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307)
외전1 아내의 의무(1)
폰티아의 원로급 엘프 여마법사이자 아지지야 대도서관의 외부의원 데스피나가 주술사 니코스한테서 다산의 약을 받았다는 게 폭로된 정황은 이러하다.
데스피나는 엘프 중에서 연애 기간이 짧고 일찍 결혼한 축에 속했으며, 첫 남편은 동족 엘프였다. 그러나 자기 성깔을 못 이겨서 남편이랑 이혼했다.
재혼도 오래 못가 별거 상태로 들어갔다가 두 번째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뜨면서 다시 홀몸이 되었다. 이제 나이는 이미 엘프 중에서도 상당히 고령.
이런저런 이유로 젊은 시절에 별로 재미를 못 본 탓인지, 데스피나는 성격이 더 꼬였다. 그리고 아직도 자신을 젊은 엘프 여성으로 보고 꼬이는 수많은 인간기사를 농락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데스피나도 주변의 평판을 신경 써서 여러 장치나 변명을 준비하는데다, 엘프의 시간감각으로는 ‘자주‘라고 해봤자 인간에겐 드문드문 있는 일이며, 설령 ‘안 좋은 소문‘이 나오더라도 그게 진실성까지 겸비해 여기저기로 퍼진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데스피나의 실체는 별로 유명한 일이 아니며 아는 사람만 아는 것이었다. 외지 기사들은 그런 실상을 모르고 데스피나한테 낚여 다양한 목적의 ‘사랑놀음‘을 했다.
어떤 자는 만족했고 어떤 자는 금의환향했지만, 어떤 자는 죽었고 어떤 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데스피나는 그 어떤 인간 남자에게도 ‘진짜 마음‘까지 내주진 않았다.
“그런 증조모님이 인간 기사의 아이를, 그것도 세쌍둥이나 낳다니, 참…… 대체…….“
페트로스의 아내이자 데스피나의 증손녀이며 헬레나의 올케인 엘프 여성은 얼굴을 붉혔다. 그녀의 환영을 받은 헬레나는 그 말을 이해했다. 인간들의 눈으로 보는 것과 달리, 데스피나의 육체는 거의 막바지였다. 그 나잇대 엘프가 임신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어디선가 다산의 약을 받아왔다지요?“
“네. 전 처음엔 피임약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니까요. 그쪽이라 해도 문제였겠지만…….“
어쨋거나 데스피나는 임신이 가능했단 이야기다. 헬레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쨋거나 축하할 일이지요.“
“순혈 엘프의 일이 아니라고 함부로 입을 여는 것들이 많지요.“
올케가 한숨을 내쉬었다. 헬레나는 내심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 에드워드의 짝으로 혼혈을 임신한 몸이었지만 데스피나 소식을 들었을 땐 ‘주책‘이라는 단어부터 떠올렸으니까. 그러나 올케는 헬레나가 다른 뜻으로 표정을 굳힌 줄 알았다.
“걱정 마세요. 전 사랑하는 남녀의 편이니까요. 긴긴 인생에 애 한둘이 혼혈이든 순혈이든 무슨 상관이겠어요? 괜히 말 얹는 것들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는 게 정답이지요.“
헬레나는 ‘종족보다는 나이가 주는 어색함 때문에 주책이라고 생각했다‘는 소리를 결국 목구멍 안 깊숙이 처박고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천만에요. 출산예정일은 언제세요?“
“곧…… 멀지는 않았어요. 아마 한두 달 안에.“
“기대되네요. 용살자의 아이라니, 딸이든 아들이든 대단한 영웅이 나올 거예요.“
두 엘프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데스피나의 처소 앞에서 발을 멈췄다. 드워프가 특별히 방음을 신경 써서 만들었다는 벽돌 건물이었다. 그러나 기술과 자재의 한계가 두 남녀의 음탕한 신음 소리를 완전히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강철 같은 육체 위에서 춤추는 여자의 환희. 헬레나와 그 올케는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저기, 분명히 시간을 전했는데…….“
“까먹어 버렸겠죠.“
헬레나는 만삭의 몸으로 문짝을 걷어차고 말았다. 와지끈! 올케는 화들짝 놀랐고 그건 안에 있던 두 남녀도 마찬가지였다.
“히이이익?!“
“읍읍?!“
데스피나는 홀딱 벗은 채 밧줄로 꽁꽁 묶이고 눈가리개까지 해 놓은 조르쥬 위에, 채찍까지 들고 올라탄 상태였다.
“뭐, 뭐야! 방금 막 끝났는데! 왜 갑자기 들어와! 아, 맞다. 오늘 온댔지…….“
“연세 지긋한 분이 기력도 좋아라.“
헬레나는 서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 * *
“아니, 오기 전에 사람 한번 더 보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몇 번을 보내야 하는 건데요?“
데스피나의 볼멘소리에 헬레나는 여전히 차갑게 대응했다. 가까스로 갈무리하고 옷을 차려입은 데스피나는 툴툴거리면서 그녀를 손님용 의자로 안내했다.
“앉아. 무거운 몸 끌고 오느라 수고했어.“
“올해의 당신만큼은 안 무겁겠지만요. 애들은요?“
“뒷방에. 유모들이 돌보고 있어.“
“애들은 유모들에게 맡기고 넷째 생산 중이셨다?“
“아, 오랜만인데 즐길 수도 있는 거지!“
“즐기는 것 맞아요? 마지막엔 허락이 아니라 오히려 애원하고 계시던데? 전 당신이 아래 깔린 줄 알았다니까요.“
“남이 어떻게 놀든 신경 좀 끄지?!“
그때 뒷방 문이 열리면서 한 엘프 유모가 기웃거렸다.
“데스피나 님? 손님께 아기씨들을 보여드리나요?“
“어…….“
데스피나는 슬쩍 헬레나와 유모를 번갈아 보고는, 씩 웃었다.
“다 데려와.“
말이 떨어지자마자 유모들이 아기들을 안은 채 방으로 들어섰다. 그녀들을 배경으로 깔고서, 데스피나는 한껏 미소를 지었다. 승리자의 미소였다.
“주책이셔라.“
헬레나는 기어이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 말았다. 허브차를 준비하던 올케는 시선을 두 엘프한테 돌리지 않고 괜히 준비시간만 늘려, 긴장 상황을 회피했다. 데스피나는 뿌듯함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흐흥. 내 애들 어때?“
“이쁘네요. 계획이에요, 사고에요?“
“이미 들었을 텐데? 둘 다였어. 임신은 계획이었지만 쌍둥이는 사고였지.“
“용케도 임신을 결심하셨네요.“
“뭐, 주책이란 소리 많이들 했겠지.“
“직접 듣지는 못하시고?“
“감히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너같이 겁 없는 아르데니아년뿐 일걸?“
“흥. 인간을 농락한댔다가 오히려 넘어가서 농락당하는 걸 뭐라고 해야 할지.“
“내가 당하는 거 아니거든? 채찍 자루 누가 쥐었는지 못 봤니?“
“자루만 쥐면 뭐해요? 아까 당신이 조르쥬 경 위에서 했던 말 그대로 읊어줘요?“
“아, 좀! 잊어라! 그건!“
간신히 데스피나의 입을 막는 데 성공했지만, 헬레나는 분명히 부러운 눈치로 세쌍둥이를 흘겨볼 수밖에 없었다. 다산이 권장되는 사회에서 아이의 숫자는 부부의 능력이자 주고받는 사랑의 척도로 간주 되었다.
난임은 큰 고난이었고. 엘프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헬레나는 자신이 품을 아이의 숫자에서 데스피나한테 밀릴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그 다산의 약은 어디서 구한 거예요? 난임 부부들이나 많은 아이를 원하는 부부들한테 참 좋겠는데요.“
“그게…… 좀 비싸.“
“웬만큼 비싸도 제 돈으로 못 살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요.“
“엥? 너도 그 약 쓰게? 왜?“
헬레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엘프는 인간보다 수명이 길지요.“
데스피나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 중에서는 막바지 중의 막바지인 데스피나도 조르쥬 보다는 좀 더 오래 살 여지가 있다. 수명이 짧은 남편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씨뿐.
“뭐, 인간 남자는 늙어도 씨를 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으니, 조급할 필요는 없지 않아?“
“에드워드 경 주변엔 제 경쟁자도 많아서요. 원래 오는 여자 안 막는다는 호색한이기도 했지만.“
부인은 베로니카와 헬레나 둘뿐이라고 못받아 놨지만, 실상은 많은 여자가 에드워드 곁을 맴돈다.
당장 직속 마법사인 스텔라와 직속 연금술사인 미아만 해도 공식 정부로서 귀족 작위와 연금을 받는 판이며, 에드워드는 그녀들과도 밤을 보내고 있다.
“흐음. 그것도 그렇지.“
“게다가 케라시움은 신생 식민도시에요. 엘프 시민의 숫자가 기존 도시들보다도 더 적죠. 순혈이든 혼혈이든 엘프의 피는 얼마든지 필요해요. 다산에 효험이 있는 거라면 약이건 부적이건 다 끌어와야 할 판이죠.“
“그야…… 그렇지.“
“그러니 그 다산의 약이 어디서 난건지좀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증손녀와 케라시움도 돕게요.“
어느 사이엔가 올케도 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페트로스와 그녀 사이에서는 아직 아이가 없었다. 엘프는 임신과 출산이 어렵고 느린 종족. 흥미가 동할 만했다. 그러나 데스피나는 여전히 망설였다.
“그게…… 비밀인데.“
“뭐 대단한 비밀이라고 그렇게 꽁꽁 숨겨요? 오히려 세상에 널리 퍼뜨려야 할 것 아닌가요?“
“출처가 남들에게 말하기가 좀 그래.“
“약사가 누군데요? 본인이 직접 만드신 건가요?“
“아냐. 너도 알겠지만 난 약학에는 그다지 재주가 없어.“
“아지지야 대도서관의 인맥으로 구한 건가요?“
“그게, 인맥이라면 인맥인데…….“
흔쾌히 내놓지 못하는 모습에 헬레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뭐가 문제란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헬레나는 상상력을 총동원해 보다가 어느 순간 기묘한 답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아지지야 대도서관은 지옥과 연결되기도 했지요. 혹시……?“
그 말에 올케는 기겁해서 둘을 돌아봤다.
“지옥의 약이에요?! 그거 위험하잖아요! 자칫 잘못하면 아이한테 악령이나 악마가 깃들어요! 심지어 남편의 아이일 거란 보장도 없다고요!“
“할미가 그 정도 속임수에 넘어갈 정도로 어수룩할 줄 아냐! 쟤들은 조르쥬의 애들 맞거든?!“
데스피나가 버럭 했다. 하지만 주변의 엘프들은 다들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고, 유모들은 당장 애들을 내려놓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데스피나는 그 불편한 시선들 속에서 결국 항복선언을 했다.
“악마의 지식을 활용하긴 했지만, 악마는 아니야. 그런 걸로 장난칠 인간도 아니고.“
“인간? 설마?“
헬레나의 말에 데스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산의 약을 만든 건 주술사 니코스야.“
주변 엘프들의 시선이 다시 썩어들어갔다. 이번엔 좀 다른 의미였다.
“다산의 약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세쌍둥이나 들어앉는 사고가 어쩌다 생겼나 했는데…… 이제 이해가 가네요. 네, 니코스라면 그러고도 남죠. 획 하나, 숫자 하나 잘못 써서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최악의 주술사니.“
데스피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덕택에 세쌍둥이나 낳느라고 죽는 줄 알았지. 어휴.“
올케는 포기가 빨랐다. 그녀는 한숨을 축 내쉬었다.
“그 약은 말년의 엘프도 세쌍둥이도 낳게 하는 명약이 아니라, 복용자가 무조건 세쌍둥이를 낳게 하는 미친 약이겠군요. 그런 건 젊은 엘프라도 부담이 심해서 못 쓸 거예요.“
“그렇죠. 그렇지만 말이죠…….“
헬레나가 말꼬리를 흐렸다. 데스피나는 순간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야, 너 설마?“
헬레나는 몸을 앞으로 당기며 질문했다.
“니코스를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죠?“
데스피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말 못해!“
“어머, 아르데니아년을 걱정해 주시는 건가요?“
“그것도 있지만! 아, 나 너네랑 너무 친하게 지냈나 보다. 어쨋거나! 니코스를 만나는 방법 같은 건 함부로 발설하면 안 돼! 그랬다간 니코스부터 짜증을 낼 거야! 다음 약부터는 그 양반의 건망증이 어디로 튈지도 모르고! 뭣보다 내가 그걸 왜 알려 줘야 하는데?“
헬레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광기에 불타는 눈으로, 세쌍둥이를 낳은 엘프를 내려다보았다.
“대가가 필요하신가요?“
“흥. 어지간한 대가로 이 데스피나님이 움직일 줄 알았……?“
데스피나는 말을 하다 말고 숨을 멈췄다. 헬레나가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가느다란 줄을 꺼내더니, 양손으로 그걸 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줄은 곧 데스피나가 어디선가 본 것을 구현했다.
“그거…… 네 남편놈이 나한테 하려던 거?“
“거북이 등껍질 무늬 묶기라던가, 그러더군요. 아까 조르쥬 경의 몰골을 보니 밧줄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 말이죠.“
“너, 넌 대체 그걸 어떻게 할 줄 아는 건데?!“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을 속삭이며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다 보면요.“
“구라치네! 에드워드가 먼저 시도했지, 그거!“
“부정은 안 할게요.“
헬레나는 매듭을 데스피나의 눈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흥미 안 가세요? 조르쥬 경한테 이걸 쓴다면…… 뭐, 본인이 당하셔도 이젠 그리 기분 나쁘시지는 않을 것 같은데.“
데스피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녀의 증손녀시자 헬레나의 올케 역시 불타는 눈으로 그걸 바라보았다.
“증조모님께서 배우시겠다면 저도 배울 수 있을까요? 페트로스 씨한테도 써보고 싶군요, 그거……!“
피는 못 속이는 법이었다. 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가르쳐드려야죠.“
그리고 헬레나는 자기 목적을 위해서라면, 남동생도 광란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