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42)
42화 엘프의 도시는 전쟁 중
일행은 성 밖 마을의 교회에서 하룻밤을 보내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다음, 다시 여행을 준비했다. 이를 돕던 마을 남정네들마저 헬레나를 곁눈질하는 걸 보고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곤 에드워드에게 질문했다.
“왜 사내 새끼들은 여자 가슴에 그렇게 환장하는 걸까?”
“걱정 마. 사실 네 몸매도 만만찮으니까. 쟤가 너무 압도적일 뿐이지.”
“맞을래?”
“본능이야. 남자는 어쩔 수 없다고.”
“그게 시간과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는 거야? 대체 그 안에 뭐가 있다고?”
“꿈과 희망이 있지. 사제들도 안에 뭐 있을지 생각 안 하고 교회 크게 짓는 거 좋아하잖…… 야, 야! 철퇴 집어넣어!”
어제부터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붙잡고 아르데니아로 가자고 강력히 건의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헬레나가 부상자인 사제와 소년을 데리고 갈 수 없다는 것, 아르데니아에 가면 그간의 전리품을 감정해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악령 문제를 해결한 대가로 받을 사례 등.
그리고는 잠도 제대로 못 잔 채 ‘저주 받은 손을 헬레나의 가슴에 대는 법’을 궁리해 보았다. 그 때문에 허리띠에 깃든 망령 캐슬린의 능력과 한계가 무엇인지 제대로 실험해 보지도 못했다. 물론 제대로 된 방법이 나올 리가 없었다. 답은 성지로 가서 저주를 해제하는 것뿐이었고 에드워드의 의욕은 더욱 올랐다.
“아르데니아로 가면 바로 엘프들과 합의해서 계약 파기해. 그러면 저 여자가 고집을 부려도 소용이 없겠지. 겉으로는 무난하게 헤어진 걸로 포장될 거고. 그러면 되잖아?”
“그러기엔 너무 아까워서 잠이 안 올 것 같아. 엘프 도시가 내리는 시련이 뭐든 도전은 해 봐야겠어.”
에드워드는 물러서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그를 흘겨보았다.
“꼭 만져야 되니?”
“아, 물론 손을 안 대도 즐기는 방법이야 널렸지. 그래도 느끼는 데는 손보다 더 좋은 게 없다는 거 알잖아. 사실 내가 순례길에 오른 이유 중 하나도 그거고.”
손바닥은 촉각의 중추 기관이라 해도 무리가 없는 부위긴 했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빼면 뭔가를 마음껏 만지거나 주물럭거릴 수 없는 신세인 것이다. 그 목록에 여체도 포함되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에드워드 앞에는 극상의 여체가 미끼로 내걸렸다.
다른 건 다 할 수 있어도 만질 수는 없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그런 걸 강조할 때는 보통 ‘연인끼리의 신체 접촉’을 말하는 건데 말이지.”
“저 중량감과 촉감은 웬만한 수도사도 구애하는 공작새로 만들걸. 그게 ‘내 것’인데 만지지도 못한다니 미칠 일이잖아.”
베로니카는 고개를 내저었다.
“너 쟤랑 결혼할 거니? 그랬다간 네 출세길도 거기서 끝인데?”
잘해 봐야 엘프 도시에서 시키는 대로 구르는 용병으로 살다 가는 게 마지막일 거란 의미이다.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정식 결혼은 안 해도 사랑은 가능하지.”
“사랑이란 단어를 음탕한 농담으로 쓰지 마.”
베로니카는 가볍게 훈계한 다음 마차로 시선을 돌렸다. 리안나가 자기보다 더 작은 소년을 마차 위로 부축해 올리고 있었다. 백작가의 전속 사제가 그다음이었다. 둘 다 죽을상이었지만, 승마는 무리라서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상황을 정리해 보자. 백작가는 전멸했지만 정당한 상속인인…… 쟤 이름이 뭐였지?”
에드워드는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제피?”
“아니잖아.”
“그냥 붙여 본 별명이야.”
“별명? 별일이네. 네가 그런 걸 다 붙여 주고. 여하튼 그렇게 부르지 뭐. 이제 아르데니아는 앙베르 백작령을 제피 대신 통치할 거야. 쟤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리고 그동안 제피는 기사 수업을 받는다. 헬레나는 이걸로 임무 완료고.”
“그렇지.”
“백작가의 전속 사제는 계약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하더라. 뭐, 악령이 붙었던 애니까 계속 치료와 감시가 필요하긴 하겠지. 그러니 저 사람도 일단 데려가고.”
“성직자들도 실업난이군.”
주문을 하루 1개만 쓰는 게 고작이라거나, 교회전례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거나, 신학적 지식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성직자 따위는 넘쳐난다. 일거리를 찾는 떠돌이 성직자도 적지 않은 판이었다. 위령미사와 화려한 예식과 적당한 설교를 요구하는 귀족들의 비위를 적당히 맞춰 주면 술과 고기가 주어지는 일자리는 흔치 않았다.
덕택에 갑자기 일행이 2배로 늘었다. 셋에서 여섯으로.
헬레나는 리아나가 주워모은 헌옷 중에 바지와 튜닉을 새로 사서 드레스 대신 입었다. 리안나가 사제의 간호역을 맡았기 때문에 그녀가 마차를 몰게 되었다. 베로니카는 그녀를 힐끗 보고는 에드워드에게 말했다.
“저 엘프가 널 좋아하는 건 아닌데.”
“일단 고마워하긴 하더라.”
“하지만 아르데니아의 엘프들은 아니겠지.”
에드워드의 걱정거리 중 하나도 그거였다. 그는 마차 옆으로 자기 말을 몰아 가면서 중얼거렸다.
“뭐 쉽진 않겠지.”
일행은 마을을 떠나 한나절을 이동했다. 그러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기병들을 보았다. 흰색 나무가 그려진 녹색 깃발. 에드워드는 그들이 아르데니아의 사람들임을 알아보았다. 정확히는 엘프 하나, 인간 대여섯이었다.
“아르데니아가 앙베르보다 더 먼데, 금방 오네.”
“그러게. 앙베르 사람들과 이틀 정도 밖에 차이가 안 나.”
베로니카가 맞장구쳤다. 선두에 선 엘프 남자는 금빛이 나는 비늘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다 일행의 바로 앞에 멈추더니, 베로니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벚나무 씨족의 페트로스입니다. 요청하신 대로 병력을 끌고 가던 중이었습니다.”
“앙베르 사람들이 먼저 도착했더군요. 그들을 도우러 가시면 되겠네요.”
베로니카의 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바로 앙베르 백작의 성으로 가지 않았다. 오히려 마차를 에워쌌다. 페트로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앙베르 백작의 후계자는 거기 있습니까?”
“여기 있소! 이분이 백작가의 정당한 후계자요!”
사제가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함께 소년의 어깨를 붙잡고 덮개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페트로스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헬레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갑옷은 어쨌어?”
“찢어졌어.”
“악령의 짓이야?”
“아니. 저 인간 기사님. 불가피했어.”
엘프의 얼굴이 굳었다. 에드워드는 헛기침을 한 다음 말했다.
“아, 페트로스 씨? 여자의 명예에 누가 될 일은 아니지만 듣는 사람이 적은 게 좋을 것 같소. 벚나무 씨족이면 헬레나 양의 친인척이신가?”
“동생 됩니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다음 말했다.
“남매끼리 따로 좀 이야기하는 게 낫겠소.”
잠시 뒤 진상을 파악한 페트로스는 칼을 뽑아 들 뻔했다. 그의 비명은 흔한 남매의 대화 그 자체였다.
“누나는 대체 생각이 있어, 없어?!”
에드워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엘프 모두가 헬레나 같은 별종은 아닌 모양이었다.
더욱 다행히도, 페트로스와 에드워드가 칼부림을 벌이는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다. 헬레나는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결국 동생을 설득했다. 페트로스는 검에서 손을 뗐다.
“악령으로부터 누님을 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대단히 딱딱한 어투였다. 에드워드는 마주 고개를 숙였다.
“이해해 주니 고맙소. 안 그래도 사전 단계를 밟지 않고 서로 계약을 나눈 건 분명하기에, 해명을 위해 아르데니아로 가던 길이오.”
“현명한 선택입니다. 기사도를 아시는 분이군요.”
에드워드의 정중한 말에 페트로스는 어느 정도 경계심을 풀었다. 에드워드가 자발적으로 아르데니아로 간다는 점에서 안심했을 것이다. 물론 기사는 그냥 곱게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대놓고 말하지 않았을 뿐.
페트로스는 먼저 앞장섰다.
“백작령에는 나중에 서신만 전달해도 됩니다. 저희는 후계자와 시민을 구조하기 위해 왔으니까요.”
에드워드는 그 말에 의문을 느꼈다.
“이미 구조했는데?”
“하지만 둘 다 몸이 불편해졌다고 했죠. 게다가 도적 떼가 급증했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도착했다는 날, 도적단 하나가 순찰대에 의해 소탕됐죠.”
“혹시 열 명 남짓한 놈들 아뇨? 활쟁이는 없고, 우두머리는 코등이 달린 투구를 썼고.”
“맞습니다. 아십니까?”
“질긴 악연이군. 성에 들어가기 전에 헬레나에게 시비를 걸고 있던 걸 봤소. 내가 내쫓았지.”
페트로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오기 전에 포로를 만나 봤는데, 백작성에 자기들 패거리가 숨어 있다고 하더군요.이번 악령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는 관료들이 더 취조해 볼 겁니다.”
“그러고 보니 그 새끼, 큰형님이란 놈을 찾던데. 어쩌면 성안에서 주술 도구를 사용한 작자가 그놈인지도 모르겠군.”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페트로스는 겨우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일행을 지나쳐 왔던 길로 돌아서며 말했다.
“지금부터는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 * *
아르데니아는 근사한 도시였다.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었다. 에드워드는 사방을 메운 올리브 나무들과 그 한복판에 세워진 하얀 성벽의 도시를 보고 감탄사를 뱉었다. 도시는 지형을 살린 이중벽으로 만들어졌는데, 역시 하얀색인 다층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베로니카도 마찬가지였다. 리안나는 감탄하기에 앞서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아르데니아 처음 보세요?”
“처음이야. 이쪽에 올 일은 없었거든.”
“나도 마찬가지야. 엘프들은 자기들만의 사제와 교회가 따로 있어.”
에드워드와 베로니카가 차례대로 답했다. 리안나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워드는 며칠 사이에 꽤 친해진 인간 기사 하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돌포 경, 올리브 나무들이 원래 재배지보다 더 북쪽에서도 자라는 비밀이 뭔지는 알아내셨습니까?”
“그렇게 쉽게 알아낼 수 있다면 이 일대에서 버터나 라드 만드는 자들은 절반이 거지가 되었겠지요.”
아돌포라고 불린 비탈리아계 기사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르데니아의 엘프들은 사실 원래 이곳에 살던 자들이 아니었다. 오래 전에 성지 근처에서 살다 자기들끼리 치고받던 내전 끝에 갈라진 분파가 정반대편인 이쪽까지 와서 정착한 것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도시를 건설할 정도의 부를 안겨준 것이 바로 올리브 나무였다. 남쪽에서 온 사람들도 ‘이건 우리가 아는 올리브 나무가 아니다’라고 고개를 저은 특수 품종. 재배 면적은 한정적이었지만 품질 하나는 뛰어나서 마법의 기름이라 불리기도 했다.
“기왕 여기 온 거, 씨앗이라도 좀 얻어 볼까요?”
“올리브는 꺾꽂이로 묘목을 만들어 심는 게 일반적이지요. 실생도 못 할 건 아닙니다만 10년 가까이 시간을 들여야 할 겁니다. 뭐, 씨앗도 쉽게 내주지는 않겠지만요.”
“잘 아시는군요.”
“이미 노력해 봤거든요. 혹시 영지를 얻는 일이 생기면 심어 볼까 해서요. 웬걸, 아르데니아의 땅을 받아도 이방인이 올리브를 키우게 할 수는 없다더군요.”
아돌포는 아르데니아로부터 월급을 받는 용병 기사였고 나름 베테랑이었다. 게다가 복무 기간도 짧지 않았다. 그런 그도 종자나 묘목을 받지 못했다면 에드워드도 못 받는다.
“대귀족이어도 힘들겠군요.”
“앙베르 백작의 영역에도 올리브 나무는 없었잖습니까? 힘들죠. 도시에 둘도 없을 빚을 지운 은인이라면 모를까.”
에드워드는 목소리를 낮춰 질문했다.
“이 도시에서 외부의 용병에게 시킬 일이라면 뭐가 있겠습니까?”
“이번처럼 시민의 구조를 맡긴다든가, 골치 아픈 도적 떼를 소탕한다든가 하겠죠. 지금 아르데니아의 시민병 군단들은 전부 원정 중이니까요.”
“2개 전부 다요?”
“예. 하나는 북쪽에 갔고 하나는 남쪽에 갔죠.”
북쪽은 에드워드도 안다. 정기 토벌전. 남쪽은 어딘지 가늠을 못했다. 그는 다시 질문했다.
“남쪽은 어디입니까?”
“아퀴타니아 남부에 이단 반란이 일어났죠. 인간끼리의 싸움이면 모를까, 이단자들은 엘프들에게도 적이니 지원 요청에 응할 수밖에요.”
“저런.”
에드워드는 상황이 좋다고 생각했다. 왜 페트로스가 인간 용병들을 끌고 달려왔는지 이해가 갔다. 병력이 남아돌면 인간에게 맡길 일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평소라면 아르데니아가 스스로 해결할 일이라도 에드워드에게 맡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을 다 해치워도 올리브 종자는 안 내주겠지요.”
“하긴. 그렇다면 수준을 좀 낮춰서, 그러니까…….”
“엘프를 동료로 넣으려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말입니까?”
아돌포 경은 눈치가 빨랐다. 에드워드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죠. 혹시 아십니까?”
아돌포 경은 바로 대답했다.
“교역로에 고블린 무리가 발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