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300)
300화 여덟 발톱의 왕 (2)
앵글리아 국왕 로버트는 아퀴타니아의 ‘법과 죽음의 기사대’가 파죽지세로 뚫고 지나간 길을 보았다. 오크 군세 한복판에 난 그 길 끝에는 족장 가즐이 우습게 보일 만큼 커다란 오크가 있었다. 특히 옆으로 펑퍼짐해서, 마치 집채가 움직이는 듯했다.
“야, 오식아.”
“누구더러 오식이라는 거냐! 감히 전사의 명예를 이런 식으로 짓밟……!”
쇠사슬에 꽁꽁 묶인 가즐이 분노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버트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퀴타니아가 자랑하는 기사대가 맥을 못 추고 박살 나고 있다는 게 더 중요했다. 로버트는 쇠몽둥이 같은 검으로 아퀴타니아 기사들을 신명 나게 후려 패는 거대 오크를 가리켰다.
“저게 니들 두목이냐?”
문제의 오크는 자기 체구에 맞춰 마찬가지로 커진 검을 한 손에 한 자루씩 들고 있었다. 가즐은 자신만만한 콧김을 내뿜었다.
“그렇다! 대추장이시다!”
꺽다리왕 로버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대추장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가즐은 그게 얼이 빠져서 하는 행동인 줄 알고 더욱 기고만장했다.
“저분은 강철이시다! 분노시며, 또한 파멸이시다! 그리고 또……!”
“알았다. 그만 죽어라.”
꺽다리왕 로버트는 책을 덮듯 손을 휘둘렀고, 그 손에 쥐어진 도끼 ‘북방의 송곳니’는 가즐의 영광스러운 생애를 끝냈다.
퍼억!
피가 튀고 가즐의 목이 날았다.
앵글리아의 궁정신하들은 옆으로 쓰러지는 가즐의 시체를 곁눈질하다 말했다.
“그냥 가즐…… 오식이를 살려서 데려가시는 게 더 나았을 거 같습니다, 폐하. 대추장을 살려서 데려가시게요?”
“왜? 안 되냐?”
궁정신하들은 ‘왜 대추장을 살려서 데려가면 안 되는가’ 그 이유를 각자의 기준에 따라 한 명당 열 개씩은 짜냈다. 그들은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꺽다리왕 로버트는 도끼를 쥐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 그만하라는 뜻의 신호를 보냈다.
“알았다, 알았어. 거기까지만 하자.”
왕이 순순히 납득해 주자 신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로버트는 음울한 신음 소리를 흘리면서 말했다.
“저놈을 실을 배가 없다니.”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그럼 여기서 최대한 즐겨야겠지.”
왕이 내놓은 타협책이었다.
“저놈을 보니 다른 오크들은 시시해져 버렸어.”
로버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뭐, 그래도 그 악마 새끼의 크기만큼은 아닌 것 같긴 한데. 대신 광폭하니까 딱 좋군. 악마새끼처럼 도망치지 않을 것 같아.”
로버트는 아퀴타니아 기사들이 대충 다 쓰러질 때쯤, 자기 말 위에 올랐다. 왕의 기사들도 뒤따라 말에 올랐다.
“아퀴타니아군이 후퇴합니다.”
한 참모가 말했다. 로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보인다.”
그는 아퀴타니아 기사들을 비웃지 않았다. 왕세자가 데려온 ‘법과 죽음의 기사대’는 강했다. 오크 대추장이 그보다 더 강했을 뿐이다. 그들 중에 대추장의 목을 벨 운명을 가진 자가 없었을 뿐이다.
운명을 시험해 볼 시간.
“기대되는군. 역시 난 근육과 근육으로 대결하는 게 좋아. 주술사니 뭐니 그런 놈보다야 이게 내 취향이지.”
꺽다리 로버트는 그 말을 한 직후, 앞으로 말을 달렸다. 오크 대추장은 마지막까지 창을 내지르던 한 아퀴타니아 기사를 상대하다 한 박자 늦게 꺽다리 로버트를 발견했다.
“네놈! 앵가리아!”
“앵글리아라니까!”
로버트는 고함소리와 함께 도끼를 휘둘렀다. 대추장도 검을 휘둘렀다.
까아아앙!
쇠와 쇠가 부딪히는 무식한 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대추장은 몇 발짝 뒤로 물러났고, 로버트의 군마는 균형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둘은 서로를 놀란 눈으로 보았다. 먼저 입을 연 건 꺽다리 로버트였다.
“이야, 그걸 막았어? 손모가지 정도는 날려버릴 생각이었는데.”
“과연, 뻐길 만하구나! 내 검 하나를 상대하다니! 하지만 난 검이 하나 더 있다!”
신묘한 오크식 계산법이었다. 앵글리아 국왕은 미소를 지었다.
“시간 좀 걸리겠는데. 에드워드네한테는 좀 미안하게 됐군.”
전혀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앵글리아 왕이 선포했다.
“나한테 이런 건 네놈이 처음이다.”
두 거구는 괴성을 내지르면서 곧바로 다시 격돌했다.
* * *
“저게 뭔데, 저게 뭔데, 저게 뭔데! 전 여기 저런 거 있다는 소리 못 들었는데요!”
스텔라가 비명을 지르며 말을 세웠다. 일행의 정면에 솟아오른 건 여덟 발톱의 검은 용이었고, 그 괴물의 등빨은 에드워드 일행을 경악시키기 충분했다.
“주술사왕이 드래곤이었어?!”
에드워드가 소리쳤다. 베로니카도 반쯤 얼이 빠져서 말했다.
“그래서 수백 년이었나, 그래서 여덟 발톱이었나! 하지만 아무도 알아차리질 못했어. 저렇게까지 꽁꽁 숨길 수 있다니.”
일행이 발걸음을 멈춰도 당장 위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와해된 적군들은 이미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용이 나타났어도 그들의 도주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빨라졌다.
“적들도 두려워하고 있어요. 더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군요.”
헬레나의 말이었다. 가르달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뭐냐. 꺽다리왕 로버트는 좀 억울하겠구만. 오크 대추장이 더 근육질일 줄 알았는데, 여기 놈이 더 근육질이었어.”
카치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키는 크네. 다만 우락부락하진 않은 것 같아. 오크는 옆으로 퍼진다지만, 이건…… 적당히 도마뱀 같은.”
적당히의 기준을 묻는 전사는 없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스텔라만 볼멘소리로 물었다.
“적당히 큰 드래곤의 기준이 뭔데요? 아저씨 드래곤 봤어요?”
“도마뱀은 보잖아.”
“드래곤이랑 도마뱀이 같아요?”
“참고는 돼.”
“파리를 보고 독수리를 추측할 수 있어요?”
“글쎄. 파리도 대가리 두 개면 누구 문장에는 들어갈 수 있을걸. 아, 잠자리 문장은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일행의 만담 도중 에드워드는 다시 베로니카한테 물었다.
“드래곤이 사람으로 변신해 있던 것 맞아, 저거?”
“그 반대일 수도 있긴 해.”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 경우가 더 끔찍하지…… 그건 악의 상징이자 대변인 맞다고 확인시켜 주거든.”
“새삼스레 뭘. 그리고 마지막 수단으로 대형화하는 놈은 꼭 지더라.”
“너희 동네 희극 이야기 아니거든. 아니, 앵글리아 희극 맞긴 한 거야? 아님 네가 온 곳?”
“어, 그 이야기는 좀 나중에 하고. 일단 하나 묻자. 혹시 네 책에 ‘드래곤은 사람이 어쩔 수 없으니까 드래곤이다’ 같은 식의 구절도 있어?”
“누구니, 그 자포자기 구절은. 용을 잡아서 성인이 된 예가 있긴 해. 그만큼 매우, 무진장, 너무 어려워서 문제지.”
검은 용은 자신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광분하던 코끼리 하나를 집어다 고기완자를 삼키듯 먹어치워 버렸다. 그 광경에 시오니아군 위에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반토막이 난 코끼리가 지상으로 추락해 피거품과 흙먼지를 흩날렸다.
“흠. 원래 경건왕이 쓸 수는 아니긴 했지만, 미묘하도다. 희미하게 쓴맛이 나는데. 그래, 사막의 맛이다. 누군가 다리 여럿 달린 것들의 독을 썼구나. 벌레를 코끼리에게 붙였어.”
전장 전체에 울리는 목소리였다. 에드워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고독한 미식가여, 뭐여? 그 티끌 같은 벌레맛을 알아내네.”
주술사왕의 시선은 에드워드네를 향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숙여 자기 앞에 있는 시오니아군을 내려다보았다.
“기적이 없으면 수하에게 이런 수를 쓰게 하는가? 경건왕의 운도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경건왕의 군대에 용의 불길이 작렬했다.
콰과아앙!
베로니카는 혼절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맙소사, 오라버니!”
시오니아 군대의 일부가 불구덩이에 내던져졌다. 화염꽃이 든 항아리를 갖고 왔던 공병 일부가 휩쓸려 같이 유폭 당하기도 했다. 부채꼴 모양의 파멸을 본 시오니아 군대는 그 사기가 수직으로 낙하하고 말았다. 더 이상 공포를 참지 못한 말들은 주인을 내팽개치고 여기저기로 달아나기 시작했고, 병사들도 서로를 밀치기 시작했다.
“달아나, 달아나!”
“저런 건 못 이겨!”
“국왕 폐하는?! 폐하께서는?”
경건왕 루이의 생사를 확인하는 건 바로 근처의 부하들도 하기 힘든 것이었다. 다들 흩어져서 비명을 지르는 그 쐐기를 향해, 주술사왕은 날개를 펼쳤다.
“내 추구하는 바에 맞지 않으나, 일단 이 모습을 보인 이상, 너희를 살려 보내진 않겠다!”
땅을 스치듯 날아오른 그는 시오니아군의 위에 곧바로 내려앉아 네 다리와 꼬리를 휘둘러댔다. 승세를 타던 군대가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밴시 리안나는 에드워드 옆에 내려앉아 질문했다.
“이제 어떻게 해요? 저 미친 용이 여기 돌아보기 전에 튀어요?”
“글쎄…… 원래 계획은 어떻게든 접근해서 밴시 울음소리로 기절시키거나 내가 후드려 팬다는 것이었는데.”
“저건 진짜 인간이라 해도 이젠 기절 안 할 것 같은데요.”
그건 에드워드도 직감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돌격하면 농담이 아니라 진짜 죽을 거요.”
카치운이 말했다. 에드워드는 그를 돌아봤다.
“그럼 제일 합리적인 선택은?”
“치고 빠지는 거지.”
밴시는 비명을 질렀다.
“안 치고 빠진다는 선택지는 없나요!”
카치운은 자신의 활을 꺼냈다. 영웅의 활. 그는 활의 몸체를 덮은 비늘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안 치면, 도망칠 데는 있고? 저기 사람들 다 죽어도 우린 갈 데 없어.”
베로니카는 창백해진 낯으로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일단 오라버니를…….”
“알아. 생사불문 일단 건져야지. 뭐, 경건왕쯤 되시면 쉽게 죽을 것 같진 않은데.”
에드워드는 자신의 목에 걸린 화염저항의 마법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그다음엔 자신의 마법방어 갑옷으로 손이 움직였다.
“난 이번에도 이것들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저건 좀 심하게 압도적이네.”
“주문 써 줄게.”
“언제는 안 써준 것처럼 말하긴.”
에드워드는 피식 웃은 다음, 동료들과 부하들을 돌아봤다.
“제1 목표, 경건왕 폐하의 구출! 제2 목표! 가능하면, 저 깜장 도마뱀 새끼 쓰러뜨리기! 이해했냐! 내가 시선을 끌겠다! 폐하를 찾아라! 폐하를 구조하기만 해도 시오니아의 영웅은 따놓은 당상이다!”
“오오오오오오!”
일단 두려움이란 걸 제거하고 온 전사들이 소리쳤다. 스텔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헬레나는 글레이브를 힘있게 쥐었다.
“아아, 이직하고 싶다.”
“저런 건 뒤통수를 쳐도 다들 별말이 없겠죠. 이쪽에 시선을 안 줄 때 처리해요.”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전방을 향해 말을 몰았다.
“내가 저놈에게 먼저 덤빈다!”
에드워드와 헬레나, 그리고 베로니카, 카치운, 스텔라 순서로 달려나갔다. 그들은 불꽃이 파직 거리는 땅을 지나쳐 주술사왕의 뒤꽁무니를 향했다.
“예나 지금이나 서사시들 보면 거인과 괴물은 발뒤꿈치가 약점이라더라!”
에드워드의 말에 베로니카는 약간 질린 목소리로 답했다.
“난 그런 거 안 믿는데!”
“사실 나도 안 믿어!”
에드워드는 악에 받친 소리를 내지르며 주술사왕의 발목에 창을 내리꽂았다.
콰지지직!
창대가 요란하게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에드워드는 성과를 확인하지 않고, 바로 열쇠검을 뽑아 다음 발목을 향해 달려갔다. 성과는 카치운이 확인해 줬다.
“효과 없음! 그리고 드워프 이탈!”
“응? 어디로?”
“드워프 살려!”
에드워드는 아까 지나친 발모가지에 매달린 채 비명을 지르는 가르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일행은 불쌍해진 드워프를 뒤에 남기고 다음 발목을 향해 달려가 차례대로 공격을 꽂았다.
콰득! 콰직!
그러나 다른 용명한 기사들이 그랬듯, 비늘에 흠집도 제대로 가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다시 전의 발목으로 방향을 잡으며 소리쳤다.
“새끼, 겁나게 단단하네!”
“백작! 휘두르지 말고 찔러보쇼!”
짐작 가는 곳마다 화살을 쏴보던 카치운이 소리쳤다. 에드워드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머리를 굴렸다.
“아까 창으로 찔러봤잖아?”
“창 말고 열쇠검으로! 후려치는 것보단 나을걸!”
“역시 그래야 하나. 야, 스텔라!”
“네!”
“그거 써 보자!”
“말 위에서요?!”
“뛰어내릴게! 내가 안장 위에 서면 해!”
“기사님 그런 재주도 있었어요?!”
“내가 기사잖냐! 그 정도 마상술 정도는 되니까, 해!”
베로니카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끼어들었다.
“그 번개 주문? 근데 그거…….”
“전에 ‘충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헬레나가 받았다. 스텔라는 어물거리다 자백했다.
“실은 어젯밤에 살짝!”
“살짝?”
헬레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쩔 수 없잖아요! 출전 전 밤은 정실부인들께서 분할 하셨는데!”
“대체 어느새? 기운도 좋아라.”
베로니카가 비꼬았고 에드워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변명을 나중으로 미뤘다. 그는 등자에서 발을 빼고 안장 위로 뛰어올랐다.
“스텔라, 준비해!”
“조준은요?”
“드워프 머리 위로!”
“드워프 살려! 저 도박중독 마법사의 조준에 내 생명을 걸 순 없어!”
귀 밝은 가르달의 비명. 에드워드는 듣지 않았다.
“지금!”
고함이 터지는 순간, 벼락도 터져 나왔다. 에드워드는 고대 이단 사제를 물리쳤던 바로 그 방법으로, 단걸음에 드래곤을 향해 뛰어들었다.
콰직!
에드워드가 가르달의 어깨를 딛고, 열쇠검의 끝이 비늘을 깨고 파고드는 순간. 기사는 환희보다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나지막한 목소리와 시선이 그의 등 뒤에 내려앉았다.
“웬 놈인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