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43)
43화 고블린의 위협 평가 5단계
벚나무 씨족은 아르데니아에서 힘깨나 쓰는 쪽에 속했기 때문에, 그들은 에드워드와 헬레나의 계약에 대해 듣고는 대경실색한 다음 이 문제를 바로 도시의 지배자인 집정관에게 직소했다.
집정관이 에드워드 일행을 호출하기 전까지, 일행은 벚나무 씨족이 제공하는 숙소에 머물게 되었다. 헬레나는 씨족 사람들한테 불려갔기 때문에 같은 숙소에 묵지는 못했다. 에드워드는 침대에 드러누운 채 앞일을 생각해 보았다.
노기사 마크의 조언대로 겉 포장은 중요했다. 에드워드가 헬레나를 악령한테서 구한 건 확실했기 때문에, 그 사정이 어쨌든 벚나무 씨족은 에드워드를 귀한 손님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헬레나를 에드워드에게 떼어 놓을 때도 우격다짐이 아니라 적절한 보상으로 해결해야 한다. 아마도 보통은 금은보화나 여행에 도움이 될 마법 아이템을 제시할 것이다.
그 보상이 에드워드의 마음에 안 들거나 헬레나가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절차는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이 인간이 우리 씨족의 딸을 데려갈 자격이 있는가?
용병기사 아돌포는 이 도시의 골칫거리들 중 몇 개를 언급했다. 그중 가장 까다로운 것은 교역로에 발생한 고블린 무리였다. 에드워드는 그 말을 믿기 어려워했다. 아르데니아가 아무리 최소한의 방어 병력과 순찰대만 남겼다고 해도 겨우 고블린 따위에게 고전할 리가 없었다. 그의 생각대로, 문제거리가 더 있었다.
그 고블린들은 멧돼지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보편적으로 통하는 고블린의 위협 평가 5단계.
1단계: 다른 종족을 따라다니며 먹을 걸 조르거나 물건을 훔친다
2단계: 무기를 들고 위협한다
3단계: 인질을 잡거나 속임수를 쓴다
4단계: 무리를 이루고 함정을 판다
5단계: 멧돼지
“멧돼지라.”
에드워드는 천장의 나뭇결 무늬를 보며 중얼거렸다. 고블린 자체는 아무런 문제도 안 된다. 키가 2~3피트 정도로 성인 남자의 허벅지에도 못 미친다. 원숭이 사이즈다. 실제로 앵글리아 왕실의 정원에 수입된 개코원숭이는 비슷한 크기 때문에 회색 고블린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간단한 도구나 함정을 쓸 줄 아는 놈들이라 원숭이보다는 당연히 상대가 어렵다.
그리고 멧돼지를 타고 다닌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멧돼지는 엄연히 맹수다. 고블린은 그 위에 올라타서 함정을 찾아내거나 투창 따윌 던져 댄다. 고블린 주제에 기사 흉내라도 내는 건지 부하 고블린들과 같이 몰려다니기도 한다. 평소 멧돼지 사냥에 적극적인 사냥꾼이나 기사라도 성가신 조합이다.
그 멧돼지가 크거나 숫자가 여럿이면 전문가도 무리를 지어 상대해야 된다.
고블린들의 무리를 키우게 하는 ‘배후’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보통은 고블린 샤먼이나 오거. 오크 부락이 뒤에 있는 경우도 있다.
자세한 건 집정관 앞에서 듣겠지만 이미 에드워드의 상상 속에서 그 고블린 무리는 둘도 없는 괴물 무리로 성장했다.
‘아르데니아 순찰대가 처리하지 못할 정도면 그 고블린 무리는 최소 수십을 넘길 거야. 백에 가까울지도 모르지. 멧돼지 숫자는 서넛 이상. 그렇게까지 큰 집단을 만들고 통솔하려면 매우 강력한 몬스터가 배후에 있을 가능성도…….’
한참 머리를 굴리던 그는 망상을 그만두고 머리를 한번 저었다. 미리 걱정해서 될 일이 아니다.
에드워드는 문득 자신의 허리띠로 시선을 돌렸다. 이 숙소는 벚나무 씨족의 것이고 감시가 행해지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는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어 복도를 살핀 다음 다시 문을 닫고 침대 위로 돌아와 허리띠를 풀었다.
“혹시 모르니 새 허리띠를 사야겠군.”
캐슬린은 대답이 없었다. 귀 밝은 엘프들의 도시에 들어왔으니 알아서 숨죽이고 있는 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에드워드는 잠시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인 다음 허리띠를 향해 속삭였다.
“도시에 있는 동안은 조용했으면 좋겠네.”
혼잣말 같지만, 혼잣말 아닌 말이었다. 허리띠의 버클이 까딱거렸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도로 허리띠를 찼다.
똑똑!
철렁하고 심장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허리띠도 움찔했다. 에드워드는 최대한 침착하게 답했다.
“누구쇼?”
“베로니카. 들어가도 되지?”
에드워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야 물론.”
문이 열리면서 베로니카가 들어왔다. 그녀는 시커먼 변신옷을 들고 있었다. 에드워드가 앵글리아에서 사교도를 족치고 얻은 것이었다.
“감정 다녀왔어.”
“아, 드디어.”
“근데 이거 생각보다 곤란한 물건이더라.”
“뭐야, 꽝이야?”
베로니카는 옷을 펼쳐 보았다. 그녀는 소매에 달린 금속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테가 변신 형태의 모습을 저장하는 거야. 방법은 변신하길 원하는 놈을 죽여 그 피를 묻히고 정해진 주문을 외우는 것.”
“음. 그리고?”
“우연이었지만 우리가 다들 옷을 벗은 게 유효한 대책이었을 거라고 하네. 변신해도 옷을 벗으면 그 부위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대.”
에드워드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로 변신한 다음에 치마 들어 올리면 그 아래는 변신 풀린 사내새끼일 거다?”
“아마도. 실험해 볼래?”
“아니, 관둘래. 기분이 나빠졌어.”
베로니카는 깔깔 웃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문제는 이 변신옷의 사용법이야. 모두 여섯 개의 형태를 저장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사용자 본인의 것으로 해 놔야 돼.”
“뭔가 불길하게 들리는데.”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 덮어쓰면 사용자의 본래 모습을 영영 잃어버릴 수 있어. 옷을 벗어도 본래의 모습으로 못 돌아가.”
에드워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사용법 자체가 악마의 선물답군. 사람을 죽여야 되고, 자기 형태를 대가로 걸어야 되고.”
“기록은 6개까지 가능하니 실수만 안 하면 괜찮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런 걸 쓰다 보면 자신의 본모습을 포기하고 7번째 변신이 필요한 상황에 부딪히게 되는 건 거의 필연이겠지.”
“결말이 정해진 아이템이라는 건가.”
“그리고 자기보다 너무 크거나 작은 거는 변신이 안 된다는 것 같아. 그 한계는 잘 모르겠지만.”
“용케 거기까지 감정이 됐네.”
“이미 기록에 있는 물건이더라고. 드물게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나 봐. 마지막 기록은 400년 전이야.”
“위험한 물건이군.”
“맞아. 그리고…….”
베로니카는 반지를 꺼냈다. 캐슬린이 지키던 반지였다. 에드워드와 베로니카는 슬쩍 허리띠로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캐슬린은 잠잠했다. 베로니카는 다시 에드워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반지는 생각보다 무난하고 좋은 거였어. 착용자는 불과 연기에 다치지 않아.”
“오, 주문도 필요 없어?”
“필요 없어. 고대의 해누아 여왕은 이걸 끼고 불구덩이를 들어갔다 나오는 거로 자신의 권위를 증명했다나 봐.”
“사기 냄새가 좀 나는 의식이군.”
“여하튼 감정 결과, 이 변신옷은 당분간 봉인. 교회가 관리하면서 써야 할 때 쓰고 싶은 놈이 쓰는 게 적절하다는 게 결론이야. 반지는 평소엔 내가 끼고 있을 건데…….”
“흠. 뭐, 호위 대상이 끼는 게 적절한 반지긴 하네.”
“너 줄 수도 있어. 난 어차피 주문으로 보호가 가능하니까.”
베로니카는 소매에서 가느다란 금목걸이를 꺼내어 반지를 꿰었다. 그리고는 에드워드에게 내밀었다.
“손에는 못 껴도 목에는 걸 수 있겠지.”
“웬일이냐, 그런 걸 주게?”
“공짜라고는 안 했다?”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그는 베로니카에게 질문했다.
“뭘 원하는데?”
“얼마까지 알아봤는데?”
에드워드는 어디서 많이 듣던 문구라고 생각했다.
* * *
집정관의 호출은 빨랐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도 리안나도 없이 혼자서 엘프들 앞에 섰다. 교섭은 무슨 장엄한 홀 같은 게 아니라 소박한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집정관은 겉보기엔 젊은 남자 같았는데, 집정관의 상징인 작은 관을 쓰고 금으로 만든 짧은 봉을 들고 있었다. 그는 에드워드에게도 벚나무 씨족에게도 별 흥미가 없다는 듯 의자 손잡이에 몸을 기댄 채 침묵을 지켰다.
행동에 나선 것은 벚나무 씨족들이었다.
쿵!
헬레나의 동생 페트로스가 작은 돈 궤짝을 탁자 위에 올렸다.
여기 오기 전에 마법 반지를 사느라 베로니카한테 한껏 삥을 뜯겼던 에드워드는 그녀의 뜻을 이해했다.
저거 받고 그냥 가자.
하기사 교회의 권역도 아닌 엘프 도시에서 이단심문관 베로니카가 할 일은 없었다. 여기서 시간을 뺏긴다는 건 달갑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아직 암브로즈 시에서 받아 낸 자금이 넉넉했다. 돈 때문에 물러설 것은 아니다. 베로니카의 일정에 다소 오차가 생기더라도 그런 것쯤 있을 법한 일로 치부할 수도 있다.
‘도전은 해 봐야 하잖아?’
에드워드는 점잖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오.”
페트로스를 포함한 벚나무 씨족 엘프들의 얼굴이 굳어 버리는 건 볼만했다. 에드워드는 헬레나를 향해 힐끗 시선을 돌렸다. 그는 대가를 받을 마음도, 그냥 떠날 마음도 없다는 건 충분히 표현했다.
한 엘프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고상한 기사가 스스로의 평판을 깎는 것 같아 안타깝군요. 수명 짧은 인간이 갖는 정열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만.”
“그녀와 나, 둘 사이에 놓인 계약이 육체의 정념이든, 목숨을 빚진 전사로서 나눈 맹세이든 난 그 이행을 요구할 권리가 있소. 그리고 헬레나는 기꺼이 그 계약을 이행할 의지를 드러냈고.”
“성지 순례에 굳이 엘프를 동행시켜야겠다는 절박한 이유가 있습니까?”
“동행시키지 말아야 할 절박한 이유가 없소.”
여자를 내주고 싶지 않은 것은 순전히 너희들 욕심이라는 뜻이었다. 벚나무 씨족들 사이에서 두런두런 이야기가 오갔다.
그들의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지켜보던 집정관은 하품을 하더니 말했다.
“가끔 있지. 이상한 데 매료되거나, 무료를 못 참거나,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애들이 울타리를 뛰쳐나가는 것쯤은.”
제일 마지막이 헬레나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에드워드는 피식 웃어 버렸다. 집정관도 마주 웃어 보이고는 말했다.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지. 정말 중요한 문제는 걔가 의무 복무 중이라는 사실이야. 모든 엘프 시민은 자유민으로서 무장하고 종군할 의무가 있네.”
에드워드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데니아의 시민병 제도는 익히 아는 것이었다.
“복무를 마친 아이가 인간 기사를 따라가겠다고 한다면 그건 온전히 기사 양반과 씨족만의 문제지. 시에서도 제약을 많이 할 수 없어. 하지만 아직 그 아이의 의무는 안 끝났지.”
에드워드는 슬쩍 헬레나를 돌아보았다.
“혹시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나 따라오겠다 한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죠. 순례길이 그리 편한 건가요?”
빠르고 명쾌한 답변이었다. 에드워드는 다시 집정관을 보았다.
“그 병역 의무를 잠시 중단하거나 면제할 방법이 있습니까?”
“몇 가지 있긴 한데, 일단 면제는 무리. 기간이 너무 많이 남았어. 중단시키는 걸로 하지.”
“좋군요.”
“대신 조건이 있네. 우리가 요구하는 일을 몇 가지 처리해 줘야겠어.”
여기까지는 예상대로. 에드워드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뭡니까?”
“고블린이야.”
“교역로를 점거했다는 그 고블린 무리 말입니까?”
“잘 알고 있군. 하지만 정확한 규모까지는 모르겠지. 고블린은 우리가 파악한 것만 80마리, 멧돼지는 성체가 5마리 이상이야. 지금은 우리 용병들이 가서 대치하고 있는데, 이 망할 놈들이 지형지물을 이용해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고 있어.”
“치고 빠지기?”
“멧돼지를 이용해 용병 캠프에 야습을 걸고, 엉뚱한 곳까지 원정을 갔다 오고…… 패턴은 다양해.”
안 좋은 징조였다. 에드워드의 얼굴이 굳었다.
“머리 쓰는 몬스터가 배후에 있군요.”
“고블린 무리를 부려 먹을 정도의 괴물이 있단 말이지. 그런데 그게 뭔지는 우리도 몰라. 놈은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어. 정체도, 숫자도, 능력도 파악이 안 되네.”
“그놈까지 토벌해 달라?”
“그렇네. 만약 놈이 이 도시를 위협할 정도의 거물이라면, 즉시 헬레나를 자네 일행에 넣어 주지.”
“만약 생각보다 시답잖은 놈이면 어쩔 겁니까?”
“자네가 일을 더 해야지.”
에드워드는 생각에 잠겼다. 배후에 있는 게 심각한 수준이 아니거나, 심각하지 않다고 우길 수 있는 수준이라면 계속 부려 먹힐 수 있단 뜻이었다. 80마리가 넘는 고블린 무리를 통솔할 수 있는 놈이라면 최소 오거 이상.
최소 오거까지는 별거 아니라면서 깎아내리며 부려 먹을 수 있단 뜻이다.
“뭔가 불공정한 계약 같군요.”
“싫으면 그냥 떠나게.”
집정관의 말에 벚나무 씨족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나왔다. 에드워드는 헬레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가 그냥 포기하면 어떨 것 같아?”
“그건 당신 권한이죠.”
“내가 포기하면 너도 포기할 건가?”
“네.”
이제까지 부린 고집이 거짓말인 것처럼 즉답이 나왔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옆으로 크게 기울였다. 베로니카처럼. 까딱. 그는 표정 없는 헬레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너, 날 시험하고 싶어서 고집부린 거지?”
헬레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제가 뭘 시험하고 싶어하는지도 아시나요?”
엘프의 왕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대가는 꽤 컸다.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고블린 새끼들 어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