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62)
62화 소금 맛
개미굴에 들어가면 기분이 비슷할 것 같다. 에드워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소금광 안은 사방에서 뭔가를 파내고 갉아내는 소리가 울렸다. 대항 갱도를 파는 드워프들의 작업 소리라고 했지만, 적 갱도를 파는 소리도 조금은 섞여 있을 것이다.
소금광은 거대한 나선형 홀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굴이 파인 구조였다.
대항 갱도를 파고 배수로를 확장하는 것 외의 굴착 작업은 일체 중단되었다. 에드워드 일행 대부분과 병사 대부분은 홀에, 적 갱도가 의심되는 각 굴에는 광부들과 선봉이 배치되었다.
마흔 개가 넘는 적 갱도를 찾아냈고 그것보다 더 많은 갱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이것은 분명 ‘위기’였다. 그러나 소금산은 아직 군대가 남아 있었고 광부들도 어디론가 달아나진 않을 남자들이었다.
“도시가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혹 수공이 먼저 시작되더라도, 소금광에는 이미 배수로가 몇 개 있으니 그걸 최대한 이용해서 시간을 벌어보지요.”
제1 광산 책임자의 말이었다. 첫 갱도가 뚫리는 순간 역으로 공격해서 쳐들어간다. 물론 도박이다. 잘 풀린다면 오크 측 수문을 장악하겠지만, 그게 어디에 있는지 어떤 형태인지도 아직 모른다. 갱도로 들어가자마자 물벼락을 맞고 수장될 가능성이 더 컸다. 손님인 에드워드와 왕실 인사인 루이사가 선봉에 포함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드워프들은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루이사 님, 여기도 위험할 것 같은데 밖으로 나가시죠.”
에드워드는 루이사에게 슬쩍 가서 말했다. 그녀는 소금광 안에서는 그나마 높고 안전한 곳에서 군대와 광부를 굽어보았다.
“여기면 충분해요. 전 이 일의 진상을 확인할 의무가 있어요.”
에드워드는 더 말리지 못하고 슬쩍 물러섰다. 그는 가르달을 향해 말했다.
“일이 이 지경이 되어가는데 왕과 왕세자는 뭐 하는 거요?”
“왕의 식탁에서 봤잖소. 왕은 노쇠했소. 그분이 기력을 쓰는 날은 드물지.”
“수도 요금을 청구하러 온 오크 사절의 모가지를 날렸단 소리가 있던데?”
“오크는 치매와 요실금 걸린 드워프도 도끼 잡게 만드는 족속들이니까…… 그리고 왕세자는 도시를 지켜야지요.”
“그래서 루이사 양이 바쁘다?”
“장수는 아니지만, 왕실의 눈이니까.”
“정말 그것뿐이오?”
“속셈이 더 있다면 인간 정치꾼들이나 갖고 있겠지. 근데 왜 그러는 거요?”
“레이디가 지켜보는데 기사가 내뺄 수는 없어서. 기사한테 스스로를 미끼로 던지는 레이디들이 가끔 있다고는 들었는데, 지금이 그 상황인가 싶소.”
“내뺄 생각이오?”
“수틀리면. 난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보단 살아 돌아와서 복수하는 쪽이 취향이오.”
“뭐, 복수도 사내한테 나쁜 선택지는 아니지요. 그나저나 루이사 님은 몰라도 인간 정치꾼들이라면 레이디를 미끼로 삼아 기사를 낚아 보자는 발상을 못 할 것 같지는 않은데…….”
에드워드는 쓰게 웃었다.
“여차하면 들고 튑시다.”
“그건 사내다운 변명이 준비되어 있소?”
“왕실의 숙녀 보호.”
“그럴싸하군. 납득했소. 그런데 혹시 루이사 님께 마음이 있소?”
“있다면?”
“말리고 싶소.”
“흠. 뭐, 스트레스 풀리는 순간 드워프 평균으로 돌아갈 여자라도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는 나쁘지 않겠지만.”
“외모지상주의시구먼.”
그 순간 광산에서 함성이 터졌다. 양측 갱도가 이어진 것이다. 광부 중 일부가 함성을 지르며 그늘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쇄도했다. 에드워드는 그 뒤를 잇는 드워프 병사들을 보고 중얼거렸다.
“물이 나오지는 않는 것 같은데.”
“나오고 있소. 병사들의 발아래로 물이 흐르는군. 새고 있는 건가?”
“그게 보이쇼?”
“적은 양이라 아직 괜찮은 것 같소. 오크들이 수문을 열기 전에 치고 올라갈 수 있는지가 문제인데.”
불행히도 그 반대였다. 갑자기 드워프들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보다 뒤에서 구경하던 예비대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뭐야! 왜 물러서는 거야?”
“전진해!”
“물이 터지기 전에 더 들어가야 해!”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선두의 드워프들은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퇴각! 퇴각!”
에드워드는 입술을 삐죽였다.
“실패했나 보군.”
“벌써 끝나다니, 오크 놈들이 뭘 준비했기에 그러는지 궁금하구려.”
그 답은 오래지 않아 나왔다. 한 드워프가 물과 끈적이는 점액에 흠뻑 젖은 채 뛰쳐나왔다. 그의 뒤를 이어 나온 드워프들도 다 비슷한 모양새였다.
“괴물이다! 괴물들이 있다!”
에드워드과 가르달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잠시 뒤 선두그룹은 모두가 듣도 보도 못한 것을 끌고 나타났다.
“저게 뭐야?”
루이사가 비명을 지르듯 말했다. 드워프들 손에 잡혀 끌려 나온 건 오크가 아니었다. 인간도 아니었다. 몸이 비늘로 덮이고 머리는 물고기와 사람을 반반 섞은, 팔다리가 달린 이족보행 괴물이었다. 크기는 인간 수준. 드워프들은 놈을 있는 힘껏 걷어차며 몰매를 때렸다.
“저 안에 이런 게 바글바글합니다! 곡괭이로 대가리를 까도 죽지를 않습니다!”
한 광부가 외쳤다. 다른 광부들은 미리 준비해 뒀던 바위로 갱도를 틀어막았다. 그들은 통나무로 지지대까지 설치한 다음 물러섰다. 하지만 임시방편이었다. 돌 긁는 소리에 광부들은 사색이 되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루이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온 거죠? 저것의 정체를 아시는 분 없나요?”
루이사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답변이 없었다. 에드워드, 헬레나, 베로니카는 차례로 고개를 저었다.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저런 건 처음 봐요.”
“교황청 자료에도 저런 건 없죠.”
에드워드는 드워프들을 헤치고 나가 그 물고기 인간을 향해 걸어갔다. 놈은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주변의 암염 가루를 집어다 놈에게 뿌려 보았다. 놈은 바로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말할 줄 아냐?”
에드워드의 질문에 놈은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니었다. 듣기 싫은 날카로운 울음소리였다. 베로니카는 귀를 막은 채 에드워드의 뒤에 다가왔다. 그녀는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고문해 봤자 얻는 게 없겠는데?”
“짐작 가는 것 없어?”
“소금산은 아득한 옛날에 바다였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어. 그래서 바닷조개의 화석 따위가 나온다지. 아마 그 시절의 어떤 종족이나 괴물이 아니었을까?”
“종족? 이게?”
“빛과 어둠은 경쟁적으로 종족을 만들고 신앙의 패권을 다퉜어. 지금은 양쪽에 각각 네댓밖에 안 남았고 전멸했지만, 사실 옛 종족 중 일부가 살아남았다면?”
에드워드는 혀를 한번 찼다.
“오크들이 부리는 걸 보면 적어도 빛의 종족은 아니겠지?”
“그렇겠지. 최소한 리자드맨처럼 중립일 거야.”
베로니카는 드워프 병사 하나를 지목했다.
“너, 이거 배를 갈라 봐.”
드워프 병사는 루이사를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고분고분하게 움직였다.
“이렇게 기분 더러운 생선 손질은 난생처음이군.”
병사는 짧은 불평을 뱉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 버렸다.
“아, 바다 생선은 여기서 귀한 음식이었지.”
베로니카는 한참 놈의 배와 내장을 살펴본 뒤 말했다.
“웃기는 족속이네, 이거.”
“왜?”
“물고기 주제에 폐가 있어. 그래서 육지에서도 숨을 쉬는 거야. 손톱 밑에는 암염과 돌가루가 가득한 거 보면 손으로 긁어댔나 봐.”
“힘 좋네. 그걸로 굴을 파다니.”
드워프 병사는 놈의 위장을 찢어 갈랐다. 잠시 뒤 토막이 난 시체, 돌멩이 크기의 알, 정체를 알 수 없는 촉수 따위가 튀어나왔다. 시체 중 일부는 드워프였지만, 일부는 놈과 비슷한 족속들이었다. 에드워드는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분간 드워프 시장에서 나오는 생선은 보기도 싫어지겠군.”
놈은 그 지경이 되어서도 숨을 쉬는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아가미를 까딱거렸다. 베로니카는 대충 살펴본 다음, 폐석과 소금가루가 가득 쌓인 곳을 가리켰다.
“저기 던져 봐.”
드워프들은 그녀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배가 갈라진 괴물은 폐석 더미에 떨어지자마자 마지막 남은 힘으로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러댔다. 상처에 소금이 들어갔으니 그럴 만했다. 하지만 날뛸수록 소금가루가 더 잔뜩 묻었다. 잠시 뒤 놈이 잠잠해지자 드워프들은 놈을 도로 끌고 왔다. 온몸의 수분이 빠져나가 말라비틀어진 채였다. 죽은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죽었나?”
에드워드가 놈을 발끝으로 툭툭 차 보았다. 반응이 없었다. 베로니카는 수통의 물을 놈의 머리에 부었다. 잠시 뒤 놈의 눈이 다시 희번덕거리자 드워프들은 경악했다.
“살아났다!”
이단심문관 베로니카는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이 녀석들, 물이 없으면 말라비틀어지나 봐. 그 상태로 이 산속에 갇혀 있던 거지.”
베로니카는 놈의 사체를 걷어찼다.
“죽여.”
드워프들은 곧바로 도끼와 곡괭이를 퍼부어 놈을 토막 내고 다졌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크들이 수공을 위해 물을 준비한 게 아니었어. 이놈들을 살려내려고 물을 들이부은 거야. 저 너머에 광산과 도시에 퍼부을 물 따윈 없을걸.”
하지만 안심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침묵이 드워프들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베로니카는 나지막하게 결론을 마저 말했다.
“물을 한껏 들이마시고 부활한 옛 종족의 군대가 있지.”
“뚫렸다!”
한 병사의 외침이 먼 곳에서 들려왔다. 여기가 아니다. 잠시 후 커다란 고함이 그 뒤를 이었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뽑았다.
“두 번째 갱도로군.”
잠시 뒤 한 병사가 달려 나왔다. 그는 공포와 기쁨이 섞인 목소리로 루이사에게 말했다.
“오크들이 괴물들을 투입했습니다! 하지만 통로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어떻게? 여기서는 그 괴물들이 쏟아져나와서 후퇴해야 했는데?”
루이사는 더 자세한 내막을 물어보았다. 전령의 얼굴은 다시 공포로 물들었다.
“예? 제가 있던 곳에서는 여덟 마리가 전부였습니다. 좀처럼 안 죽어서 전부 토막을 냈는데…….”
에드워드는 초롱을 들고는 그 전령한테로 걸어갔다. 그는 전령의 어깨를 툭 쳤다.
“운 좋은 친구, 안내해 봐.”
잠시 뒤, 에드워드와 가르달은 미끌거리는 적 갱도를 따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이어졌던 갱도는 상당히 크고 넓은 편이었지만, 이번 갱도는 작았다. 파는 놈들의 숫자가 적었다는 뜻이다. 가장 용감한 드워프들의 뒤에서는 베로니카가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나까지?”
“주문을 다섯 개나 쓰는 사제가 어디 흔하냐?”
길이 좁고 투입할 인력이 제한될수록 우수한 전력이 필요하다. 결국 에드워드와 가르달뿐만 아니라, 일행 전체가 투입되었다. 밴시 리안나까지.
“그리고 이런 이변은 교회도 알아야지.”
“갑자기 신앙심과 충성심이 충만해졌니?”
“아니. 널 믿는 거지. 그것도 모르냐?”
에드워드는 핀잔 아닌 핀잔을 준 다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베로니카는 충격받은 표정을 짓고는 헬레나에게 속삭였다.
“제가 쟤한테 저런 소릴 듣는 날이 다 오네요.”
헬레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 침묵했다.
다행히 매복 따위는 없었다. 갑자기 갱도가 넓어지는 순간, 에드워드는 캐슬린을 허리에서 풀고는 속삭였다.
“먼저 보고 와.”
“안 가면 안 될까요?”
캐슬린은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에드워드의 바로 뒤에 선 리안나는 기쁨에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에드워드도 고개를 저었다.
“널 미리 보내 볼 수 있으니까 루이사 님도 따라온 거야.”
허리띠는 투덜거리면서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일행은 침묵을 지킨 채 캐슬린의 복귀를 기다렸다. 잠시 뒤 그녀가 돌아오더니 에드워드 앞에 멈췄다.
“당장 위험한 건 없지만…… 설명하기 힘드네요.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에드워드는 뚱한 표정을 지은 다음 캐슬린에게 초롱을 넘겼다. 중간에 초롱이 매달린 허리띠는 앞장서 날아갔다.
일행이 그 뒤를 따라 갱도를 벗어나니 천장은 낮지만 광활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드워프 지하도시의 광장이나 소금광의 중앙홀의 넓이는 그것에 비하면 애들 놀이터에 불과했다. 사방에서 갉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캐슬린이 초롱을 매단 채 좀 더 높이 날자 일행은 조금 더 먼 곳까지 볼 수 있었다.
“도시야.”
베로니카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헬레나는 긴장한 채 마른 침을 삼켰다.
“미로군요.”
루이사는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런 건 처음 봐요.”
건축사만이 가능한 소감은 아니었다. 녹색 벽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지하 공간에 펼쳐져 있었다. 다만 직선이 아니라 물풀처럼, 촉수처럼, 소용돌이처럼 구불구불한 구조라는 게 지상의 도시와 다른 점이었다. 사방에는 그 괴물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저 멀리서는 물이 들어오는 폭포 소리가 울렸다. 오크들이 지키는 그 수로임이 분명했다.
에드워드는 발치에서 괴물들의 잔해를 발견하고는 중얼거렸다.
“악마가 발견하고, 오크가 깨우고, 아직 못 깨어난 동족들을 잡아먹으며 생존하는 옛 종족이라. 이제 오크들 생각을 알 것 같네. 이놈들이 오크들의 새 노예고 군대야.”
오크들이 시간벌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드워프들을 전부 죽일 생각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