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51)
51화 토끼뜀
아르데니아를 떠난 지 이틀째. 모닥불 앞에서 베로니카는 진지하게 인간 짐꾼이나 용병을 고용하는 걸 생각해 보았다. 지금 일행은 에드워드와 베로니카를 빼면 밴시, 엘프, 드워프로 다들 인간이 아니었다. 허리띠에 깃든 망령 캐슬린까지 포함하면 더 기괴해진다. 인간 교회의 일을 해결하러 다니는데 인간 비중이 너무 낮은 꼴이다.
업무와 출신종족은 별개라 쳐서 어떻게 넘어가더라도, 새로 합류한 전사 둘이 전부 에드워드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역시 문제였다.
해협도 건넜고, 인간 짐꾼이나 용병들을 고용해도 더는 뱃삯 따위의 큰 비용이 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베로니카는 먼저 두 전사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우리 일행에 사람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특히 제 부하요. 에드워드만 부하가 둘 늘었으니. 하인이든, 짐꾼이든, 용병이든.”
불행히도 둘의 조언은 부정적이고 뼈 아픈 지적이었다.
“다른 건 다 넘어가도 인건비는 어쩔 수 없소. 그랬다간 고정 비용이 크게 나갈 거요.”
드워프 가르달의 말이었다. 옳은 말이었다. 헬레나가 덧붙였다.
“병사를 고용하면 그들이 당신을 따를까요, 기사를 따를까요?”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봉급이 어디서 나오든, 강한 기사는 병사를 휘어잡을 수 있다. 베로니카가 일행의 주도권을 놓치게 될 가능성이 컸다. 주도권을 놓치면 목적도 흐려진다.
실망한 베로니카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망나니를 제어하려면 내 편이 더 있어야 하는데. 결국 교회에서 증원받아야 하나.”
“저는 에드워드 경한테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고, 짜리몽땅은 자발적으로 복종하니 말이죠.”
“누구더러 짜리몽땅이래? 아기맘마통만 살찌운 기괴한 년이?”
“그거 결투 신청인가요?”
그 망나니는 투닥거리는 엘프와 드워프를 구경하면서, 허리띠의 망령 캐슬린을 손안에 쥐고 있었다. 그는 엘프와 드워프를 이틀 동안 살펴본 뒤에야 캐슬린의 존재를 공개했다. 물론 자세한 내막은 빼고. 그들은 에드워드가 비범한 인간이며 그가 받은 저주 또한 비범한 것임을 새삼 인정했다.
에드워드는 캐슬린이 이미 죽은 유령이란 걸 보여 주기 위해 일행들 앞에서 그녀를 옷가지째 꼬깃꼬깃 접어 버렸으니까.
에드워드는 정육면체로 접힌 캐슬린을 동료들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현대 미술 걸작선.”
“미술가들 단체로 자살하는 소리 하네.”
베로니카가 핀잔을 줬다. 밴시 리안나는 짐마차 안에 숨어서 나오지를 않았다. 에드워드가 죽지 않는 존재를 다루는 법 같은 건 보기 싫으니까. 한참 뒤 겨우 원상복구 된 캐슬린은 훌쩍훌쩍 울면서 말했다.
“너무한 거 아니에요? 아무리 제가 건방지게…….”
“건방지게, 뭐?”
에드워드가 낮게 으르렁거리자 캐슬린은 다시 침묵했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망령 주제에 주인의 영혼을 욕심냈으니 징벌받아도 할 말은 없네.”
“엘프 시민의 자존심을 두고 내기를 하려 했다는 것도 추가해 볼까요?”
“왜 당신까지 날 괴롭히려고 그래?!”
헬레나의 말에 캐슬린은 기겁해서 외쳤다. 하지만 헬레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엘프는 망령한테 자비를 베푸는 법 따위 안 배워. 네가 에드워드 경의 수하가 아니었다면 벌써 허리띠째 불에 던졌을 거야.”
“잔인해!”
“드워프도 마찬가지다. 망령 붙은 허리띠라니. 바위 아래 깔아서 봉인해 버리지.”
가르달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캐슬린은 주변을 향해 눈을 홱홱 돌리다 포기했다.
“내 편은 아무도 없어요?”
에드워드는 짐마차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리안나, 너 얘 편 할래?”
“네 마리 늑대와 두 마리 양이 저녁밥으로 뭘 먹을까 투표할 때 양들은 누구한테 투표할 것 같아요?”
“다른 양에게 투표하겠지?”
“네! 전 잘게요!”
“야, 치졸한 꼬맹이!”
캐슬린이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리안나는 짐마차에서 나오지 않았다. 캐슬린은 본래 성격이 나온 듯 리안나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기사님이 너는 내버려 둘 거 같냐! 화살이 날아오면 널 방패로 들고 다니실걸!”
“그 화살 오늘 안 날아오면 그만이에요.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 집요정한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리안나가 볼멘소리로 대답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캐슬린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베로니카, 얘 그럼 계속 ‘실험’해 봐도 되냐? 그간 미룬 게 많았으니.”
“너무 멀리 가지는 마라?”
“알았어, 알았어.”
에드워드는 캐슬린을 일으켜 세운 다음에 숲속으로 걸어갔다. 잠시 뒤 그녀의 짧은 비명 소리가 들려오자 헬레나는 긴 귀를 까딱거렸다. 그녀의 얼굴이 조금 붉어지더니, 베로니카에게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저 망령은 천국의 수문장께 ‘그렇게 회개하지 좀 말라’는 소릴 들었다죠?”
“자기 말로는 그렇다네요. 그게 왜요?”
“아직도 그 잘못된 방식을 쓰는 것 같네요. 단어만 잘못했네 회개하네 그런 걸 쓰고 실제로 입에서 나오는 건 저주와 욕망과 쾌락과…… 이런, 이제는 오히려 애원하네요. 정말 끼리끼리 붙었다는 소리밖에 못 하겠어요.”
가르달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엘프는 역시 고상한 취미를 가지셨군.”
“절로 들리는 걸 어쩌라고요.”
드워프의 비웃음에 헬레나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그녀는 다시 베로니카를 향해 말했다.
“저런 망나니 기사가 성지로 간다고 저절로 자기 실수와 죄를 뉘우칠까요? 과연 저주에서 풀려날까요?”
“모르죠. 저주받기 전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나름대로 규칙을 존중하는 놈이니까. 게다가 도시를 구하기 위해 만티코어를 잡은 기사…… 그건 대단한 업적이죠. 빛의 증거라고 볼 수도 있고. 그런 일들이 이어지면 저 녀석도 뭔가 깨닫는 게 있겠죠? 빛은 모두에게 길을 보여 주니까.”
헬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악마가 더 좋아할 인간상이에요.”
그때였다. 갑자기 캐슬린의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숲을 울렸다. 모두는 화들짝 놀라 무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지?”
가르달이 눈을 부릅뜨고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았다. 잠시 뒤 알몸이 된 캐슬린이 일행을 향해 뛰어왔다.
“토끼! 토끼가 나타났어요!”
이해가 안 가는 말이었다. 헬레나는 다시 베로니카를 향해 말했다.
“베어도 될까요? 미쳤거나 우릴 홀리려는 같은데.”
“저한테 허락받을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토끼라니, 설마 기사 양반이 조루라는 겐가?”
가르달의 의문에 베로니카는 풋 웃어 버렸다.
“아뇨. 제가 봤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어머, 그거 인간 이단심문관의 관찰 대상에 포함되는 거예요?”
헬레나가 말하기가 무섭게 역시 알몸인 에드워드가 나타났다. 그는 공중을 붕 뜨다시피 날아서 일행의 앞에 떨어졌다. 데굴데굴. 일행은 경악했다. 베로니카가 먼저 외쳤다.
“야! 무슨 일이야?”
“빌어먹을 토끼 새끼!”
에드워드는 대답 대신 욕설을 내뱉었다. 일행은 더욱 혼란에 빠졌고 에드워드는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짧은 경고를 외쳤다.
“엎드려!”
그 순간 달빛이 사라졌다. 일행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 토끼 무리를 보았다.
“저게 대체 뭐야?!”
베로니카가 일행 모두의 마음을 대변해 외쳤다. 우지끈! 한 거대 토끼가 짐마차 지붕을 짓밟자 지붕이 무너졌다. 그 아래서 잘만 자던 리안나가 비명을 내질렀다.
“투표 다시 할게요!”
리안나가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토끼는 다시 뛰어올랐다. 펄쩍펄쩍.
다행히 거대 토끼들은 일행을 짓밟거나 잡아먹는 데 관심이 없었다. 놈들은 그저 일행의 머리 위를 지나쳐 반대편으로 지나갈 뿐이었다. 잠시 뒤에는 평온이 찾아왔다. 에드워드는 벌떡 일어나서는 투덜거렸다.
“만티코어를 잡은 기사가 토끼의 발에 채여 땅을 구르다니.”
“다친 사람 있어요?”
베로니카가 소리쳤다. 다행히 답변은 차례대로 들려왔다.
“괜찮아요.”
“괜찮소.”
“누가 저 좀 꺼내 주세요!”
베로니카는 캐슬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땅에 무릎 꿇은 채 바들바들 떨면서 말했다.
“제 잘못 아니에요.”
“그건 보면 알아.”
에드워드는 도로 숲속으로 들어가더니, 자기 옷을 챙겨서 돌아왔다. 죽은 토끼도 한 마리 들고 있었는데, 바닥에 질질 끌다시피 해서 왔다. 베로니카가 그 토끼를 들려면 양팔로 끌어안다시피 해야 할 정도의 크기였다.
“이 새끼 좀 봐. 4피트는 넘겠어.”
에드워드의 말에 일행은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문제의 토끼는 그만큼 큰 놈이었다. 무너진 지붕 밑에서 뒤늦게 기어 나온 밴시 리안나는 거대 토끼를 보자마자 의문을 제기했다.
“또 연금술인가요?”
“그런 일이 또 벌어질 것 같지는 않은데.”
베로니카가 중얼거렸다. 거대 꼽등이 사건을 모르는 헬레나와 가르달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지만. 리안나는 그 무시무시한 토끼 떼를 보지 못했기에 좀 더 긍정적이었다.
“거대 꼽등이보다는 그래도 거대 토끼가 낫네요. 토끼 귀엽잖아요. 맛있고. 사람을 먹지도 않겠지.”
리안나의 말에 에드워드는 이죽거렸다.
“뉴비야, 옛날옛날에 만렙토끼라는 게 있었는데 말이다…….”
“또 이상한 이야기 지어낸다.”
베로니카는 핀잔을 준 다음에 토끼를 좀 더 살펴보았다. 한참 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일어났다.
“저주나 병 같은 건 안 보여. 아주 건강한 토끼야. 뿔도 없고.”
“대륙 토끼에 뿔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 보는데?”
“볼퍼팅어라는 괴물이 있어. 하지만 그놈들이 이렇게 크다는 이야긴 못 들었지.”
베로니카는 간만에 자기 책을 꺼냈다. 리안나는 잽싸게 양초를 꺼내 불을 붙이곤 베로니카 가까이에 놓았다. 베로니카는 종이를 줄줄이 넘기다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잊어버린 게 있나 해서 다시 살펴봤지만, 역시나. 이렇게 덩치 큰 토끼들, 그것도 무리를 이루는 예에 대한 기록은 없어. 다른 동물의 예도 없고.”
“뭐, 저주받은 게 아니라면 일단 먹어 봅시다.”
가르달이 도끼와 단검을 꺼내며 말했다. 헬레나는 짐마차에 시선을 돌렸다.
“지붕도 수리해야겠군요.”
에드워드는 지붕을 보았다. 그의 손아귀 힘을 썼다간 수리하기는커녕 더 부수고 말 것이다. 토끼 손질도 가르달이 능숙하게 해치우는 바람에 할 일이 없었다. 그는 베로니카의 눈치를 보다가 캐슬린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하던 거 마저 하고 올게.”
“귀신이랑 하면 재밌니?”
“재미는 있는데 산 사람은 아니니까 촉감이 왔다 갔다 해서 영 별로더라. 딱딱해지거나 물컹거리거나 순 제멋대로라니까. 이상하게 찌그러지는 거 보면 좀 깨기도 하고. 이런 걸 전문 용어로 오…….”
“내가 니 소감을 물어본 걸까, 다른 일 좀 찾아서 하라는 의미로 말한 걸까?”
“쳇.”
베로니카의 고전적 잔소리에 에드워드는 캐슬린을 놓아 주고 옷가지를 챙겨 입었다.
“토끼를 경계한다는 말이 웃기긴 한데, 일단 내가 경비를 설게. 뭐, 토끼 주제에 별일이야 있겠어?”
다들 그렇게 사태가 일단락되는 줄 알았다.
다음 날 아침, 일행은 토끼굴로 초토화가 된 길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
“이 빌어먹을 토깽이들.”
에드워드는 욕부터 내뱉었다. 거대토끼 사이즈의 토끼굴로 갈아엎어진 길은 마차가 통과할 수 없었다. 말도 마찬가지였다. 다리가 굴에 빠지기라도 했다간 바로 골절이다. 다리가 부러진 말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뼈를 맞추고 치유 주문을 써도 그 전의 완벽한 상태로 돌아온다고 장담 못 한다.
“할 수 없지. 돌아서 간다.”
베로니카가 빠른 결정을 내렸다. 머뭇거려서 좋을 게 없었다. 에드워드는 허리띠를 풀었다.
“캐시, 멀쩡한 길 있는지 좀 앞서가 봐.”
“네!”
허리띠는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베로니카는 그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생각보다 빠른데? 뭐, 달리는 말보다야 느리겠지만.”
“내가 달리긴 귀찮을 때 쓰면 딱이지.”
“그건 그렇네. 잘 연구했어.”
“그렇지? 정탐용으로 써 보려고.”
“마녀들은 부엉이를 쓰고 유목민은 개를 쓴다고 들었지만, 허리띠의 유령이라니. 신선하네. 근데 쟤 날아다니는 동안 너는 허리띠 없고 주머니도 못 건드리네?”
“허리띠 하나 더 차고 다녀야겠지.”
잠시 뒤 허리띠가 돌아왔다. 캐슬린은 에드워드의 허리에 저절로 묶이고는 자기가 보고 온 것을 떠들어댔다.
“동쪽 샛길로 가면 아직 멀쩡한 길이 있어요! 근처 밭들은 초토화가 됐지만.”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겠군.”
에드워드는 낄낄 웃고는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잠시 뒤 일행은 샛길 중간쯤에서 마을을 볼 수 있었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는데, 밭들은 캐슬린의 보고대로 초토화된 뒤였다. 마을 입구에는 소년 소녀들이 드러눕거나 주저앉아 있었는데, 에드워드 일행을 보자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에드워드는 그들이 구걸이라도 하려나 했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상 밖의 것이었다.
“아르데니아에서 오신 거죠? 아가티우스 님을 도우러 오신 건가요?”
헬레나는 정색하고 글레이브를 들었다. 아가티우스, 만티코어 앞에서 에드워드 일행과 자기 병사들을 버리고 달아난 엘프 지휘관. 에드워드는 소년 소녀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새끼 여기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