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33)
33화 앙베르 백작령
앙베르 백작령 항구도시 앙베르.
배가 항구에 정박하자마자 에드워드는 선장실 앞에 가 보았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손잡이를 잡아서 비틀면 열릴 것이다. 문 너머에 있는 게 악마든 뭐든, 성인의 흔적이 남은 손으로 열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문을 열고 쳐들어가서 네놈 정체를 말하라며 패대기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보는 눈이 많았다. 상대가 그 정도를 예상 못 할 것 같지도 않았다. 만에 하나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상대가 악마 그 이상이라면? 괜히 용의 아가리에 쳐들어가는 짓이었다. 베로니카의 말도 걸렸다. 괴상한 선장은 자기 배에서 무적이기 마련이다.
“……잘 마셨수다.”
에드워드는 선장실 앞에 술병을 놔두고는 자리를 떠났다. 일부러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었으니까.
앙베르는 앵글리아의 출발지보다는 크고 번화한 곳이었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고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사방에서 활기를 끌어모으고 충전해 주는 곳. 에드워드는 작게 중얼거렸다.
“트레베리아 원정 때는 쫄따구라서 구경할 정신도 없었는데.”
“이제 어디로 가요?”
밴시 리안나가 질문했다. 대답은 베로니카가 해줬다.
“성묘수호기사단 앙베르 지부. 내 앞으로 올 우편물들이 있어.”
“성묘수호기사단은 뭐예요?”
“이름 그대로야. 성지에서 오크와 악마들을 상대로 싸우는 수도기사회지. 가끔은 이교도와도 싸우고.”
베로니카의 설명에 에드워드가 슬쩍 한마디를 얹었다.
“가끔 정교도끼리도 치고받…….”
베로니카는 인상을 쓰면서 에드워드의 발등을 밟았다. 에드워드가 슬쩍 발을 뺄 때쯤 리안나가 다시 질문했다.
“여기는 성지가 아닌데, 왜 지부가 있는 거죠?”
“교황청은 비텔리아에 있어도 교회는 교권 곳곳에 있는 것과 비슷하지.”
리안나의 고개가 크게 갸웃거렸다. 본토 밖 대륙은 커녕 일개 도시와 인간의 일도 잘 모르는 그녀의 의문은 아직도 잔뜩 쌓여 있었다.
“누가 베로니카 님한테 우편물을 보내는데요?”
“많지. 교황청 교리법무성, 시오니아 교회, 성지의 오빠한테서.”
“성지는 베로니카 님이 여기 올 걸 어떻게 알아요?”
“내가 미리 일정을 적은 편지를 보냈으니까.”
“언제요?”
“앵글리아 수도 콜체스터를 출발할 때.”
“그게 언젠데요?”
“너 잡기 일주일 전쯤?”
리안나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셈을 해 보았다. 왕복 구간을 편도로 바꾸기 위해 둘로 나누는 마지막 계산을 한 뒤 리안나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갸웃거렸다.
“우편물이 무지 빠르게 오고 가네요? 성지까지 며칠밖에 안 걸려요?”
“그렇지.”
“그럼 우리 여행도 금방 끝나겠네요?”
가만히 듣고 있던 에드워드는 피식 웃어 버렸다.
“아니지. 우편물은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빨라. 육로든 해로든 아무 데나 구겨 넣고 운송만 하면 되니까.”
“사람은요?”
“사람은 마실 것과 먹을 것과 입을 옷과 불과 솥과 잘 곳이 필요하지. 그 부피와 비용과 시간이 만만찮거든.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면 더 심각하지. 꺽다리 왕 로버트의 마메르티니아 원정은 거기까지 가는 데만 반년이 걸렸어.”
“마메르티니아가 어딘데요?”
“비텔리아…… 그러니까, 교황청 남쪽이지. 성지까지 가는 거리와 비교하면 4분의 1에서 5분의 1쯤?”
리안나는 입을 쩍 벌렸다.
“그럼 우리 여행 2년에서 3년이나 걸려요?”
“우리는 군대가 아니니까 그것보다는 빨라. 뭐, 달리기 시합이 아니니까 여기저기 돌아서 가고 들렀다 가고 그러면 좀 걸리긴 하겠지만.”
“마메르티니아는 가 보셨어요?”
“아니. 난 그때 너무 어려서 못 따라갔지. 꺽다리 로버트의 조카를 그곳 왕에 앉히려는 원정이었는데 결국 실패했대. 그래도 아퀴타니아 국왕이 거기마저 먹는 것은 막았지만.”
“잡담은 적당히. 도착했어.”
베로니카가 둘의 잡담을 멈추게 했다.
성묘수호기사단 지부는 벽돌로 쌓은 큰 건물이었는데, 겉보기에는 근처의 상회들과 다른 게 없었다. 다만 기사단의 상징인 흰 바탕에 붉은 삼각형 두 개가 그려진 깃발과 장식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모래시계를 단순화한 그 문장은 지부 안을 돌아다니는 일개 직원들마저 쓰고 있었다.
“옷 빼면 마치 상회 같은데요?”
리안나의 소감이었다.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전선이 아니니까. 이런 곳은 주로 우편과 예금을 취급하지.”
“아, 상회 맞네요.”
“그 말, 여기 기사들 앞에서는 하지 마라.”
에드워드가 낄낄 웃으면서 말했다.
에드워드와 리안나가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베로니카는 창구에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고 몇 가지 서류를 작성했다. 곧 일행은 바깥의 창고로 안내되었다.
“성지에서 보낸 우편물이 많더군요.”
기사단 직원의 말이었다. 베로니카는 창구에서 먼저 받은 편지 중 하나를 뜯으며 말했다.
“오빠가 보낸 게 많네요. 항상 걱정이 많다니까.”
그 말대로였다. 곧 일행 앞에는 어린애만 한 커다란 짐꾸러미가 놓였다. 에드워드는 포장부터 심상찮은 그것을 보고 물었다.
“네 오빠는 성지서 뭐 하시는데?”
“나름 잘나가는 영주지.”
“젠장, 부럽네. 역시 대귀족이군. 어쨌든 풀어 봐야지?”
“리안나, 칼 꺼내.”
“넵.”
리안나는 손칼을 꺼내 포장을 조심스레 풀었다. 그 내용물은 얼핏 보기에도 다양했다. 가장 먼저 번쩍거리는 장도리형 철퇴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캠벨 가문의 떡갈나무잎 문장과 교황청 교리법무성의 삼중관 문장이 들어간 장식용 단검, 사제복 위나 밑에 입을 수 있는 앞여밈식 사슬갑옷, 외투를 포함한 각종 옷가지들, 구급약, 주교들과 영주들이 발행하는 통행증, 향유, 머릿기름, 화장품들, 그리고 수령한 현지에서 즉시 기사단의 다른 물건들과 바꿀 수 있는 교환권 뭉치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에드워드는 교환권 뭉치를 집어 들더니 말했다.
“이 교환권들 다 물건으로 바꾸면 말이 더 필요하겠는데?”
“짐말 교환권도 있어.”
“오, 모두 몇 필이지?”
“많아. 지금 다 바꿀 게 아니라, 계속 바꾸면서 가야지. 오늘은 짐말 하나만 얻을 거야. 그러면 짐마차를 끌 수 있어.”
“마차 사게?”
“짐이 자꾸 많아지니까 마차를 하나 구해도 될 것 같아.”
“마차로 갈 수 없을 만큼 길이 험한 구간도 있을 텐데.”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지. 처분하고 가든가, 돌아서 가든가.”
“마부도 구해야 할 텐데?”
“밴시가 끌어도 돼. 나귀에서 짐마차로 업그레이드한 것뿐이야. 리안나, 할 수 있지?”
“초과 근무네요.”
에드워드가 밴시의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짚었다.
“불만이냐?”
“천리마 정신으로 일하겠습니다!”
리안나가 근로 의욕을 재충전하자 베로니카는 만족했다.
“좋아. 나는 짐마차 고르고, 휴게실에서 편지 좀 쓰고 있을 테니 너희들은 이제부터 각자에게 필요한 것 사 와. 특히 식료품. 빵과 고기와 술. 시간은 해지기 전까지.”
“그건 내 전문이지. 예산은?”
베로니카는 은화가 든 작은 주머니 하나를 에드워드에게 내밀었다.
“아껴 쓰되 싸구려를 사지는 말 것.”
“돈 주는 양반들은 다 그 소리 하더라.”
“아쉬우면 네 돈 써.”
“교회와 네 가문에서 나오는 돈으로 좀 풍족하게 다닐 순 없냐?”
“교회는 짠돌이고, 우리 가문의 돈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아. 우편물 수령할 때마다 이런 돈을 받을 거라고 기대하지 마.”
“쳇. 밴시야, 시장 가자.”
“멍멍이 산책 시키듯 부르지 마세요!”
리안나는 질색하면서도 따라붙었다.
기사와 밴시가 나귀를 끌고 시장에 들어섰다. 그들은 모든 물건을 눈에 담을 기세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기사님은 방패 새로 사셔야죠?”
“방패?”
“전에 쓰던 흰사자 문장 방패, 부서졌잖아요.”
“아, 그거. 아깝긴 한데, 당분간은 방패 새로 안 살 거야.”
“왜요?”
“내 손아귀 힘을 버티려면 손잡이 부분을 특수 제작해야 하는데 그게 비싸. 그 돈 들여도 안 망가질 거란 보장이 없고. 방패는 소모품이란 말이야. 게다가 열쇠검이 다른 한손검보다 어정쩡하게 커서, 방패까지 들고 휘두르기엔 밸런스가 좀 안 좋아.”
“그럼 이제 왕실 문장이 없네요, 우리.”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앵글리아 왕실의 문장을 앵글리아에서의 마지막 싸움에 놓고 온 셈이긴 했다.
“뭐, 이것도 신의 인도겠지.”
리안나에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던 에드워드의 눈에 문득 한 남자가 들어왔다. 성묘수호기사단의 옷을 입고 검을 찬 노기사였는데, 그는 에드워드가 아는 남자였다. 상대방도 에드워드를 알아보고 발을 멈췄다.
“마크 경?”
“에드워드 경?”
성묘수호기사단원 마크는 에드워드를 보자 반가움보다는 의구심을 먼저 얼굴에 떠올렸다.
“자네 왕실의 시녀를 건드렸다가 참수형 당했다고 들었는데?”
“아니, 누가 그래요?!”
“소문이지. 참수형 다음 날 시체가 사라졌는데 밤마다 궁성 아래에서 춤을 춘다고…….”
“거 소문 한번 괴상하게 났네. 시녀는 건드린 적도 없어요. 왕궁 지하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건 사실이지만.”
리안나는 에드워드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
“저 사람이 누군데요?”
“트레베리아 원정에 나랑 같이 참전했던 기사.”
에드워드는 짧게 설명해 준 다음 노기사에게 도로 관심을 돌렸다.
“은퇴하신 겁니까? 종교기사단에 들어가시다니.”
노기사는 멋쩍은 듯이 웃었다.
“그렇지 뭐. 나이는 들고, 몸은 삐걱거리고, 남은 재산은 어정쩡하고. 영혼의 안식도 찾을 겸 기사단에 의탁했다네. 죽기도 전에 남은 재산을 탕진하는 것보단 이게 더 나은 삶이긴 하지.”
“아직 검을 차고 계시는데, 성지로 가실 겁니까?”
“아냐. 여기 지부의 경비원이야. 가끔 높으신 분들의 검술 교관 노릇도 하고. 오늘은 당직이 끝나서 퇴근하는 중 시장에 들렀지.”
에드워드는 잠시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있다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노기사 마크는 쓰게 웃었다.
“의외라는 표정이구만?”
“마크 경과 수도회는 거리가 좀 있어 보였거든요.”
“뭐, 흔한 은퇴지. 젊었을 적엔 차라리 창녀촌이나 길거리에서 죽겠다고 농을 했지만. 그나저나 자네는 왕궁 감옥에서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건가?”
“이단심문관을 성지까지 호위하게 됐죠.”
“저런. 정말 재미없는 임무를 맡게 되었군. 성지라. 나도 젊을 때 한번 갔다오긴 했는데.”
“거기 가면 정말 저주가 풀리고 죄가 없어집니까?”
“하하! 가 봐야 알지. 신의 뜻에 달린 문제니까. 거기 갔다오면 왕세자가 다시 중용해 준다던가?”
“해 봐야 알 것 같네요.”
“뭐, 이유야 어떻든 순례는 한 번쯤 해 볼 만하지. 조심하게나. 빠른 길만 골라 가도 오래 걸리고, 안전한 길만 골라 가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네.”
들을 만한 충고였다. 에드워드는 슬쩍 조언을 구해 보았다.
“추천하시는 길 있어요?”
“비텔리아까지 내려가 배를 타면 되지. 장거리 항해를 해야겠지만.”
에드워드는 해협을 건널 때 올라탔던 포경선의 선장을 떠올렸다.
“음. 제 일행이 배를 별로 안 좋아하더군요. 저도 좋아지지는 않고.”
“유감이군. 그럼 육로뿐인데. 트레베리아어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동쪽으로 간 다음 남쪽으로 꺾게. 비텔리아어가 들리지 않으면 거기부터가 성지라네. 지금 출발하는가?”
“내일 출발할 것 같습니다.”
“그럼 교외의 숲을 지나게 되겠군. 거기에 이곳 영주가 지은 성이 있는데, 웬만하면 거기는 피해서 가게나.”
마크 경의 입에서 처음 나온 경고였다. 에드워드는 그 내막을 찔러 보았다.
“왜요? 이곳 영주는 손님을 박대합니까?”
“그 반대야. 손님을 환대하지. 그런데 며칠 전부터 그 성에서 아무도 나오질 않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분명한데, 문이 굳게 닫혀서 아직 아무도 들어가 보질 못하고 있다네.”
“흠. 무슨 큰일이 있나 보군요. 손님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병사 하나 안 내보내다니.”
“뭐, 조사하거나 도와줄 의리는 없어서 우리는 손 안 댈 걸세. 여기 지부는 작아서 그럴 역량도 없고. 엘프 도시인 아르데니아의 후견을 받는 자니까, 그들이 도와주겠지.”
“엘프라.”
에드워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도시국가 아르데니아의 엘프들과 엮인 건 트레베리아 원정 때였다.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깐깐하고 겁많은 짠돌이들이죠.”
“그리고 변하지를 않지. 어이쿠. 시간을 꽤 썼군. 기도 시간에 늦겠어. 혹시 이 도시에 머무는 동안 기사단에 올 거라면 저녁에 오게나. 그러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야.”
“그러죠. 피곤하실 텐데 편히 쉬십쇼.”
“편한 여행길이 되길 빌겠네.”
마크 경은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 밴시 리안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 말했다.
“좋은 분이네요.”
“하지만 돈을 엄청 밝히는 양반이었는데 말이야. 재산을 전부 기사단에 바치고 경비원으로 연명하다니, 의외군.”
“나이가 드니까 종교에 눈을 뜨셨나 봐요.”
“글쎄. 내가 기억하는 마크 경은, 나한테 명예보다 전리품이 중요하니까 약탈하는 거 까먹지 말라고 가르쳐 준 양반이었어. 기사로서 참 값진 가르침이었는데.”
리안나는 에드워드를 흘겨보았다.
“베레스포드 공작님 아래에서 사람이 되려던 참에 저분이 망쳤다는 뜻인가요?”
에드워드는 리안나의 발목을 잡고 거꾸로 드는 걸로 징벌을 대신했다. 밴시는 치마가 뒤집어지는 걸 막기 위해 손을 버둥거리며 비명을 질러 댔다.
“항복! 항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