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37)
37화 죽음은 언제나 악취미 (3)
언데드 무리의 수준은 수도원에서 싸워 본 망자들보다 높았다. 무작정 달려드는 대신 싸움의 기술을 간직했고, 머리가 날아갔다고 전의를 상실하지도 않았다. 에드워드는 고함을 질렀다.
“덩어리지게 내버려 두지 마! 밀쳐!”
“알아요!”
콰직!
헬레나는 글레이브를 휘둘러 언데드 병사의 팔꿈치를 날렸다. 잘라도 움직이는 언데드를 상대할 때는 사지 절단보다 유용한 게 없었다. 밀치고, 잘라 내고, 짓밟는다. 다시 반복.
에드워드는 좀 더 원초적이었다. 그는 그냥 검을 들어 몇 번이나 적을 내리쳤다. 깔끔하게 잘라 내기 위한 게 아니라 난도질에 가까웠다. 수고는 더 많이 들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그는 자신의 앞을 막는 게 팔이든 갑옷이든, 새로 끼어든 언데드든 상관하지 않았다. 안 움직일 때까지 베고 찢고 패고 부순다.
헬레나는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차라리 망치나 도끼를 들지 그래요?”
“이게 앵글리아식이야! 찢고 죽인다!”
에드워드가 짜증 부리듯 말하는 순간, 베로니카가 주문을 외쳤다.
“타인에게 해를 끼칠 목적으로 그 죄와 표식을 은닉한 자, 주님께서 벌을 내리고 또 내릴 것이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라!”
그 순간 언데드들의 옷 위에 손바닥만 한 표식이 녹색 형광빛으로 하나씩 떠올랐다. 위치는 전부 제각각이었다. 어떤 것은 목, 어떤 것은 허리.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주문 아끼라니까.”
“힘은 안 아껴도 되니?”
“뭐, 서비스 받은 셈 치지.”
에드워드는 곧바로 선두의 언데드 한 놈을 열쇠검으로 내리쳤다. 어깨에 표식이 떠오른 놈이었다. 그게 반쪽이 나자 놈은 줄 끊어진 인형처럼 바로 주저앉아 버렸다. 헬레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표식이 있는 언데드라니? 골렘도 아니고…….”
“골렘의 핵과는 좀 다르지. 이것들은 영혼과 육체를 표식으로 이어 놓았거든. 어쨌든 이것들도 주술의 꼭두각시니까 대처법은 비슷해.”
베로니카가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설명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종류를 따지는 건 사제가 할 일이고! 우린 그냥 다 때려죽이면 되는 거야!”
헬레나의 글레이브 끝이 잠깐 흔들렸다.
“틀린 말은 아닌데…… 아까 그 성인의 저주 운운도 그렇고, 기사가 저래도 되나요?”
베로니카가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익숙해요.”
마지막 언데드는 앙베르 백작이었다. 어둠 속에서 보면 거인족 어린이로 착각할 체구에, 사슬갑옷과 서코트도 제대로 갖춰 입었다. 투구는 쓰지 않았기 때문에 얼굴은 그대로 보였다. 다만 불빛에 드러난 그 모습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두 눈에는 큰 못이 박혔고, 목은 뒤틀려 한 바퀴를 돌았다. 사타구니는 서코트까지 피범벅이었다. 에드워드는 짧은 평을 더했다.
“백작이 유독 끔찍하게 죽은 것 같은데?”
“뱃속의 쌍둥이 중 여자아이를 죽이고 사내아이를 살리자는 결정을 누가 했겠어요?”
엘프 헬레나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바로 납득했다.
“알기 쉽군.”
백작의 무기는 큼직한 가시가 달린 한 손 몽둥이였고, 방패까지 들었다. 백작은 에드워드를 향해 다가와 몽둥이를 휘둘렀다. 후웅! 묵직했지만 단조로운 공격이었다. 에드워드와 헬레나는 옆으로 가볍게 피했다. 그러나 백작은 빠르게 방향을 바꿨다. 그의 다음 공격은 헬레나를 향했다. 에드워드는 그의 등짝을 보았지만 표식이 보이진 않았다.
“베로니카! 백작은 표식이 없는데?”
“안 보이는 곳에 있겠지!”
“안 보이는 곳이라.”
헬레나는 백작의 공격을 잘 막아 냈다. 그러나 백작은 죽어서도 백작인 듯 쉽게 쓰러지지도 않았다. 에드워드는 중얼거렸다.
“뭐, 그래도 트롤보다는 낫네.”
에드워드는 백작의 등짝을 그냥 열쇠검으로 후려쳤다. 콰직! 사슬갑옷과 열쇠검이 부딪히면서 큰 소리가 났다. 백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곧 그 비결을 알아차렸다.
“젠장. 두 겹으로 입었잖아?”
게다가 백작의 갑옷은 수하의 기사들이 입은 것보다 훨씬 고급이었다. 그는 에드워드를 무시하고 계속 헬레나를 쫓아다녔는데,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서 타격이 영 줄어들어 버리기도 했다. 결국 에드워드는 헬레나를 향해 소리쳤다.
“야, 가만히 좀 있어! 네가 움직이면 백작도 움직이잖아!”
“앵글리아의 기사는 말이 되는 요구를 하는 법을 못 배웠어요?”
헬레나의 소박한 항의에 에드워드는 잠시 투덜거린 다음 리안나에게 열쇠검을 맡겼다.
“트롤보다 쉽다는 말 취소. 젠장. 갑옷이 있고 없고가 역시 크네. 때리는 게 안 되면 찢어야지. 잠시 들고 있어 봐.”
에드워드는 곧바로 백작의 등을 향해 달려가, 그의 서코트 위를 붙잡은 다음 손에 힘을 쥐었다. 우드드드득! 사슬갑옷이 서코트째로 뜯겨 나가는 소리가 홀을 울렸다. 박살이 난 사슬 고리들은 땅으로 흩어졌다. 등을 붙잡힌 채 잠시 버둥거리던 백작은 그제야 에드워드를 향해 방향을 돌렸다. 헬레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활짝 열린 백작의 등짝을 향해 글레이브를 꽂아 넣었다. 콰직! 에드워드는 그녀의 글레이브 끝에 걸려 뽑힌 등뼈 조각을 손가락질했다.
“저게 당신의 척추입니다.”
언데드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칼 없는 에드워드를 향해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동네는 내 농담이 안 통해. 리안나, 칼 던져!”
리안나의 행동보다 언데드가 더 빨랐다. 에드워드는 그걸 잽싸게 피한 다음 백작의 방패를 지나쳐 리안나 쪽으로 달렸다. 밴시가 뒤늦게 검을 던지자 에드워드는 그걸 받고 헬레나의 뒤에 섰다.
“한 번만 더 시선을 끌어 봐.”
“제가 당신한테서 처음 듣는 합리적 요구 같네요. 설명 좀 더 해 줄래요?”
“농담 한 번 더 해 보려고.”
에드워드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헬레나는 몸을 돌리는 백작의 정수리를 향해 글레이브를 내다 꽂았다. 말 그대로 백작의 시선이 헬레나에게 고정되었다. 못 박힌 눈에도 시선이란 게 있다면 말이지만. 언데드는 헬레나와 거리를 유지한 채 양손을 휘저었다. 에드워드는 그사이에 백작의 등 뒤로 돌아갔다. 활짝 열린 등짝을 향해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휘둘렀다. 퍽! 언데드가 크게 움찔거렸다.
“이게! 당신의! 척추라니까!”
에드워드의 두번째 농담에 베로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이해를 못 하겠어.”
“동감이에요.”
헬레나가 맞장구치는 사이, 에드워드는 백작의 등짝을 너덜너덜한 고깃덩이로 바꿔 놓았다. 갈비뼈까지 부서지고 내장이 쏟아진 끝에 결국 언데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헬레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앵글리아식도 나쁘지 않군요. 표식이 안 보이면 보일 때까지 때리는 거.”
“난 안 움직일 때까지 팬 건데. 표식이 어디 있어?”
“당신 발아래요.”
에드워드는 백작의 위장으로 추정되는 핏덩이에서 표식의 빛을 발견했다. 열쇠검 끝으로 찢어진 위장을 헤집어 본 에드워드는 곧 핏덩이 하나를 찾았다. 그걸 열쇠검 끝에 꽂아 들어 올리자, 리안나는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충격 먹은 표정으로 사람들 앞에서 양팔을 벌렸다.
“그가 고자라니.”
베로니카는 최대한 점잖게 답했다.
“의미 모를 유머 하지 마.”
전달하기 힘든 유머였다. 에드워드는 검을 휘둘러 핏덩이를 멀리 던진 다음 시체들을 살펴보았다.
“영주의 가신에는 여러 직업이 있지. 특히 부유한 귀족이라면 말이야. 집사, 마부, 정원사, 법률가, 요리사, 기사, 문장관, 전속 사제…….”
에드워드는 생각나는 대로 뱉다가 전속 사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제 양반은 살았으니 빼고, 대충 다 조진 것 같은데? 확인 좀 해 줄 수 있소?”
사제는 리안나가 가져다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아치형 출입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는 한참 둘러보더니 말했다.
“백작의 주요 가신들은 다 있소. 눈에 익은 하녀와 하인도 있고. 하지만 말단들까지 다 있는지는 모르겠소. 그리고…… 백작 부인과 그 아들이 없구려.”
“위층엔 뭐가 있소?”
“4층은 영주의 침실과 규방이오. 그리고 옥상에는 경계병과 당직 하인들을 위한 옥상옥이 있소.”
“남은 사람들은 거기 있겠군. 백작의 가신 중에 주술사는 없소?”
“없소. 근래 손님 중에도 없었소.”
“그럼 물건이군. 젠장. 찾기 힘들겠는데.”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홀에는 짐작 가는 게 안 보이네. 느낌도 없어. 더 뒤지지 말고 바로 4층으로 올라갈까? 어차피 귀한 건 영주의 방에 있을 테니까, 보물에 부적 따위가 섞였다면 거기 있을 확률이 높아. 영주가 아닌 고용인의 물건이라면 옥상옥에 있을 테고.”
“그래야겠네. 사제는 여기 계쇼. 여기보다 안전한 곳은 없을 것 같으니.”
전속 사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다시 계단으로 돌아갔다.
4층은 홀과 달리 시작부터 칸막이와 갈림길이 있었다. 규방 출입문은 닫혀 있었다. 리안나는 다람쥐처럼 계단 주변을 돌아다니다 말했다.
“베란다는 아무도 없구요, 계단 밑에 작은 방이 있는데 나무의자 하나만 있고 비었어요.”
“창고인갑지. 그럼 바로 규방 돌격이다.”
에드워드는 잠깐 심호흡을 한 다음 규방의 문을 열었다. 그 안은 홀과 달리 서늘한 기운이 없었다. 오히려 아늑했다. 벽난로와 촛대는 전부 불이 켜진 상태였다. 헬레나와 에드워드는 무기를 든 채 천천히 진입했다.
“방금 그림이 움직인 것 같은데요.”
리안나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에 에드워드 일행은 규방 한쪽 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건 벽화였다. 하지만 평범한 벽화는 아니었다. 다들 피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으니까. 다만 흘린 지는 오래됐는지 딱딱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에드워드가 리안나에게 질문했다.
“뭐가 움직였는데?”
“어, 음. 아뇨. 제가 착각한 것 같네요.”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불빛이 흔들리는 통에 뭔가 움직이는 걸로 착각했다면. 베로니카와 헬레나는 그림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이건 영주의 옛 승전을 칭송하는 내용의 벽화군요. 아들을 위해 그렸나 봐요.”
헬레나의 말이었다. 가장 바깥쪽에 그려진 건 분명 이 성이었다. 그림 속 영주의 원정은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그림도 저주받은 건가?”
“그렇네. 하지만 딱히 사람을 해칠 건 아니야. 뭐 기껏해야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 정도?”
베로니카가 등장인물의 한 눈을 가리켰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성탑 위에 큼직하게 개발새발 그려 놓은 낙서였는데, 장발과 세모꼴 옷으로 보아 여자아이를 그린 듯했다.
“이게 악령이네.”
에드워드는 피식 웃어 버렸다.
“자화상인가. 고전적이네. 그럼 규방은 이상 없고, 이제 남은 건 영주 침실이군. 악령이 있으면 주문으로 정화하고, 문제를 일으킨 주술도구를 찾아낸다. 순서는 반대일 수도 있고. 맞지?”
“맞아. 하지만 도구가 문제인 경우엔, 그것부터 찾는 게 유리해. 악령에게 계속 힘을 주는 경우도 있거든.”
베로니카의 말이었다. 일행은 물레, 나무욕조, 독서대 따위의 가구를 지나쳐, 영주의 침실 입구에 섰다. 그곳 문도 닫혀 있었다. 에드워드는 조심스럽게 입구를 열었다.
그곳도 규방과 마찬가지로 불이 다 켜졌는데, 가운데의 커다란 침대는 비단으로 꾸민 호사스러운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 이불은 뭔가 밑에 덮어 놓은 듯 불룩했다.
“저 밑에 뭔가 있다는 데 은화 한 닢 걸지.”
에드워드가 말했다.
“내기가 안 되는 것 같은데요.”
밴시가 태클을 걸었다. 헬레나는 글레이브를 조심스럽게 이불 밑으로 넣은 다음, 이불을 침대 아래로 끌어내렸다. 곧 일행의 눈에 나란히 누운 두 사람이 들어왔다. 이미 죽은 듯 창백해진 백작 부인, 그리고 8살 정도 되는 어린아이. 아이는 다행히 혈색이 있었다.
베로니카는 침대를 향해 철퇴를 겨누었다.
“너, 이 부정한 것아!”
그 순간 아이가 눈을 떴다. 푸르스름한 빛이 그 두 눈에서 뿜어져 나왔다. 아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일행을 바라보았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까딱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 제피.”
“제피가 쟤 이름이에요?”
리안나의 질문에 헬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악령도 마찬가지였다.
“내 이름은 제피가 아니야!”
남자아이의 몸에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규방과 침실의 모든 불이 꺼지고 암흑이 빈 공간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