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58)
58화 물은 만물의 근원
드워프 영역은 도시로 시작해서 도시로 끝난다. 그리고 통행세는 도시의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로 세리, 즉 징세청부업자들이 대행하는 업무였다. 그러나 문지기들은 어디까지나 징세청부업자의 하수인들이었다. 그들은 권력과 연결된 존재가 아니었으므로, 통행세를 감면하려면 핑계가 필요했다.
족제비와 에드워드는 밴시의 통행료부터 해결했다.
“애는 통과세가 성인의 절반입니다.”
“얘는 애가 아니라 밴시야.”
“그게 뭡니까?”
“내 노예인 집요정. 인간도 아니고 드워프도 아니고 엘프도 아냐.”
“그럼 개와 같은 가격을 매기겠습니다. 개는 공짜입니다.”
“너무해!”
밴시 리안나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족제비는 뺄 수 있는 모든 것을 뺐다. 자기들이 횡령하던 금액을 없애는 건 기본이었다. 에드워드의 예비마는 승용마가 아니라 식용으로 간주했다. 베로니카는 볼퍼팅어 때문에 옷의 옆트임이 화끈하게 터진 채 옷핀으로 고정된 사제복을 꺼내자 ‘구난이 필요한 자’로 등록되었다. 족제비는 가르달에게 시선을 돌렸다.
“드워프분은?”
“가르달이다. 황금대구 상회의 공동대표이며 지하 도시의 시민이지.”
“뭐 근래 다른 건 없습니까?”
“만티코어에게 털리고 돌아왔는데.”
“그럼 그것도 ‘구난이 필요한 자’로 등록하죠.”
“광범위하구만. 그런데 한참 전 일인데 괜찮나?”
“문지기 재량입니다.”
결국 일행의 통행료는 말과 마차를 끌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공짜에 가까운 액수에 맞춰졌다. 과장하기, 축소하기, 왜곡하기, 못 본 척하기 등 갖가지 기술을 시전한 뒤 족제비는 에드워드 일행한테 온갖 아첨을 다했다.
“제가 편의를 봐드린 것을 잊지 마시고 부디 아르데니아와 백작가 후계자분께 잘 좀 설명해 주십사…….”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지.”
에드워드가 먼저 말했다. 베로니카도 웃으면서 말했다.
“편지 한 통 정도는 써 주지.”
“감사합니다!”
족제비는 굽신굽신거린 다음 일행을 통과시켜 주었다. 베로니카는 웃으면서 말했다.
“통행세는 정말 싫어.”
“싫지.”
“싫고말고.”
에드워드도 가르달도 동의했다. 세금은 매우 큰 문제였다. 상인들은 통행세가 조금이라도 더 적은 곳을 찾기 위해 경로를 바꾸기도 했다.
가르달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를 가리켜 말했다.
“일단 여기서 정비를 하고 소금산으로 올라가지요.”
“소금산까지 단숨에 안 올라가고?”
에드워드의 질문에 가르달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숨에 올라갈 거리는 아니라오. 그리고 여기 물가가 더 싸니까.”
물자가 모이는 곳이니 그럴 만도 했다.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숙소는 어디로 잡을까요?”
“황금대구 상회의 지부가 여기 있으니 내 거기서 조촐하게나마 한끼 대접하리다.”
드워프의 ‘조촐하게’라는 단어는 믿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에드워드 일행은 지부 앞에서 바로 드워프 스물 이상으로 구성된 환영 인파를 맞닥뜨렸다. 가르달이 미리 편지를 보낸 덕에 그들은 이미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에드워드 일행은 떠밀리다시피 객관 안으로 초대되었다.
“이게 조촐한 거면 본가의 대접은 어떨지 좀 겁나는데.”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진 음식들을 본 에드워드의 평이었다. 식탁 위에는 고기, 생선, 치즈, 맥주가 한가득이었다. 과채류는 소금에 절인 양배추, 생토마토, 포도 외에는 없었다. 가장 놀라운 건 산더미처럼 쌓인 각양각색의 튀김이었다.
“역시 드워프식 만찬은 구이와 튀김이지! 최대한 뜨겁게!”
가르달은 껄껄 웃었다. 다만 베로니카와 헬레나는 의외의 작물에 당황했다. 베로니카가 슬쩍 물어보았다.
“드워프도 감자와 돼지감자를 먹나요?”
“최신 유행이오. 튀기면 맛있거든. 혹시 못 드시오?”
“그건 아니지만.”
이유는 있었다. 감자와 돼지감자는 오크들이 주로 재배하는 작물이라 교회에서는 지옥에서 올라온 작물쯤으로 취급했다.
“순무도 땅속에서 캐는데 뭘. 돈은 돈이고 음식은 음식일 뿐.”
에드워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베로니카가 망설이는 사이에 드워프들한테서 포크를 넘겨받았다. 포크는 보편적인 도구는 아니었지만, 뜨거운 기름으로 튀겨 갓 실어 내는 음식들이 가득한 드워프식 만찬에는 매우 편리한 필수품이었다.
에드워드는 그 편리한 도구를 사용해 자기 몫의 접시에 감자튀김을 산처럼, 그리고 큼직한 고기덩이를 탑처럼 덜어 냈다. 감자튀김은 아직 드워프들이 개발 중인 음식이라 색깔도 유형도 다양하기 짝이 없었다.
에드워드는 전용잔에 맥주를 가득 채운 다음, 일행과 드워프들을 향해 들어 보였다.
“먹고 죽자!”
드워프들은 환호했다.
폭식은 기사의 세속적 덕목이다. 사람들은 육체의 힘이 육식에서 나온다고 믿었고, 영주는 자신이 육성하는 기사 후보생들에게 더 많은 고기를 제공할 의무가 있으며, 기사는 먹기 위해 살다시피 했다. 그런데 왜 ‘세속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가 하면, 교회에서는 폭식을 죄악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워프들은 폭식을 ‘그냥 덕목’ 취급했다.
“감자튀김은 별미로 준비한 것이지, 우리가 고기가 아까워 내놓는 것이 아님을 먼저 설명드리겠소.”
한참 식사에 열중하던 중, 한 드워프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그 말을 바로 이해했다. 고기 안 부족하냐는 말이다. 그는 빈 접시를 내밀었다.
“고기 더 주쇼.”
“여기 소와 돼지 더 가져와!”
말을 건넨 드워프가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조촐한 대접은 어느새 서른 명 이상의 드워프와 인간들이 어울리는 연회가 되어 있었다.
베로니카와 헬레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기만 썰었고 감자튀김은 거의 손대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그녀들을 향해 감자튀김을 잔뜩 꽂은 포크를 내밀었다.
“츄라이, 츄라이.”
베로니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거 앵글리아식 주문이니?”
“아니. 사람이 사람을 놀리는 문구지.”
“맞는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포크 끝 감자튀김을 한입에 다 털어넣어 우물거렸다.
“이 품종이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은데 다음엔 가늘고 길게 채 썰어다 튀겨 보쇼.”
“요리사!”
드워프들이 요리사를 부르자 인간 요리사 하나가 주방에서 잽싸게 뛰쳐나왔다. 곧 에드워드와 드워프들은 가장 적절한 감자튀김이란 무엇인가 하는 주제로 토론을 시작했다. 헬레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감자튀김이 그렇게 중대한 문제인가요?”
“오크 새끼들을 털면 전리품으로 얻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오. 그나마 많은 게 잡곡과 감자인데 버리긴 아깝잖소.”
한 드워프의 말이었다. 에드워드가 그에게 질문했다.
“오크 부락이 여기서 가깝소?”
“소금산의 반대편으로 내려가서 다른 산들로 이어지는 길에 몇 부락이 있소. 산세를 살려 요새를 지었는데 꽤 험준하다오.”
“뿌리 뽑지는 못하나 보군.”
“그 새끼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골치 아프다오. 놈들한테 땅굴 팔 기술과 인력이 없는 게 다행이지.”
“그런 소리 하면 꼭 언젠가 땅굴 파고 나오던데.”
에드워드의 농담에 드워프들은 박장대소했다. 설화와 연극의 클리셰긴 했다. 에드워드는 구석 자리에서 고기 뜯던 밴시 리안나를 잡아다 식탁 위에 올렸다.
“뭐, 혹시 땅굴 오크 같은 게 나온다면 얘가 최종 병기가 될 거요.”
“응? 그 꼬맹이가 어떻게 말이오?”
가르달의 질문이었다. 에드워드는 리안나를 향해 명령했다.
“넌 앞으로 고기 금지.”
헬레나는 서둘러 귀를 막았다.
밴시 리안나의 울음소리는 술통도 못 뻗게 만드는 드워프들을 잠시나마 뻗게 만들었다. 베로니카가 에드워드의 등짝을 후려갈기고 그의 명령을 취소하는 소동 끝에 연회는 다시 재개될 수 있었다. 그리고 드워프들은 서로를 향해 낄낄 웃어 댔다.
“야, 너 울었어!”
“이슬이다! 네놈이야말로 눈물콧물 다 뽑아 놓고는!”
에드워드는 생각보다 효과가 짧아진 것을 보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 울음소리가 이렇게 약했나?”
“고향에서 멀어질수록 힘이 약해지는 타입인지도 모르지. 여기 사람들은 밴시가 뭔지도 모르잖아?”
베로니카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훌쩍거리면서 고기를 마저 먹던 리안나는 볼멘소리로 말했다.
“대체 밴시의 울음소리를 뭐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옷 입는 놈들을 위한 최종 병기.”
“그런 용도로 울리지 마세요!”
“이렇게 편리한 걸 왜 안 써?”
둘의 다툼을 듣던 가르달은 손수건으로 코를 팽 푼 다음 말했다.
“재밌는 능력이긴 하군. 하지만 제한도 많을 것 같소. 소음이 더 강한 전쟁터 같은 데 던져 놓으면 소용없을걸.”
“아, 그러려나.”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할 것도 아니오. 귀를 막는다는 해결법이 있으니까.”
밴시는 에드워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들으셨죠? 저 좀 그만 울리세요!”
기사는 입을 삐죽였다.
“그럼 얘를 어디다 쓰지?”
“와! 폭언!”
드워프들과 기사는 다시 낄낄 웃기 시작했다.
* * *
에드워드는 다음 날 끔찍한 숙취 속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그가 잘 때 항상 끼는 가죽장갑이 끼워진 상태였는데, 스스로 낀 기억은 없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양털 매트리스엔 그 혼자가 아니라 사람 한둘은 더 있었던 것 같은 흔적, 즉 눌린 자국이 있었다. 가끔 방에 창녀까지 넣어 주는 접대가 있는데, 드워프들이 그랬던 모양이었다. 그는 앓는 소리를 냈다.
“아, 기억이 없는 게 아쉽네. 너무 마셨나. 그놈들 설마 드워프 기준으로 여자를 넣었던 건 아니겠지?”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에드워드는 바로 대답했다.
“뉘슈?”
“베로니카. 나 지금 정비하러 나간다.”
에드워드는 득달같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야, 나도!”
에드워드는 급하게 옷을 차려입은 다음 문을 나섰다. 베로니카는 간밤에 별로 안 마셨기 때문에 모습이 훨씬 깔끔했다. 밴시 리안나가 그녀의 뒤에서 커다란 바구니를 안고 있었는데, 찢어진 사제복과 사슬갑옷이 들어 있었다.
“수리하러 가냐?”
“응. 기왕이면 드워프 도시에서 수리하는 게 좋겠지.”
에드워드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헬레나를 발견했다. 그녀는 로비에서 다트를 손질하거나 추가로 제작하는 중이었다. 그것들은 소모품이고 단순한 도구라 굳이 드워프의 손에 정비를 맡기러 나갈 일은 없어 보였다. 에드워드는 가르달을 찾아보았다. 안 보였다.
“가르달은?”
“상회에. 직접 논할 일도 많다더라. 그러니 오늘 하루는 개인 정비야.”
“그렇군. 명색이 호위니 난 널 따라가야겠네.”
“도시에서?”
“사실은 심심해서.”
“흥. 그럼 그렇지.”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흘겨본 다음 앞장서 걸었다.
드워프 도시는 드워프의 키에 맞춘 도구와 시설이 많았기 때문에 이색적이었다. 특히 계단들. 하지만 그 반대로 공업용 설비는 무지막지하게 컸다.
“야, 이렇게 큰 수차는 처음 보는데.”
에드워드는 용광로에 공기를 공급하는 풀무와 그것에 연결된 수차를 보고 감탄했다. 수차는 파이프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손님맞이를 위해 나와 있던 드워프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드워프의 도구들은 항상 수요가 넘치니까 주문이 없어도 물건을 만들지요! 그러려니 이런 설비가 필요한 겁니다!”
“일개 대장간은 아닌데. 거의 조병창 수준 아닌가?”
“뭐, 황금대구 상회의 소개니 특별히 봐 드리는 겁니다.”
“그 친구들 인기 있소?”
“예. 그 친구들이 이 도시에 바다 생선을 독점적으로 공급하거든요. 진미죠!”
구하기 힘든 물건일수록 진미로 취급되는 건 어디나 똑같다. 에드워드는 납득했다.
“그 친구들 수송단이 만티코어에게 습격당해서 물건이 날아간 것 같던데.”
“들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벌써 가격이 폭등했지 뭡니까. 다음 수송단이 도착할 때까지는 맛보기 힘들겠죠.”
그때 대장간 입구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다른 드워프들이 몰려온 것이었다. 당황한 접객원은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사람들은 늘어나기만 했고, 결국 대장장이들도 가세했다. 그러나 소란이 쉽게 안 끝나자 에드워드는 그의 뒤에 슬쩍 걸어가 보았다.
“무슨 일이슈?”
“아, 별일은 아닙니다. 물 분쟁이죠.”
“물?”
“소금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우선 순위대로 돌리죠. 여기가 우선 순위 1위랍니다. 후순위 사업장들이 이젠 자기들도 물을 써야 한다고 화를 내네요.”
“수차를 돌리면 물이 상하는 것도 아닌데, 왜?”
“낙차를 이용해서 돌리는 수차가 한둘이 아니거든요. 이미 내려온 물은 동력원으로서 가치가 없죠.”
“양보한다 해놓고 돌려보내지?”
“그게 반복되는 중입니다. 저쪽은 계속 더 요구하고요. 곤란하네요. 요즘은 물이 줄어들어서요.”
“줄어?”
“예. 별일이 다 있다 하던 참입니다. 날이 가문 것도 아닌데.”
일행의 경험상 갑자기 물이 줄어드는 일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암브로즈 시에서는 하수가 빨려들어 간 곳에 거대 꼽등이 제국이 있었고, 스트롬니스에서는 우물이 말라 마녀소동이 벌어졌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녀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 없이 만년설 녹은 물이 줄어들 리가 없는데?”
에드워드는 대장간에서도 보이는 소금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럼 저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단 뜻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