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32)
32화 시작은 항상 불길한 경고
파산 직전의 윌킨슨가, 녹초가 된 창녀, 데보라와 벤슨의 간소한 약혼식을 뒤로하고 에드워드 일행은 스트롬니스 마을을 떠났다. 에드워드는 마을에서 수레 둘과 일꾼들을 빌려 트롤들의 시체를 산 아래로 옮겼다.
큰돈이 되지는 않았다. 산너머 항구도시는 지름길이지만 수요가 적은 곳답게 작았고, 사람도 배도 몇 없었다. 트롤의 사체를 매입할 상인 역시 많지 않았다. 게다가 악독한 상인들은 갈수록 사체의 신선도가 떨어지는 문제,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여행객들의 사정을 이용해 값을 후려쳤다. 에드워드가 뱃삯만큼이 아니라 제값만큼을 기대했다면 분노해서 칼을 뽑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그래도 뱃삯은 나왔다.
일행이 고른 배는 건조한 지 오십 년도 넘은 듯한 코그선이었다. 잘 만든 배는 1년을 항해해도 큰 수리가 필요 없다지만, 이놈은 온갖 사고에 노출되었는지, 문외한이 보기에도 큰 수리를 한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출처가 다른 판자들끼리 엮인 곳은 검은 쥐들이 바쁘게 들락거리는데, 늙고 지친 고양이들은 오히려 배를 떠나는 판이었다.
“쥐가 오르는 배는 가라앉지 않소!”
한 선원의 말이었다. 설득력은 없었다.
선원들은 분주했다. 낡은 돛을 수리하고 새 돛을 달고, 둘둘 감은 범포 다발과 삭구를 실었다. 기름통과 작살과 연료와 솥이 그 뒤를 따랐다. 교역품이 아니었다. 이 배가 원래는 상선이나 여객선이 아님을 알려 주는 것들이었다. 실제로 베로니카와 교섭한 부선장은 ‘편안한 여행’을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앵글리아 본토와 대륙은 지척이었다. 거리가 짧을수록 사람은 잠깐 고생하고 돈을 아끼자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었다. 사람과 말과 나귀와 짐은 요금이 세다. 게다가 때마침 출항하는 배를 타면, 정기선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이런 틈새는 흔한 게 아니었다. 에드워드 일행을 포함하여 몇몇 사람들은 결국 그 배에 올랐다.
어쨌든 처음으로 바다 배를 탄 밴시 리안나의 흥분은 쉽게 식지 않았다. 그녀는 저 멀리 가는 조각배에 일일이 다 말을 붙여 봐야 직성이 풀릴 기세였다. 그녀는 한 노인의 조각배를 향해 외쳤다.
“할아버지! 고기 잘 잡혀요?”
“갔다 지금 84일 고기 없다!”
답변을 들은 밴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인의 말이 이상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에드워드에게 질문했다.
“저 사람 말이 왜 저래요?”
“지금부터는 말이 달라지는 거야. 외국어라는 거지. 저 양반은 말을 섞어서 쓰네.”
밴시 리안나는 수긍했다. 하지만 질문 하나가 더 있었다.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그녀는 뱃전으로 상체를 내밀고 다시 소리쳤다.
“84일이나 고기를 못 잡았는데 할아버지는 어떻게 살아 있어요?”
욕설이 돌아올 질문이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 버렸다.
“외상값이나 빚이 많겠지.”
속사정이 복잡한 어부가 언어의 신세계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리안나의 관심사는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전 앵글리아어밖에 못하는데 어쩌죠?”
“앵글리아 영토는 본토 밖에도 있으니까 거기까진 어떻게든 통할 거다. 거기마저 벗어나기 전에 다른 거 미리 배워. 아니면 베로니카에게 부탁해 보거나. 밴시가 외국어를 알아듣게 하는 주문 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
“기사님은 외국어 할 줄 알아요?”
“아퀴타니아어는 귀족의 국제적 기본 소양이고 트레베리아와 비텔리아에서도 통하지. 난 당분간 말이 안 통해서 곤란할 일은 없어.”
밴시의 얼굴이 뚱해졌다.
“가끔은 기사님이 곤경에 처하는 거 보고 싶어요.”
“충분히 자주 처하거든? 악령이 속이려 들질 않나, 변신술 쓰는 사교도와 싸우질 않나, 거대 꼽등이 밥이 될 뻔하질 않나, 마비약을 맞고 쓰러지지 않나, 산트롤 여섯 마리를 상대해야 하지 않나.”
“저는 안전하고 안락한데 기사님은 곤경에 처하는 게 보고 싶어요.”
“구체적이군. 넌 왜 갈수록 베로니카를 닮아 가냐?”
에드워드는 밴시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그리고는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날은 약간 흐렸고 파도는 점점 높아지는 중이었다. 선박 여기저기서 선원들의 노랫소리가 울렸는데, 쾌활하다기보다는 신세한탄의 청승맞은 곡조였다. 가사는 웃기게도 식인종 전설이 소재였다.
계약을 맺고 여인숙에 대기하던 선원들이 배를 탈 날짜가 다가오니 탈까 도망칠까, 위약금을 물까 망설이다 결국 여급의 엉덩이에 작별하고 예정일보다 하루 일찍 배에 올라탔는데 아뿔싸 식인종이 선장이더라.
에드워드가 그 곡조에 맞춰 손가락을 벽에 두드리던 중, 밴시 리안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고 보니까 베로니카 님은 어디 계세요?”
“배멀미 중. 의외더라. 걔가 시퍼렇게 질리는 꼴을 다 보다니. 계속 해로로만 갔으면 좋겠네.”
“다 들려, 이 망나니!”
선실에서 베로니카의 원한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말했다.
“밖에 나와서 바람이라도 쐬지 그래?”
“이미 해 봤어! 지금은 지쳐서 쉬는 거야!”
“저런저런.”
밴시 리안나는 신이 난 에드워드를 올려다보았다. 베로니카나 에드워드나.
“성지까지 바다로만 가면 이 배는 침몰하고도 남소. 대륙을 돌고 돌아서 가는 먼 길인데 해류와 폭풍이 사납기로 유명한 해역까지 통과해야 돼. 바다 괴물은 또 어떻고?”
노인의 목소리였다. 에드워드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흰 수염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그러나 나약한 인물은 아니었다. 큰 키에 어깨가 떡 벌어진 뱃사람이었다. 절벽 위에 홀로 선 나무 같은. 그는 난간을 짚으며 비틀비틀 계단을 내려왔다. 그의 한쪽 다리는 향유고래 뼈로 만든 의족이었다.
“선장인가?”
에드워드가 질문했다. 노인은 웃었다.
“바로 알아보는군.”
“타기 전부터 선원들이 그러더라고. 선장이 외다리 폭군이라고.”
선장은 킬킬 웃었다. 에드워드의 웃음보다 깊고 날카로운 웃음이었다. 밴시 리안나는 에드워드의 다리 뒤에 숨었다. 하지만 선장은 리안나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에드워드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모자에 오른손을 댔다.
“앵글리아의 기사 에드워드 드 클레어 경. 늦었지만 승선을 환영하오. 다음 항구까지는 금방이니 안심하시오. 뭐, 그대의 순례길에 비하면 웬만한 길은 다 짧겠지만.”
“날 아쇼?”
“유명하지. 아주 유명하지. 은자 앞에서 악마를 언급하며 조롱하다 저주받았다고.”
“젠장. 왜 남이 낭패 본 이야기는 금방 소문나는 거야? 그런데 뱃사람이 저주를 이야기하는 건 괜찮은 건가?”
“난 괜찮소. 괜찮고말고. 바다 괴물도 저주도 환영이오. 사제를 싣는 건 오랜만이지만. 그나저나 그대 일행은 이 짧은 거리에도 멀미를 심하게 하는군.”
“그러게. 앞으로는 배 탈 일이 없어야 할 것 같네.”
“그게 마음대로 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오. 여행자란 다 그렇지.”
에드워드의 눈이 선장의 의족을 향했다.
“다리는 어쩌다 잃었소?”
“그 괴물이 가져갔소.”
“괴물?”
“그 괴물은 바다를 끓는 냄비처럼 요동치게 하고, 짐승이든 배든 바위든 그 더럽고 거대한 식도에 처넣어 바닥도 없는 심연으로 삼키지.”
“무섭군.”
선장은 킬킬 웃었다. 그는 웃음을 멈추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고래의 간은 수레 세 대 분량이 나올 거요. 경뇌유는 지상 최고의 특효약이겠지.”
“이 배 포경선인가?”
“그렇소.”
“지금은 여객선이고?”
“부업이지. 손님을 태워 주고, 볼일을 본 다음에 다시 떠날 거요. 멀고 먼 바다로. 손님도 데려가고 싶군. 새 선원은 언제나 환영이니까.”
“거절하지. 그런데 어쩌다 포경선이 여객선도 겸하게 됐소?”
“악마가 제안하면 그리되고도 남소. 한잔 마시겠소?”
선장은 손에 든 술병을 내밀었다. 에드워드는 항구도시에서 상인을 봤던 눈으로 그걸 보았다. 선장은 껄껄 웃으며 거듭 권했다.
“걱정 마시오. 이거 마셨다고 선원으로 잡아가진 않으리다. 유명인에게 주는 내 선물이오.”
“뭐, 선물은 거절하지 않는 주의니 기쁘게 마시겠소.”
그제야 에드워드는 술병을 받았다. 마개를 열자 엄청난 냄새가 확 올라왔다. 역한 냄새는 아니었다. 사람을 띵 하게 만드는 술냄새였다. 에드워드는 이 냄새를 알아보았다.
“맙소사, 이거 대체 얼마나 독한 거야?”
“연금술사들에게 증류시킨 술이오. 사람을 취하게 하는 이슬을 응축시킨 것이지.”
“또 연금술사군. 지긋지긋한 놈들. 좀 있으면 연금술사가 만든 군대까지 만나겠어. 이건 재료가 뭐요?”
“남쪽 바다의 사탕수수요.”
“설탕?”
“설탕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로 만들지.”
에드워드는 술을 한 모금 넘겼다. 그 순간 속에서 식도가 불이 올라오는 것처럼 화끈거리더니 뒤이어 취기가 올라왔다. 에드워드는 입을 떼고는 놀란 눈으로 술병을 보았다.
“예상보다 독한데?”
“축하하오. 나를 빼면 사람 중에선 댁이 처음 마셔 본 거요.”
“신세계의 술이로군.”
“포도주에 이은, 악마의 두 번째 선물이지.”
에드워드는 쓰게 웃었다.
“악마의 제안, 악마의 선물…… 악마는 부르지 않아도 온다 했는데.”
선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독사보다 기척이 없으나 바람처럼 찾아와 고리대금업자처럼 인간을 농락한다.”
들어 본 말이었다. 에드워드의 마음 한구석에서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은자 유스터스를 알고 있나?”
“만국을 돌아다니다 앵글리아에서 돌아가신 후 시성되셨다 들었소.”
“듣기만 했나?”
“그가 탄 배와 나란히 달린 적이 있었소.”
“그가 내 손에 저주를 걸었다.”
“알고 있소. 그러나 젊은 기사여, 그건 단순한 저주가 아니오. 그대는 그저 오늘이 억울하고 벌이 과하다 생각하겠지만, 은자는 이유 없이 심술을 부리는 자가 아니오.”
에드워드의 바짓가랑이를 잡은 리안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에드워드는 검자루에 손을 대고 물었다.
“넌 뭐냐?”
“괴물에게 다리를 잡히고 인간의 영혼을 잡는 자요. 여기는 바다요.”
마지막 말은 사람의 목구멍이 아니라 심해의 동굴에서 나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음산했다. 에드워드는 다시 물었다.
“내 영혼도 잡아갈 건가?”
“안심하시오. 오늘은 그저 손님들을 실어 줄 뿐이오. 그게 계약이니. 나는 부업과 본업을 혼동하지 않소.”
그 순간, 갑자기 큰 파도가 배의 옆구리를 쳤다. 쾅! 에드워드는 순간 자세의 균형을 잃을 뻔했다. 물보라 속에서 간신히 자세를 회복하고 고개를 들어 보니 선장은 이미 시야에 없었다. 파도에 쓸려 간 것처럼.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짠내와 갑판 사이에서 계속 들렸다.
“어차피 대륙으로 가면 당신은 많은 시련과 부딪힐 거요. 당신은 악령에게 사랑받고 사건에게 뒤를 밟힐 거요. 그리고 위기의 순간에 누구를 찾는지가 영혼의 색을 결정할 거요. 나를 잊지 마시오. 바다에서 신이 응답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대를 도우리니.”
에드워드의 고개가 하늘을 향했다. 위에는 갈매기뿐이었다. 다시 아래를 보았다. 파도와 조각배뿐이었다. 그는 뱃머리로 시선을 돌렸다. 대륙이 눈에 들어왔다.
선실에서 베로니카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그거, 인간이 아니야.”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장실로 쳐들어갈까?”
“하지 마. 이런 수상한 배의 선장은 건드리는 게 아니야. 자기 배 안에서는 무적인 게 흔하거든. 그냥 곱게 내려. 아아, 배는 악마의 발명품인 게 분명해. 우욱.”
베로니카가 헛구역질하는 소리에 에드워드는 쓰게 웃었다.
“그 멀미만 아니면 네가 활약할 기회였을 것 같은데.”
“너 지금 나한테 도움 청하는 거니?”
“안 되냐? 사제잖아.”
“……안 될 건 없지만, 배 위는 어려워.”
“그럴 것 같다.”
“뭐, 네가 유혹에 넘어가게 내버려둘 생각도 없지만.”
“고맙기도 해라. 하긴 그게 사제의 본분이지.”
에드워드는 낄낄 웃다가 문득 자신의 다리가 가벼워진 걸 느꼈다. 리안나가 없었다.
“얘는 또 어디 갔어?”
“여기요오오.”
밴시 리안나는 사과통에 거꾸로 처박혀 있었다. 허리 아래만 통 밖으로 나온 채 축 늘어진 상태였다. 아무리 가벼운 애라지만 곡예를 하지 않고서는 저리 되기 어려웠다. 선장의 짓이다. 에드워드는 덤덤하게 말했다.
“어부를 놀린 벌인갑다야.”
“네네, 제가 제일 만만하죠. 어휴.”
밴시가 투덜거리거나 말거나, 에드워드 일행은 대륙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