄을 꺼내 문손잡이에 매듭을 묶었다. 수도원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하나만 통과시킬 만큼 열리겠군요. 손잡이가 버텨 줘야겠지만.”
“이 정도로 튼튼하면 버틸 거요. 전투 시간이 길지도 않을 거고. 어떻게든 작살 낸 다음에 문을 닫든가, 해 뜨기를 기다리면 될 거요.”
“나쁘지 않군요.”
“신성 주문 쓸 수 있는 수도사는 없소?”
“제가 사제 서품을 받았고, 그 외에는 치료의 기적을 쓸 수 있는 형제가 둘입니다.”
“더 없소?”
“수행의 목적이 기적을 얻는 것은 아니니까요.”
“주문은 몇 개 남았소?”
“각자 하나씩은 남겨 놨습니다.”
에드워드가 수도원장과 작전을 논하는 사이, 수도사들이 돌아왔다. 그들의 무기는 대개 몽둥이나 지팡이였는데, 간혹 검을 든 사람도 있었다. 장애물은 대개 큼직한 통이나 상자 따위였다. 그들이 한두 번 더 왕복하니 그럴싸한 장애물이 만들어졌다. 한 수도사가 수도원장에게 검을 내밀었다. 에드워드는 그 검을 힐끗 보았다. 좋은 검이었다. 그의 열쇠검만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에드워드는 그 검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쓸 줄 아쇼?”
“한때는 백작 아래에 중장보병으로 있었지요.”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수도원은 아무리 작아도 우습게 볼 곳이 아니었다. 이들이 왕의 행정관을 기다리지 않고 에드워드에게 의뢰한 가장 큰 이유는 “싸우는 건 괜찮은데, 수도원 밖으로 멀리 나다니면서 원인을 찾기는 싫다”였으니.
에드워드는 수도사들에게 지시했다.
“원장님은 장애물 너머로 넘어가쇼. 혹시 문짝이 뚫리면 그때 싸우면 될 거요.”
“알겠습니다.”
원장이 가장 낮은 장애물을 딛고 넘어간 직후, 상자 하나가 그 길을 메웠다. 이제 장애물과 문짝 사이에는 에드워드만 남았다. 그는 열쇠검을 뽑고, 빗장을 뺐다.
쿠웅!
문이 딱 사람 하나 통과할 만큼만 열리면서 선두의 언데드 하나가 뛰쳐 들어왔다. 그러나 놈은 문손잡이에 묶인 밧줄에 걸려 멈추었다. 대신 소리를 질렀다.
“고기!”
그게 신호라도 되는 것마냥 언데드들은 좁은 틈으로 머리와 팔다리를 들이밀었다. 교통 체증이 생기는 건 순식간이었다.
“자, 기사 등장! 여권 내시오.”
에드워드는 짧은 말로 선두의 정신 상태를 점검했다. 축축한 피부에 반쯤 깨진 두개골을 가진 시체였다. 놈도 짧게 대답했다.
“고기!”
“불합격.”
에드워드는 선두 언데드의 대가리를 열쇠검으로 푹 찔렀다. 콰드득! 열쇠검은 이미 부서진 두개골 안쪽 깊이 박혔다. 에드워드는 그걸 천천히 비틀었다. 언데드는 몸을 부들부들 떨다 곧 축 늘어져 버렸다. 에드워드는 놈의 머리통 일부를 케이크 자르듯 날려 버린 다음, 멱살을 잡아 수도원 안으로 집어넣었다. 한 손으로도 시체를 빼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뒤의 언데드들이 밀어내기까지 했으니까. 다음 언데드가 동행인들의 팔다리를 물어뜯고는 고개를 들이밀었다. 에드워드는 다시 말했다.
“여권 내시오.”
“아, 신선한 고기!”
“불합격.”
이번엔 목 아래 검날을 넣었다. 목뼈가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두개골이 드러난 시체가 허공을 날았다. 놈에게 물어뜯겼던 언데드들이 축 늘어진 시체를 밀거나 잡아당기며 제 순서를 찾아 고개를 들이밀었다. 한 언데드가 에드워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제발! 들여보내 줘!”
“여권 내시오.”
“무슨 얼어 죽을 여권?”
“합격.”
“와, 그거 좋은 건가?”
에드워드는 대답 대신 행동에 나섰다. 그는 놈의 두 손목을 베었다. 언데드는 화들짝 놀라 항의했다.
“끄악! 합격이라며!”
“여권에 도장 찍는 거야.”
에드워드는 놈의 남은 소매를 붙잡아 안으로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놈의 허리 아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뎅겅. 그는 상반신만 뚝 떼어 낸 언데드를 장애물 너머로 던졌다.
“대가리 빼고 팔다리만 다 작살 내쇼!”
“아니, 기사와 수도사가 이 무슨 행패…… 끄아아악!”
수도사들에게 몰매 맞는 언데드의 비명 속에서 에드워드는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통행세도 들어오면 이 짓 계속할 만할 텐데 말이야. 아, 다음. 여권 내시오.”
다음 타자는 뚱뚱한 언데드였다. 머리 가죽은 벗겨졌고, 몸이 너무 불어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겉보기로는 분간이 불가능했다. 토막 내지 않으면 문틈을 통과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 버렸다.
“넌 좀 늦게 오지? 그러면 저절로 틈새를 막는 건데.”
하지만, 그건 에드워드의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놈은 힘껏 외쳤다.
“존! 보고 싶었어!”
“에휴. 여권 내시오.”
“존! 나야! 들여보내 줘!”
“여권 내라니까. 이거 몇 개?”
에드워드는 왼손 가운뎃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언데드는 진실한 목소리로 간절히 외쳤다.
“존! 사랑해!”
에드워드는 주저 없이 놈의 대가리를 열쇠검으로 깨 버렸다. 콱! 놈은 세로로 쪼개져 쓰러졌다. 다른 언데드들의 손으로 분해되는 잔해를 지켜보며 에드워드는 중얼거렸다.
“불합격. 사양한다, 이 새끼야.”
끼기긱!
그때 불길한 금속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에드워드와 수도사들의 시선이 위를 향했다. 문짝의 경첩이 벽에서 떨어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에이 씨, 저걸 놓쳤네.”
에드워드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경첩은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벽에 박히는 쪽이 녹슬고 부서진 상태였다. 어떤 이유로 속에서 삭은 것이다. 쿠웅! 언데드들이 밀어붙이자 문짝의 윗부분이 크게 기울었다. 아래 경첩마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야, 이거 오늘내일쯤 떨어져 나갔을지도 모르겠는데? 수도사 양반들, 그냥 문 닫고 주무셨다간 당할 뻔했네.”
중요한 말이었다. 경첩이 떨어진 건 이 작전을 입안한 에드워드의 탓이 아니라 수도원의 관리부실 탓이고, 오늘 에드워드가 여기 서지 않았다면 오히려 큰 피해가 났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강조하는. 다행히 수도사들은 납득했다. 원장이 질문했다.
“지금이라도 문을 닫고 막아 볼까요?”
“글쎄. 내가 당기는 힘은 몰라도 밀치는 힘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이렇게 된 거, 그냥 싸웁시다.”
“기사님! 장애물 너머로 오시죠!”
한 수도사가 외쳤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천천히 몸을 풀면서 뒤로 물러서기만 했다. 그는 느긋하게 말했다.
“등 뒤만 안전하면 괜찮아. 이깟 놈들 백 단위로 와도 안 무서워.”
“어머나, 애 잡는 것 말고도 잘하는 거 있었네?”
베로니카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지붕에서 내려온 그녀는 어느 사이엔가 장애물의 제일 위에 올라와 있었다. 나무로 만든 한손망치를 꺼내 든 그녀는 원통형 투구를 에드워드에게 던져 줬다. 그녀의 모습에 에드워드는 입을 이죽거렸다.
“앵글리아에서 왕세자의 챔피언보다 무서운 건 꺽다리왕 로버트의 날아 차기뿐이지. 밴시는?”
“족쇄 채워서 궤짝에 넣어 놨어. 허튼짓 못 해.”
“주문은 몇 개 있어?”
“셋 정도 더 쓸 수 있어. 뭐 필요해?”
“치료는 수도사들에게 맡기면 되니까 섬광 하나, 해독 하나, 나머지는 네 마음대로. 시작부터 섬광 한번 써 봐. 이 자식들은 그냥 때려 부숴도 죽는 허약한 놈들이야. 무기도 없고. 숫자가 쓸데없이 많아서 그렇지.”
“문짝 안 막아도 돼?”
“늦었어. 생각보다 많이 삭았더라고. 술사가 없으면 그냥 싸워도 되겠지.”
에드워드는 베로니카가 준 투구를 머리에 썼다. 시야가 꽤 좁아졌지만, 어차피 적도 들어오는 곳은 하나뿐이었다.
까강!
결국, 아래쪽 경첩도 부서지면서 문짝이 떨어져 나갔다. 언데드 떼는 반만 열린 출입구를 통해 수도원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도사들이 전투의 함성을 지르는 가운데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치켜들었다. 그는 나지막하게 선언했다.
“출소 후, 첫 전투군.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언데드 하나가 마주 외쳤다.
“여기 따뜻하잖아! 자리도 많잖아!”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 합격.”
베로니카의 망치에서 섬광이 터져 나오는 걸 신호로 에드워드는 언데드 떼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