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56)
56화 주술은 토끼입니까
밀란이 당황하고 에드워드가 변명하고 전 촌장이 끼어들고 헬레나가 진절머리를 내며 자리를 피하는 짧은 소동이 끝나고 아침이 밝았다.
평소 입던 것보다 간소한 장식의 여벌 사제복을 입은 베로니카는 잔뜩 골이 났다. 간밤에 있던 일을 헬레나한테 들은 그녀는 해뜨기 무섭게 에드워드와 밀란을 한 탁자에 앉혀 놓고 서슬 퍼런 질문을 던졌다.
왜 마을 처녀들도 헬레나도 캐슬린도 아니라 전 촌장이었는가? 에드워드는 이 질문에 대해 다양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래도 하프 엘프라서 미모가 어느 정도는 받쳐 줘서, 밉살스러운 아가티우스의 것을 하나라도 더 뺏고 싶어서, 나름 고생을 했는데 보상이 토끼가죽을 판매한 대금 일부와 허리띠 하나에 불과해서, 캐슬린은 산 여자가 아니라서, 헬레나는 아직 딱딱해서 등등.
어쨌든 베로니카는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 아들 면상에 대놓고 음담패설을 하니? 너 저주 왜 받았는지 벌써 까먹었어? 그 입 때문에 걸린 저주 해제하려고 순례 중인데, 입으로 죄를 더 쌓니?”
“그러게. 술 끊어야겠는데.”
“지키지도 않을 소리 하지 마. 거짓 맹세의 죄까지 추가될 거야.”
“미안.”
“전 촌장과 밀란한테도 사과해.”
“아니, 그 여자는 그것밖에 칭찬할 게 없더라. 그리고 뭐 어때. 서로 갈라섰으면서.”
에드워드의 말에 베로니카는 기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밀란은 크게 화내지 못하고 마지막 말을 긍정했다.
“틀린 말씀이 아니더군요. 저와 어머니는 어제 갈라섰으니까요. 갈라선 주제에 화를 내는 것도 어색한 일이긴 하죠.”
“너 쟤한테서 어제 뭔 소릴 들었기에 그런 음담패설을 용납하니?”
“서로 화해하라는 뜻으로 좋게 해석하렵니다. 기사님 덕에 어머니의 기분이 좀 풀렸더군요.”
“이 종마 자식의 밤일에 대해서는 설명 안 해도 돼.”
“아뇨. 그게 아닙니다. 기사님이 어머니한테 거래를 제안했답니다.”
“거래?”
“어머니는 아르데니아의 시민권이 물 건너간 데다, 이제 마을에서 따돌림까지 받게 됐습니다. 사람들과 화해하려 해도 시간이 필요할 테고, 애정을 붙일 곳 역시 필요하겠죠. 만에 하나의 경우 탈출구도 필요하고요.”
“……그래서?”
“기사님이 아르데니아에 편지를 써 주기로 했습니다. 증표랑 함께요.”
에드워드는 밀란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 쪽이 난 검은색 원판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베로니카의 눈빛이 묘해졌다.
“앙베르 백작령에서 주운 주술 도구?”
“이미 효과는 없는 거라니까 이번에 증표로 쓰려고.”
에드워드는 베로니카의 눈앞에서 원판의 쪼개진 부분을 합쳤다 떼어 놓길 반복했다. 베로니카는 그게 무얼 뜻하는지 알았다. 반쪽은 아르데니아에, 반쪽은 하프 엘프에게 맡긴다.
“만티코어를 잡은 기사의 자녀라면 아르데니아에서 보살펴 줄 것이다?”
“사생아지만.”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뒤에 선 헬레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헬레나 양 의견은?”
“정식 결혼으로 태어난 자녀라면 두말할 것 없이 환영하겠지만, 사생아는 좀 묘하네요. 그래도 거절하지는 않을 거예요. 대우가 문제지. 후견인을 배정한 다음 교육시켜 주기는 하겠죠. 군에 복무한다면 시민권을 얻을 수도 있고.”
베로니카는 다시 에드워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빛의 교리가 다산을 장려하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사생아도 죄인데.”
간음하지 말지어다. 그런 계율 없는 종교가 없는 편이긴 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개의치 않았다. 현실은 항상 도덕과 괴리가 있는 법이다.
“알 게 뭐야. 임자 있는 여자 뺏은 건 아니잖아. 그리고 교황도 사생아 열둘은 있을걸. 나 정도면 책임은 다한 거지.”
“한 대 칠까 보다. 흥. 그래도 인심 좀 썼네? 네 정식 자녀에게 써도 모자랄 기회를.”
“아르데니아 근처로 다시 올지 어떨지도 모르는데 뭘. 그리고 그때는 또 따로 부탁하면 되지.”
“아르데니아를 얼마나 빨아먹으려는 거야?”
“아주 쪽쪽 빨아먹을 거다.”
에드워드가 헬레나를 힐끗 돌아보자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곤 대답했다.
“아마 거절은 못 할 거예요.”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아가티우스의 딸내미 아니랄까 봐, 바로 납득하고 침실로 안내하더군. 오지도 않을 엘프의 씨앗보다는 영웅 기사의 씨앗이 더 좋지.”
베로니카가 할 말을 잃고 에드워드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반쪽이 난 원판 중 하나를 밀란에게 내밀었다.
“여하튼 내가 실례를 했으니 배상을 해야겠군. 이 증표는 이제 네 거다. 네 엄마가 또 헛짓거리하거든 증표 숨겨 둔 위치 안 알려 준다고 해 버려.”
밀란은 순순히 원판을 받았다. 그제야 주변 사람들은 에드워드와 밀란이 간밤에 어떻게 소동을 수습했는지 알았다. 가르달은 감탄하는 소릴 냈다.
“아, 설마 의도한 거요?”
“몰라.”
에드워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가르달을 향해 눈을 흘겼다.
“즉흥적인 거겠죠. 설마 이 개판을 처음부터 의도했겠어요? 쟤는 계획 세우고 움직이는 타입 아니에요.”
“계획은 항상 바뀌는 법이라고 해 줘.”
에드워드가 태클을 걸었다. 어쨌든 밀란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만, 그냥 어머니께 바로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러든가.”
에드워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밀란이 조금만 더 엇나간 사람이었다면 큰일날 짓들을 태연히 저지르네. 쟤가 간밤에 도끼로 네 머릴 찍거나, 네 불쌍한 사생아에 증표를 안 넘겨주고 심술 부리면 어쩌려고?”
“하늘이 두 번 뒤집어져도 겨우 시골 청년 따위한테 도끼나 칼 맞을 일 없어. 여기 증인이 없는 것도 아니니, 다 생각해서 편지 써 놓으면 되는 거고. 그리고 이 청년이 그 정도로 엇나간 인간이 아니라는 건 이미 우리도 확인했잖아.”
“한 놈은 호구고 한 놈은 망나니니 참 잘 만났네. 너네는 둘 다 장사 같은 거 하지 마.”
“나처럼 양심적인 망나니 봤냐?”
에드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떨떠름한 표정의 일행들을 뒤로하고 그는 마구간을 향했다.
“뭐, 여하튼 그렇게 풀린 거지. 말 운동시키게 잠깐 한 바퀴 돌고 온다.”
“또 여자 낚으려고?”
베로니카의 힐난에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글쎄. 오는 건 거절 안 하겠지만. 네가 어제 옆 터진 옷 계속 입고 있으면 안 나갈 것 같은데.”
“내가 누구 좋으라고 그런 서비스를 하니?”
“나.”
에드워드는 다시 잔소리를 시작하는 베로니카한테서 도망쳤다. 그는 말을 타고 마을을 나섰다. 밀란이 한두 번 더 치료받고, 부적을 정화하고, 도시에서 토끼가죽 선금을 받아오는 동안은 시간이 남아돌았다. 그 남는 시간 동안, 에드워드는 오락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을 주민들의 인사를 하나하나 다 받아 주던 그는 영주가 된 느낌마저 들었다.
“내가 내 영지를 가지면 이런 느낌이려나.”
에드워드는 아직 토끼들이 파헤치지 않은 쪽으로 길을 잡았다. 그때 문득, 그의 눈에 한 수도사가 들어왔다. 떠돌이인지 옷차림이 후줄근했다. 그는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그를 향해 천천히 말을 몰았다. 수도사는 고개를 들어 기사를 보았다.
“이런 시골길에 기사 양반이라니, 무슨 일 있소?”
“거대 토끼와 볼퍼팅어가 근처 마을의 안전을 위협했다.”
“저런. 어쩌다가?”
“떠돌이 주술사 니코스가 부적을 썼는데 숫자 하나를 잘못 써 넣었다지.”
수도사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에드워드는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니코스지? 설마 바로 만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파하하. 아니라고 해도 안 믿을 기세군. 마음대로 생각하시오. 검이라도 뽑을 거요?”
하지만 에드워드는 검을 뽑지 않았다. 대신 웃었다.
“뭐, 네놈한테 악의는 없었던 것 같으니 넘어가지. 덕택에 여자도 하나 안아 봤고.”
“난 니코스가 아니오. 다만 그가 악당이라는 건 터무니없는 모함이라오.”
수도사도 웃으면서 말했다.
“주술사 니코스의 이야기를 들어 보셨소?”
“어떤 이야기?”
“그의 행보가 그렇듯 항상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오. 옛날에 한 공주님이 유부남을 사랑해 버리는 바람에, 그를 유혹해 이혼시키기 위해 사랑의 묘약을 주문하셨는데…….”
“하셨는데?”
“니코스가 재료 하나를 깜빡하는 바람에 개 발정제가 됐지요.”
“푸하하하하핫!”
에드워드는 포복절도 하고 말았다. 수도사도 웃으면서 말했다.
“궁성의 모든 사냥개들이 공주님의 방을 포위하는 바람에 난리가 났다오.”
“그럼 그 공주님은 개들과 재미 보셨나?”
“다행히도 당분간 방에 갇혀 못 나오는 걸로 끝났소. 사냥개들은 궁성 밖으로 쫓겨났고.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니코스를 잡아 죽이려 했지만 그는 이미 도망쳐 버렸지.”
“웃기는 이야기긴 하네.”
수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의 지휘를 받던 시절엔 오크 부족에 들어갔다가 쫓겨나기도 했다오.”
“어쩌다가?”
“그냥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부족장이 제발 꺼져 달라고 무릎 꿇고 빌었대나.”
“그럴 만하겠네.”
“그래서 사람들이 니코스는 신이 준비한 도구라고도 하오. 자기가 그 주술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욕심쟁이일수록, 그에게 의뢰할 때 큰 불행을 맞닥뜨린다고.”
“시골 사람들처럼 소박한 소원을 빌면 나름대로 복을 받고?”
“그리 되었다면 그 또한 신의 뜻 아니겠소?”
“염병하네. 앙베르 백작령을 기억하나?”
“모르오.”
“그 성의 사람들은 악령한테 싸그리 다 죽었다. 후계자와 전속 사제만 남겨 두고. 그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죽었냐? 그들이 니코스한테 무슨 소원을 빌었어?”
수도사는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뒤 고개를 저었다.
“니코스는 앙베르 백작령에 간 적 없소.”
“희생자 중 하나한테 악마의 도서관과 연결하는 주술을 가르쳤다던데?”
“내가 힘을 가져오는 대상은 ‘악마의 지식’이니까. 제자도 같은 걸 섬기는 거지.”
니코스는 이제 숨기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턱을 왼손 주먹에 괴고 생각에 빠졌다.
“그래, 그놈이 죽었군. 멍청한 놈. 그렇게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거늘.”
이미 결말을 다 들여다본 것 같은 투였다. 에드워드는 그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할 수 있나?”
“주술사가 영주와 결탁했거나 서로 반목했겠지. 흔한 일이오. 영주의 가신에는 주술사가 포함될 때도 있으니까.”
전속 사제, 전속 마법사, 전속 주술사, 전속 연금술사, 주치의 등. 재주가 있다면 한두 직위를 겸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앙베르 백작령에서 주술을 실행하고 죽은 시체가 일반 병사 차림새였던 것을 기억해냈다.
“좋은 옷을 입지는 않았어. 병사로 위장하고 있었지. 성 밖에는 자기 패거리가 대기했던 것 같고.”
“자세한 사정 따위는 모르오. 알고 싶지도 않고.”
니코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초짜 주술사가 자기 주술에 잡아먹힌 것뿐이오.”
“후진 양성에 실패하셨군. 아니면 책임 전가인가?”
니코스는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포기하지는 않을 거요.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고 나는 그럴 힘이 있으니까.”
에드워드는 땅에 침을 뱉었다.
“꺼져. 저 마을은 이제 네 도움이 필요없다.”
“당신은 어떻소?”
“나?”
“악마들이 당신 이야기를 하더군.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주술사가 눈앞에 있소. 동료로 넣는 것도 재밌을 것 같은데?”
에드워드는 장갑을 벗어 손을 드러냈다.
“이 저주 풀어 줄 수 있으면 생각해 보지.”
니코스는 껄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성인의 저주는 악마의 지식으로 풀 수 없소.”
“그럼 네게 볼일 없다. 썩 꺼져.”
“그러리다. 그래도 내 대신 토끼발 부적을 수습해 줬으니 선물은 하나 드리지.”
“아, 필요없어!”
에드워드는 질겁하면서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니코스는 땅바닥에 작은 금속 핀 하나를 내려놓았다.
“의심스러우면 사제한테 감정 받아 보시구려. 이건 실수 안 한 거요.”
니코스는 바로 돌아서서 에드워드와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미심쩍은 표정으로 주술 도구를 내려다보던 그는 니코스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니코스의 건망증은 실수냐, 의도냐?”
“실수요. 니코스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주술을 배우고 쓴다오. 그리고 내 본명은 니코스가 아니오. 막스 알츠하이머지.”
에드워드는 뿜어 버렸다. 그가 낄낄거리는 사이 니코스는 사라져 버렸다.
“이름 한번 걸작이네.”
에드워드는 땅에 놓인 금속핀으로 시선을 돌렸다. 옷이나 망토 따윌 고정하는 데 쓰는 가느다란 핀이었다. 그는 말에서 내린 다음 금속핀을 주워들었다. 다행히 사제가 일행에 있으니 뭔가 크게 잘못될 일은 없기는 했다. 꼴이 뼈다귀 물고 주인에게 돌아가는 강아지 같아서 좀 그렇긴 하지만.
에드워드는 도로 말 위에 올랐다.
“베로니카가 이거 보고 화 안 내려나 모르겠다.”
그 걱정은 정확했다. 베로니카는 주술 도구를 보자마자 니코스가 왔다 간 것을 알아채고 불같이 화를 냈다. 그 주술 도구의 능력을 알아보고는 더 화를 냈다.
“정력 강화의 남근 부적을 여사제한테 내밀다니 넌 생각이 있어, 없어?!”
그제야 에드워드는 그 가느다란 옷핀의 끄트머리가 단순한 돌기가 아닌 귀두 형상인 것을 알아차리고 니코스를 욕하기 시작했다. 물론 핀은 고이 잘 챙긴 다음, 전 촌장의 집으로 피신했다.
가르달은 그 광경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소금산의 드워프 처녀들을 미리 숨겨 놓으라고 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