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5)
5화 늪지의 악령 (2)
에드워드는 늪지로 말을 달렸다. 물론, 고삐를 잡은 손에 힘 조절을 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실수로 죽거나 다친 말만 몇 마리였던지, 결국 빈털터리 신세다. 빈발하는 사고 때문에 여행을 시작할 때 있던 부하들도 고용인들도 떠나갔다.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쯤 주변에 남은 건 이단심문관 베로니카뿐이었다.
보물. 도적들끼리 다툴 정도의 보물. 그 보물만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최소한 여정이 더 편안할 것이다. 교회 안에 있다면 손쓸 방법이 없지만, 만약 늪지에 있다면 먼저 먹는 놈이 임자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그것을 베로니카랑 나눌 생각이 없었다. 베로니카가 이 여행의 물주인 것은 분명했지만, 그녀는 의외로 짠돌이였다. 이해는 했다. 그녀가 대귀족 가문의 일원이건 아니건, 특별 사법관은 교회에서 보내는 활동비만으로 여행을 하는 게 기본이었다. 개인의 재산은 어디까지나 여행을 더 풍족하게 만드는 양념이거나, 비상금에 불과했다. 그러니 항상 여비의 증감을 놓고 교단과 씨름해야 했다. 베로니카 본인이 말했듯, 가문이 부자라고 그녀 또한 부자라는 법도 없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그녀에게 박봉으로 고용된 처지다.
에드워드는 그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쓸 돈이 필요했다. 그걸 위해서라면 시체 따위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는 잘 무장했고, 숙련된 기사였다.
밴시 리안나는 재갈을 물려 마구간 구석에 묶어 놓았다. 베로니카가 교회를 조사하고, 사제들을 채근하는 사이에 늪지로 달려가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그녀가 낑낑거리는 밴시를 발견하고 늪지로 달려올 때쯤엔 모든 일이 끝날 것이다.
‘알아서 하라면서 안 올지도 모르고.’
어쨌든 시간은 충분했다. 보물이 밖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다면 허탕일 뿐이지만, 해 볼 가치가 있는 도박이다.
에드워드는 뜨겁다 못해 따가운 햇빛을 벗어나 축축한 늪지 사이의 길로 들어섰다. 길은 드문드문 물웅덩이에 끊겨 있었고, 구불구불하기까지 했다. 좌우로 늘어선 나무들의 행렬, 모기와 벌레들이 웅웅거리는 소리, 부패하는 것들의 냄새.
“악령이 나오기는 딱 좋군.”
에드워드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의 생각보다 날은 빨리 어두워졌다. 다행히 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는 폐촌을 발견했다. 밴시 리안나가 말한 그대로였다. 쓸쓸하고, 습하고, 빛과 소리가 없는 곳.
‘괴담들 보면, 보통 이런 곳엔 마지막 생존자나 희생자가 남긴 경고문 따위가 있던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경고문은 없었다. 있어도 무시할 셈이지만. 그는 말에서 내린 다음 좀 멀쩡하게 생긴 폐가를 기웃거렸다. 의자에 해골이 앉아 있었다. 움직이지는 않았다.
“기사님!”
여자의 목소리였다. 달콤하고 어린. 시선을 돌리자 저 멀리 황급히 달려오는 한 여자가 보였다. 깔끔하게 정리한 연갈색 머리와 짙은 녹색 드레스. 척 보아도 귀한 집 딸이었다.
“이런 곳에 여자가?”
“기사님! 거기 계시면 안 돼요! 위험해요!”
여자가 다시 소리쳤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의심부터 드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여자는 에드워드가 말을 듣지 않자 결국 이쪽으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뽑을까 말까, 뽑을까 말까.’
그때 여자의 뒤에서 다른 두 여자가 나타났다. 옷차림은 갈색이고, 수수하며 서로 비슷한 형태였다. 아마도 시녀나 하녀. 그녀들은 놀란 표정으로 자신들의 주인과 함께 뛰었다. 그녀들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에드워드는 적의나 음모의 기질을 찾아낼 수 없었다. 에드워드는 갈등 끝에 다른 선택을 했다.
“멈춰라! 그대는 누구의 딸이기에 이 폐허에 있는가? 그대는 악령의 딸인가?”
여자는 제자리에 멈췄다.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용맹한 기사님, 저는 램버트 가문의 셋째 딸 캐슬린이에요. 그 악령 때문에 이 마을에 갇히고 말았죠. 그는 이 마을을 맴돌고 있으니까요. 곧 밤이에요. 아무리 용맹한 기사라도 그 사악하고, 강대한 자를 달빛 아래에서 상대할 수는 없어요. 저희 숙소에 와 주세요. 부디 저희를 지켜 주시고, 여기서 구해 주세요.”
노래하듯 이어지는 말은 무지렁이 농부의 딸이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헛기침한 뒤에 ‘기사답게’ 답했다.
“기사를 설득하는 방법을 모르시는군. 나는 클레어 가문의 셋째 아들 에드워드요. 밸로스의 공작가인 베레스포드 가문에서 기사 수업을 받았으며, 앵글리아 왕실의 보물인 열쇠검을 갖고 빛의 뜻에 따라 성지로 떠나는 자요. 어젯밤도 해골 수십을 땅에 묻었소. 밤새도록 싸우라 해도 할 수 있소. 그대는 숙소로 돌아가시오. 날이 밝으면 내가 승리자로서 문을 두드릴 테니.”
하지만,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기사님, 당신의 용맹을 의심하는 게 아니에요. 빛에 맹세코 제가 그 악령을 기사님보다 더 잘 알아요. 그래도 혹 의심이 가신다면, 들어오지 않으셔도 좋아요. 대신 저희 숙소 앞을 지켜 주세요. 밤마다 저희 주변을 맴도는 악령 때문에 잠도 편히 못 자요.”
거절하기 어려운 부탁이었다. 캐슬린이 고귀한 집안의 딸이라면. 그녀의 말이 진짜라면. 에드워드는 결국 그 부탁을 수용했다.
“기사로서 더는 거절하지 못하겠군. 그리하겠소.”
여인들은 뒤로 돌아서 걸었다. 에드워드는 그녀들을 따라 어느 집 앞에 섰다. 그 집은 기이하게 생겼다. 분명 여관으로 쓰던 것인데, 문은 하나뿐이었고 창문이나 덧문은 없었다. 굴뚝도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에드워드가 언뜻 보기에, 집안은 겉과 달리 매우 아늑해 보였다. 그녀들이 딛는 곳은 깔끔하게 닦은 나무 바닥이었다. 벽은 음침한 잿빛이 아니라 은은한 촛불 빛이 비추는 금빛 양탄자로 장식되었다. 흑단과 상아로 만든 것 같은 고급 가구의 일부분도 엿볼 수 있었다.
캐슬린은 에드워드를 돌아보았다.
“기사님, 한 번만 더 묻겠어요. 정말 이 문지방을 넘지 않으시겠어요?”
“지금은 그럴 필요 없소. 문을 닫고, 빗장을 거시오. 그리고 아침까지 열지 마시오.”
캐슬린은 근심과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는 천천히 문을 닫았다. 그 순간 해가 완전히 지고 말았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뽑고 말 위에 올랐다. 저 멀리서 물 떨어지는 소리와 진흙 밟는 소리가 들렸다.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묻혔다가 악령이나 어둠의 힘으로 일어난 자들. 에드워드는 검에 입을 맞추고는 콧등이 달린 원뿔 투구를 썼다. 꺽다리왕 로버트가 앵글리아의 모든 오크를 토벌하고 사교도 근거지마저 박살 낸 이후 몬스터들의 위세는 크게 줄었기 때문에, 이런 대규모 언데드와 싸우는 건 드문 일이었다.
놈들의 개별 전투력이야 어쨌든, 그 숫자는 업적으로 기록할 만했다.
“자, 기사 등장. 그 상대는?”
“으어어어어어어.”
첫 번째 언데드의 등장이었다. 상의는 다 까지고 해져서 드러나는데, 큼직한 종기 같은 것이 우둘투둘 잔뜩 돋아 있었다. 에드워드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멍게 좀비.”
에드워드는 말의 옆구리에 박차를 가했다. 히히히힝! 좀비는 크게 양팔을 벌렸으나 군마는 사정없이 그놈의 배를 짓밟았다. 콰직! 와지끈! 뼈가 부러지고, 살이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에드워드의 말은 시체들을 짓밟았고, 열쇠검은 인정사정없이 그 두개골을 깨뜨렸다. 변변한 무기도 없는 시체들은 말 위의 기사를 어쩌지 못하고 마른 나뭇가지들처럼 쓰러졌다.
다만, 너무 많았다. 한참을 정신없이 싸운 뒤, 에드워드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런 씨발. 괜히 허세 부렸나?”
소란과 거리 때문에 캐슬린에게 욕설이 들리진 않을 것이 다행이었다. 에드워드는 일단 전술을 바꿨다. 그는 여관 앞으로 달려가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여관과 말을 등지고 정면에서 적과 맞섰다. 달려오던 시체들은 빠른 순서대로 박살 났다. 우지끈!
“캐슬린!”
“들어오시겠어요?”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자 다시 내적 갈등이 샘솟았다. 그놈의 체면.
“아직 열지 마시오! 잡졸들만 가득하다오! 악령은 어디 있소? 어떻게 생긴 놈이오?”
“백발의 건장한 중년 남자인데, 본래 저희 집안의 시종이었죠. 부하들과 나쁜 음모를 꾸미고 저희의 술병에 독을 탔어요. 하지만 저희가 미리 병을 바꾼 덕에 원혼이 되는 것은 놈들이었죠.”
“숙녀의 지혜는 찬미 받아 마땅하오. 그러나 사태가 급박하니 나중에 들려 주시오. 머리카락을 가진 놈은 안 보이는데?”
“놈의 본체는 마을 동남쪽 입구에 있는 오두막에 백골로 있어요. 다른 놈들의 시체는 진흙 속에 던져버렸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놈만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질 않더군요.”
“그거 아까 내가 오면서 본 백골이잖아!”
에드워드는 버럭 소리를 질러 버렸다. 캐슬린은 겁먹었는지 목소리가 작아졌다.
“하지만 그 시체는 저희 셋이 무슨 수를 써도 옮길 수도, 부술 수도 없었어요. 아무리 기사님이라도…….”
에드워드는 더 듣지 않고 다시 말에 올랐다.
“비켜라, 망자들아!”
그는 마을 입구까지 내달렸다. 그러나 곧 그의 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나타났다. 말에 탄 에드워드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큰 것이었다. 말이 놀라 멈추는 사이에 놈의 주먹이 땅을 내리쳤다. 꽝!
“진흙 거인이라! 악령 놈에게 어울리는 모습이구나! 악령도 자기 시체는 부서질까 두려워하느냐? 부활의 날에 승천은커녕 마귀의 식탁에 올라갈 놈이!”
에드워드의 악담에 진흙 거인은 괴성을 질렀다. 놈은 에드워드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쉽네.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쳤다. 단순 정면 돌격이라니, 오히려 바라는 바였다. 그는 말에 박차를 가했다. 히히힝! 말의 울음소리와 함께 열쇠검이 빛났다. 마주 달려간 에드워드는 진흙 거인의 주먹을 가볍게 피한 후 그 겨드랑이를 깊게 베었다. 뭐 하나 걸리는 것 없이 진흙 덩어리가 갈라지더니 거인의 입에서 비명이 나왔다.
에드워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팔이 덜렁거리는 거인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바 아니었다. 본체만 부수면 그만이다. 시체가 박살 나고도 움직인다면, 그때 생각해 볼 일이다. 그는 오두막으로 내달렸다.
에드워드는 더 이상 아무런 장애물 없이 문제의 오두막 앞에서 멈추었다. 말에서 내리자 멀리서 쿵쿵거리는 거인의 발걸음이 느껴졌다. 해골들의 뼈마디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것들이 닿기 전에, 에드워드는 활짝 열린 문을 향해 오두막으로 뛰어들었다. 백골은 해지기 전에 본 모습 그대로였고,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산 자를 비웃듯이 벌어진 그 입을 향해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꽂아 넣었다.
“빛의 신실한 종이 앵글리아 왕실의 보검으로 명한다! 썩 꺼져!”
에드워드는 단번에 두개골을 몸에서 날려 버렸다. 그 순간 모든 소란이 끝나고, 늪지에 정적이 찾아왔다.
에드워드는 승리자이자 해방자로서 여관 안에 섰다. 그는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실내는 해지기 전에 얼핏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밝고 아늑했으며 호사스러웠다. 두 하녀는 에드워드가 허리띠를 풀고 갑옷을 벗는 것을 도와주었고, 그에게 땀을 닦을 수건과 포도주를 가득 채운 술잔을 내밀었다.
“저희를 도와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용맹한 기사님.”
캐슬린이 말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오.”
에드워드는 한껏 폼을 잡으며 수건과 술잔을 받았다. 그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수도원을 위협하는 악령을 쫓다 고귀한 집안의 딸을 만날 줄은 몰랐소.”
“그러시겠지요. 저희도 여기 갇힐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다행히 이 여관에 남은 물건과 가져왔던 식량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한계에 가까웠답니다. 마지막 만찬이 머지않았죠.”
에드워드는 식탁 위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막 잡아 구운 닭, 민물 게로 만든 스튜, 재에 묻어 구운 빵, 염소젖, 어디선가 따온 조그만 과일과 채소가 있었다. 마지막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닭과 밀가루였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오. 그러나 지혜로운 그대들이 아니라 아둔한 자였다면 이마저도 어려웠을 거요.”
캐슬린은 웃으며 칭찬을 받아들였다.
“앉으시죠. 자세한 이야기를 해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