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50)
50화 새 동료는 선착순
집정관과 헤어진 에드워드는 올리브 씨앗 주머니를 허리띠에 묶었다. 엘프 여죄수들도 솔깃한 선택지긴 했지만, 엘프 기준으로도 천방지축이거나 제정신이 아닐 게 뻔한 년들을 동료로 받아들이는 건 오히려 뒷바라지를 하게 될 일이었다. 올리브 씨앗은 적어도 말썽을 부리진 않는다.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한 보상이다. 굳이 엘프 여자를 원한다면 극상의 여자가 이미 걸려 있고. 올지 안 올지 아직 모른다는 게 문제지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시내를 걸어가는 에드워드에게 허리띠의 망령 캐슬린이 자그마한 소리로 말했다.
“엘프 년은 안 올 거예요. 창녀들은 오겠지만.”
“넌 여기 있을 땐 닥치랬지?”
“내기해도 좋아요. 기사님이 자유를 허락한 이상, 그 딱딱한 년은 기사님이 포기하고 떠났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퍼뜨려도 손해 볼 게 없다고요.”
허리띠 끄트머리가 바람에 까딱거리는 척하다 에드워드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에드워드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기할래?”
내기. 사람의 영혼을 잡아갈 수 있는 강력한 방법. 캐슬린은 바로 미끼를 물었다.
“뭘 걸으실래요?”
하지만 에드워드는 현명했다.
“내가 새삼 노예와 내기를 할 리가 있냐, 이 멍청한 망령 자식아. 넌 엘프가 오든 안 오든 오늘 밤 죽었다. 좀 쓸 만하다 싶으면 기어오르다니.”
허리띠는 시무룩해져서 투덜거렸다.
“그러니 엘프가 안 오죠.”
에드워드는 길을 가다 말고 허리띠를 풀어 매듭 쥐곤 가볍게 비틀었다. 차마 비명을 못 지르는 캐슬린과 의아해하는 엘프 시민들 사이에서 에드워드는 태연히 말했다.
“몸풀기 중이오.”
일행은 도시 성문 앞 짐마차로 돌아갔다. 여행 준비를 끝낸 채 기다리던 리안나는 엘프 헬레나는 물론 에드워드에게 달라붙은 창녀들 몫까지 계산해서 식량과 준비물을 사 왔다가 크게 당황했다. 셋 모두가 출발 시간까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에드워드도 그녀들을 찾지 못했다. 그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남자를 믿는 창녀는 바보, 창녀를 믿는 남자도 바보라더니. 역시나.”
리안나는 혼란에 빠진 채 에드워드에게 질문했다.
“창녀 언니들이 왜 안 올까요?”
“걔들 목적지는 아르데니아야. 성지가 아니라.”
“네?”
“창녀가 아르데니아 시내에 입주하는 조건은 아주 까다롭거든. 규제도 잔뜩 붙고. 지금쯤 내 업적에 빌붙어 만만한 남자나 포주에게 줄을 댔을걸. 규제를 다 피하고 자유로운 고급 창녀의 탄생이지.”
“와! 약았다!”
“뭐, 나한테 피해 주는 것은 아니니까 상관없어. 걔들이 따라올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고. 대신 나도 시중받고 즐겼으니.”
“그럼 엘프 언니는요?”
“아직까지 안 오는 것 보면 걔도 안 오려나 본데.”
따각.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짐마차의 뒤를 향했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헬레나가 검은 말을 타고 나타났다. 만티코어를 잡으러 나섰을 때보다 간소하고 가벼운 가죽찰갑을 입었지만 무기는 글레이브와 다트 그대로였다. 그녀는 배웅 나온 동생과 씨족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인 다음 에드워드의 말 옆으로 걸어왔다. 에드워드는 피식 웃은 다음 자기 말에 올랐다.
“평판 상승. 도망친 창녀들보단 쓸 만하겠네.”
“……칭찬인지 모욕인지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는 말이군요.”
헬레나가 한숨을 내쉬는 순간 리안나가 덧붙였다.
“칭찬 아니에요. 제 경우엔 기사님이 쓸 만하다고 한 뒤엔 꼭 절 집어 던…… 끼야아아악!”
밴시 리안나는 아르데니아의 허공을 날았다.
* * *
일행은 다시 여행을 시작했지만 싸움의 여파는 아직 온전히 사라진 게 아니었다. 만티코어는 죽었어도 고블린은 전멸하지 않았다. 살아남은 놈들은 뿔뿔이 흩어졌을 뿐이다.
그래서 에드워드 일행은 반나절쯤 가자마자 눈앞을 얼쩡거리는 고블린에 시달렸다.
퍽!
화살이 고블린 대신 옆의 고목을 맞혔다. 고블린은 잽싸게 나무 그늘로 숨어 고개만 내밀었다. 그리고는 다시 숨었다. 엘프 순찰대원 헬레나의 활 솜씨는 저주받은 수준이었다. 에드워드는 다시 그녀의 평판을 하락시켰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성깔이 문제네, 이거. 너 조준 대충 하지?”
“사람은 사람마다 맞는 게 있기 마련이에요.”
“다트는 맞힐 수 있냐?”
“그건 대충 적 무리에 던진 다음 접근전 벌이는 용도죠.”
헬레나는 한숨을 내쉬며 활을 내려놓았다. 어느 엘프 가문이 에드워드한테 선물이랍시고 준 활이었는데, 잘 만들어진 물건이긴 했지만 쓸 사람이 없었다. 결국 활은 봉인당했다. 리안나는 헬레나의 활을 받아 짐마차 안에 집어넣은 다음 돌아왔다.
“쟤 쉽게 안 물러나네요?”
“멍청하거든. 계속 귀찮게 하면 먹을 거 안 주려나 하는 거지.”
“무시할까요?”
“그랬다간 훔치려고도 할걸.”
고블린은 곧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엔 아직 성체가 안 된 멧돼지의 등에 올라탄 채였다. 에드워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역시 전의 그 무리 패잔병이군. 저거 살려 둬도 되려나.”
“저놈도 멧돼지를 부리는 건가요?”
“부린다기보다는 얹혀사는 것 같은데. 그래도 내버려 두면 위험하겠지. 여하튼 귀찮네. 엄청 귀찮네.”
“그렇네요.”
적당히 맞장구쳐 주는 밴시를 향해 기사는 고개를 돌렸다.
“쟤는 네가 처리해라.”
“네? 어떻게요?”
“고블린은 어둠의 종족이고 밴시는 어둠에 한 발 걸친 요정이잖아. 네가 더 강하면 쟤가 너한테 복종하지 않을까?”
밴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둠의 종족들끼리는 힘의 논리가 우선해요?”
“인간과 요정은 안 그랬냐?”
에드워드가 손을 들어 보이자 리안나는 바로 납득했다. 그녀는 앞으로 나선 다음 나름 근엄하게 외쳤다.
“그 멧돼지를 걸고 결투를 신청한다!”
에드워드와 고블린과 멧돼지가 동시에 낄낄낄 웃어 버렸다. 인간과 고블린과 멧돼지에게 비웃음당한 밴시는 분노했다.
“다 나쁜 놈들이야!”
에드워드는 더 크게 웃고는 고블린을 가리켰다.
“쟤도 너한테는 안 잡히겠다는데?”
“응할 마음도 없어 보이네요. 쳇.”
베로니카도 킥킥 웃어댔다.
“고블린한테도 무시당하는 밴시라니.”
“네, 네. 전 그냥 세탁 노예죠. 어휴.”
에드워드는 리안나의 투덜거림을 뒤로하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거리 공격수가 필요하긴 하네. 아니면 아쉬운 대로 투척에 재능이 있는 자나.”
“저 돌 던질 줄 아는데요!”
리안나가 다시 말했지만 에드워드는 그 제안을 묵살했다.
“저기까지 닿냐? 여하튼 새 동료를 구해야…….”
“기다리시오! 기다리시오!”
에드워드의 말을 끊은 건 굵고 낮지만 다급한 목소리였다. 에드워드는 등 뒤를 돌아보았다. 짜리몽땅한 드워프 노인 하나가 봇짐 하나만 짊어진 채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의 검은색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걸 본 헬레나는 감탄했다.
“와, 드워프가 저렇게 빠르다니.”
“저긴 아르데니아 방향인데. 거기에 드워프도 사나?”
“거의 없죠. 제가 아는 얼굴이네요.”
“옆집 사람이야?”
“아뇨. 당신 덕에 만티코어의 동굴에서 살아 나온 상인이에요.”
“아, 그래?”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드워프 노인은 에드워드의 앞에 날다시피 도착했다. 그는 숨을 헉헉 몰아쉬었다.
“당신이 이단심문관의 호위기사이자 만티코어의 처형자인 에드워드요?”
“에드워드인 건 맞는데, 그런 호칭으로 불리기는 처음이네.”
“나는 위대한 소금산의 신민이자 황금대구 상회의 공동대표이며 붉은수염 에이뒤르의 아들인 가르달이요. 내 무례를 용서하시오.”
“무슨 무례?”
“당신이 좀 더 늦게 출발할 줄 알았소. 하마터면 감사의 인사도 안 한 놈으로 전락할 뻔했다니까. 엘프 도시의 영웅이 되었는데 좀 느긋하게 쉬다 가지 그러셨소? 초대장도 많이 받으셨을 텐데?”
“쉬기는 도시 밖에서 다 쉬었고, 도시에서 받을 건 다 받았고, 이단심문관이 걸음을 재촉하는데, 엘프 처녀들은 나한테 몸 던지는 데 흥미가 없었소.”
“푸하하하하하하!”
가르달은 마지막 말에 폭소해 버렸다. 그는 허리를 숙인 채 무릎을 치다가 말했다.
“엘프 년들이 다 그렇지요, 뭐.”
엘프 헬레나의 얼굴이 굳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인사는 끝났수?”
“아, 아직 아니오. 에드워드 경, 당신을 소금산에 초대하고 싶소.”
베로니카는 이마를 짚었다.
“엘프 도시 다음엔 드워프의 굴이냐? 왜 인간 교회와 이단심문관의 영역이 아닌 곳으로 자꾸 가게 되는 거지?”
“아, 권역이고 나발이고 사제끼리 좀 돕고 그러면 되잖소! 잠깐 들렀다 가라는 것뿐이오! 어차피 거기까지 가는 동안은 인간 교회의 권역을 지나칠 텐데?”
드워프의 말은 그럴듯했지만, 에드워드는 뚱한 표정이었다. 일단 인간 기준으로 드워프 여자는 미녀가 아니었다. 소금산의 드워프들은 광부에 상인들이라 돈은 많았지만 신기한 것을 갖지는 않았다.
“고맙긴 한데.”
에드워드까지 부정적인 투로 말을 시작하자 가르달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 빌어먹을 만티코어 새끼는 날 아껴 먹으려고 마지막까지 남겨 뒀소. 난 황금 같은 화물들이 전부 털리는 것도 모자라 내 눈앞에서 부하들과 일족들이 차례차례 잡아먹히는 걸 보았지. 당신은 그 복수를 대신해 준 거요. 불꽃의 마법사도 못 이긴 대괴수를 죽였지! 그런 사람을 그냥 보내면 내가 어찌 소금산의 명사로 남겠소?”
“드워프가 저리 말 많은 건 처음 보네요. 말 많으면 사기꾼이랬는데.”
엘프 헬레나의 반격이었다. 가르달은 한번 으르렁거려 준 다음 에드워드의 말고삐를 붙잡았다.
“제발, 내가 답례를 하게 해 주시오.”
“흠. 어떻게 하려고?”
“먼저 경에게 소금산의 진미들과 보물들을 대접한 다음, 집에 보관해 둔 내 무기와 갑옷을 꺼내 나도 성지로 갈 거요. 목숨과 복수를 빚졌으니 내가 당신의 방패가 되리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방패 더 늘었으면 좋겠다며?”
“넌 원거리 공격수가 필요하다지 않았니?”
그때였다. 갑자기 리안나가 비명을 질렀다. 모두가 돌아보니, 모두에게 무시당하던 고블린이 밴시의 머리채를 붙잡은 게 보였다. 에드워드는 인상을 쓰며 검을 뽑았다.
“아, 저 잡것이.”
그 순간 손도끼 하나가 날아가 고블린의 대가리를 쪼개 놓았다. 퍽! 놀란 멧돼지는 죽은 고블린을 내팽개치고 도망쳤다. 드워프 전사는 자기 짐을 내팽개치고는 다른 손도끼 하나를 들고 멧돼지를 쫓아갔다.
“사내대장부들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중에 감히 여자아이를 공격하다니, 내 이 짐승 같은 새끼들을 도륙 내고 말리라!”
“짐승 맞잖아.”
에드워드가 사소한 태클을 걸었지만 가르달은 개의치 않았다. 꽥꽥 소리 지르며 도망치는 멧돼지와 투척용 손도끼들을 든 채 쫓아가는 드워프는 한 편의 희극 결말 같았다. 정신없이 일행 주변을 맴도는 드워프와 멧돼지를 보며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솜씨 좋은 단거리 투척수를 겸하는 중무장 전사라. 뭐, 나쁘지는 않네.”
“우리 엘프 아가씨의 명중률은 절망적이니까 말이야.”
“끝까지 제 신경을 긁으시는군요. 제가 저 드워프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부터 증명해야겠네요.”
“저기요, 기사님? 고블린 사체가 제 머리카락을 안 놓는데요?”
일행이 잠시 어수선한 사이, 멧돼지는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가르달은 땀투성이가 된 채 멧돼지를 짊어지고 일행의 앞에 돌아왔다.
“소금산으로 방향을 잡기 전에 먼저 식사부터 대접하겠소.”
“알겠으니 무리하지 마쇼, 노인장.”
“노인장이라니! 드워프 나이로 아직 청년이오! 그저 노안일 뿐!”
“몇 살이신데?”
“인간으로 치면 아직 30대요!”
“은인에게 구라 치기요?”
“내 머리카락을 보시오! 어디에 백발이 있나!”
“새치 찾으면 한 가닥에 은화 한 개.”
“만티코어를 잡은 기사가 왜 이리 가볍소?!”
“가벼워야 만티코어 등에 올라가지.”
“그거 그럴싸하군!”
둘의 대화를 듣던 베로니카는 다시 이마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