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53)
53화 토끼굴
밴시 리안나는 푸르고 부드러운 풀밭 위에 섰다. 따사로운 햇빛과 시원한 바람, 평화로운 새 울음소리,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산들. 리안나는 풀밭 위를 빙글빙글 돌며 저절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곳은 고통이 없는 낙원이었다.
평화를 즐기던 밴시 리안나는 저 아래에서 익숙한 누군가를 발견했다. 그는 전속력으로 리안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에드워드였다. 리안나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기사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기사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괴성을 질렀다. 산봉우리와 바람과 새들의 노래를 잠재우는, 분노의 괴성이었다. 잠시 뒤 기사는 하나가 아니라 무리로 늘었다. 그 무리의 구성원들도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세탁소 도제들, 거대 꼽등이들, 스트롬니스의 악동들, 트롤들, 악마 선장, 백작령의 시체들, 고블린들, 멧돼지들, 만티코어, 그리고 거대 토끼.
눈을 까뒤집은 그들은 밴시 리안나를 향해 분노의 합창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악!”
공포에 질린 리안나는 뒤로 돌아서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풀밭은 전력 질주하는 괴물들과 인간들로 가득 찼다. 그 선두는 여전히 에드워드였다. 그들은 점점 빨라졌다.
“밴시 살려!”
리안나는 비명을 지르다 깨어났다. 식은땀이 가득한 밴시는 자기 앞에 서 있는 에드워드를 보고 졸도할 뻔했다.
“밴시도 꿈을 꾸긴 꾸는군.”
에드워드의 감상평이었다. 그는 밴시의 뒷덜미를 잡고는 끌고 갔다.
“뭔 꿈을 꿨냐?”
“푸른 풀밭의 낙원에서 노래하고 있었는데…….”
“[사운드 오브 뮤직>?”
“그게 뭐예요?”
“그런 희극이 있어.”
“……갑자기 저 멀리서 괴물들이랑 악당들이 저를 쫓아왔어요.”
“[28주 후>?”
“그건 또 뭐예요?”
“그런 비극이 있어.”
“시작은 희극이고 끝은 비극이라니.”
“합치면 [사운드 오브 28주 후>인가. 재밌겠네.”
리안나는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왜 밴시는 꿈에서도 행복할 수 없을까요?”
“밴시가 행복하면 통곡을 어떻게 하겠냐?”
“그렇긴 한데요오…….”
에드워드와 리안나는 도로 일행으로 돌아갔다.
엘프 헬레나는 자신의 글레이브를 쥐고 그 자루로 땅을 쿡쿡 찔러 보고 있었다. 에드워드가 제안한 방법이었다. 가르달은 땅을 박박 기면서 단검으로 땅을 찔러 보았다. 베로니카는 그 둘의 ‘경로 개척’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뭔가 묘한 풍경이네.”
“그러게. 베트콩 땅굴 찾기 같네.”
“베트콩이 뭔데?”
“여긴 없는 거. 알면 다쳐.”
베로니카의 시선이 기묘해진 걸 무시하고, 에드워드도 열쇠검을 꺼낸 다음 땅을 쿡쿡 찔러 보았다. 토끼굴은 놈들이 먹지 않는 가시풀, 독초 따위가 무성하게 자란 탓에 눈에 쉽게 띄지 않았다. 바위, 그늘 따위와 합쳐진다면 더욱 그렇다.
“제 글레이브 자루로 토끼굴이나 쑤시는 날이 올 줄은 몰랐군요.”
헬레나의 넋두리였다. 가르달이 비웃었다.
“있는 도구를 다양하게 안 쓴다면 그건 경험 부족이란 소리밖에 더 되나?”
헬레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그녀의 글레이브 자루가 쑥 하고 땅속으로 들어갔다. 헬레나는 토끼굴 입구를 휘저은 다음 말했다.
“3개째.”
“안에 뭐 있어?”
가르달이 물었다. 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땅굴에서 자루를 뺐다.
“있네요. 웅크리고 있어요.”
“겁먹었군. 조심해.”
가르달이 경고하기 무섭게 거대 토끼가 튀어 올랐다. 헬레나는 주저 없이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퍼억! 토끼는 머리가 반 토막이 난 채 허공으로 날아갔다. 사방으로 튀는 피 보라에 밴시 리안나는 영 좋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가르달도 마찬가지였다.
“멍청한 엘프야, 그걸 왜 베냐? 그냥 보내지? 왜 도망치는 걸 베어?”
“저놈이 제 글레이브 앞에 뛰어든 거예요.”
헬레나는 가르달을 가볍게 무시했다. 에드워드는 뇌가 드러난 채 꿈틀거리는 거대 토끼를 열쇠검으로 내리찍어 완전히 침묵시켰다.
그다음은 가르달 차례였다. 그가 토굴을 발견하고 땅바닥에 더 납작 엎드리는 순간 토끼가 뛰어올랐다. 가르달은 놈이 자기 머리 위로 지나가길 바랐지만, 놈은 그의 등을 밟았다.
“컥!”
가르달은 숨 토하는 소릴 냈다. 토끼는 잽싸게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고 가르달은 이를 갈았다.
“이 망할 놈의 토깽이 새끼! 그냥 지나갈 것이지! 무겁잖아!”
“드워프는 단단하니까 거대 토끼한테 자비를 베풀어도 괜찮겠죠?”
헬레나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리안나의 목덜미를 잡았다.
“내 방식도 한번 해 봅시다.”
“토끼는 옷 안 입는데요?”
리안나가 반문했다. 밴시의 울음소리 따위 안 통할 거란 말이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리안나의 허리춤에 밧줄을 묶더니 다음 토끼굴로 향했다. 이번 토끼굴은 가려진 것 없이 훤히 드러난 놈이었다. 그는 리안나를 그 굴로 던져 넣었다.
“꾸엑!”
리안나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솟아올랐다. 그녀를 걷어찬 토끼는 바로 도망쳐 버렸다. 에드워드는 날아오르는 그녀를 밧줄로 붙잡은 다음 말했다.
“이제 비었어.”
“기사님, 꼭 지옥 가세요!”
토끼한테 얻어맞은 리안나의 말이었다. 허리띠 밖으로 나온 캐슬린은 그 꼴을 보더니 깔깔 웃어 댔다.
“꼬시다, 꼬맹이!”
“기사님, 저 허리띠의 망령도 토끼굴에 처넣으시죠!”
“너 기절한 사이에 해 봤는데, 토끼는 유령을 무시하더라.”
“안 돼! 왜 나만!”
리안나가 좌절하거나 말거나, 에드워드는 다음 땅굴을 찾기 시작했다.
일행은 조금씩 토끼굴이 없는 곳을 찾아가며 전진했다. 피할 수 없는 토끼굴은 리안나의 몫이었다. 토끼가 뛰쳐나온 굴은 이제 안전했다.
절반쯤의 지점에서 잠시 휴식. 리안나와 캐슬린이 서로의 머리채를 붙잡고 투닥거리는 동안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속도면 예상보다는 느리겠지?”
베로니카는 마을 청년 밀란을 돌아보았다. 그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해지기 전에는 도착할 것 같습니다. 내려갈 때는 좀 어둡겠군요.”
가르달은 헬레나에게 죽은 토끼를 해체하고 있었다. 육중한 놈인지라 저녁 분량까지 나왔지만 에드워드는 인상을 썼다.
“우리 지금 몇 끼째 토끼고기를 먹고 있는 거지?”
“어젯밤, 오늘 아침, 오늘 점심까지 3끼째네.”
베로니카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여름 토끼는 발정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심해서 지방이 적고 향도 옅다.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요리사가 필요해. 소금 치고 굽는 수준을 넘어서야겠어.”
“앵글리아인치고는 미식가네.”
“말 안 했나? 내 제일 장기는 팬케이크지. 왕세자 옆에서 맨날 구웠거든.”
“그런데 나하고 여행할 때는 왜 한 번도 안 만들어?”
“이놈의 손아귀 힘 때문에 툭 하면 프라이팬이나 주걱이 작살 나거든.”
“힘 조절 훈련으로 쓸 만할 것 같은데.”
“됐어. 이미 사고도 많이 줄었는데 뭘. 그리고 난 팬케이크 안 좋아해. 왕세자가 좋아했지.”
둘의 대화를 듣던 가르달은 웃으면서 말했다.
“원래 사람은 남이 해 주는 밥을 더 좋아하기 마련이오. 그런데 내가 합류하기 전 여행 중 식사는 누구 몫이었소?”
에드워드가 바로 대답했다.
“처음엔 베로니카의 하인들.”
“응? 그 하인들 어디 갔소?”
“내가 감옥에서 막 나온 때라 힘 조절이 어려워 실수로 걔들 팔다리와 말들을 조졌더니 다 떠났소.”
“저런. 그 다음엔?”
“베로니카가 솥을 맡았소. 밴시는 독초를 먹더라고.”
가르달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리안나를 쏘아보았다.
“넌 솥에 절대 접근 금지다.”
“와, 드워프 할배가 기사님이랑 똑같은 소릴 한다!”
“누구더러 할배래!”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삭정이를 주워다 모닥불에 내던졌다. 그리곤 헬레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엘프들 요리는 뭐 좋은 거 있어? 여행이나 원정 중에 먹을 만한 거.”
“……시민병은 먹는 것에 그리 연연하는 편은 아닌지라.”
헬레나는 에드워드를 외면했다. 에드워드는 그녀의 시선 처리가 뜻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엘프도 짬밥은 별수 없나 보군.”
가르달은 솥에 부순 비스킷과 토끼고기와 간, 피를 넣고 대충 저어 보더니 말했다.
“물을 반은 썼소. 속도를 높이든가, 수원을 찾읍시다.”
“밀란, 이 근처에 시내 있나?”
“목적지와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길에 하나 있습니다.”
“그럼 속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겠군.”
에드워드는 자기 몫의 죽을 그릇에 받았다. 피 때문에 거무튀튀한 갈색이었다. 비린내도 남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베로니카는 죽을 한 스푼 떠먹더니 말했다.
“근로 의욕을 높이는 음식이네.”
그녀는 절반만 먹고 리안나에게 남은 죽을 넘겼다. 밴시는 2배나 늘어난 죽그릇을 행복하게 비웠다.
“전 먹을 만한데요!”
먹을 필요도 없고 먹지도 못하는 캐슬린은 리안나의 뒤에서 죽그릇을 기웃거리더니 말했다.
“얘는 고기 때문에 존엄을 내팽개치고 사네.”
에드워드와 베로니카는 웃어 버렸다.
* * *
고기를 충전한 리안나는 종래보다 좀 더 의욕적인 자세로 토끼굴에 내던져졌다. 3번 중 2번이 토끼 당첨일 때까지만.
“추가 수당을 요구합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도 주님의 은총이랬는데!”
“어디서 이상한 문구를 주워들었어?”
에드워드는 요구를 묵살하고 4번째 토끼굴을 향해 리안나를 집어 던졌다. 잠시 뒤 리안나가 도로 기어 나왔다.
“여긴 토끼 없어요!”
일행은 빈 토끼굴을 지나쳐 바위에 올랐다. 그 순간 문제의 소나무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데 거대 토끼가 아니라 일반적인 크기의 토끼 두 마리가 그곳을 지키는 듯 맴돌고 있었다. 그 작은 토끼들 주변에는 짐승의 뼈가 흩어져 있었는데, 척 봐도 갯과 동물이었다.
토끼 놈들은 이쪽을 보고 있었다.
부적을 확인한 베로니카는 잠시 머리를 굴리더니 말했다.
“저 작은 토끼들은 니코스가 배치했겠지. 아마 부적을 지키기 위한…….”
그녀가 말하는 순간 한 토끼가 소나무 위로 펄쩍 뛰어오르더니 주둥이로 부적을 뽑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땅에 내려와 도망치기 시작했다. 베로니카는 바로 판단을 내렸다.
“헬레나, 가르달! 도망친 놈 쫓아가요!”
“어, 남은 놈은?”
가르달이 되묻자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가리켰다. 가르달은 더 묻지 않고 바로 달렸다. 헬레나는 출발이 가르달보다 늦었지만, 속도는 더 빨랐다. 그녀는 산길을 날듯이 달려갔다.
베로니카는 남은 토끼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 챔피언. 네 차례야.”
그러나 에드워드는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는 베로니카에게 먼저 확인 절차를 거쳤다.
“저게 뭔데?”
“부적을 지키도록 명령받은 놈들이야. 하나가 시간을 끌고, 다른 하나가 각개격파하는 식이겠지. 뭐, 하지만 저까짓 토끼 따위야.”
마지막 말은 만티코어도 잡은 기사가 토끼 따위를 못 잡겠느냐는 의미가 다분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거대 토끼가 아니라 작은 토끼. 그리고 주변에 흩어진 동물 뼈들.
“저거 굉장히 불길한데.”
에드워드가 중얼거렸다. 그 순간 마을 청년 밀란이 나섰다.
“기사님까지 나설 필요도 없죠. 저건 제가 잡겠습니다.”
밀란은 몽둥이를 들고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 순간 토끼가 번개같이 뛰어오르더니 밀란의 몽둥이를 물었다. 와작!
“으악?!”
밀란은 놀라서 몽둥이를 버리고 물러섰다. 토끼의 주둥이에 물린 몽둥이는 썩은 나뭇가지처럼 부러져 버렸다. 놈은 몽둥이를 내던지고는 다시 밀란을 향해 뛰어올랐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둘 사이에 가까스로 끼워 넣는 데 성공했다. 깡! 열쇠검과 토끼 이빨이 부딪히면서 쇠 깎는 소리가 울렸다. 에드워드는 검을 힘껏 휘둘러 토끼를 날려 버렸다. 하지만 놈은 나무 사이에 떨어지더니 이쪽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향해 말했다.
“만렙토끼라는 거 내가 전에 이야기했지?”
“하다 말았지.”
“그게 사슬갑옷에 깡통투구 쓴 기사들의 천적인데 말이야.”
“뭐?”
에드워드는 쓰게 웃었다.
“저게 그놈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