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60)
60화 수도 요금 폭탄의 예고
불행히도 에드워드가 드워프 기준을 잘못 아는 게 아니었다. 루이사는 여러모로 특이한 여자였다. 드워프 왕의 혼외 자식으로 공주는 아니지만 딸로서 인정받았고, 인간 혼혈이며, 드워프에 더 가깝게 생긴 보통의 1대 혼혈들과 달리 인간에 더 가까웠다. 무엇보다 독특한 것은 그녀의 직업이었다. 그녀는 왕실의 건축사였다.
“여자 건축사는 인간들 중엔 아예 없을 거예요.”
베로니카가 감탄하듯 말했다. 에드워드도 동의했다.
“기사, 대장장이, 연금술사는 가끔 봤지만. 변호사는 여자 있었나?”
“난 딱 한 번 본 적 있어. 오래 못하고 그만뒀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한 담론은 이쪽에 더 필요하구만.”
“뭐야, 그게?”
둘의 만담을 듣던 루이사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소금산에는 그리 드문 직업이 아니지만요. 자, 이쪽으로. 소금산의 심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루이사는 앞장서 걸어 일행을 궁성 안으로 안내했다. 궁전은 휘황찬란했는데 흰 대리석에 금을 넣어 장식을 한지라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가르달은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여기부터 보다니, 내 본가의 환영식이 무색해지겠구만.”
“까짓거 왕복하며 즐겨 봅시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말했다. 왕의 식탁에는 몇몇 귀족과 관료들도 있었지만 에드워드가 가장 중요한 손님인 건 확실했다.
그러나 시종과 왕세자의 부축을 받아 나온 폼페 왕은 기력이 다한 노인의 모습인지라, 에드워드 일행에게 짧은 인사말과 감사 인사만 건넸다. 그는 에드워드가 기념품으로 갖고 있던 만티코어의 발톱을 감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러니까 식사 중간에 왕세자와 함께 돌아가 버렸다.
뭔가 호화롭지만 별 도움은 안 되는 선물로 보석함이 주어졌고, 나머지 시간은 루이사가 주관했다. 물론 식사는 사치스러웠기 때문에, 에드워드는 큰 불만이 없었다. 바다 생선이 주메뉴라는 것만 빼고.
“앵글리아에서는 바다 생선이 그렇게 귀한 게 아닌데.”
“앵글리아는 섬나라니까. 그래도 즐겨. 내륙을 여행할수록 비싸서 먹기 힘들어지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베로니카의 말에 에드워드는 납득했다. 물론 손은 소고기에 먼저 갔지만.
“하긴. 그런데 오늘은 본론이 안 나오려나?”
에드워드가 설탕양념의 소갈비를 뜯으면서 중얼거렸다. 그의 건너편에 앉은 드워프 귀족 하나가 웃으면서 말했다.
“뭐, 대단한 일은 아니라오. 오크 놈들이 일부 물길에 댐을 만들었거든. 그러고는 감히 사절을 보내 흥정을 시도하지 뭐요.”
“댐? 놈들에게 그럴 인력과 기술이 있습니까? 감시병은 뭘 한 겁니까?”
“뼈 아픈 지적이군. 사실은 운이 나빴소. 뜬금없이 산사태가 일어나서 바위와 흙이 물길을 막아 버렸지. 우리가 상황을 파악하고 인부들을 보냈을 땐 이미 오크들이 흙더미 위를 점령한 뒤였소. 불과 며칠 전의 일이오. 토벌대는 이틀 전에 출발했고.”
대화가 깊어지기 시작하자 루이사가 슬쩍 에드워드에게 접근했다. 그녀는 드워프 귀족 대신 말을 이었다.
“그 물길은 우리 영역인데, 우리보다 오크들이 더 빨랐어요. 우연이 아니라면 뭔가 개입했겠죠.”
“악마 말입니까?”
“다른 걸 생각해 보기는 어렵죠. 악마의 속삭임은 사교도와 오크들한테 드물지 않게 내려오니까요. 산사태를 일으킨 것인지, 아니면 그저 소식을 빨리 전해 준 것인지는 모르지만요. 의심해 볼 필요는 있겠죠.”
“그래서, 수자원을 독과점한 악마를 물리쳐 달라고?”
“아뇨. 악마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몰라요. 그리고 에드워드 경은 어디까지나 손님이에요. 겨우 그 정도 문제로 폐를 끼칠 수는 없죠.”
에드워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왜 저를 부른 겁니까?”
그때 헬레나가 끼어들었다.
“보험이겠죠.”
루이사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성자의 축복을 받고 괴물과 악령을 무찌르는 기사가 어디 흔한가요?”
“축복?”
에드워드가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지만 베로니카가 그의 발등을 밟았다. 루이사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식사를 즐기면서 푹 쉬시죠. 마침 오늘 토벌대의 공격이 시작됐거든요. 승전보를 기다려야죠.”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친 다음 갈비뼈를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이기든 지든 내일 아침에는 그 현장에 가 보겠습니다. 구경은 해 보려고.”
“성격이 급하시군요. 저희는 며칠 정도는 대접하려고 했는데.”
“뜸 들여서 좋을 게 뭐 있습니까?”
“좋아요. 언제든지요.”
그때였다. 갑자기 한 드워프 병사가 달려오더니 루이사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그녀는 에드워드를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당신 노예로 보이는 소녀가 들여보내 달라는데요?”
“아. 깜빡했다.”
에드워드는 짧게 중얼거렸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에드워드와 헬레나는 가르달의 집 앞에 섰다. 말을 타지는 않았다. 오늘 갈 곳은 도로가 제대로 나 있지 않으며 말로 가기 힘들다고 했다. 게다가 험지에서 말고삐를 쥔 손에 힘을 잘못 주기라도 하면 말도 죽고 에드워드도 죽으니 별수 없었다. 일찍 일어나서 열심히 걷는 수밖에.
잠시 뒤 그의 앞에 나타난 가르달은 투척용 손도끼만 가졌던 가벼운 옷차림이 아니라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중무장 드워프 전사의 모습이었다. 눈 아래까지 가리는 쇠투구, 사슬과 철판을 엮은 경번갑, 커다란 도끼, 원형 방패까지. 투척용 도끼 2개는 허리띠에 꽂혀 있었다. 그는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승전보는커녕 아무 소식도 없으니, 뭔가 일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겠소.”
“그냥 공격이 오래 걸리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너무 걱정은 맙시다.”
에드워드는 가볍게 말하곤 돌아섰다. 어제의 드레스 대신 좀 더 편한 외출복을 입은 루이사가 호위병들과 함께 그의 뒤에 있었다.
“이단심문관님은 도서관에서 일하시더군요. 거기로 가죠.”
“저도 책 한두 권 빌릴 수 있습니까?”
“책에 흥미가 있다니 특이하시네요. 하지만 반출은 일체 불가예요. 시간이 있으시면 사본 정도는 만들어 드릴 수 있는데. 어떤 걸 원하세요?”
“글보다 그림 많은 책.”
“정정할게요. 기사다운 기준이네요.”
대부분의 도서관은 원하는 때 누구나 책을 빌릴 수 있는 공공 영역이 아니었다. 그냥 문서 창고, 또는 보물고였다. 아무리 귀한 책이라도 거기 처박아 놓고 대출은 물론 열람도 불허하는 도서관이 널렸다. 폐쇄적인 어느 수도원 도서관은 내부 인원한테도 장서 전체의 열람을 불허하는, 즉 책이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도서관으로 악명 높았다.
다행히 소금산의 왕립도서관은 왕의 허가를 받은 자들이 누구나 열람할 수 있었다. 그 도서관은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기에, 밴시 리안나와 이단심문관 베로니카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녀들 주변에는 드워프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에드워드는 드워프들 머리 너머 탁자를 보았다. 리안나는 탁자 위에 올라가 앉아 머리에 커다란 사전을 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초점을 잃고 빙글빙글 돌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입 밖으로 나왔다.
“혼세이힌노토리아츠카이세츠메이쇼와쥬욘카코쿠고데카카레테이마스…….”
드워프들은 경악과 두려움에 찬 표정으로 그 언어에 귀를 기울였다. 베로니카는 당황하더니 리안나의 머리 위에 책을 하나 더 얹고는 빠르게 손을 놀렸다.
“앗, 미안. 코딩이 꼬였네.”
에드워드가 드워프들을 헤쳐서 탁자에 가까이 가 보니, 밴시 주변에는 온갖 부적과 책들이 널려 있었다.
“이게 뭐야?”
“리안나가 여기서부터 말이 잘 안 통한대. 그래서 어제 왕성을 찾아오는 데 고생 좀 했다지 뭐야.”
“그래서?”
“리안나는 인간이 아니라 요정이니까 주술과 주문을 조합하면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내가 가진 지식을 총동원해 언어 입력 중.”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은데?”
“사이비 주술사를 족친 적은 많아도 내가 주술을 해 본 적은 없어서 은근히 어렵네.”
“그렇게 막 저질러도 되는 겨?”
“내가 이단심문관인데 누가 날 막니? 걱정 마. 위험한 건 안 건드려.”
“나쁜 년. 그래서, 이제 리안나는 트레베리아어와 드워프어 정도는 하나?”
“여기만큼 사전을 많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은 드무니까 이 기회에 한 14개 정도 입력해 보려고. 곧 끝나.”
“무서운 년.”
잠시 뒤 리안나의 시선이 겨우 정상으로 돌아왔다. 에드워드는 그 눈앞에서 손가락 3개를 펼친 다음 흔들어 보였다.
“이거 몇 개?”
리안나는 에드워드가 모르는 언어를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에드워드는 그녀의 발목을 잡고 거꾸로 들었다.
“꺄아악! 기사님 카뇰라어도 할 줄 알아요?!”
“못해도 그게 욕인 줄은 알아듣거든?”
“와! 쓸데없이 국제적이야!”
“기사한테는 국경이 없다. 새겨 둬라.”
베로니카가 부적과 서적을 정리하고 에드워드가 리안나를 징벌하는 사이, 헬레나는 가르달을 향해 말했다.
“슬슬 익숙해지네요.”
가르달은 헛기침을 크게 했고, 루이사는 벙찐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 * *
오크. 악마가 만든 어둠의 종족 중 하나. 대륙 곳곳에 포진해 있는데, 섬나라 앵글리아를 빼면 아무리 강맹한 국가라도 완전 토벌은 꿈도 못 꿨다. 불리해지면 어디론가 숨었다가, 빛의 진영이 혼란스러워지면 다시 쏟아져 들어왔다. 악마와 사교도들도 암약하기 때문에 영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트레베리아의 지역 중 일부는 아예 대영주도 쉽게 손을 못 댈 만큼 큼직한 오크 부락의 손아귀에 떨어진 상태였고, 성지와 그 주변에서도 주적이었다. 놈들의 영역에서 빛의 종족은 고기가 아니면 노예로 전락했다.
다행히 소금산 인근의 오크들은 그 정도로 큰 부락들이 아니었다. 흙더미 위 오크들의 급조 요새는 조악했다. 목책과 감시탑을 지어서 아르데니아 인근의 고블린 소굴보다 좀 나은 정도였다. 하지만 인간 기사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오크들은 체격 차이와 지형적 우세를 바탕으로 드워프 토벌대를 연일 몰아내고 있었다.
“무너진 흙이 물러서 공격군의 발을 묶는군. 사격전 양상인데.”
전장까지 걸어온 에드워드의 감상이었다. 초록피부의 오크들을 흥미진진하게 보던 리안나는 손을 뻗어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뭐예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조잡한 대형 쇠뇌들이 있었다. 수레 위에 활대를 2개씩 거치해 장력을 확보한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한둘이 아니었다.
“노포. 오크들이 즐겨 쓰는 공성병기지. 성벽보다는 마을 담벼락이나 사람 정도를 노리는 물건이지만. 근데 꽤 많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크들이 노포를 쐈다. 콰직! 쇠 찌그러지는 소리가 드워프 대열의 함성 속에서 새어나오다 묻혔다. 루이사는 오래 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에드워드를 향해 질문했다.
“놈들한테 돌이 떨어질 일은 없겠죠?”
“무너진 경사로와 하천 아래에서 긁어모으면 되니까 탄환이 부족할 일이 없을 겁니다.”
에드워드의 분석대로, 오크들의 주무기는 투석이었다. 드워프 군대는 진흙 위로 사다리를 던진 다음 그걸 밟으며 올라갔지만 공격은 지지부진했다. 루이사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저 정도 규모면 오크 주술사도 있겠는데요? 우리도 마법사나 사제의 증원을 건의해야…….”
에드워드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주변 지형지물과 병력의 규모를 살펴보던 그는 문득 이상한 것을 느꼈다. 그는 루이사에게 질문했다.
“저 흙더미 뒤로는 물이 갇혀 있습니까?”
“그렇겠죠?”
“아무도 확인 못 했습니까?”
“오크들이 물을 가뒀다고 하잖아요? 게다가 길을 바꿔 밖으로 흘러나오는 물이 있다는 이야기는 못들었으니까, 물이 그대로 갇혀 있겠죠.”
“저는 비전문가라서 잘 모르겠는데, 저게 그만큼 튼튼합니까?”
그 말에 루이사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흙더미를 더 눈여겨 보았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네요. 좀 더 가까이 가서 살펴본다면 판별이 가능하겠지만. 왜요?”
“더 높은 데에서 보는 건?”
“이미 이 근처 봉우리에는 적 감시병들이 배치되어 있을 거예요. 더 먼 봉우리에 정찰병을 보내면 되겠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혹시 저 흙더미가 무너질까 봐 불안하신가요?”
“그것도 있는데…… 일단 확인은 해 봐야겠습니다.”
에드워드는 잠시 생각해 보다 허리띠를 풀었다. 그는 캐슬린을 향해 말했다.
“너 루이사 님 데리고 높이 올라갈 수 있어?”
“높게 날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통나무에 묶인 헬레나도 우물에서 꺼내 봤잖아.”
“그땐 그 성이 주술과 악령의 난장판이니 제 힘도 나름 강했던 거죠. 그리고 당사자 의견은 안 물어보세요?”
에드워드는 루이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마법 허리띠에 매달려서 하늘을 나는 건 좀…….”
없던 고소공포증도 생길 경험이긴 했다. 밴시 리안나도 선수를 쳤다.
“저도 거부할게요! 저는 전문가가 아니니, 허리띠만 하늘로 올라가도 별 차이는 없잖아요?”
에드워드는 납득했다.
“알았어. 캐슬린, 위로 올라가서 좀 확인해 봐.”
“어떤 거요? 저도 비전문가인데.”
“물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새 물길이 있는지 그 정도만 확인해.”
“네.”
캐슬린은 하늘로 슝 날아갔다. 수직으로 오크 감시탑만큼 높이 날아갔던 캐슬린은 곧바로 에드워드에게 돌아왔다.
“물 없는데요?”
“뭐?”
“바닥이 말랐어요. 오크들도 마실 물은 다른 데서 길어 오던데요?”
루이사는 혼란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물이 없다고요? 그럼 오크들은 왜 저길 지키고 있는 거죠?”
베로니카도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게. 처음엔 왕국의 물을 끊으려는 악마의 수작질인 줄 알았는데, 이미 말랐다면 저길 오크들이 지키고 있을 이유가 없어.”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의문은 처음부터 가져야 했어. 저만큼 많은 병력과 무기를 동원해 놓고 소금산에서 수도 요금 받는 수준으로 끝낼 리가 없지. 저건 시선 끌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