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302)
302화 기사들의 이야기 (2)
경건왕은 허리띠가 끌어도 멀리 가지 못했지만, 다행히 스텔라가 그를 발견했다.
“와, 폐하! 살아계셨군요! 공주님이 보면 기뻐할, 아차.”
스텔라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다행히 경건왕은 그 말의 배경을 알아차릴 정도의 냉철함이 없었다. 스텔라는 등 뒤를 돌아보고 소리쳤다.
“가르달 아저씨! 여기 폐하 계세요!”
“상금?!”
“에이, 너무 노골적으로 말씀하신다!”
“도박중독자에게 그런 소리 듣고 싶지는 않다!”
가르달과 스텔라가 만담하는 가운데, 왕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카말라의 백작의 마법사로군. 그는 용을 향해 갔다. 그가 만용이나 착각으로 나아간 게 아니어야 할 텐데. 오만과 무례로 저주를 받았던 전력이 있으니 심히 걱정스럽다.”
스텔라는 말에서 내려 왕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크고 작은 화상이 있고 충격을 받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멀쩡함.
“백작님요? 함께 계셨어요? 안 다치셨고?”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그럼 다행이네요.”
“하지만 실성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포자기한 게 아니어야 할 텐데.”
“그분은 그런 거 안 해요.”
스텔라는 고개를 크게 저었다.
“운명을 시험하는 쪽이시죠.”
“그건 신을 시험하는 오만이 될 수 있다.”
“차이가 뭔가요?”
“그 운명이 죽음의 골짜기로 가는 것이라 할지라도, 신의 뜻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게 전자지.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건 운명이 아니라 신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대가 보기에 카말라의 백작은 어느 쪽인 것 같은가?”
스텔라와 가르달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에드워드의 언행을 기반으로는 판단하기 쉽지 않은 문제였다.
인간의 본성끼리 부딪히는 문제는 쉽게 단정할 수 없었다. 언어가 경계를 넘나들며 양쪽 모두 무분별하게 쓰이는 건 더했다.
에드워드는 물론이고 스텔라와 가르달, 심지어 시정잡배도 ‘신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정도의 말은 흔히 쓰곤 했다.
본의 – 진심은 어디 있는가?
‘후자겠죠?’
‘그럼 전자겠냐?’
둘이 불길한 생각을 하는 순간, 베로니카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 녀석은 신에게 관심 없어.”
* * *
거인 세탁부 지클린과 드워프 혼혈 세탁부 멧밭쥐는 비전투인원이라 대열 한참 뒤에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싸움터에서 한 발짝 뒤의 보급부대와 있었다.
그러나 장소가 어디든 용의 등장과 그 파멸적인 걸음걸이를 못 보는 건 아니었다.
“맙소사, 남편은 무사할런지…….”
멧밭쥐가 목이 졸린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클린은 말보다 행동이었다. 그녀는 에드워드가 거인용으로 맞췄던 외바퀴 손수레를 꺼냈다.
“부상자들 챙겨요!”
그녀는 객기를 부리는 몇몇 기사들과 같은 방향으로 손수레를 몰았다. 물론 그녀는 말보다 느렸고, 목표도 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사들이 용한테로 달려가는 동안 패잔병 무더기 사이에서 멈췄다.
“부상자부터 타요! 얼른!”
누군가의 부축을 받을 정도로 운이 좋았던 사람들은 지클린의 손수레 위에 오를 수 있었다. 뒤이어 몇몇 외바퀴 손수레가 지클린을 따라왔고, 그들 역시 부상자를 실었다.
“서둘러! 용이 우릴 잡아먹으러 올지도 몰라!”
한 부상병이 소리쳤다. 지클린은 바로 맞받았다.
“최대한 실어서 출발할 거예요! 옆 사람이나 꽉 붙들어요!”
그녀의 옆을 지나치는 기사들 중에는 여기사도 있었다. 연금술사 겸 기사 미아는 의약품 가방을 끌어안은 채 신음했다.
“방금 밴시가 용한테 잡힌 것 같은데…….”
“벤시요? 어디서 보셨어요?”
“놈이 큰 새 같은 걸 쫓고 있었어요. 근데 그게 아무리 봐도 날개 달아놓은 밴시 같았거든요. 백작님이 연극소품 좀 구해달래서 기억하는데…….”
“에드워드 경이 저기 있단 말이군요!”
“네. 저런. 먹혔네요. 밴시.”
“아아. 저런.”
미아는 시끄러운 콩알을 처리한 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검은용을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소용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연막탄을 준비해 둘게요. 혹시 쫓아온다면 전력으로 도망쳐요.”
“연금술사 씨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여기서 기사님들 하는 거나 보고 있어야겠죠. 제가 도울 수 있나 살피면서.”
미아는 약병 몇 개를 꺼냈다.
“말한테 쓸 약품이라 해도 안 통할 것 같은데…….”
“그 약들이 뭐죠?”
“구토유발제요.”
“와! 적절한 걸 갖고 계시네요. 그걸 용한테 먹이면 되는 건가요?”
“사실 최후의 발악용이죠…… 전 기사로 서임되었지만, 그렇게 잘 싸우는 쪽도 아니라.”
에드워드의 결사대에 미아가 포함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 대신 후방지원을 맡아 의약품을 보관하고 다뤘다.
하나하나가 사람 수십 명한테도 쓸 수 있는 독한 원액이었는데, 그래도 저 용한테는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용한테 사람 약이 통할지는 모르는 데다가, 사이즈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걸 어떻게 저놈의 입에 집어넣겠어요? 제가 직접 먹히는 걸 각오하는 수밖에 없겠죠.”
“무시무시한 말씀 하지 마세요!”
“혹시 용이 이쪽으로 오면, 시선을 끌테니, 일단 도망쳐요. 전 이 약병들과 함께 놈을 도발해 볼 테니.”
미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클린이 답변하기 전에, 멧밭쥐가 소리쳤다.
“앗, 백작님이에요!”
사람들의 시선이 용한테로 향했다. 방금 막 다른 기사들을 족친 용의 뒤에서 붉은 서코트의 기사가 나타났다.
지클린은 눈을 찌푸린 다음 말했다.
“기사님 맞는 것 같은데요.”
미아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두 분 다 시력이 좋네요. 전 붉은 서코트 말고는 안 보이는데. 백작님 맞긴 맞나요?”
지클린과 멧밭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거는 간단했다. 지클린이 덧붙였다.
“그분이 지금 연금술사님이랑 똑같은 생각하는 것 같거든요.”
* * *
객기 충만한 기사들을 박살 내고 그들을 잡아먹던 검은 용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움찔거렸다.
“엉뚱한 데 좀 그만 보지 그래?”
에드워드가 검은용에게 일갈했다. 검은용은 뒤를 돌아보고는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아직도 내 뒤에 선 기사놈이 있었나?”
“멋대로 뺑소니 치고 간 건 네놈 아니었냐, 망할 도마뱀 새끼야.”
주술사왕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하. 네놈이 그놈이로구나. 수작질을 부린 기사. 어떻게 내 뒤로 왔는지는 그 시끄러운 요정한테서 들었다. 설마하니, 공주의 부군이나 되는 자가 자기 자리에 대역을 세웠을 줄이야.”
“미친 소리 같겠지만 전부 사실이지.”
“그렇다. 그래서 놀랍다. 어쩌다 경건왕 같은 자가 그런 수에 희망을 건 것인지. 저열하고 추하다, 협잡꾼이요 광대 같은 자야.”
에드워드는 그 말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았다. 주술사왕은 혼자서 계속 말을 이었다.
“기연과 마법의 무기와 사명을 받고서 모여든 기사들도 내 앞에서는 맥을 못추었다. 나는 그 기사들마다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지. 방금 내 앞에 선 자들은 그런 방책도 필요 없을 만큼 약했다. 그리고 넌 그들만큼의 사명도 없지.”
“저주는 받아봤다.”
“하하하! 들었다. 성자 유스타스의 저주라지? 지금은 풀었고, 그 힘만 남았다지.”
“새끼. 정보력 좋네.”
그 직후, 분노한 천둥 같은 목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그깟 주먹질로 감히 나와 맞서려 했단 말이냐! 내게 맞서려면 경건왕의 기적쯤은 필요할 텐데!”
에드워드는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 속에서 입꼬리를 뒤틀었다.
“경건왕의 기적, 경건왕의 기적, 경건왕의 기적…… 근데 그 경건왕 폐하께서 내게 말씀하셨지. 같은 기적을 두 번 바라면 안 된다고. 경건왕께서도 아시는 건데, 네놈이 몰랐을 것 같지는 않군.”
“무슨 말이냐?”
“내심 쫄았지? 그런 기적이 또 일어날까 봐. 그런 기사가 또 나타날까 봐.”
침묵. 용은 에드워드를 말없이 노려보았다.
“그러니 지나가는 기사들마다 일일이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 본다고 정보를 수집하고 수작질을 부렸겠지. 내 대책이랍시고 듀라한 찰리를 발탁한 게 그 증거다. 네놈은 일종의…… 완벽주의형 겁쟁이지.”
퍼어어어엉!
용의 입에서 불길이 터져 나왔다. 무시무시한 불꽃이 에드워드를 휩쓸었다. 그러나 샛노란 불꽃은 이미 태울 것을 다 태운 뒤의 흙 위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에드워드는 손으로 서코트를 툭툭 치며 흩날린 잿가루들을 털어냈다.
“이해해. 여긴 기사들의 세상이고, 그들은 빛이 준비한 이야기에 따라 움직이지. 보통은 그래. 그 수많은 기사 중에 누군가는 용을 죽이고 빛의 뜻을 실현할 운명을 타고 났겠지. 용이 강하면 강할수록, 설치면 설칠수록 그 확률은 매우 높을 거야.”
“제법 강력한 마법의 무구들을 갖고 있구나, 네놈. 내 불길에도 멀쩡할 수 있다니.”
“지옥불도 버텨냈거든. 기연들이란 게 없진 않아서.”
용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넌 대체 뭐냐? 저주 걸린 기사의 전형이라던데, 레피림을 이겼으니 보통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만, 정면에서 나서질 않고 수작을 부리고, 이제는 또 세상을 굽어보듯 이야기하는군.”
“이질적이지?”
“어느 정도는, 그렇다.”
“한 번 죽었다 살아나면 그렇게 돼.”
“무슨 말이냐?”
“주술사왕이라면 환생 정도는 들어봤겠지?”
용은 폭소했다.
“아브멜렉의 바보군단들이 믿는 그 환생 말인가? 설마 빛의 기사가 그걸 진심으로 믿는 건 아니겠지?”
“걔들은 다 가짜고. 내가 진짜야.”
“맙소사, 이제 보니 미친 기사였군!”
“그것들은 자기가 지옥에 갔다 온다고 믿었지.”
“그래. 실제로는 농락당하는 것뿐이지.”
“난 아니야. 정신 차려보니 이 동네였어. 그 전까지는 기사도 아니었고 뭣도 아니었거든. 나라도 언어도 법도 완전히 다르고, 마법이나 악마 같은 것도 없고.”
용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혼란에 빠져 되물었다.
“다른 세상에서 왔단 말인가?”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검은용에게 겨누었다.
“감사히 여겨라. 마누라한테도 운만 뗀 걸 네놈한테 알려주는 거니까.”
다시 침묵. 용은 한참 뒤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거짓말이라면 더 그럴싸하게 했겠지. 네놈의 말은 진짜 같군.”
“믿어줘서 고맙네.”
“그래서, 고전적인 기사 이야기랑 네놈이 같을 거라고 확신은 하지 말란 거냐?”
“이해가 빨라서 좋네.”
“호오.”
에드워드는 투구를 들어 올리고 흙바닥에 침을 뱉었다.
“거기다 하나 더. 원래는 신이건 운명이건 그냥 ‘적당히’ 살기로 했는데, 이젠 ‘진심으로’ 살게 됐거든.”
용이 겁먹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 반응이 나왔다.
“흥미로운 이야기로군. 이야기 밖의 이야기를 위해 네놈이 여기까지 왔단 말이지? 빛은 그걸 이용하려는 것이고?”
“빛이 밖에서 불러왔든지 주웠든지, 알아서 운명의 실을 짜놨겠지. 난 모르겠다. 그냥 여기 서봤어. 그게 ‘진심으로’ 사는 법이거든. 네놈이 알고 싶은 건, 네놈이 한번 시험해 봐야지?”
검은용은 날개를 펼쳤다.
펄럭!
높이 날지는 못하는 듯했지만, 그래도 자기 몸의 몇 배쯤 되는 거대한 날개였다.
“그래, 어떻게 하면 네놈이 죽을지 시험해보자!”
* * *
축축하고, 어두컴컴하고, 곤죽 같은 것이 반쯤 차오른 공간 안에서 리안나는, 원형 방패 하나를 붙잡고 떠다녔다. 그 방패도 사실 오래 못갈 것처럼 부글거리며 녹고 있었다.
“밴시는 억울해.”
물론 아직 덜 억울했다.
우르르릉!
다른 희생자들의 잔해가 식도를 통과해 밴시의 위로 쏟아졌다.
와르르르!
토막 나고 박살 난 무기, 갑옷, 시체들. 자기 머리를 마구잡이로 두들기는 그 잔해들에 밴시는 다시 투덜거렸다.
“적당히 좀 잡아먹지. 이게 뭐야. 이렇게들 먹어봤자 이 덩치가 간에 기별이라도 가나? 아, 나가고 싶다. 어차피 나가게 되겠지만, 이대로 가면 쓸개즙을 뒤집어쓰고 장으로 흘러들어 가서…… 똥이 되어 나가겠지. 젠장! 드래곤 똥이 된 밴시라니! 왜 밴시의 모험은 꼭 이렇지? 하다못해 입구로 나가야 되는데!”
그때였다. 어두컴컴하던 위장 안이 갑자기 뒤흔들리고 위장 너머서 폭발음과 진동이 느껴졌다.
“드디어 한판 붙었구나! 으게에에엑!”
움직이는 거구와 그에 맞춰 출렁이는 곤죽 속에서 밴시는 비명을 질렀다.
한참 뒤, 갑자기 검은 용이 움직임을 멈췄다. 곤죽은 파도 없이 잔잔해지며 평형을 되찾았다. 뒤이어, 밝은 빛과 함께 한 강철 기사가 나타났다.
콰앙!
기사는 밴시가 붙잡고 있던 방패 위로 떨어졌고, 밴시는 곤죽 속에서 균형을 새로 잡아야 했다.
“와아아악! 깜짝이야! 어?”
“역시 소화가 안 됐구만.”
에드워드의 말이었다. 밴시는 반색했다.
“역시 기사님이야! 구하러 와주셨군요!”
에드워드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아니. 나도 먹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