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48)
48화 고양이와 곱연산과 장애물 판정
아가티우스는 정신없이 달렸다. 자신이 혼자서 달리고 있다는 것도 그에게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는 엘프다. 정령의 도움을 받는 종족이고 그 전사. 인간 따위보다 빠른 게 당연했다. 물론 만티코어보다 빠를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그는 선택해야 했다.
인간을 전부 먹이로 던져 주고 엘프는 목숨을 건진다.
물론, 아무리 인간 용병들이라지만 지휘권을 방기하고 도망친 자를 아르데니아가 용서해 주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 자리에는 시민인 페트로스와 헬레나가 있었다. 아가티우스보다 의무와 체면에 집착하고 행동이 굼뜬 남매니, 살아남을 확률은 높지 않다. 그들이 죽거나 다친다면 아르데니아는 더욱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만티코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칠 이유로는 충분했다.
‘어떤 미친놈이 만티코어를 상대로 목숨을 버려? 차라리 평생 도망자 신세인 게 낫지!’
* * *
인간은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미래를 낙관하는 생물이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자신의 과거 경험을 떠올려 보았다. 어떤 큼직한 집고양이를. 그놈은 고양이 주제에 성격이 더러워서 인간을 띠꺼운 눈으로 보았고 누군가 만지는 걸 질색했으며 혹여 손을 대면 깨물어 댔다. 그러면 에드워드도 마주 약이 올라서 놈의 정수리를 붙잡고 놓아 주지를 않았다.
그때쯤부터 고양이와 인간은 서로 힘 싸움을 벌이게 된다. 고양이는 인간의 손을 앞발로 싸잡고 인간은 고양이의 정수리를 싸잡은 채 서로 밀고 쓰러뜨리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티코어를 상대하는 것은 대소가 역전된 것만 빼면 고양이를 상대하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물론 얼토당토않은 소리였지만, 인간은 왜곡이라도 해야 현실을 버틴다.
“크허어엉!”
만티코어가 포효하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에드워드는 직격을 피하는 대신 밧줄 뭉치를 만티코어의 머리에 날렸지만, 그림처럼 목에 걸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만티코어는 올가미가 뭔지 알았고 피할 만큼 재빨랐다.
놈은 밧줄을 입에 물었고 오히려 에드워드가 만티코어에게 질질 끌려다니게 되었다. 만티코어에 비하면 에드워드는 너무 가벼웠다. 놈은 밧줄 뭉치를 질겅질겅 씹어 댔는데, 이빨이 하도 날카로워서 선박용 밧줄이래도 너덜너덜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못생긴 괭이 새끼!”
에드워드는 놈의 입에 걸린 밧줄과 놈의 갈기를 동시에 잡았다. 뿌직. 털이 뿌리 뽑히는 소리가 들렸다.
“탈모냥으로 만들어 주마!”
하지만 만티코어의 갈기는 심히 풍성했고 거칠었다. 에드워드는 놈의 목에 올가미를 걸지 못하고 대신 갈기를 붙잡은 채 질질 끌려다녔다. 그의 저주받은 괴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라서, 손아귀에 힘을 줄 때마다 만티코어가 고개를 그 방향으로 흔들어 대곤 했다. 털이 뭉터기로 뽑히는 건 괴로운 법이다.
“좀! 얌전히! 있어라!”
에드워드는 씨알도 안 먹힐 소리만 반복했다. 에드워드는 손아귀 힘뿐만이 아니라 그가 기사로서 쌓아 온 체력 전부를 쓰면서 만티코어의 힘을 버텨 냈다. 만약 그의 팔다리에서 힘이 빠진다면, 만티코어는 땅바닥에 한번 뒹구는 것만으로도 기사를 죽일 수 있었다.
‘내 갑옷이 순 철판이라면 깔려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될 텐데.’
에드워드는 다시 덧없는 희망 사항을 품었다. 그건 하나가 아니라 계속 이어졌다. 전생부터 체력 단련을 했다면 더 강해지지 않았을까, 이 동네 운동 방식은 사실 덜 효과적이었던 게 아닐까, 조선놈들이 공자 왈 맹자 왈 읊지 말고 스쿼트와 벤치프레스에 몰두했다면 그 영향이 내게 조금이나마 남지 않았을까 등등.
인간 기사와 만티코어는 밧줄과 갈기로 엮인 채 미친 듯이 교역로 일대를 헤집었다. 고블린들은 그 사이에 치여 죽거나 깔려 죽다 전부 도망쳐버렸다. 주변에 남은 게 없자 베로니카가 나섰다.
“모든 선과 의로움의 원천인 빛이여! 그의 정신과 육신에 힘을 주시고, 빛 안에서 어려움을 면케 하소서!”
쿵!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일방적으로 끌려가던 에드워드의 발이 딱 멈췄다. 그의 발이 풀밭에 뿌리내린 듯 파고들었다. 근력 강화의 주문. 만티코어는 비명을 질렀다. 에드워드는 보다 강한 힘으로 만티코어를 붙들고는 베로니카에게 물었다.
“야, 이거 곱연산이냐?”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똑바로 싸워! 저놈 이쪽 보잖아!”
베로니카는 황급히 만티코어의 시선을 피해 후다닥 물러섰다. 만티코어의 관심을 받아서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 헬레나와 페트로스는 그 반대로 나섰다.
“지금!”
움직이지 못하는 만티코어의 눈을 향해 헬레나는 글레이브를 내질렀다. 쩍! 눈을 직격하지는 못했다. 대신 놈의 이마 위가 찢어져 피가 흘렀다.
“어흐응!”
만티코어는 악취가 나는 포효를 내질렀고 헬레나는 뒤로 물러섰다. 간신히 이빨을 피한 사람도 병 걸리게 만든다는 그 입을 향해 페트로스가 화살을 쏘았지만, 그 화살들은 3줄의 이빨 사이에서 무참히 씹혀 나갔다.
“카학!”
만티코어가 씹다 만 화살들을 페트로스에게 내뱉자 그도 물러서야 했다.
“이 새끼는 내가 죽인다! 엘프는 빠져!”
에드워드가 소리쳤다. 다시 맹수 대 인간. 에드워드는 한참 화살을 뱉던 놈의 입 안으로 밧줄 묶은 열쇠검을 던졌다. 콰직! 만티코어는 밧줄 뭉치와 화살을 씹을 때처럼 열쇠검을 씹었다. 그러나 곧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크게 찢어진 입을 빼면 얼굴이 사람 같다는 점 때문에 에드워드는 놈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좀 단단하지?”
에드워드의 괴력도 버텨 내는 왕실 보검이었다. 만티코어의 이빨들 중 부서진 것들이 피와 함께 쏟아졌다. 그러나 놈은 열쇠검을 놓지 않았다. 부러뜨리는 게 아니라 물고 버티기로 한 것이다. 놈이 낮은 울음소리를 내는 순간 에드워드는 놈의 목 위로 뛰어올랐다. 자유로워진 만티코어가 다시 몸부림치는 순간 에드워드는 반대편에 착지했다. 우당탕! 그는 땅바닥을 구르면서도 밧줄을 놓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날아드는 앞발을 피하면서 놈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다리를 묶고, 목 위로 던지고, 다시 집어 들고.
만티코어는 밧줄을 꼬아서 나무들을 쓰러뜨리던 에드워드의 모습을 기억했다. 놈은 공포로 몸부림을 쳤다. 그 순간 베로니카의 주문이 효과가 끝나면서 에드워드는 다시 끌려가기 시작했다.
“으억?!”
에드워드가 주문이 끝날 타이밍을 알 수는 없었기 때문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그는 공중을 날다시피 끌려갔다. 만티코어는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밧줄을, 그리고 놈의 갈기를 붙잡은 채 놈의 목 위까지 기어 올라갔다. 마치 만티코어의 위에 올라탄 것 같은 자세였다. 그는 밧줄을 잡지 않은 손으로 놈의 한쪽 갈기를 붙잡은 다음 있는 힘껏 뒤틀었다.
“크엉!”
만티코어는 옆으로 쓰러져 나뒹굴었다. 에드워드는 만티코어를 붙잡은 채 땅바닥과 놈 사이에 끼었다가 다시 하늘 아래로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만티코어는 에드워드를 목에 매단 채 땅을 몇 차례 굴렀다. 건장한 사람의 몇 배는 되는 중량이 에드워드를 깔아뭉개는 것이었다.
헬레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페트로스도 마찬가지였다.
“글렀군. 저래서는 못 살아. 질식하거나 뼈가 부러져 죽어. 살았어도 곧 놓치고 떨어질걸. 도망치자!”
목 뒤를 땅에 붙인 채 몸부림치는 만티코어를 보고 페트로스는 돌아섰다. 헬레나도 그의 뒤를 따르려 했다. 그러나 이번엔 베로니카가 나섰다.
“다시, 모든 선과 의로움의 원천인 빛이여!”
베로니카가 주문을 외우는 순간 만티코어는 벌떡 일어났다. 에드워드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풀과 흙 범벅이 된 인간 기사는 여전히 만티코어의 목덜미에 붙어 있었다.
“야, 종마! 살아 있어?”
베로니카가 소리쳐 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페트로스는 그녀의 어깨를 붙들었다.
“주문 두 개면 당신은 할 만큼 했습니다. 나머지는 당신 자신을 위해 써야 합니다!”
그 순간 만티코어가 땅을 박찼다. 땅에 구르는 게 통하지 않자 만티코어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질주했다. 놈은 페트로스의 목소리를 쫓았고, 베로니카와 페트로스는 기겁해서 각각 반대쪽으로 몸을 날렸다.
두 사람 사이를 통과한 만티코어는 헬레나를 지나쳐 직선으로 달려나갔다. 놈의 경로에는 불행히도 용병 캠프가 있었고, 멧돼지들의 공세에도 안 무너지던 장애물들은 일격에 박살이 났다. 우지끈!
“꺄아아아아악!”
“도망쳐! 도망쳐!”
캠프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다행히 만티코어는 사람을 잡아먹을 상황이 아니었고 부딪히는 사람을 빼면 큰 피해는 없었다. 리안나는 만티코어의 앞발에 짓밟혀 진흙탕에 처박혔다. 그리고 만티코어는 밴시를 밟아 미끄러지고 말았다.
밴시는 밟혀도 안 죽으니까.
만티코어는 자기 발에 채인 리안나의 비명 소리를 무시하고, 캠프 안에서 한참을 더 뒹굴더니 다시 일어나 달려나갔다.
놈은 달리다가 쓰러지고 뒹굴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다 곧 모두의 시야에서 벗어나 산 아래 숲으로 달려갔다.
이제는 소리만 들렸다. 뭔가 부서지는 소리, 무너지는 소리, 만티코어가 내지르는 비명 소리. 인간들과 엘프들은 도망가는 것도 잊고 숲속의 광란에 귀 기울였다. 잠시 뒤 뭔가 더 거대한 것이, 잔뜩 쌓여 있는 것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침묵이 찾아왔다.
“끝났어요? 기사님 죽은 거예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진흙투성이가 된 리안나가 질문했다. 베로니카는 헬레나를 보았다.
“확인하는 건 당신들 일이죠?”
헬레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페트로스는 숲과 베로니카를 번갈아 보다가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만티코어가 나온다면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으니.”
“그 녀석이 이겼다면?”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만티코어한테 깔린 시점에 이미 시체가 되었을걸요.”
“비가 와서 땅이 부드러워졌어요. 이런 데서 인간을 압사시키기란 의외로 쉬운 일이 아니죠. 그리고 에드워드는 계속 매달려 있었어요. 안 죽었을지도 모르죠.”
“매달리고 있으면 절로 이기는 게 아니잖습니까? 게다가 죽은 채로 굳어 버리는 인간들 이야기도 있지요. 어쨌든 숲으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만티코어를 보자마자 도망쳐도 살까 말까 한 상황입니다.”
둘의 갑론을박을 듣던 헬레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결정했다.
“숲으로 들어가자.”
페트로스는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베로니카가 먼저 발을 뗐고 헬레나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긴 인간들 몇 명이 그 뒤로 붙었다.
페트로스는 머리를 거칠게 긁은 다음 누나를 쫓아갔다.
숲은 비구름 때문에 어두컴컴했지만 만티코어와 에드워드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쓰러진 나무와 여기저기 튄 진흙들, 방금 파인 구덩이들을 지나친 사람들은 만티코어를 발견했다.
만티코어는 무너진 통나무 더미들 속에 상반신을 처박은 채 꼼짝도 안 했다.
“저건 기사님이 아르데니아로 보내기 위해 쌓아 놨던 목재들인데요?”
리안나가 말했다. 그 말이 맞았다. 에드워드가 쓰러뜨리고 용병들이 쌓아 놨던 나무들. 베로니카와 헬레나는 만티코어의 바로 옆까지 걸어가 보았다.
증기가 모락모락 나는 만티코어의 신체는 숨을 쉬느라 들썩이지 않았다. 헬레나는 통나무 더미 반대편으로 가 보았다. 머리가 부러진 통나무를 뚫고 삐죽 나와 있었다. 눈을 부릅뜬 채 혀를 길게 빼문 놈의 얼굴을 보고 헬레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죽었어.”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에드워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