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47)
47화 마지막 도시락
고블린 무리의 공성전은 계속 이어졌다. 엘프들은 널빤지를 든 고블린부터 저격했지만, 기어이 널빤지 하나가 장애물 위에 올라오고 말았다. 그 뒤를 좀 작고 어린 멧돼지들이 뒤따랐다. 너무 큰 녀석들의 무게는 널빤지가 못 감당하기 때문이었다. 나름 머리를 쓴 셈이다.
에드워드는 널빤지 위를 딛고 뛰어들어 온 멧돼지에 시선을 돌렸다. 그는 막 착지한 놈의 뒷다리를 걷어찼다.
“꽥!”
자세가 불안했던 멧돼지가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순간, 에드워드는 놈의 입에 열쇠검을 쑤셔 박았다. 콰직! 멧돼지가 긴 비명소리를 질렀지만 에드워드는 무시하고 검을 비틀었다. 으직. 그 직후 병사들도 달려들어 놈에게 창과 몽둥이 따위로 후속타를 먹였다. 한 방, 두 방, 세 방.
사실 검은 멧돼지를 잡는 데 좋은 도구는 아니었다. 차라리 망치로 후려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에드워드는 병사들이 멧돼지를 잡게 내버려 두고 다음 손님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번엔 갓 성체가 된 놈치고는 꽤 컸는데, 에드워드를 향해 다짜고짜 돌진해 오는 바람에 위의 고블린 기수마저 당황해 버렸다.
에드워드는 놈의 돌진을 피하면서 고블린 기수를 낚아챘다. 놈은 인간의 단검을 막대기에 묶어 만든 꺾창을 들었는데, 발광하면서 에드워드에게 무기를 휘둘러 댔지만 제대로 박지는 못하고 때리기만 했다. 에드워드는 방벽의 구멍 앞에서 놈의 목을 붙잡고 높이 들었다. 이대로 손에 힘만 줘도 이 자식은 죽는다. 하지만 경고는 항상 드라마틱할 필요가 있었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놈의 배에 박은 다음 높이 들어 올렸다.
“새끼들아, 이놈이 어떻게 죽는지 봐라!”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고블린의 사타구니까지 죽 밀어 버렸다.
“끼아아아아악!”
배꼽 아래가 세로로 두 동강이 난 고블린 기수는 고블린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비명을 내질렀다. 에드워드는 그 고블린의 피와 내장을 뒤집어썼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는 그걸 멧돼지들 앞에 내던졌다. 흥분한 멧돼지들은 아직 살아서 꿈틀거리는 고블린을 송곳니와 앞발굽으로 짓이겼다.
당황한 고블린 기수들이 물러서는 순간 에드워드는 다음 창을 들었다. 그냥 나무를 깎은 것으로 창이라고 하기도 조잡한 물건이었다. 에드워드는 그걸 최대한 살살 잡은 다음, 놈들에게 내던졌다. 퍽! 고블린 잡기에는 충분했다. 에드워드는 한 용병이 건넨 다음 목창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건 인간이 준비한 게 아니라 고블린이 던진 것이었다. 뚜둑! 가느다란 나무 작대기가 에드워드의 손아귀 힘을 못 이기고 부러지자 에드워드는 욕설을 내뱉으며 그걸 아래로 내팽개쳤다.
널빤지를 딛고 올라가기엔 너무 큰 멧돼지들은 잠시 물러났다. 에드워드는 그 틈에 널빤지를 안으로 잡아당겨 내팽개쳤다.
그러나 그건 재돌격을 위한 후퇴였을 뿐이다. 놈들은 다시 장애물들을 향해 돌격했다. 이번엔 뒤늦게 출발한 2파의 보병무리와 거의 비슷한 타이밍이었다. 보병은 대개 투석병. 놈들이 돌을 던지기 시작할 때쯤 에드워드는 도로 아래로 내려갔다. 방벽의 구멍은 아까 그 널빤지뿐만이 아니었다. 거마창 하나가 들썩거리더니 그 밑으로 멧돼지 하나가 들어왔다.
“들어온 멧돼지 새끼는 누가 좀 처리해!”
평범한 명령이었지만 쩌렁쩌렁한 목소리였고, 고블린 기수들이 주눅 들기에는 충분했다. 놈들이 주춤하는 게 눈에 띄었다. 에드워드는 등 뒤에서 멧돼지와 병사들이 난리를 부리는 광경을 청각으로나마 챙겨 들었다. 멧돼지를 처리한 건 의외로 베로니카였다.
“좀! 죽으라고!”
“꽤액!”
돼지 정수리를 철퇴로 연거푸 갈기는 소리, 멧돼지가 찢어져라 울부짖는 소리가 울렸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 버렸다.
“베로니카, 다치지는 마라!”
“알면 통과시키지나 마!”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에드워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방벽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투석전이 되었는데, 날아오는 돌의 숫자가 많은 게 문제긴 했다. 그래도 괜찮다. 이 일대에 돌이 많지는 않기 때문에 고블린들은 돌멩이를 한 짐씩 짊어지고 있었다. 그게 2파가 느리게 내려온 이유였다. 그것도 얼마 뒤면 동이 날 것이다.
일단 멧돼지와 고블린 조합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용병 캠프는 작기 때문에 오히려 조밀한 장애물 배치가 가능했다. 농경지를 목책 밖에 둔 채 발만 구를 뿐인 농촌과 다른 이점이다. 아가티우스가 완전히 놀지만은 않은 셈이다.
에드워드는 돌멩이를 집어다 냅다 던졌다. 퍽! 고블린 하나가 그거에 맞고 나가떨어졌다. 뒤이어 고블린들이 반격에 나섰다. 에드워드에게 투석이 집중되는 것이었다. 에드워드는 허리를 숙인 채 장애물 뒤를 이동해 다른 데서 다시 돌을 던졌다. 퍽! 볼품없지만 촌구석 멍청이 고블린들을 놀리기에는 적절했다.
“멧돼지가 어려우면 고블린부터 노려!”
그 순간 다시 짐승의 소리가 울렸다. 인간의 목소리와 사자의 울음소리를 합친 것 같은 소리, 그다음엔 피리 소리가 섞였다. 그리고 다시 사자 울음소리 같은 게 들렸다.
“나왔어요! 몬스터! 몬스터!”
한 병사가 소리쳤다. 에드워드의 앞에서 대치하던 멧돼지는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주변의 고블린들도 어쩔 줄 모르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댔다.
‘몬스터가 어지간히 무서운 놈인가 보군.’
에드워드가 생각하는 순간, 헬레나가 비명을 질렀다. 에드워드가 듣기에는 그녀가 처음으로 지른 비명이었다.
“만티코어!”
경사로 위에 선 갈기가 달린 네 발 맹수. 전체적인 풍모는 사자 같지만, 절대 사자는 아니었다. 늙은 남자의 얼굴로 귀밑까지 찢어진 큰 입, 세 줄의 날카로운 이빨, 부리부리한 회색 눈, 불그스름한 피부와 털, 거대한 몸뚱이, 등에는 박쥐 날개.
크고 왕성한 놈은 군대도 혼자 잡아먹는다는 대괴수 만티코어.
아가티우스는 득달같이 캠프 반대편으로 달려가 장애물을 뛰어넘은 다음 도망쳤다.
“지휘권 방기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페트로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없었다. 아가티우스는 저 멀리까지 순식간에 달려가 버렸다. 물론 만티코어는 그렇게 도망쳐도 어쩔 수 없는 몬스터이긴 했지만, 에드워드는 아가티우스에 대해 조금이나마 호의적으로 바꾸었던 평가를 다시 하락시켰다. 그는 우선적으로 지휘권 승계 순서를 확인했다.
“지휘자 부재 시 다음 지휘자는?”
“저 양반이 그런 거 정해 놨을 것 같소?”
한 용병이 덜덜 떨면서 되물었다. 에드워드는 납득했다.
“이 캠프 생각보다 더 개판이네. 지금부터 내가 지휘한다.”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페트로스가 태클을 걸었다.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싫으면 도망가다 따라잡혀 먹히든가.”
“침착한 후퇴를 하려면 지휘관이 필요해!”
헬레나도 거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잘못 짚었다. 에드워드는 후퇴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는 나무를 끌어당기는 데 썼던 선박용 밧줄을 손에 쥐고는 커다란 올가미를 만들었다. 헬레나는 기겁했다.
“지금 뭘 하는 건가요?!”
“뭐 하긴. 싸울 준비지.”
“미쳤어요?”
“아니. 멀쩡해.”
“멀쩡한 게 아니잖아요! 상대는 만티코어예요! 고블린과 멧돼지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식인 괴물이라고요!”
만티코어는 경사로에서 뛰어내렸다. 놈은 지면을 스치듯, 미끄러지듯 활강해 내려오더니 고블린 무리 한복판에 내렸다. 그 와중에 한 고블린이 미처 피하지 못했지만 만티코어는 일부러 그러는 듯 놈을 앞발로 짓뭉갰다.
“끼이이익!”
고블린이 비명과 함께 짓뭉개지자, 만티코어는 앞발을 툭툭 털었다. 에드워드는 그 광경을 보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식인 괴물도 고블린은 안 먹는군. 맛이 없나?”
“사람 먹는 괴물이니 사람만 먹겠죠!”
“그치? 잘해 봐야 멧돼지 정도만 먹겠지? 사람고기랑 돼지고기랑 맛이 비슷하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중요해. 만티코어는 고블린과 멧돼지를 안 부려도 충분히 사람을 포식할 수 있는 놈이잖아.”
헬레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표정을 지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베로니카가 썩은 음식을 씹은 표정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곤 말했다.
“맞네. 저 만티코어, 다쳤어. 이 근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몬스터는 아니니까, 아마 누군가에게 다친 다음 여기까지 도망쳐 온 것 같아. 소문도 없던 걸 보면 정말 멀리서 왔나 본데.”
그녀의 말대로였다. 자세히 보니 만티코어는 꼬리가 어디론가 잘려 나가 사라진 상태였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날개도 어딘가 성치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만티코어예요! 직접 나선 걸 보면 상처도 웬만큼 회복했을 테고!”
“그렇지. 그래도 온전하지는 않잖아. 지금 물러서다 이 사람들 다 잡아먹히면, 아르데니아는 그땐 더 회복된 만티코어를 맞닥뜨릴걸. 이 용병 캠프는 대치를 유지하던 게 아니야. 만티코어가 마지막으로 개봉할 수 있는 도시락이었어.”
“아르데니아를 위해 싸우겠다는 건가요?”
“그게 조건이잖아.”
헬레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든 여기를 탈출한 다음 아르데니아군과 같이 만티코어에 맞선다는 게 더 합리적인 선택 아닌가요?”
“여기서 도망쳐 봤자 나와 베로니카와 당신이 모두 살아남을 확률은 낮아. 그럼 난 출세도 못 하고, 베로니카 호위도 실패하고, 당신을 갖지도 못해. 어느 게 더 합리적일 것 같아? 맘대로 생각해. 난 내 방식대로 한다.”
“설령 만티코어를 해치운다 해도 그게 당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방법이 되나요? 결국 그 저주 걸린 손을 믿고 만용을 부리는 거잖아요?”
에드워드는 밧줄을 어깨에 짊어지고는 장애물 위로 올라섰다.
“끝나면 얘기해 보자.”
헬레나는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말려보라는 의미의 눈빛을 보냈지만 베로니카도 딱히 뾰족한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쟤 싸우는 사이에 도망칠 방법이나 생각해 보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헬레나는 작은 소리로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제 가슴이 인간 남성에게 그렇게 치명적인 독 같은 건가요?”
베로니카는 헬레나의 가슴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시험해 본다고 남은 사내새끼들한테 상품으로 걸지는 마세요.”
“안 해요!”
다시 소란스러워진 두 여성을 뒤로하고 에드워드는 장애물 아래로 뛰어내렸다. 긴장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어려운 싸움 정도가 아니다. 만티코어에 비하면 산트롤 여섯 마리 정도는 애교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겠다.
에드워드는 뒤에 남은 용병들에게, 그러나 방향은 만티코어를 향해 소리쳤다.
“내가 신호하면 밖으로 나와!”
그 순간 만티코어는 에드워드가 나무들을 쓰러뜨리는 괴물 기사임을 알아보았다. 놈의 입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에드워드는 씩 웃으면서 밧줄을 땅에 내렸다.
“너 혹시 스핑크스라고 들어 봤냐? 너 닮은 친구인데. 사자 몸에 사람 대가리. 걔는 퀴즈를 좋아하지.”
“어흥!”
만티코어가 소리를 지르자 고블린들이 슬금슬금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놈들도 에드워드에게 덤비지는 못했다. 대신 조금 멀리서 투창과 돌을 든 채 접근했다. 에드워드는 긴장감 속에서 낄낄 웃었다.
“아직도 고블린을 앞세워? 너 진짜 크게 다쳤지?”
“크허엉!”
만티코어가 다시 소리를 지르자 고블린들은 냅다 투창과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에드워드의 발치에도 못 미치고 떨어졌다. 몇몇 투창이 에드워드에게 닿긴 했지만, 그가 열쇠검으로 쳐 내거나 갑옷에 막혔다.
만티코어는 짜증을 내면서 고블린들을 앞발로 쳐 죽이기 시작했다. 콰직! 고블린들의 비명 소리가 울리는 순간, 이미 더는 에드워드를 향해 투척 무기를 날릴 고블린은 없었다. 에드워드는 한 손에 열쇠검을, 한 손에 올가미를 들고 만티코어에게 달려들었다.
기사와 만티코어 사이에 낀 고블린들은 대재난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