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57)
57화 드워프 영역은 도시로 시작한다
거대 토끼의 가죽은 대부분 무두질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가장 적절한 방법은 소금에 절여 전문 도축업자에게 보내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빨라도 열흘에서 한 달은 걸린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에드워드 일행이 기념품 삼아 가져갈 가죽은 그냥 지방을 제거한 후 생가죽으로 건조했다. 방수를 위한 기름칠 정도만 더해서. 다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베로니카 역시 밀란을 치료하고 부적을 정화하고 주문을 축적시키느라 시간이 필요했다. 최소한 주문 두 개는 축적하고 여행을 시작해야 했다.
마지막 밤을 겨우 마무리한 에드워드는 한참 널브러져 있다, 먼저 일어난 전 촌장한테 빵, 소시지, 치즈, 포도주로 아침 식사를 대접받았다. 에드워드 옆에서 그녀는 자기 배를 쓰다듬었다. 겨우 닷새라 당연히 부풀지도 않은 배였다.
“가임기에 임신 기원 부적까지 썼으니 확실하겠죠?”
원래는 아가티우스가 주선해 줄 엘프 남자를 기다리며 장만해 둔 부적이었을 것이다.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안 되면 나 찾아오든가.”
“그래도 돼요?”
“언제든 환영이지. 뭐, 재산 상속 따위는 약속 못 하지만.”
“당신의 명성과 아르데니아의 보장으로 충분해요.”
하프 엘프는 배시시 웃으면서 옷을 하나하나 벗기 시작했다. 겨우 입었던 옷을 벗고 알몸으로 돌아간 그녀는 에드워드의 옆에 무릎 꿇고 앉아 그의 허벅지에 기댔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몇 번만 더.”
문 밖의 헬레나는 예정보다 더 기다려야 했다.
“기운 좋으시군요.”
베로니카가 말했다면 비꼬는 조였겠지만 헬레나는 그냥 담담했다. 에드워드는 전 촌장과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이 집 토끼고기 수프가 맛나서.”
하프 엘프는 귀를 까딱까딱거리면서 얼굴을 붉혔다. 헬레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다들 기다릴 테니 그만 가시죠.”
전 촌장은 기사와 헤어지는 연인 내지는 아내를 연출하며 에드워드한테 진한 키스를 퍼붓고 눈물을 흘렸다. 겉 포장으로는 흔한 모험담 이야기였다. 지나가던 영웅이 마을의 재난을 해결해 주고 한 여인과 사랑하여 아이를 남겼다. 그리고 그 아이는 새로운 영웅으로 자라난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녀와 멀어지자마자 헬레나에게 진절머리난다는 듯 말했다.
“아가티우스 딸내미 아니랄까 봐, 환장하고 달려드네.”
“그녀한테 사랑은 없죠?”
“있을 리가.”
“욕정인가요?”
“욕정도 애정으로 이어진다지만, 굳이 따지자면 쟤는 계산에서 욕정으로 이어지는 닷새지. 아르데니아에서 날 따라오지 않은 창녀들이랑 마찬가지야. 기억나지?”
안 날 리가 없었다. 헬레나는 에드워드에게 되물었다.
“당신은요?”
“나? 난 계산 없이 시작도 끝도 욕정 일변도였지.”
“당신답군요. 저 여자 이름은 기억해요?”
“첫날 통성명한 거? 기억은 하지.”
“그나마 낫군요. 하지만 저는 그런 관계를 맺고 싶지 않네요.”
“그럼 뭘 원하는데?”
“적어도 우리 둘이 납득하고 마주 앉을 수 있는 밤. 당신도 그럴 생각이니까 아직 저를 건드리지 않는 것 아닌가요?”
사실은 아르데니아를 출발하자마자 사건과 시간에 쫓겼을 뿐이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눈치 없이 “아니, 어쩌다 보니 그냥 네 순서가 미뤄졌을 뿐인데.” 같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여자의 해석을 굳이 정정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헬레나는 에드워드가 명령만 하면 옷을 벗고 그의 잠자리로 들어올 것이다. 괜히 안달할 필요는 없다. 그는 낄낄 웃어 버렸다.
“난 언제든 준비됐으니까 너만 결정하면 돼.”
“그건 납득이 아니죠. 탐욕이지.”
“나한테는 그게 그거야. 내가 더 못 참고 명령하기 전에 결정해 줘.”
“노력해 보죠.”
헬레나는 에드워드를 흘겨보고는 앞장서 걸어갔다. 말투는 여전히 담담했지만 눈빛은 베로니카와 비슷해졌다. 에드워드는 다시 낄낄 웃었다.
한편 밴시 리안나는 마을 출입구에서 커다란 토끼 생가죽을 뒤집어쓴 채 깡총깡총 뛰어다니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가 색욕 죄악에 대해 설교하기 전에 밴시에게 주의를 돌렸다. 리안나는 곧바로 에드워드에게 신품 토끼가죽을 자랑했다.
“기사님! 이거 봐요!”
“밴시가 토끼 흉내를 다 내는군.”
“사제님이 주셨어요! 이건 제가 가지래요!”
“노예의 재산은 주인의…….”
“애한테서 뺏을 생각하지 마. 네 것도 있어.”
베로니카가 태클을 걸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 버렸다.
“뺏으려는 게 아냐. 놀리려던 것뿐이지.”
토끼가죽을 뺏길 뻔한 리안나는 입을 삐죽였다.
“기사님은 악당 중 악당!”
에드워드는 리안나의 발목을 잡고 거꾸로 들었다. 베로니카는 투닥거리는 둘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고 갈 짐이 참 많구나.”
* * *
아르데니아의 영역을 벗어나자마자 베로니카가 제일 먼저 바빠졌다. 그녀 앞에는 몇 가지 송사가 놓였다. 그리고 부재중인 사제 대신 설교와 전례를 행했다.
그동안 에드워드는 만티코어와 볼퍼팅어를 물리친 자로서 지역 주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헬레나는 아가티우스의 흔적 몇 개를 더 찾았다. 에드워드는 아가티우스가 처분하거나 구입한 물품 목록을 전해 듣고는 중얼거렸다.
“그 새끼, 우리랑 경로가 비슷한 것 같은데?”
“소금산 말이오?”
가르달이 되물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데니아의 범죄자를 소금산이 보호해 줄 수도 있는 거요?”
“불가능하지는 않소. 보호랄 것도 아니지. 그냥 이방인 취급할 뿐. 아르데니아가 요청하면 잡는 걸 고려할 수도 있겠지만.”
“확률은?”
“글쎄. 아르데니아가 요청할 확률부터가 낮지 않을까 싶소. 아가티우스의 범죄는 떠들기 좋은 이야기가 아니고, 그의 체포를 요청하는 건 소금산에 빚 지는 꼴이니까.”
“흠. 그럼 소금산이 아가티우스의 피신처이자 새 고향이 될 확률도 무시는 못하겠군. 드워프 도시에도 인간이나 엘프들이 있을 테니.”
“어둠이 익숙지 않은 자들은 지하도시 내부가 아니라 다들 밖에서 살긴 하지만, 그렇소.”
헬레나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소금산의 영역에서 아가티우스를 공격하는 건 주권 침해였다. 게다가 그녀는 체포권도 없다. 일행이 아가티우스를 마주치더라도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녀의 심기를 눈치챈 가르달이 위안 삼아 말을 붙였다.
“뭐, 너무 열 내지는 말게. 모든 재산이 몰수된 데다 고향에 못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아가티우스는 큰 처벌을 받은 거야.”
“그리고 내가 걔 딸이랑 닷새 밤낮을…….”
“경은 제발 말 좀 좋은 거 골라서 하시오.”
가르달은 처음으로 에드워드에게 태클을 걸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그 새끼 앞에서 그렇게 말해 주려고.”
“오, 그런 거라면 인정하겠소.”
“더 나가서 애비가 셋인 후레자식은 어떻소?”
“진짜 셋이오?”
“낸들 아나.”
베로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여자의 적들.”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순서가 거꾸로야. 내가 여자의 적인 게 아니라 적한테 마침 여자가 있는 거지.”
“하긴 역사적으로는 그게 맞겠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서 네가 참 미워진다.”
아르데니아와 소금산 사이에 회랑처럼 걸친 인간 영역을 벗어나, 일행은 마침내 소금산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각 영역마다 명확히 선이 그어진 건 아니었지만 분명 분위기는 바뀌었다.
“여기서 소금산까지는 얼마나 걸려요?”
리안나가 질문했다. 가르달은 바로 청산유수처럼 말을 쏟아 냈다.
“소금산은 지하도시가 깊은 대신 배후지가 넓지 않으니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이 길을 따라 한나절만 더 가면 호수와 도시가 나오는데 거기서 또 한나절 정도? 이틀이면 가겠지. 그 호반도시는 드워프보다 인간이 더 많아서 드워프가 살기는 조금 불편하지만…….”
리안나는 ‘괜히 물어봤다’는 표정으로 짐마차를 모는 데 집중했다.
잠시 뒤 일행은 소금산 아래 호반도시에 도착했다. 소금산으로 보내는 물자들의 중간 집결지이자, 중요한 민물어장이었기 때문에 꽤 큰 도시였다.
“물이 참 맑네.”
베로니카의 평이었다. 에드워드는 그 물이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살펴보았다.
“물길이 산 위로 이어지는군.”
소금산의 만년설과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내려 오고 있었다. 리안나는 몸을 살짝 떨었다.
“그럼 물이 무지 차갑겠네요. 피서하기 좋으려나?”
“아서라. 한여름에도 얼음장 같은 물이란다.”
가르달이 껄껄 웃으며 꼬리말을 붙였다. 그는 호숫가에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어부들과 인부들을 가리키며 에드워드한테 말했다.
“소금산의 주요 식재료 중 하나가 저 생선이오. 소금산의 암염으로 절여서 유통하지요. 하지만 바다 생선을 더 고급으로 친다오.”
“황금대구 상회는 바다 생선을 유통하나?”
“그렇소. 우리 소금을 싣고 바닷가로 가 판 다음, 절인 생선을 갖고 돌아오지요.”
리안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곤 끼어들었다.
“짠물이 많은 바닷가에 소금이 필요해요?”
“바닷물과 소금은 다른 거야.”
리안나와 가르달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걷던 에드워드는 도시 입구에서 멈췄다. 교통 체증이었다. 자세히 보니 인간 병사들이 성문 통행세를 거두는 중이었다.
“황금대구 상회는 통행세 면제 뭐 그런 거 없소?”
“하하! 있으면 좋겠소.”
“드워프 영역이라고 해서 봐주는 것 없구만. 만티코어를 잡은 기사는 면제 안 되려나?”
“상회에는 내가 미리 편지로 알리긴 했는데, 시에서 초대장을 보낸 게 아니라면 역시 무리 아니겠소?”
“하긴.”
그런데 에드워드 일행의 차례가 되자 병사들이 딱 굳어 버렸다. 에드워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시 안쪽에서 그들의 지휘관이 달려 나왔다. 코등이 달린 투구를 쓴 남자였다. 그는 에드워드를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너! 그때 그 기사!”
“뉘슈?”
에드워드가 되물었다. 베로니카는 기억해 냈다.
“앙베르 백작령에서 도적질하다 헬레나 양한테 덤빈 놈들.”
“아, 그때 그놈들? 근데 아르데니아군이 쟤들 체포했다지 않았어?”
“도망쳤겠지.”
헬레나도 기억해 내질 못했다. 그녀는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그들이 저렇게 생겼던가요?”
“나도 몰라. 냄비와 나무통을 투구랍시고 뒤집어썼던 차림새가 더 강렬해 놔서.”
“저도 그렇군요.”
전직 도적 지휘관은 박장대소했다.
“아, 그때 내 부하들 꼬라지가 안 좋긴 했소. 자금난이었거든.”
에드워드는 그자와 부하들의 차림새를 살펴보았다. 투구를 제대로 된 걸로 바꾼 것 빼고는 그대로긴 했다.
“여기서 문지기 노릇을 하는 것 보니 취직은 성공했나 보군.”
“꽤 아슬아슬했지. 직책도 없는 잡병이지만.”
“그럼 이제 뭐라고 불러야 되나? 전직 도적 지휘관? 잡병 부사관?”
“족제비라 부르쇼. 그게 내 별명이거든.”
별명이건 본명이건 에드워드 일행은 그것에 별 관심이 가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던 베로니카는 뒷사람들을 위해 일행을 옆으로 비키게 했다. 그리곤 다시 족제비를 향해 시선을 돌리곤 고개를 옆으로 크게 기울였다. 까딱.
“취직하려거든 인력 부족인 아르데니아가 더 유리했을 것 같은데, 거기서 도적질을 하고 드워프 영역까지 내려오다니. 너네 바보야?”
족제비는 피식 웃었다.
“큰형님이랑 크게 한탕 하기로 했는데 그 전에 일이 꼬여 버려서. 자세한 건 말 못하지만 개점 휴업이외다.”
“그 큰형님이란 놈은 앙베르 성 안에 있었나 봐?”
전직 도적 지휘관은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아시오?”
“소식이 느리네. 하긴 어쩔 수 없나? 도망치기 바빴으니.”
베로니카가 그를 비웃었다. 에드워드가 대신 간략하게 설명했다.
“네 큰형님은 어설프게 배운 주술에 잡아먹혔고 앙베르 성은 악령 소굴이 되었다. 극소수만 빼고 싸그리 전멸했지.”
족제비는 입을 떡 벌렸다. 베로니카는 웃으면서 말했다.
“앙베르 백작의 후계자는 살아남았어. 걔가 성장하면, 네놈들이 여기 있는 걸 알면 절대 가만 안 놔둘걸.”
“에이, 여긴 드워프 영역인데…….”
“암살자를 보낼 수는 있겠지. 일가의 원수가 지척에 있으면 걔가 살려 둘 것 같아?”
족제비는 쥐똥을 입에 잔뜩 넣고 씹은 표정이 되었다. 그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베로니카는 그들을 비웃었다.
“별로 안정적인 직장도 아니니까, 몇 년 뒤엔 실업자로 지내다 칼 맞을지도.”
족제비는 베로니카의 시선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아니, 뭐. 큰형님이라고 불렀지만 진짜 형도 아니고…… 우린 아무것도 몰랐소. 근처에서 대기하다 신호가 올라오면 성으로 오란 이야기만 들었는데.”
“그렇겠지.”
“그 후계자, 댁들이 구출했소?”
“그래. 걔는 지금 아르데니아에서 기사 수업을 받고 있어.”
족제비는 베로니카와 헬레나와 에드워드한테 차례대로 시선을 돌렸다. 베로니카의 말은 기사와 엘프와 이단심문관의 인맥이 그 후계자와 연결된다는 뜻이었다. 그는 곧 베로니카 앞에서 비굴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잘 좀 변호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저희는 그 멍청한 주술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어투와 태도가 싹 바뀌었다. 베로니카는 소매로 입을 가리고 웃더니 말했다.
“통행료 깎아 줘.”
“얼마나 원하십니까?”
“얼마까지 알아봤는데?”
족제비는 부하들과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드워프 영역에서 드워프도 면제 못 받는 통행료를 깎는 인간 이단심문관. 헬레나는 그 광경을 신기하게 쳐다보았고, 가르달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베로니카 양이 내조는 잘 하시겠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