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31)
31화 마녀소동의 끝
돌을 던진 건 데보라의 골렘이었다. 그 녀석의 마지막 돌은 사람들과 트롤을 넘어 저 멀리 날아갔다. 전체적인 돌들의 배치는 원형이었다. 닭들과 병아리들이 그 사이를 빠르게 달리며 발자국을 남겼다. 사람들은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보았다. 주술사들의 마법진.
데보라는 숨을 잔뜩 들이마신 다음 선언했다.
“여기는 이제 마녀의 영역. 선언은 인간의 말, 속박은 약속의 말. 너희 손발은 늪에 있는 것과 같이!”
그 순간 트롤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괴물들뿐만이 아니었다. 마을 청년들과 베로니카의 움직임도 느려졌다. 돌을 던지려던 트롤이 그 동작 그대로 굼벵이처럼 움직이는 걸 보자 에드워드는 의문을 품었다.
“오, 이 주문 좀 대단한데. 그런데 왜 나만 멀쩡하지?”
“아까 사과술을 마셨으니까! 이 주문, 오래 못 가요!”
“얼마?”
“5분? 10분은 무리! 저 혼자는 다 못 죽여요!”
“골렘은?”
“성당 근처엔 못 간다고 했잖아요! 지금 다 못 죽이면 저 혼자 도망갈 거예요?”
데보라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웃어 버렸다.
“알았어. 충분해.”
남은 트롤은 다섯 마리. 사과술을 마시고 움직이는 남자는 둘. 벤슨이 마녀의 영역에 달려와 에드워드 앞에 선 대장 트롤의 발목에 있는 힘껏 몸을 던졌다. 쿵! 트롤은 균형을 잃고 맥없이 쓰러졌다. 에드워드는 곧바로 놈의 목에 칼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손을 비틀었다. 으드득. 트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느려진 트롤의 저항은 사실상 없다시피 했지만, 워낙 크고 단단한 몸이라 열쇠검으로도 숨통을 끊는 게 쉽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망가진 방패를 버리고 두 손으로 열쇠검을 쥐어 힘을 더 주었다. 어느 순간 트롤의 역한 숨이 그치자 에드워드는 검을 뽑았다.
“날 원망 말고 네 식욕과 제프리 윌킨슨이란 개쌍놈을 원망해라. 자, 한 놈당 1분. 서둘러!”
“저도 내려가요? 저도 사과술 마셨는데?”
지붕 위 리안나가 질문했다. 데보라가 답변했다.
“넌 아침에 마셨잖아! 약발 끝났어!”
그녀는 베로니카에게 달려가 사과술을 마시게 했다. 곧 그녀의 몸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쿨럭! 마녀의 술 같은 건 안 마시려고 했는데.”
억지로 흘려 넣었기 때문에 베로니카는 기침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데보라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계속 그렇게 느려진 상태면 기사님이 사제님의 몸 곳곳을 만져 봐도 저항 못 하실걸요?”
에드워드는 크게 헛기침을 했고 베로니카는 그를 흘겨보았다.
“한 잔 더 줘요. 당장.”
베로니카는 사과술 한 잔을 더 마신 다음 조금 전까지 자신과 청년들을 향해 포효하던 트롤 앞에 섰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 청년의 포크삽을 뺏어다 트롤의 양 눈에다 제대로 박아 버렸다. 콱! 데보라가 인상을 쓰는 순간, 베로니카는 망치로 삽자루를 쳐서 삽을 더 깊게 박아 버렸다. 안구부터 뇌까지 파괴당한 트롤은 그제야 주문에서 풀리더니 피거품을 뿜으며 쓰러졌다. 에드워드는 그 모습을 힐끗 보고는 중얼거렸다.
“누가 저걸 만져? 무서운 년.”
“기사님이나 저나 곁의 여자들이 무섭네요.”
벤슨이 맞장구를 쳤다.
남은 건 세 마리. 그중 둘은 손이 더 빠르고 완력도 있는 에드워드와 벤슨이 처리했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하나. 베로니카와 데보라가 그 트롤을 뒤로 쓰러뜨리는 순간, 에드워드는 손짓으로 그녀들을 제지했다.
“야, 잠깐잠깐. 잠깐만 기다려 봐.”
에드워드는 땅에 흩어진 산트롤 퇴치제를 긁어모아 한 주먹 쥐어 왔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트롤의 입에 부어 넣었다. 트롤의 입에서 비명이 되다 만 거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벤슨이 그 대표격으로 질문했다.
“지금 뭐 하세요?”
에드워드는 애꿎은 개미한테 모래를 뿌려 보는 악동의 심리로 말했다.
“아니, 딸기향 맡고 온 애들이 똥내를 맡으면서 죽으면 표정이 어떨까 궁금해서.”
“멍청한 짓 하지 말고 마저 마무리 짓지 못해?!”
베로니카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벤슨은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나름 천생연분이시네.”
에드워드는 칼질이 빗나가는 바람에 한 번 더 칼을 휘둘러야 했다.
* * *
그날 저녁, 리글리가의 가장인 존 리글리는 자신의 일꾼과 함께 마을로 돌아왔다. 그리고 개판이 난 마을 꼴을 보고 기겁했다.
산 아래에 볼일을 보고 왔더니 트롤들이 여섯 마리나 죽어 있고, 성당은 박살이 났고, 이웃 윌킨슨 씨는 목이 잘린 채 ‘분홍색’ 꼬치가 되어 죽었고, 윌킨슨 부인은 목이 졸려 질식한 탓에 바보가 되었고, 돼지치기 하나는 다리가 작살이 났고, 자기 마누라는 팔과 늑골이 부러졌다.
안 놀라는 게 더 이상할 일이었다. 그리고 마을은 마녀와 기사와 이단심문관과 밴시가 점령한 상태였다.
하지만 존 리글리는 곧 진상을 파악한 다음, 침착하게 대처했다. 그는 베로니카에게 탄핵당한 사제 대신 마을 사람들을 진두지휘해, 죽고 다친 사람들의 집안을 수습했다. 그리고 에드워드 일행과 데보라에게 마을을 구해 준 데 감사를 표했다.
“존 리글리 씨는 인격자네. 제프리 윌킨슨이 수작질을 서두른 이유 중 하나를 알 것 같아.”
데보라와 함께 절단 등 중상자만 주문으로 치료해 준 뒤 여관 1층에 앉은 베로니카의 호평이었다. 리글리가가 이성적으로 강하게 반대한다면 윌킨슨가도 데보라를 어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존 리글리가 마을을 잠시 떠난 사이에 이변이-돼지의 죽음과 우물의 고갈이- 일어나자, 이를 둘도 없는 기회로 여기고 일을 급하게 추진한 것이다.
“리글리 씨는 좋은 사람이죠. 부인은 좀 철이 덜 들었지만.”
벤슨의 평이었다. 리글리 부인은 자신이 만든 온갖 약들이 전부 잘못 쓰인 데 대해 결백을 주장했지만, 에드워드는 격식을 집어치운 짧고 굵은 말로 그녀의 입을 닫게 했다.
농담하냐?
기사도 일격에 뻗는 마비약을 그냥 재미 삼아 이놈 저놈에게 팔았다는 건 문제 있는 행동이었다. 죄를 아무리 작게 잡아도 무분별한 약물판매, 크게 잡으면 이 모든 걸 조종하고 뒤에서 구경하려 든 몹쓸 짓이다. 결국 리글리 부인도 책임을 피하지는 못했다. 베로니카는 그녀의 약물제조를 몽땅 금지시켰다. 특히 트롤 유인제와 마비약. 그리고 그 감시자로 마녀 데보라와 새로 임명될 사제를 지목했다. 앞으로 리글리 부인은 그들의 관찰 하에서만 약을 만들고 팔 수 있었다.
“뭐, 리글리 부인은 당분간 팔이 불편할 테니, 어차피 데보라든 누구든 그 도움이 필요하겠지. 리글리 일가와도 이 정도로 타협해야 벤슨과 데보라의 부담이 덜할 테고.”
베로니카는 웃으면서 말했다. 데보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을을 안 떠나도 되는 건 다행이지만, 은근히 귀찮겠는데요.”
“당신은 피임약 제조 금지예요. 잊지 마요.”
피임은 교황청이 정한 죄다. 데보라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좀 떨어진 데서 그 이야기를 듣던 창녀는 아쉽다는 듯 앓는 소리를 냈다. 에드워드는 웃으면서 덧붙였다.
“하려면 들키지 말라는 뜻이지.”
“야, 특별사법관의 수행원이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되지.”
베로니카가 살짝 태클을 걸었다. 에드워드는 어깨를 한번 으쓱한 다음 본론에 들어갔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보물 문제인데, 이건 소유권이 여전히 붕 뜨는군. 고문서는 벤슨에게 돌려줘도 되겠지만.”
이제 보물의 존재는 윌킨슨가만의 비밀이 아니었다. 바보가 된 윌킨슨 부인은 증언을 할 수 없었지만, 윌킨슨 삼자매는 보물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녀들은 이단심문관과 존 리글리 씨 앞에서 결국 모든 것을 이실직고했다.
마을을 방문했던 탐광꾼은 사실 보물 사냥꾼이었고, 그가 찾는 보물은 데보라네 집 기둥 아래에 묻혀 있었다. 보물 사냥꾼은 데보라를 유혹해 결혼하려 했지만, 그의 진심이 엉뚱한 데 있는 걸 파악한 데보라는 완강히 그를 거부했다.
그는 차선책으로 윌킨슨 일가에 접근했다. 그리고 있지도 않은 광맥 이야기로 제프리 윌킨슨을 부추겼다. 그리고 윌킨슨 부인에게도 접근해 그녀를 유혹하고 야반도주를 권했다.
윌킨슨 부인은 넘어가는 척하고 그의 짐에서 고문서와 일기를 찾았다. 그리고 남편에게 알렸다. 제프리 윌킨슨은 그 문서를 리처드 사제에게 보여 줘 해독했다.
보물 사냥꾼은 윌킨슨 일가의 여자들을 탐내고 가장을 속이려 한 죄로 데보라의 집 뒤에서 마비약을 맞고 살해당했다.
“형은 욕심쟁이였고 모험과 자극을 좋아했죠. 예상은 했지만.”
벤슨의 목소리가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데보라가 그의 어깨를 짚었다. 에드워드가 질문했다.
“역시 직접 복수하지 못한 건 아쉽지 않냐?”
“기사님을 돕고 제프리의 죽음을 본 걸로 만족하겠습니다.”
그때 여관 문이 열리며 회색 콧수염을 풍성하게 기른 중년 사내가 들어왔다. 존 리글리였다. 그는 베로니카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던 중이셨습니까?”
“보물 이야기요.”
“마침 잘 됐군요. 저도 그것 때문에 왔는데.”
“무슨 말이죠?”
“데보라 양에게 제안할 게 있습니다. 잠시 앉아도 될까요?”
베로니카는 손짓으로 의자를 권했다. 존 리글리는 데보라 맞은 편에 앉았다.
“마을 사람들 중에 다친 사람이 많고 성당도 수리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저희 가문 또한 이 사태에 책임이 있으니 비용을 부담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어렵더군요.”
“윌킨슨 가의 재산은 어쩌고요?”
베로니카의 질문에 존 리글리는 고개를 저었다.
“기사님한테 다친 일꾼들에게 배상해 주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모양입니다. 게다가 가장은 죽고 부인마저 정신이 나가 버렸으니까요. 그 집은 이제 파산 직전입니다. 첫째의 약혼도 위태로울 판이죠.”
에드워드는 혀를 찼다.
“젠장. 적당히 벨 걸 그랬나?”
“기사님을 탓하는 건 아닙니다. 그건 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죠. 여하튼 생각을 해 봤는데, 염치없지만 데보라 양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겠더군요.”
데보라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보물 말이군요. 하지만 그걸 캐려면 제집을 허물어야겠죠. 그건 어머니가 세운 마녀의 집이에요. 저는 거길 떠날 생각이 없어요.”
“이해합니다. 그러니 차라리 마을 사람들에게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사람들이 전부 달려들어 데보라 양의 집을 고스란히 옮기는 겁니다. 주춧돌부터 서까래까지 전부 다 그대로요. 마녀의 집에 위치도 중요한 문제라면, 보물을 파낸 다음엔 다시 그 위치에 세우면 되죠. 그게 모두에게 불만이 없을 방법입니다. 물론 보물의 분배는 데보라 양에게 유리할 겁니다. 부디 긍정적으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데보라는 생각에 잠겼다. 베로니카는 존 리글리의 편을 들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고 보는데? 리글리 씨나 윌킨슨가 세 자매가 계속 비밀을 지킬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 보물은 분란의 씨앗이 될 거야. 이 기회에 꺼내서 다 써 버리는 게 후환이 없을걸?”
“그 아래에 보물이 없으면요? 있어도 생각보다 돈이 안 된다면?”
“그래도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야. 이런 분란을 반복할 수는 없잖아.”
베로니카는 슬쩍 벤슨을 흘겨보았다. 그러자 그도 얼른 설득에 동참했다.
“데보라, 난 당신과 함께 이 마을에 살려고 여기 남아 당신을 설득한 거예요. 보물에는 관심 없어요. 평화만 얻을 수 있다면. 당신이 보물을 모두 포기해도 나는 괜찮아요.”
결국 데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 보물을 전부 먹어치워 버리죠.”
“나는 뭐 떨어지는 거 없어?”
에드워드가 베로니카에게 질문했다. 베로니카는 그의 등짝을 가볍게 때렸다. 다행히 존은 기사를 위한 선물도 제안했다.
“혹시 고대 보물 중에 마법 도구가 있다면, 새 사제와 주교좌성당에서 감정을 할 겁니다. 그중 쓸 만한 게 있다면 성지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마법 도구가 없다면 사례금으로 보내죠.”
“약속이군. 보장은 아니고.”
베로니카는 다시 그의 등짝을 때렸다.
“집을 분해해서 옮기는 데 며칠이 걸릴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여기서 죽칠 거야? 그 정도로 만족해.”
“여기서만 두 번 죽을 뻔했는데 남는 게 그닥이니 그렇지 뭐. 에휴. 가기 전에 거스름돈이나 챙겨야겠다.”
에드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창녀의 뒷덜미를 잡았다.
“약속은 기억하지?”
“어머, 기사님? 아직 낮인데요. 그리고 일단 그 손에 안전장치라도…….”
“요금 정산에 밤낮이 어딨냐? 방법이 있긴 있으니까 따라와. 마침 여기 적당한 나무가 있더라고.”
“나무요?”
그 둘은 여관 뒤뜰로 나갔다. 잠시 뒤 여자의 비명과 신음 소리가 들리더니, 뒤뜰에 있던 밴시가 여관 안으로 들어왔다. 못 볼 걸 본 표정이었다.
“기사님이 여자를 나무줄기 사이에 끼우더니…….”
베로니카는 웃어 버렸다.
“생나무는 질기거든. 그걸 잡으면 여자한테 손 안 대도 자세 잡을 수 있으니까.”
“기사님은 안 좋은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시네요.”
“뭐, 결국 여자의 살갗은 못 만지지. 적당한 굵기와 형태의 나무가 흔한 것도 아니고, 생나무를 침대 삼아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베로니카는 벤슨과 데보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서로 손을 못 대는 연인보다 불행한 게 어딨겠어?”
벤슨과 데보라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뒤뜰에서 들리는 소음만 아니면. 애써 조성한 분위기는 창녀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여관 안까지 새어 들어오면서 박살이 났다.
“아니, 기사님! 잠깐만요! 무식하게 힘만 쓴다고…… 꺄아아악! 죄송해요! 닥칠게요!”
우지끈!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존 리글리는 헛기침을 하곤 말했다.
“자리를 옮겨서 마저 이야기하죠.”
모두는 말없이 동의하고는 여관 정문을 나섰다. 이제 남은 건 밴시와 여관주인뿐이었다. 여관주인은 리안나에게 말했다.
“기사님은 출발하실 때까지 맥주 공짜라고 전해 드려라.”
리안나는 뒤뜰의 두 남녀를 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 끝나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