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303)
303화 드래곤 슬레이어 (1)
한 밥통 속에서 밴시 리안나가 에드워드를 무쓸모 기사라고 비난하다 정수리를 밟히기 전의 일.
카말라 백작령 소속 잡병 족제비는 긴급히 후퇴하는 본대를 쫓아가지 못하고 낙오된 상황이었다. 그는 척 봐도 가짜인, 큼직한 콧수염을 붙인 이상한 노병한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악! 살살 좀 하쇼!”
“허허허, 거 엄살은. 이 정도면 주술도 필요 없겠구만.”
“당장 살아서 이 자리를 벗어나는 데는 필요할 거 같습니다만! 선생, 주술사요?”
“소박하게나마 재주가 있지.”
“잘됐네! 당장 내 다리를 멀쩡하게 해 주고 이 지옥에서 벗어납시다!”
“거 급하기는. 그렇게 편리한 주술만 골라서 쓸 수가 있나. 그리고 지금 주술사왕은 자기한테 도전하는 기사들한테 정신이 팔려서 이쪽에 신경도 못써.”
“그래서 그 기사들 중에 주술사왕을 잡을 놈은 있소? 백작도 내빼더만!”
“지금 후퇴하는 부대를 수습하는 그 친구는 백작이 아니라…….”
“켈러핸 경이죠.”
엘프 여자의 목소리가 두 남자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둘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헬레나가 몇몇 기병들과 함께 그들 뒤에 서 있었다. 족제비는 기겁했다.
“억…… 엘프 치안대장 나리?”
“백작부인이란 말이 더 듣기 좋지만. 그리고 거기 노병. 우리 구면이지 않나요?”
“허허허허허…….”
“족제비, 하나 충고하죠. 마누라 곁에서 죽고 싶으면, 그 영감탱이한테서 떨어져요. 주술 같은 건 빌지도 말고. 당신 옛 두목이 주술에 잡아먹힌 것, 기억나요?”
족제비는 사색이 되었다.
“어, 그럼 이 양반이?”
“당신 옛 두목의 스승, 주술사 니코스.”
“행운의 주술사야. 행운의 주술사.”
니코스는 족제비의 다리에 부목을 고정시킨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헬레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엘프가 눈이 좋다고는 들었는데, 어떻게 날 찾은 건가?”
“당신이 전투 결과를 보기 위해 이 근처를 맴돌 거란 예측은, 오래 전부터 나온 이야기에요. 그리고 당신 변장은 영 서툴러요.”
“에잉. 악마들은 간파 못하는데.”
“악마들은 당신을 보면 내빼기 바쁘니까요. 전 그 반대거든요.”
후웅!
글레이브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람을 갈랐다.
“앙베르 백작령에서 당신 제자가 꾸민 짓 때문에 죽을 뻔한 것, 아직 못 갚았거든요.”
“요즘은 제자의 잘못을 스승에게 묻는 게 유행인가?”
“어디까지가 당신 뜻인지 자백이 필요한 걸로 하죠, 그럼. 그게 아니더라도, 앙베르 백작령 안에서 흉악한 주술을 가르치고 다닌 건 아르데니아 엘프로서 그냥 못 넘어가요.”
주술사는 겁먹은 표정을 짓지 않았다. 뚱한 표정을 지었다.
“난 이미 귀하의 남편에게 충분한 배상과 사례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귀하도 그 덕을 보지 않았나? 정력 강화의 부적도 줬는데.”
“우와, 그런 부적 있으면 나도 좀……. 히익!”
부웅!
글레이브가 다시 한번 허공을 갈랐다. 쓸데없이 끼어들던 족제비는 바닥에 납작 엎드렸지만, 니코스는 꿈쩍도 안 했다. 이번 공격은 가짜 콧수염을 날 끝에 걸어 베었을 뿐이었다. 니코스는 평온한 표정으로 물었다.
“역시 목적이 있군. 뭘 원하나?”
“저 빌어먹을 용을 죽이는 방법. 당신이라면 알고 있죠?”
“난 주술사왕과도 친분이 있는 사이라, 그런 건 알아도 함부로 말 못해 주네.”
“전 그 방법을 요구할 권리가 있어요. 아까 말했듯, 당신 제자 때문에 죽을 뻔했으니까.”
“질기기는.”
“엘프의 은원은 그런 법이죠.”
“악마들도 피하는 나를 엘프 아가씨가 어쩌지는 못해.”
“그러니 요구하는 거예요. 정당하게. 당신이 에드워드 경에게 뭘 줬든, 그건 저와 그가 짝이 되기 전의 일이거든요. 정당한 요구를 거절하는 건 주술사가 할 일이 아니지요?”
“흠…….”
주술사 니코스는 잘려나간 가짜 콧수염 아래를 긁적이더니 말했다.
“사실, 내가 알려 줄 필요도 없어. 다들 이미 답을 쥐고 있거든. 깨닫지를 못하는 거지.”
“잘났네요.”
“이 근처에 사제 아가씨도 있나?”
“있어요.”
“주문은 남았겠지? 가서 이야기해. 레피림 때와 똑같다고.”
헬레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열쇠검으로 악마들을 불러내서 주술사왕에게 맞서도록 할 수는 없어요. 레피림 때와는 달라요. 우린 그에게 원한을 가진 악마들이 있는지도 모르니까.”
“맞아. 하지만 열쇠검으로 이기는 게 정답이야.”
“의미를 모르겠군요.”
“열쇠에 맞는 열쇠구멍이 하나뿐이란 법은 없지. 레피림을 제거하려던 악마동맹은 거기 편승했던 것뿐이야. 그것만 전하게. 그렇게만 해도 사제 아가씨는 알아들을 거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거기까지야.”
헬레나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거기서 만족해야 했다. 그녀는 글레이브를 치웠다.
“허튼 수작이면 다시 따지러 올 거예요.”
니코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오직 믿음만이 길을 보여 주리니.”
* * *
에드워드는 물컹거리는 위장벽을 향해 열쇠검을 힘껏 내질렀다. 그러나 열쇠검은 생각처럼 쉽게 꽂히질 않았다.
“야, 이거 안 쉽네.”
에드워드가 투덜거렸다. 검은용이 기사들을 자신 있게 삼켜댈 만했다. 위장벽은 굉장히 두껍고 튼튼한 데다 미끄럽기까지 해서, 사람이 휘두르는 검 따위로는 전혀 상처를 입지 않는 것이었다.
자신이 에드워드의 발판 신세임을 확인한 밴시가 투덜거렸다.
“기사님, 좀만 더 있으면 방패가 녹겠는데요. 그럼 제가 기사님을 떠받치고 있을 방법이 없어요.”
“다른 방패 좀 찾아봐. 방패가 아니라도 되니까.”
“그 전에 해결했으면 좋겠어요. 위액이 다 녹여버리고 있어서 적당한 거 찾기도 힘들단 말이에요. 검 말고 주먹으로 더 해 보죠?”
“해봤어, 진즉. 안 잡히더라. 구멍 하나만 좀 그럴싸하게 뚫고 싶은데.”
손아귀에 잡히지 않고 미끄러지는 위벽. 에드워드는 조금씩 녹기 시작한 자신의 장갑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검은 아직 멀쩡한데 장갑이 못 버티는군.”
“이러다 기사님도 녹겠는데요. 장화가 묘하게 오래 버티고 있긴 하지만요.”
“다쉬사베스가 내준 마법의 장화거든. 함정을 피하는 용도라던데. 위액도 버티나 보지.”
“뭐야, 그럼 기사님 안 녹는 거예요?”
“안 녹아도 발판은 있어야지.”
밴시는 머릿속에서 슬쩍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잔머리는 에드워드가 더 잘 돌아갔다.
“슬쩍 발판 치워서 나 죽일 생각 하고 있었지?”
“에엑! 그런 거 안 했어요!”
밴시는 신중해서 마지막까지 잡아뗐다.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경고했다.
“나 녹고 너 혼자 드래곤똥으로 나가도 좋은 꼴은 못 볼 거다.”
“엥, 좀 더러운 것 빼고 문제될 것 있나요? 아, 꼽등이 때처럼 해 볼까요?”
“어떻게?”
“제 항아리를 개봉해서 이 곤죽을 전부 마법약으로 만들면…….”
“용의 아가리에서 꽃향기가 나겠군. 웃기겠는데. 해보자. 속이 메슥거려서 토해 버릴지도 몰라. 거품 나면 더 좋겠군.”
밴시는 방패 위에 올려놓은 소지품들 중에서 마법약병을 꺼내 들었다. 뽕. 그 순간 에드워드는 다시 밴시 정수리를 밟았다.
“어푸! 왜 그래요?!”
“그때처럼 하자며.”
“제가 알아서 잠수해도 되잖아요! 아니, 약병만 담그면 되는 거 아닌가?”
“그걸 모르니까 전과 똑같이 하는 거잖아.”
“뭐가 똑같은데요?!”
“밴시가 억울한 거.”
“아까 제가 기사님 죽게 내버려 둘까 그 생각했다고 그러는 거죠?”
“드디어 자백하는군.”
“아차! 기사님, 꼭 지옥가세요!”
부글부글부글부글. 잠시 뒤, 미약한 꽃향기가 용의 위장 안을 채웠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별로 효과가 없네.”
“어푸! 물보다 이물질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
“물 좀 많이 마시지, 건강에 안 좋게시리.”
“이제 어쩌죠? 아까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냥 항문으로 나갈까요? 기사님은 소화되어서 나가겠지만.”
밴시가 다시 깐족거리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그녀가 놓치고 있는 사실을 하나 설명해 주었다.
“그놈이 여기서 변을 보겠냐, 어둠의 영역으로 돌아가서 변을 보겠냐?”
밴시는 납득했다. 용의 화장실이 어떤 곳인지, 거기 뭐가 있을지 굳이 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빛은 한 점도 없는데 용 사이즈에 맞춘 벌레들이 득시글거리는 세상이려나…… 어, 근데 기사님?”
“왜?”
“생각해 보니까 여기엔 왜 빛이 있을까요?”
“뭔 빛?”
“기사님이 들어오기 전만 해도 깜깜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앞이 보이잖…… 어, 기사님이 빛나는 거네?”
에드워드는 슬쩍 자신의 몸을 굽어보았다.
“아, 이거? 아까 베로니카가 걸어줬어. 보호주문.”
“공주님이요?”
“싸움질 도중에 달려와서 주문 걸어 주더라. 덕택에 씹히고 갈리는 건 피했다만. 이 망할 용 새끼가 걔까지 잡아먹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공주님도 주문 쓰면 안 다치고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요?”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나야 발톱과 이빨 피해 다니다 마지막 발악 삼아 여기로 들어온 거라…….”
에드워드보다 굼뜬 사람은 이빨을 피하지 못하고 그냥 다이빙. 베로니카의 신체적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편은 아니지만, 전직 앵글리아 왕실 챔피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뭣보다, 걔가 여기 들어오면 그게 토막난 상태든 아니든 난 미쳐 버릴 거다.”
“음. 뭐 방법이 없나…… 어? 기사님?”
“왜?”
“이 표식은 뭐예요? 이것도 사제님 주문이에요?”
밴시가 가리킨 표식은 에드워드가 어디서 많이 본 것이었다. 베로니카가 적의 은닉된 급소나 주술 따윌 찾는 데 쓰던 주문. 다만 평소와 다르게, 색상이 전에 본 적 없는 금빛이었다.
“평소엔 녹색이었지? 이런 건 처음 보는데…… 베로니카가 한 것 맞겠지?”
“계속 용의 밥통 안에 있던 밴시한테 그걸 물으면 소용 있나요? 밖에서 공주님한테 아무런 말씀도 못 들으셨어요?”
밴시의 당돌한 항의에 에드워드는 딱히 별다른 응징을 하지 않았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 표식은 특정 좌표에 고정된 듯, 용의 움직임에 따라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반복했다. 그냥 가만있다가는 용이 이 자리를 벗어날지도 몰랐다.
에드워드는 아주 짧게 기억을 되짚어보다 말했다.
“걔, 나 먹히기 직전에야 도착했거든. 젠장. 어쩔 수 없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쉰 다음, 열쇠검을 겨누었다. 그리고 그 표식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챙!
아주 얇은 유리가 깨지는 듯한 맑은 소리. 뒤이어 그 표식 너머에서 무시무시한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위장 안을 환하게 밝히는 빛이었다.
에드워드와 리안나는 그 안에서 거대한 금빛 도시를 보았다.
* * *
주술사왕은 혼란에 빠진 표정으로 바닥을 굽어보았다. 거기엔 에드워드가 잡아먹히기 직전에야 도착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숨이 턱에 닿다시피한 그들은 검은용 앞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서 있었다.
“시오니아의 공주라고?”
공주를 호위해 용 앞까지 달려왔던 카치운은, 바싹바싹 말라가는 아랫입술을 핥았다.
“다행히 놀라네. 시간 좀 더 끌어보쇼.”
당연했다. 주술사왕은 시오니아의 공주가 여기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오늘은 놀랄 일이 많군. 정말 많아. 그러니까…… 방금 그 기사놈에게 주문을 쓴 사제가 공주였단 말이지?”
뭔가 힘없는 중얼거림이 계속 이어졌다. 베로니카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내가 왕성에서 얌전히 남자들을 기다릴 줄 알았니?”
검은용은 낮은 숨소리를 흘렸다.
“으으음. 보통 이런 이야기는, 공주한테 기사가 든 관짝이 돌아가는 것이지.”
“승자 개선 엔딩도 있잖아?”
“나한텐 그런 걸 기대하기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래서 그대도 여기 뛰어든 것 같은데.”
베로니카는 반박하지 않았다. 검은용은 코웃음을 쳤다.
“뭐, 됐다. 결국 천방지축 공주님이 여기 왔어도 달라지는 건 없어. 이미 그 기사는 내 뱃속에 들어갔다. 오늘 여기서 공주도 처치하고, 시오니아를 아예 멸망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여마법사 스텔라는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공주님? 지금은 어떻게든 이용가치를 어필해서 살려달라고 하는 게 어떨까요? 포로로 잡으면 아주아주 유용할 거라던가.”
“죽어도 안 해요.”
강경한 거부. 그 옆에 선 헬레나가 말했다.
“과연 니코스의 조언이 쓸모 있을까요? 에드워드 경이 문을 찾을지…….”
“그러길 빌어야겠죠…….”
베로니카가 희미하게 말했다. 용은 밝은 귀로 그걸 듣고는 다시 코웃음을 쳤다.
“악마들의 지옥문을 열어제끼는 열쇠검 말인가? 그딴 수작으로는 내게 그 어떤 상처도 입힐 수 없…… 응?”
그 순간, 용은 바로 그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느꼈다.
“이 무슨?!”
용이 마지막으로 말을 뱉는 순간, 칼자국 같은 길이의 황금빛이 그 배를 뚫고 지상에 내리 꽂혔다.
콰광!
“저게 뭐야?!”
가르달이 기겁해 외쳤다. 용의 불과는 전혀 다른 불빛이었다.
베로니카는 그게 뭔지 알았다. 그녀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있었어! 에드가 찾았어! 스텔라 양, 번개마법!”
“네? 어떤 걸로요?”
“번개쇄도요! 땅으로!”
“아하!”
스텔라는 황급히 주문을 외웠다. 다만 주문의 조합과 조준이 평소와는 달랐다. 가느다란 하얀 번개가 용의 상처로 흘러들어 간 다음, 스텔라가 소리쳤다.
“지금!”
콰르르릉!
빛이 낸 상처에 에드워드가 검을 걸고, 지상으로 뛰어내리면서, 용의 배가 위아래로 길게 찢어졌다.
용은 더 이상 언어가 아닌 비명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