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6)
6화 위험한 초대 (1)
베로니카는 밴시 리안나와 함께 말에 올라탔다. 그러나 목표인 늪지로 가지는 못했다. 해가 지기도 전에 시체들이 뛰쳐나왔기 때문이었다. 시체의 숫자는 예전보다 확연히 줄었지만, 싸움꾼도 아닌 여자 둘이서 헤쳐 나갈 숫자는 아니었다. 베로니카 나무망치를 휘둘러 한 해골의 대가리를 깨 버렸다. 퍽!
“아, 닦아야 하네.”
“제가 나중에 닦아 드릴 테니 일단 수도원으로 돌아가시죠?”
겁에 질린 리안나가 소리쳤다.
“괜찮아. 망자들은 수도원으로 바로 달려갈 뿐이야. 우리에겐 관심 없어. 몇 놈만 빼면.”
베로니카가 말했다. 그녀 말대로였다. 대부분의 망자는 여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결국, 이것들은 산 자나 안식처를 찾을 뿐인 거야. 악령에게 쫓겨난 망자들. 물론 착한 놈들만 있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우워어어어!”
좀 덜 썩은 남자의 시체가 베로니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푸르딩딩했고, 물이 줄줄 흐르는 시체였다. 베로니카는 다시 이단심문관의 망치를 휘둘렀다. 퍽!
“방심은 못 하겠네.”
“그럼, 다른 데로 피하죠?”
리안나가 대안을 제시했다.
“할 수 없네. 크게 돌아서 가야지. 다른 길 알아?”
“네. 기사님이 가신 마을로 가면 되죠?”
“그래. 아마 도착하기 전에 상황이 끝날 것 같지만.”
“역시, 기사님이 걱정되시나요?”
“아니, 전혀.”
베로니카는 즉각 부정했다. 리안나는 그녀의 답변이 순수한 진심이라는 걸 깨닫곤 의아해했다.
“왜요? 지금 걱정해서 달려가시는 것 아닌가요?”
“난 그 자식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다 기록해야 하니까 함께 다니는 거야. 특별히 서로 걱정해 주는 관계는 아니고.”
“기록요?”
“그놈의 성지 순례는 속죄 여행이거든. 증인이 있어야 하지.”
리안나는 그 답변이 담백하다는 생각에 앞서 다른 걱정이 먼저 들었다.
“그거 위험하지 않아요? 저주받은 데다 속죄하는 범죄자라는 건 악령이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요?”
* * *
사실, 에드워드는 캐슬린의 이야기에 이미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자기 가문의 내력을 읊은 다음 자신들을 속인 사악한 하인들과 늪에 도사린 옛 이교도들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주린 배를 채우고 과일을 씹었다. 술은 독한 편이었고, 몇 병이 더 있었다. 그는 취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더 마시면 곤란할 것 같았기에 그는 하녀가 한 잔 더 따른 것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그리고 본론을 꺼냈다.
“수도원에서 내가 듣기를, 악령들이 보물을 두고 다투었다 했소. 그게 무엇인지 아시오?”
“고대 여왕의 반지죠. 이교도의 물건이지만, 저희 조상의 물건이기도 해요. 처음으로 세례받으신 분께서 빛의 이름으로 정화하였으나 마법의 힘은 온전히 남았답니다.”
“그대가 정당한 소유주였군.”
“그렇죠.”
“그 반지는 아직도 깨끗한 거요?”
“저희 가문이 보관한 이래 악마나 사교도의 힘으로 다시 더러워진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렇다면 더는 내가 나설 일이 없군.”
에드워드는 속으로 혀를 찼다. 여자들에게서 보물을 강탈하기엔 명분이 없었다. 명문가의 것에 내력도 있으니, 설령 얻어도 쉽게 팔지 못한다.
‘허탕 치고 남 좋은 일만 해 줬나? 그래도 귀한 집 여자를 악령으로부터 구해 줬다는 건 업적으로 삼을 만하니…….’
그때 하녀 둘이 에드워드의 어깨에 손을 살며시 얹었다. 캐슬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에드워드를 향해 다가왔다.
“정말 그럴까요? 과거의 이야기는 이게 전부네요. 이제 미래를 이야기해야지요. 우리의 구원자이신 기사님께서는 이 늦은 밤 저와 무엇을 하며 보내실 건가요? 제가 편력 기사의 고단한 여행길을 하룻밤이나마 위로할 방법이 없을까요?”
물론, 구해 준 여자가 그럴 생각이 있다면야 얼마든지 환영할 일이었다. 에드워드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여자 역시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승리자여, 이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캐슬린은 식탁과 기둥을 사이에 두고 천천히 에드워드의 곁을 맴돌았다. 에드워드는 마른 침을 삼켰다. 캐슬린은 벽에 걸린 양탄자 앞에서 뒤로 돌아섰다. 그녀의 손이 양탄자 위를 미끄러졌다. 그러자 양탄자에 가려졌던 문이 열렸다. 그 너머는 침실이었다. 붉은 비단 침대가 그 안에서 에드워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멋진 방이로군.”
에드워드는 비틀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술기운 때문인지 그는 잠깐 균형을 잃고 말았다.
‘이상하군. 취할 만큼 마시지는 않았는데.’
그가 옆의 기둥을 붙잡자 캐슬린은 웃음을 흘렸다. 그녀가 다시 속삭였다.
“제 어깨를 그렇게 안아 주세요. 오늘이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저를 부숴 버릴 것처럼.”
그 순간, 에드워드는 자기도 모르게 손아귀에 힘을 주면서 기둥을 부숴 버리고 말았다.
우지끈!
“꺄아아악!”
캐슬린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하녀들도 놀라서 물러섰다.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고, 여관 전체가 흔들렸다. 다른 기둥들도 곧 따라 무너질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천장에서는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잠시 뒤에야 모두는 눈을 뜨고 주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다행히 기둥 하나만 부서지고 뒤틀렸을 뿐이었다. 그러나 좋았던 분위기는 박살 나 버렸다.
에드워드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힘 조절을 깜빡한 그는 낭패감에 빠졌다. 뭔가 그럴싸한 말을 하려고 했지만, 캐슬린의 눈에는 경악과 경계만 보였다. 결국 에드워드는 내면에서 솟아 나온 진실된 분노를 대신 내뿜었다.
“이 시X 놈의 저주! 이 저주받은 손! 다 좋았는데, 이런 니XX!”
“저기, 기사님?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혼자 화내기 시작한 에드워드를 향해, 캐슬린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그는 체념하고는 그 내역을 보다 상세히 말했다.
“그 말대로요. 내 손은 저주받았소. 까딱 잘못하면 내 주변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때로는 나 자신도 다치게 할 수 있는 힘이지. 일단 무기를 쥐지 못하니 기사로서 싸울 수가 없고, 사람의 살갗을 만지지 못하니 여인과 결혼할 수도 없소.”
싸울 수 없고, 결혼할 수 없는 기사. 에드워드가 한탄하는 동안 캐슬린은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는 낙심한 기사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어느 사이엔가 그녀는 얼굴에 다시 웃음을 띄웠다.
“그런 분이시라면 더욱 위로받으셔야겠네요.”
캐슬린의 손이 에드워드의 오른 손목을 붙잡았다. 그때 향긋한 냄새가 에드워드의 코를 간지럽혔다.
“장미향.”
그가 중얼거렸다.
“좋은 향이죠.”
캐슬린이 웃었다.
하녀들이 조심스럽게 에드워드의 뒤에 섰다.
“기사님의 손을 묶어 드릴게요.”
캐슬린이 속삭였다.
“저희한테 다 맡기시면 돼요. 검도, 손도, 육신도, 이 밤도.”
달콤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방법을 안 써 본 건 아니다. 하지만 첫 시도는 창녀가 돈주머니만 들고 튀는 바람에 무참히 실패했었다.
‘그렇게 내 뒤통수를 친 도둑년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의 눈길이 반사적으로 주변을 향했다. 경험에서 우러난 경계감 때문인지, 어딘가 낯부끄럽기 때문인지는 그 스스로 분간하지 못했다. 다시 달궈지기 시작한 공기, 흔들리는 시야, 장미향, 장미향, 장미향. 에드워드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손을 묶는 건 안 좋아하는데.”
“어머나, 숙녀의 보답은 거절하면 안 되죠.”
“그건 그렇소.”
문득, 에드워드의 눈이 침실 옆 상자 아래에 나뒹구는 병으로 향했다. 분홍색 토기. 어린이가 개발새발 그린 비둘기 무늬.
밴시 리안나의 마법약.
장미향.
에드워드는 캐슬린의 손을 뿌리쳤다.
“내 검과 갑옷을 내놔라, 이 악령아!”
그 순간,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불빛도, 캐슬린도, 하녀들도, 식탁도, 양탄자도, 비단 침대도. 어둠과 희미한 장미향만이 남았다. 에드워드는 고함을 지르면서 벽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쿵! 와지끈! 벽이 무너지면서 달빛이 들어왔다.
에드워드는 건물 안을 다시 살펴볼 수 있었다. 다행히 모든 것이 헛것은 아니었다. 가구는 대부분이 그대로였다. 음식은 환상 속에서 본 것들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전승처럼 구더기나 먼지 덩어리 정도는 아니었다. 예컨대 새구이는 닭이 아니라 어느 물새의 것이고, 그 깃털이 여기저기 널려 있으며, 민물 게 스튜는 심한 비린내가 난다는 것 정도.
“우리의 호의를 이렇게 참혹히 거절하다니, 기사도는 어디 갔는지요?”
캐슬린의 웃음소리가 허공에서 들렸다.
“그 시체는 네 본 모습이 아니었군!”
에드워드는 이를 갈며 소리쳤다.
“옛날 모습 중 하나지.”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답했다.
“악령은 육체에 연연하지 않거든. 지금처럼 인간의 모습과 멀어진 뒤라면 더욱.” 다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오판이었다. 제 수많은 영혼을 집어삼키고, 모습을 멋대로 바꿀 줄 아는 악령. 하지만 에드워드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소리쳤다.
“네 정체를 밝혀라!”
“알아서 뭐하게? 내 보물을 탐낸 도적아. 네 검도 갑옷도 이제 내 것이다. 그리고 저주받은 네 영혼도 내 것이다!”
남녀노소의 목소리가 마구 뒤섞인 악령의 선언과 함께 회색 연기가 에드워드를 에워쌌다. 에드워드는 목이 막히는 매캐한 느낌에 팔뚝으로 입을 막았다. 연기의 한복판에서 흉악하게 일그러진 악령의 얼굴이 솟아올랐다. 그것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하기 전에, 인간인지 악마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저주받은 손이 강력해도, 영혼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자기 영혼도 붙잡지 못하는 자야. 저 밤하늘의 깃털 하나 잡지 못하리라!”
하지만, 에드워드는 전혀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분노로 눈을 번쩍이며 양손을 내렸다.
“시험해 봐라. 내 손의 저주가 더 강한지, 아니면 네가 더 강한지. 내 손을 막지 못한다면 저 여관의 모든 물건은 부서져 늪지에 가라앉을 것이다.”
악령은 그 호기를 비웃으며 연기를 모았다. 이제 그 덩치는 큰 황소와 같았다. 그리고는 화산 폭발 같은 기세로 에드워드를 향해 쇄도했다.
“그 전에 네 영혼을 찢어 주마!”
에드워드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그리고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악령의 얼굴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악령의 머리에서 긴 염소 뿔이 뻗어 나왔다. 에드워드를 들이받고 꿰뚫어 버릴 셈이었다. 에드워드는 미소를 지었다.
“손잡이까지 주는군.”
턱! 악령의 뿔은 에드워드의 손에 붙잡혔다. 당황한 악령은 에드워드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두 손은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악령의 말에 에드워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몸을 먼저 움직였다. 그는 악령의 머리 반대편으로 체중을 옮기며 그 두 뿔을 잡아당겼다. 쿵! 마치 거인에게 잡힌 소가 쓰러지듯, 악령은 흙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어떻게?”
악령이 다시 소리쳤다. 에드워드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새하얗게 빛나는 손.
“내게 이 저주를 건 놈은 악마도 마법사도 용도 아니다.”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성인(聖人)이거든.”
악령은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