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309)
외전2 못된 고양이 (1)
술고래 기사 로드리고는 조르쥬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둘 다 출세를 백안시한 수도자 같은 자는 아니었으나, 순례와 출세는 별개로 둘 수 있는 타입.
차이점도 있는데, 로드리고의 순례는 장기적인 사명보다는 그때그때 모험과 자극의 추구로 점철되었다. 그가 딱히 가난한 집안 출신이 아니었고, 순례 경로상의 친척이 상인으로 대성하여 군자금을 대주었기 때문에 자금에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즉 용살자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그가 시오니아 동쪽 변경을 들쑤시는 건 그런 특성 때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말 위에서 떨어져 죽어야 겨우 만족할 모험가 타입.
“우리가 계속 그런 주인만 만나는 것도 묘하단 말이죠.”
사막의 밤. 모닥불 옆에 앉은 소년병 마테오의 말이었다. 쇠뇌를 관리하고 있던 소녀 사냥꾼 리베르타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일이 끊기지 않고 돈 벌면 좋은 거지, 뭐.”
“그래야 하는데.”
소년 소녀의 눈은 한 여사제한테로 돌아갔다. 회색 옷에 가죽 목걸이를 한 그녀는 물그릇 하나를 들고 모래 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마테오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로드리고와 그의 부하들은 물론이고, 동방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새 우물을 못 찾으면 이 일대에 보급창을 세운다는 계획은 말짱 헛것이 되고 다시 흩어져야겠지. 이 일대에서의 동서협력도 미뤄야겠고. 하지만 결국 기대는 것이 여사제의 잠꼬대라니.”
신학대학 중퇴생 빌헬름이 말했다. 마테오는 그 말에 파다 만 우물들을 돌아보았다.
“그럼 다른 방법 있어요?”
물을 찾는 자들이 파고 파다 포기한 흔적들. 물이 아예 안 나오거나, 나와도 곧 말라 버린 구덩이들. 빌헬름은 자기 턱을 만지작거렸다.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단순한 꿈이거나, 악마의 농간일 수도 있어. 찾든 못 찾든, 디나 양은 이단심문관들의 강도 높은 검증을 받을걸. 그건 전혀 달가운 일이 아니야. 게다가 전직 이단 사제였다는 과거까지 고려하면…….”
빌헬름의 말이 길어지는 순간, 여사제 디나가 발걸음을 딱 멈췄다. 그녀는 땅에 무릎 꿇은 다음 물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별 세 개가 담기는 곳에 우물이 있으리라.”
* * *
카말라의 백작이자 시오니아 섭정공 겸 호국경 에드워드는 공식적으로 부인이 하나다. 인간 부인이 하나, 엘프 부인이 하나. 어쨌든 하나다.
그러므로 시오니아 왕성에는 헬레나를 위한 공간이 없고, 케라시움의 벚나무 씨족 저택에는 베로니카를 위한 공간이 없다. 각자는 상대의 영역에서 손님이 된다. 둘 모두를 안주인으로 간주하여 공간을 배정한 곳은 카말라 백작의 성뿐이었다.
그럼 카말라 백작의 성에서는 에드워드가 두 여인을 한 침대에 던져넣을 수 있느냐 하면, 당연히 아니었다. 그런 건 아주 아주 특별한 일이 있어도 가능할까 말까 했다.
두 아내가 스스로 와서 에드워드를 괴롭히는 건 가능했다. 이 경우는 대부분 즐거운 밤문제가 아니라는 게 문제일 뿐.
“돌팔이 의사의 말을 믿는 거야?”
베로니카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에드워드는 애매한 웃음을 흘렸다.
“믿는다기보다는,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나 할까.”
“입자설이라니, 처음 들어봐요.”
헬레나가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에드워드는 기사후보생 시절 자신을 좌절시켰던 문제를 다시 꺼냈다. 종두법. 우두를 앓으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게 된다는, 일종의 예방접종. 현대 지식 만세를 외칠 때 꼭 한 번씩 언급되기도 하는 기술.
그러나 ‘소젖 짜는 알레사’한테서 우두 고름을 얻는 과정 중 ‘기사답지 않은 짓을 하는 이상한 놈’ 취급을 받은 데다, 그게 천연두 예방에 효과 있다는 증명을 하는 것도 실패했다. 이미 좌절을 한번 해 봤기 때문에 에드워드의 접근은 신중했다.
“정확히는 미생물설이라는 건데…… 그나마 가장 비슷한 주장을 하는 양반이 이 사람이더라고.”
병의 원인이 무엇인가는 이 세계 의사들 가운데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신의 징벌, 악마의 장난질, 나쁜 냄새, 체액의 불균형 등등. 진짜로 신과 악마가 존재하고, 상징과 냄새가 곧 힘을 가지기도 하는 곳이라 어쩌면 그 전부가 맞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에드워드도 악취를 누르는 꽃향기의 힘을 부적이라 치고 대충 따르곤 했다. 의사가 피 좀 빼자는 것도 주변의 눈치를 보아 적당히 따랐고.
그러나 미생물설만큼은 아직 주장한 사람이 없었다. 악마들은 설령 알고 있더라도 인간들에게 그 비밀을 알려 주지 않을 것이었다. 빛이야 원래 불친절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독성 입자가 사람의 손에 묻어나와 병이 전염된다는, 입자설을 주장하는 의사 나스룰라는 명백한 소수파이자 비주류였다. 그러나 에드워드가 이용하기에는 딱 적당한 사람이었다.
군주가 소수파 의견에 귀를 기울여 후원하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갈아치우고 없는 일로 하는 것 정도야, 비일비재했다. 끽해야 사소한 실패 정도로 간주되고, 직접 주장하는 것보다는 책임 추궁도 덜 당한다.
적어도 기사답지 않다거나 군주답지 않다는 말 따위는 안 듣는다.
“우리 둘이 다 의사거나 의학에 박식하지 않아서 다행인 줄 알아. 그랬으면 반박한다고 난리였을걸. 네 말을 안 믿는 건 아니지만…….”
베로니카는 여전히 불신이 가득한 투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헬레나가 빠르게 끼어들었다.
“아내가 남편을 못 믿으면 쓰나요? 저온가열이라는 건 실제로 유용했잖아요!”
우유, 와인, 맥주 등을 저온에 짧게 살균하는 기술은 에드워드가 자기가 부리는 작업장 사람들에게 귀띔해주어 효과를 봤다. 물론 ‘적당한’ 온도와 시간이 얼마인지 알아내는 건 골 좀 깨지는 문제였고, 가열 전후의 풍미가 달라진다는 한계도 있었지만. 베로니카는 여전히 망설임이 남은 투로 말했다.
“식품가공은 수많은 수도원의 전문분야에요. 찾아보면 그런 비술을 숨긴 수도원이 있을지도 모르죠. 순례 중에 알게 됐다고만 해도 사람들은 더 캐묻지 않을 것이고. 하지만 입자설은…… 애매하네요.”
“깐깐하시군요. 환생이건 기술이건 경전에 없는 이야기는 인정 못한다는 건가요?”
“그렇게까지 보수적인 입장은 아닌데요. 다만 조심하자는 거죠.”
헬레나가 에드워드를 믿고 베로니카가 강하게 못 나가는 건, 그 사건만으로도 충분했다. 덤으로, 두 여인의 신경전도 한몫했다.
“빛이 용살자를 고른 기준이 무엇일까 했는데, 이런 지식을 가진 자라면 충분히 권위와 재산도 쥐어야 하는 법 아니겠어요?”
“빛이 그것도 계산에 넣었을지도 모르죠…… 어휴, 아브멜렉의 환생군단을 바보 취급한 게 엊그제 같은데.”
“지옥에 갔다 돌아온다는 것과 완전히 다른 곳에서 온다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죠!”
“아까도 말했지만 안 믿는다는 게 아니라!”
“안 믿으셔도 돼요. 저 혼자 백작 에드워드를 믿는 부인이 되어도 나쁠 건 없으니까!”
“믿는다니까요!”
에드워드는 자신의 어설픈 지식을 풀어나가는 도중 일어나는 갖은 말썽들 때문에, 그 출처를 ‘아내들’한테는 밝혀야 했다. 이미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데다, 흥미가 없다던 베로니카는 큰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헬레나는 달랐다. 그녀는 분노했고, 그 분노는 여전사답게 신학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 아니었다. 남편의 비밀을 다른 아내가 먼저 감을 잡고 귀띔도 받았다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똑같이 대해 준다면서요?!’
에드워드는 베로니카가 사제라 먼저 상담해야 했다는 변명으로 가까스로 헬레나의 불만을 무마한 뒤, 고스란히 항복했다. 이 과정에서 베로니카도 헬레나와 신경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신경 안 쓸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나만 알고 있던 것 아냐? 이젠 헬레나 양도 알게 됐네?’
에드워드는 끔찍한 신음 소리를 흘려야 했다.
“전폭적으로 믿어 주는 건 고마운데…….”
에드워드가 환생 전에 ‘난 중세로 가서 세상을 바꿀 기술들을 모조리 암기할 것이다!’라고 작정한 게 아니고서야, 기사가 적성에 맞아 날뛰고 활약하던 후보생 시절 너머 가물가물한 지식을 끌어내는 건 지지부진하거나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물들의 유용성이 인정되더라도, 여러 이유로 기존 기술이나 관념을 밀어내기엔 역부족인 것들 역시 한둘이 아니었다.
세상을 바꾸기엔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유용한 기술들의 총합은 분명 이로운 것이다. 한 백작의 괴짜짓으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돈과 권력을 가진 부인들의 지지는 필수적이었다. 그 두 부인이 경쟁적으로 ‘믿어 준다’며 으르렁거린다는 게 문제지만.
“가만. 그러고 보니 스텔라 양이나 미아 양은 이걸 아나요?”
헬레나가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직속 마법사, 그리고 직속 연금술사. 두 여성은 당연히 에드워드의 최측근이자 기술고문이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걔들은 일단 내가 시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는 쪽이라 굳이 내 배경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어.”
그 말을 듣고 헬레나는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건 또 그것대로 묘한 신뢰의 방식이군요…… 당신한테는 그게 더 편하겠죠?”
에드워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여기서 섣불리 긍정했다간 또 바가지를 긁힐 판이었다.
“어, 음. 고용주가 시키는데 별수 있냐는 식 아니겠어? 그게 부인들의 믿음과 비교되진 않겠지?”
헬레나와 베로니카는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드워드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그러나 다음 추궁이 이어졌다. 이번엔 베로니카.
“그렇긴 한데…… 네 지식은 좀 위험해 보이는 것도 있거든? 마법사나 연금술사나 막 나가는 종류의 인간들인데, 내가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
“앗! 그럼 저도!”
“전 사제에 이단심문관이니까 관리가 되는 거죠. 헬레나 양은 좀 무리 아닐까요?”
“지금 저 못 배웠다고 놀리는 건가요?!”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요?!”
두 부인의 말다툼 속에서 에드워드는 다시 타협점을 찾느라 머리통을 굴려야 했다. 방법을 찾던 그는 일종의 자폭스위치를 누르는 극약처방을 택했다.
“스텔라가 배운 건 내 욕이 더 많을걸.”
두 여자의 말싸움이 딱 멈췄다. 그리고 약간 경멸스러운 눈으로 에드워드를 흘겨보았다.
“너네 대학 새끼들보다 입이 더럽더라.”
“남녀관계에서 할 말이 아닌 것들부터 가르치다니, 그러다 큰일 나요.”
에드워드와 스텔라의 밤일은 일종의 더티토크 위주 플레이였고, 그걸 알게 된 베로니카와 헬레나는 꽤나 문화충격을 받았다. 둘 다 색다른 도전이랍시고 어설프게 흉내 내보려다가 관두고 에드워드의 등짝을 때린 적도 있을 정도로.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쪽과 나눈 건 죄악뿐이긴 하지.”
* * *
에드워드의 첫 번째 정부는 공식적으로 스텔라다. 비공식적으로 전직 성가대장 요하나가 있지만, 공식 정부로서 귀족 작위를 수여 받은 순서대로 따지자면 그렇다. 그리고 여마법사가 정부까지 해먹을 경우 쏟아질 수 있는 전근대적 비난은 스텔라가 독차지했다.
공주와 엘프를 낀 섭정공도 홀린 여마법사.
툭하면 도박질하는 낭비벽 심한 여자.
시오니아 왕성에도, 카말라 백작성에도, 케라시움의 벚나무 씨족 저택에도 자기 굴을 파놓은 음탕한 여자.
낙타에 탄 채 사막길을 가던 여마법사는 툴툴거리며 말했다.
“솔직히 다 부당한 비난이긴 한데 말이죠.”
“부당했냐?!”
옆에서 걷던 가르달이 어이없다는 투로 쏘아붙였다. 스텔라는 그를 흘겨보았다.
“전부 부당해요! 일단 첫 번째로, 제가 섭정공을 홀린 게 아니라 그분이 절 찍은 거잖아요!”
“고용해달라고 꼬리 흔들며 다가온 건 너였잖아!”
“고용해달라는 게 정부로 만들어달란 소린 아니거든요?”
“다른 마법사라면 그렇지! 넌 대놓고 밑밥 깔면서 들어가 놓고는 뭘!”
“저도 여마법사를 돈 좀 많이 드는 정부감으로만 보는 시각은 마음에 안 든다 이거에요! 그리고 기사님이 출세 못하면 찰 생각이었으니까 세이프에요!”
“세이프 아니야!”
“도박 중독이라는 것도 그래요. 마법실험에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데.”
“너 저번 달 연금 중에 실험에 쓴 거 있냐?”
“일이 바빠서!”
“도박할 시간은 있고?!”
“절 도박의 길로 빠뜨린 게 기사님과 카치운 아저씨와 드워프 아저씨인데요, 뭘! 그리고 연금 받은 건 써야죠!”
“도박에 맛들여 놓지 않았으면 순례길에 적당히 돈 빨다 사라졌겠구만, 이거!”
“뭐야, 절 도박판에 끌어들인 게 그 목적이었어요?! 도박 빚을 이용한 노동착취를 인정하시는 건가요!”
“공소시효 지났다!”
“드워프 주제에 왜 이리 법에 빠삭해요?!”
“상인이 뇌물을 찌르고 다니려면 법에 빠삭해야 하기 때문이다!”
“근데 노동착취 공소시효가 그렇게 짧아요?”
“그거야 그곳 법 정하는 놈 마음대로지.”
“시오니아 법은 얼마나 되는데요?”
“넌 카말라 법 적용해야지.”
“그렇네요. 카말라 법은 얼마에요?”
“아직 안 정해졌다.”
“뭐야, 그게!”
“그러니까 백작 마음대로란 뜻이다! 그리고 넌 그 백작의 정부고! 사실상 끝난 거잖아!”
“궤변 같은데 반박을 못하겠다!”
“네 불만이 다 그렇지, 뭐. 마지막 비난도…….”
“그건 진짜 억울한데요! 마법사는 다 그러잖아요!”
요새 사령관과 그 직속 조언자는 방을 붙여놓는 관례가 있는데, 스텔라는 이 비슷한 논리를 따라, 에드워드의 거처마다 자신의 거처를 만들어 놓았다. 시오니아 왕성에서는 왕실마법사의 일원으로, 카말라에서는 백작 직속 마법사로, 케라시움에서는 치안대장의 부군을 모시는 수행단원으로. 에드워드가 가는 곳마다 그녀의 처소가 있는 게 신기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가르달은 이죽거렸다.
“네 처소가 셋이지?”
“네.”
“그중에 백작이 안 들어간 곳은?”
침묵. 얌전히 들어갔다 나오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세 곳의 침대 모두가 백작이 들어올 공간 정도는 있었고 실제로 낯뜨거운 일들이 치러졌으니까. 스텔라는 한숨을 내쉬었고 가르달은 껄껄 웃었다.
“욕먹어도 별수 없지. 그게 정부의 역할이기도 하고.”
“왕이 받을 비난을 대신 받는 자리. 네, 네. 알죠. 안다고요. 근데 좀 불공평해요. 요하나 양은 욕 전혀 안 먹는데 말이죠. 보통은 직속 마법사보다 직속 주술사가 정부로서 더 위험하다고 간주되지 않아요?”
“거기서 거기던데. 그리고 걔는 수녀원과 복지회의 후원자로 더 열심히 일해서 욕먹을 일이 없다.”
“아. 비겁해.”
“비겁하긴 개뿔. 너도 도박 관두고 그래봐라. 누가 너 욕하겠냐.”
“흥. 그랬다간 섭정공 각하께 제가 먹을 욕이 돌아가겠죠.”
“백작 생각해 주는 척하긴.”
“뭐, 에드워드 경은 그냥 대귀족이 아닌 섭정공 각하나 되셨고 연금도 두둑하게 주시니까요. 용살자에 멋진 분이고. 그런 분의 정부라면 돈만 많고 주먹 휘두르는 늙은이의 정부보다는 할 만하죠.”
“제일 좋은 건 간섭 안 하고 돈도 많은 남편을 만나는 것이겠지만.”
“어머, 저도 부인이랍니다? 서류상의 남편인 편력기사 에드워드가 사실은 섭정공 에드워드라는 꼼수로.”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남편이라니, 기괴하군. 보통은 적당한 남자랑 결혼식만 하게 한 다음 그 남편을 먼 데로 쫓아내는데.”
그게 보통이었다. 에드워드가 만들어낸 ‘서류상의 남편’은 신종수법이었다. 서류보다는 사제 앞에서 하는 결혼식이 더 중요한 세상이니까.
“뭐, 결혼식 하긴 했어요. 에드워드 경이랑, 이름도 모를 지나가는 사제 붙잡아서 한 약식이지만.”
스텔라는 자기 왼손을 활짝 펼쳐서 손가락에 빛나는 결혼반지를 보여 줬다. 가르달은 그게 뭔지 알아봤다. 고대 이단 사제의 유적을 털 때 나온 전리품들 중 일부. 스텔라는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마 섭정공 각하께서 절 다른 사람한테 넘길 여지를 일말이라도 남기고 싶지 않으신 것 아닐까요?”
“독점욕이 센 양반이긴 하지. 다른 정부들도 다 비슷한 방식을 쓴 걸 보면…… 교회가 알아내면 혼인무효를 선언하고도 남을 방식인데.”
“헹. 그런 거 적극적으로 파헤치는 양반은 없던데요. 하긴 누가 섭정공이랑 싸우고 싶겠어요. 용살자인데. 빛도 ‘이 혼인은 인정 못한다!’면서 벼락 던지진 않았잖아요? 그럼 된 거지, 뭐.”
가르달은 불안한 표정으로 사막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안 떨어지려나……?”
그의 진심 어린 걱정에 스텔라도 불안한 듯 살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쾌청했다.
“아, 덥다. 차가운 물 한 바가지가 그립네요.”
“뭐, 곧 마시겠군. 저기다. 우리 목적지.”
스텔라는 가르달이 손가락질 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과연 그의 말대로였다. 방금 막 건설되기 시작한, 일종의 마을. 로드리고 경이 만든 보급창을 둘러보고 지원하는 게 스텔라와 가르달의 임무였다.
스텔라는 건설 중인 마을 한복판의 우물들을 곁눈질하다 말했다.
“용케도 이런 사막에서 우물을 찾았네요.”
“완전히 새로 찾은 건 아니야. 우물이 기존에 두 개 정도 있었대. 문제는, 기존에 있던 우물로는 병력이 머물기 부족했다는 거야. 세 번째, 네 번째 우물이 필요했지.”
“그리고 그걸 디나 양이 찾았고요. 신의 계시를 받았댔죠?”
“그래. 물그릇에 별이 세 개 들어오는 자리에 우물을 파라는 계시를 받았대. 그리고 진짜로 물이 나왔고.”
“적절하기도 해라.”
“근데 너도 알겠지만 디나는 전직 이단 사제고, 신의 계시는 이단자들이나 악마의 농간에 놀아난 연놈들이 많이 대는 핑계 중 하나라, 근처 교회는 물론이고 베로니카 공주도 관심을 기울인 모양이더라. 사제들이 먼저 와서 검증했다지.”
“결론은요?”
“우리가 여기 온 거 보면 모르겠냐? 이상 없어. 깨끗해. 디나 양은 곧 속죄의 목걸이를 풀 모양이더라.”
“흐흥…….”
스텔라는 천천히 마을을 돌아보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동방 사람들과 마주 앉은 로드리고 경의 부하들. 의사소통의 불편함이 지나가던 사람에 불과한 스텔라한테도 보였다.
“저쪽 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없네요?”
“흔하겠냐? 주술사왕의 영토로 단절되어 있었는데. 뭐, 서로 익숙해지면서 몇 단어 주고받으면 통해. 장사란 다 그렇지.”
“저거 지금 장사하는 거예요?”
“보면 모르겠냐? 가져온 물건을 서로 교환하는데 서로 비싸네 싸네 따지는 거잖아.”
그제야 스텔라는 사람들의 손에서 뭔가 오고 가는 것을 깨달았다. 장사라기보다는, 서로의 보급품 중에 남는 것을 교환하는 행동에 가까웠다. 말린 고기와 연초가 교환되는 것을 흥미롭게 보던 스텔라는 곧 익숙한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주사위 소리?!”
“야, 그런 거 듣는 귀는 드워프보다 빠르구나야.”
가르달이 투덜거리거나 말거나, 스텔라의 눈은 그릇에 주사위를 던지는 사람들한테 못박혔다. 말이 안 통하는 건 물론이고 법도 도박규칙도 다를 사람들이 한자리에 앉은 풍경. 물물교환보다 늦게 시작했을 게 뻔하지만, 진행과정은 더 빨랐다.
스텔라는 머릿속에서 번개가 번쩍이는 느낌을 받았다. 언젠가 그녀가 에드워드와 뒹굴고 잡담을 하다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저기, 가르달 씨?”
“왜. 불안하게시리.”
스텔라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도박으로 돈을 벌고 싶으면 도박하지 말고 도박장을 차리란 격언 아시죠?”
“네가 하기 가장 안 어울리는 격언이지. 도박장 차릴 돈과 폭력은 또 누가 대……? 야, 잠깐. 너 설마?”
스텔라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섭정공 각하지, 누구긴 누구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