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44)
44화 몬스터의 흔적
에드워드는 군자금 한 푼, 용병 한 명 추가로 배정받지 못하고 아르데니아의 골칫거리인 고블린 무리를 토벌하게 됐다. 아르데니아가 지원해 줄 수 있는 병력은 이미 교역로에 나가 있는 소규모 용병 캠프가 전부였다. 병력은 20명 이하. 아마도 그 질은 기대할 게 못 될 것이다.
설령 해치우더라도 비슷한 요구가 계속될 수 있다. 에드워드가 일정과 난이도 둘 중 하나에 치여 포기할 때까지.
“터무니없는 조건을 잘도 받아들인다, 이 색욕마인아.”
숙소에서 기다리던 베로니카의 핀잔이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가 여자의 시험에 응하지 않고 달아나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거든.”
헬레나가 고집을 부린 이유는 알고 보니 단순했다. 에드워드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댄 걸 그녀 자신이 용납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기사인지 증명하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비상 상황이라지만 보잘것없는 떠돌이 기사의 재치에, 민감한 부위의 신체 접촉을 허용했다는 건 용납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에드워드는 고블린 퇴치에 실패하든 성공하든 기사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물론 실패해도 겉으로 포장된 이야기가 크게 훼손될 리는 없으니 약간의 보상은 받겠지만, 그 액수는 확 줄어들고 헬레나는 일행을 따라오지 않을 것이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여자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그런가?”
“엘프 입장에서 인간은 저 아래를 기어 다니는 빛의 오크 같은 족속들이니까.”
빛의 오크. 애를 많이 낳는 데다, 다른 종족을 임신시킬 만큼 번식력 좋고, 그러니 숫자도 많고, 난폭하다는 점에서 인간은 오크랑 똑같다고 엘프들이 시시덕거릴 때 쓰는 말이었다. 보통은 엘프들끼리만 떠들 때 쓰는 말이지만 욕설이나 비하어는 그 존재와 뜻이 바로 알려지기 마련이라 인간들도 익히 아는 표현이다.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네가 평민 보는 감각이랑 비슷하려나?”
“글쎄. 감옥 안의 죄수 보는 시각이랑 비슷할 것 같은데?”
에드워드를 두고 한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쁜 년.”
“그래서 좀 보기가 그렇네. 내가 길들인 거 누가 채 가려는 것처럼 보여서.”
“누가 누굴 길들여?”
“여튼, 일이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해 봐.”
“웬일로 허락해 주네.”
“집정관과 이야기가 끝났는데 내가 어쩌겠니. 네가 결국 해내면 그 여자를 포함한 엘프들의 얼굴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긴 해.”
“성지까지 동행하는 걸 각오한 거 보면 의외로 덤덤할지도 모르겠는데.”
“뭐, 그건 그것 나름대로 쓸 만하겠지. 엘프 전사를 일행에 넣을 기회 같은 건 흔한 게 아니니까.”
“기왕이면 활쟁이가 좋은데.”
“난 방패가 되어 줄 인간이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좋아.”
“여기서 취향이 갈리는군.”
에드워드는 킬킬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1층 로비는 이미 사람이 없었다. 베로니카는 물 한 모금을 마신 다음 말했다.
“힘 아껴야 되니 얌전히 자라? 니 손의 애인이랑 놀지 말고.”
허리띠의 망령을 꺼내지 말란 소리였다.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엘프들 귀가 벽에 붙어 있을 게 뻔한데 하겠냐?”
“잘 아네.”
베로니카는 웃으면서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에드워드는 선물받은 엘프식 복숭아 과자를 오물오물 씹던 리안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블린한테 네 울음소리가 통하려나?”
“안 해 봐서 모르겠어요. 고블린을 만난 적이 없어서.”
“앵글리아 국왕들이 고블린도 오크같이 싹 쓸었나?”
“그런 건 저보다 기사님이 더 잘 아는 거 아니에요?”
“고블린 같은 건 아무도 관심이 없어서 어떻게 되었는지도 몰라. 야생의 밴시가 더 잘 아려나 했더니.”
“저도 나름 문명을 누리면서 살았거든요?”
“집집마다 찾아다니다 쫓겨나곤 나무구멍이나 헛간에서 자는 게 문명이냐?”
“지붕 있으면 문명이죠!”
“그런 건 고블린 사촌이지. 문명과 야생을 왔다 갔다…….”
“너무해!”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그러나 내심 심각했다. 평소에는 아무것도 아닌 잡졸. 어떻게 번식하는지, 어디서 나타나는지도 다들 관심이 없다. 심지어 무리를 만드는 단계까지 가더라도 좀도둑질에 그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고블린 하나가 아이를 잡아갔다가 화가 난 농민들이 떼로 쳐들어가 무리 하나를 몰살시킨 예도 있었다. 에드워드도 대륙에 왔을 때 보급품을 훔치려는 고블린 하나를 경비견들의 먹이로 던져 준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긴장을 좀 해야 할 거다.
* * *
다음 날 에드워드 일행은 마차를 아르데니아에 맡겨 둔 채, 헬레나와 페트로스의 안내를 받아 교역로로 떠났다. 그들은 일행의 감시역이기도 했다. 헬레나는 완전무장한 상태였는데, 백작령에서 에드워드에게 찢겨 나간 가죽갑옷보다 더 좋은 가죽찰갑을 입었고 뺨보호대가 달린 아르데니아식 투구도 목 뒤에 걸었다. 그리고 투사무기가 전혀 없던 저번과 달리, 허리춤에는 팔뚝만 한 다트들을 달아 놓았다. 페트로스의 복장도 비슷했는데 그는 다트 대신 활과 화살통을, 글레이브 대신 검을 찼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쟤들이 나 도와주려고 무장한 건가?”
“글쎄. 감시역이라도 위험할 때는 끼어들겠지. 하지만 그걸 빌미로 네 업적을 또 까내릴걸.”
“젠장.”
에드워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리안나는 짧게 투덜거렸다.
“기껏 엘프 도시에 왔는데 하룻밤만 자고 고블린이랑 싸우러 가다니…….”
그리고 모두에게 묵살당했다.
교역로는 아르데니아까지 거리가 꽤 있었지만 가는 내내 두 엘프는 일행에게 말 한마디 안 붙이고 자기들끼리만 간혹 이야기를 했다. 사흘째 되는 날에야 페트로스가 꺼낸 말이 처음이었다.
“여기부터 고블린들의 원정 범위입니다.”
“생각보다 빠르군. 못해도 하루는 더 갈 줄 알았더니.”
“놈들이 이상하게 범위를 늘린 겁니다. 아직 대단한 피해는 없습니다만.”
“이 속도로 가면 놈들의 소굴까지 얼마나 더 걸리오?”
“이틀이 더 걸릴 겁니다. 여기부터는 노숙을 피하고 마을에 들르겠습니다.”
말을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의 이틀 치 거리를 주파하는 고블린 원정대. 확실히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뭔가 타는 냄새가 나는데요.”
리안나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도 그 말에 코를 킁킁거렸다.
“확실히. 모닥불 냄새 따위가 아니군. 뭔가 거하게 태웠어. 익숙한 냄새인데.”
“싸움이 있었나 보군요.”
페트로스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그에게 질문했다.
“이 일대 영주들은 뭐 하는 거요?”
“아르데니아의 원정을 따라갔거나 자기 영지에 틀어박혀 있습니다. 적어도 인간끼리 싸움 났다는 소리는 못 들었습니다.”
“그럼 고블린 놈들이겠군.”
“하지만 고블린이 불을 지를 일이란 게 흔하지 않을 텐데요.”
“어디쯤인지 알 수 있소?”
“이미 다 타고 남은 희미한 냄새 같습니다. 찾으려면……“
페트로스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그럭저럭 큰 나무를 발견하고는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그 위로 뛰어 올라갔다. 마치 갑옷을 안 걸친 것처럼 재빠른 몸놀림이었다. 에드워드는 혀를 찼다.
“저게 되네.”
“정령의 도움도 빌렸죠.”
헬레나가 겨우 입을 열었다. 에드워드는 그녀의 글레이브를 곁눈질했다.
“너도 쓸 줄 알지?”
“몸을 움직이는 속도를 높이는 정도지만.”
“저렇게 나무 위로 올라가는 건?”
“가능해요.”
사람이라면 기어서 올라갈 것을 뛰다시피 올라가는 그 모습은 베로니카한테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엘프들의 능력에 대해 한마디 꺼내기 전에 페트로스가 먼저 내려왔다.
“찾았습니다. 이미 끝났더군요.”
“뭐요?”
“작은 행렬 같습니다. 사람 하나를 마차에 묶어 둔 채 태웠더군요.”
“고블린이 할 짓이 아닌데. 일단 그쪽으로 가 봅시다.”
일행은 바로 진로를 바꿨다. 곧 일행의 눈에는 박살이 난 마차들과 널브러진 사체들이 보였다. 에드워드는 그걸 둘러보다 말했다.
“인간의 짓은 아니군. 고블린 사체도 있고. 문제의 고블린 원정대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고블린은 굳이 부수거나 불태우지는 않는데.”
그는 말을 천천히 몰고 가 구석의 불탄 마차를 보았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안 가게 그을린 시체가 거기 묶였고, 그 아래에는 주머니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에드워드는 말에서 내려 주머니를 집어 들어 보았다. 그 안에는 노란색 가루가 묻었다. 그는 그 냄새를 맡아 본 다음 베로니카에게 건넸다.
“유황가루네.”
“화염 마법사들이 쓰는 시약이지. 이 주머니의 단추를 보니 알겠네.”
“뭔데?”
“걔들 학당의 상징이 새겨져 있어. 나팔 문장. 고용된 술사였나 본데. 트레베리아의 프리시아 시 출신이야.”
“유명해?”
“학당 자체가 젊은 쪽에 속하지.”
“강하진 않단 말이군. 그래도 술사인데.”
에드워드의 시선이 주변을 향했다. 그는 부서진 채 흩어진 사슬갑옷 파편을 발견했다. 그는 그걸 집어 들어 보곤 중얼거렸다.
“사람을 죽이고 마차를 부순 건 고블린이 아니야. 고블린은 이런 힘을 못 내. 문제는 발자국이 안 보인다는 거야. 이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 놈인데. 땅이 단단한 탓인지.”
페트로스는 정체불명의 짐승 털 몇 가닥을 찾아 에드워드와 베로니카에게 보여 줬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큰 발톱 아니면 무기를 가진 짐승 같은 몬스터라. 생각나는 게 없군요.”
“주문을 맞아도 버티고, 힘이 엄청나고, 털이 있고, 사람을 마차에 묶어서 불 놓을 수 있을 손도 달린 놈?”
“엄청나게 큰 늑대인간이라도 힘들겠죠. 그런 건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일단 짐승형이라면, 손은 아닐 거예요. 태우는 건 고블린이 했겠죠.”
헬레나가 끼어들었다. 에드워드는 그럴싸하다고 느꼈다.
“뭐, 짐승형이 아니라 털가죽을 뒤집어쓴 놈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문제의 고블린 무리는 어떤 몬스터의 지휘를 받는다는 걸로 보인다고 했었어. 그리고 이 사람들은 생존자나 탈출자를 기대 못 할 만큼 작살 났고. 그런 고블린 무리가 둘이나 더 있을 거란 생각은 안 들지.”
“그럼 이 불쌍한 사람들은 대형 몬스터가 낀 고블린 무리와 맞닥뜨렸단 말이군요.”
페트로스가 결론을 내렸다. 에드워드는 투덜거렸다.
“소굴에서 원정 나왔군. 젠장. 교역로의 용병들에게 빈집털이를 주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설령 연락을 보낼 방법이 있더라도 기대할 건 못 됩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지휘관부터가 시민권만 간신히 지킨 낙오자 엘프입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원정 나올 놈들이면 빈집털이에도 대비하겠죠.”
“하긴.”
에드워드는 시체들을 좀 더 살펴보았다. 상단이 나르던 것은 소금에 절인 생선이었다. 놈들은 깨진 통마저 샅샅이 훑었기 때문에 남은 건 소금물과 비린내뿐이었다.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놈들도 식량난인가 보군. 하긴, 무리가 많을수록 식량이 중요한 문제겠지.”
“게다가 대형 몬스터가 있다면 더 심하겠지. 아마 고블린들은 그 몬스터에게 식량을 상납하고 있을 거야.”
베로니카의 말이었다. 그녀는 유황 주머니에서 단추만 떼어내 갈무리한 다음 말했다.
“용병 캠프와 합류하기 전에 추적하는 건 무리야. 숫자라도 채워야지. 일단 서두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