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66)
66화 남자의 문제, 여자의 답
드워프들은 왕국의 수도를 위해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꺼내 썼다. 가장 중요한 건 가스관이었다. 소금광에서 도시로 향하던 가스관을 전부 뜯어다 그 반대 방향으로, 적들의 도시로 돌리는 게 먼저였다. 구멍을 새로 뚫을 필요는 없었다. 어인들이 파 놓은 갱도에 설치하면 되니까.
물론 어인들의 갱도를 뺏거나, 전투 끝에 막힌 갱도에 몰래 가스 주입용 작은 구멍을 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드워프들은 일종의 사명감과 기대감에 취해 있었으며 집요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갱도마다 불이 뿜어져 나오는 대폭발로 이어졌으며, 물통 따위를 이용한 원시적인 형태의 가스 역류 방지장치와 자동 소화 장치들까지 죄다 박살을 내 버리고 말았다.
폭발의 충격은 수도 오로트까지 뒤흔들었다.
한 광부의 외침은 적나라하기까지 했다.
“오로트를 건드리면 이렇게 되는 거야!”
루이사는 집무실 책상 아래에 들어가 머리를 싸맨 채 그 진동을 견뎠다. 잠시 뒤 진동이 잦아들자 그녀는 손수건으로 입을 막은 다음 책상 아래에서 나왔다. 사방이 먼지투성이였다. 그녀는 창밖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진동이 크긴 컸네요.”
광장 위에 매달아 놓은 채광용 은거울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다행히 죽거나 다친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오로트의 광장은 건설 이후 가장 침침한 어둠에 휩싸였다. 드워프들은 횃불을 들고 뛰어다니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루이사 님께서 애쓰셨으니 큰 피해는 없겠죠.”
아직 탁자 아래에 숨어 있던 베로니카의 말이었다. 그녀는 가벼운 정신 오염에서 회복된 후 루이사와 함께 소금광과 오로트를 누볐다. 그래서 그녀를 포함한 왕실 건축사들과 기술자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전부 지켜볼 수 있었다.
루이사는 붕괴의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온갖 장치와 지지대를 고안했고, 혹시나 모를 피해에 대비해 시민들 상당수를 밖으로 대피시켰다. 도시에서 광산에 이르기까지 남은 건 최소한의 병력과 기술자들, 그리고 자원자들이었다.
잠시 뒤 루이사의 집무실로 전령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어디가 무너졌고, 어디가 부서졌고, 어디에 불이 났고…… 그녀는 정신없이 기록하고 명령을 하다, 전령들의 발걸음이 뜸해질 때쯤 볼멘소리를 뱉었다.
“왜 일은 남자들이 저지르고 뒷일은 제가 수습해야 하는 걸까요?”
“송구하네요. 제가 정신 오염을 안 겪었으면 말리는 건데.”
루이사는 고개를 저었다.
“에드워드 경만 그런 게 아니에요. 적어도 드워프들, 넓게는 남자들의 공통 문제이지. 스트레스는 매일 저나 인간 관료분들이 받는다니까요?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수명이 짧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전 사례를 열 개도 더 들 수도 있어요.”
“하긴, 남자들은 다 그렇죠.”
“아무런 안전장비도 없이 사다리를 위태로운 곳에 올리질 않나, 치솟는 지하수 위에 올라가서 놀고 싶어 하질 않나, 조금만 경사진 곳을 보면 미끄럼을 타질 않나, 흔들리는 곳만 보면 올라가서 균형 잡기 놀이를 하질 않나, 안전 대책이랍시고는 물 한 동이만 갖다 놓고 택도 없는 불장난을 치질 않나!”
가면 갈수록 한이 맺히는 것 같은 사례 나열에 베로니카는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웃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녀 앞에서 루이사는 계속 열변을 토했다.
“오라버니는 어렸을 때 지하수로 움직이는 물레방아 위에 올라가서 달리기 놀이를 했다니까요? 왕가의 대를 끊을 일이라도 있나?”
“왕가 이야기였어요?”
“드워프 평균이죠! 하루하루가 소름 돋아요! 그런데 손님이자 영웅이요, 해결사여야 할 인간 기사님마저 같이 어울려서는!”
“안 좋은 조합이었죠.”
“기가 막히지 않아요? 기사라면, 그것도 영웅이라면! 수수께끼를 기발하게 풀거나, 머리 셋 달린 괴물을 죽이거나, 저주받은 돌을 깨서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거나, 천사 강림 또는 신벌을 이루거나! 뭐 그런 극적인 이야기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가스 채워 불 땡기자는 게 뭐예요 대체?!”
에드워드도 지하도시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긴 했다. 베로니카는 웃어 버리고는 적당히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런 게 모범적인 영웅담들이긴 하죠.”
루이사는 이를 갈면서 말했다.
“에드워드 경이 그런 영웅이었다면, 신료들이 부추기지 않았어도 제가 그 품에 몸을 던졌을 거예요.”
“어머나, 역시 그런 속셈이셨어요?”
“기사님을 이용하는 건 레이디의 특권이죠.”
“그렇긴 하지만.”
“하지만 제가 원하는 기사님이 아니었어요. 에드워드 경은. 남자라면 이제 지긋지긋해요.”
드워프들과 오히려 죽이 맞는 망나니 기사. 베로니카는 몸에 묻은 먼지를 털면서 말했다.
“에드워드한테는 안 좋은 소식이네요. 루이사 님의 호감을 얻어 볼 순 없을까 하던데.”
“이쪽에서 거절하고 싶네요. 이제는.”
“그럴 수도 있죠.”
그때 루이사는 슬쩍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사제님은 왜 그런 남자랑 같이 다니세요?”
“네?”
“왜 하필 골라도 그런 남자였죠?”
“그야, 제일 싸서?”
왕성 감옥의 죄수였으니 제일 싼 값이긴 했다. 루이사는 베로니카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당신처럼 아름다운 분이 겨우 그런 이유로…….”
베로니카는 루이사의 눈빛에서 묘한 기색을 느끼곤 식은땀을 흘렸다.
* * *
에드워드는 불타고 뒤흔들리는 땅 위에서, 살아남은 오크들을 베어 넘겼다. 화염과 연기에 다치지 않게 해주는 마법 반지 덕에 그는 웬만한 불길도 그냥 뛰어넘을 수 있었다. 오크들이 보기에, 그는 마치 조금 전 그 화염과 같이 올라온 기사 같았다.
“괴, 괴물이다! 괴물 기사다!”
오크들은 뒤로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 오크 주술사가 어렵게 주문을 외워 불벼락을 쏘았지만, 역시나 불은 에드워드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 순간 패닉은 더 증폭되었다. 가르달은 그 주술사에게 투척 도끼를 던져 쓰러뜨리고는, 뒤를 향해 외쳤다.
“엄호하시오! 댁들이 죽일 놈들은 남겨 줄 테니!”
“와아아아아아!”
괴성과 함께 드워프 군대가 뒤를 따랐다. 사제도, 병사도.
헬레나는 사내들의 광기에 휩쓸리는 대신,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상황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오크 쪽 봉우리 중 한 곳에서 검은 머리의 여인을 발견했다. 금빛 로브를 입고 나무 그루터기 위에 앉아 있었다. 제일 발이 빠른 오크 몇이 그녀 주변에 몰려가는 것이 보였다. 겉보기에는 마치 오크 행렬과 맞닥뜨린 불행한 인간 같았다. 그러나 인간 여자라면 오크들을 보자마자 달아나야 할 것이다.
그녀는 인간이 아니다.
예상대로 오크들은 그녀 앞에 무릎 꿇거나 서서 뭐라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애원이 아니면 규탄일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어쨌든, 잠시 뒤 모두 픽픽 쓰러졌다. 그녀의 손끝에서 검붉은 무언가가 빠르게 왕복하는 걸 본 헬레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악마.”
여악마는 귀찮게 구는 오크들을 죽이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이 일의 배후일 것이다. 여악마는 헬레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무시해 버렸다. 그녀는 에드워드를 향해 시선을 한번 준 다음,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그제야 헬레나는 나무 아래로 내려갔다.
“겁쟁이 엘프! 안 오고 뭐 하냐!”
가르달의 목소리가 다른 드워프들의 고함을 뚫고 헬레나의 귀에 파고들었다. 그녀는 글레이브를 고쳐 잡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들은 왜 저럴까.”
* * *
전투 후, 소금산은 피해를 복구하느라 분주해졌다. 승리의 연회를 벌이고 싶어도 수리와 복구가 먼저니 별수 없었다. 그래서 에드워드 일행은 오래 머물지 않고 다시 여행 준비에 나섰다.
불행히도 에드워드는 ‘소금산을 구원한 영웅’이 되지 못했다. 가스폭발이라는 발상은 그가 했지만, 실제로 그 계획을 실행하고 위험과 피해를 무릅쓴 건 소금산의 드워프 전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소금산과 함께 싸운 영웅’이 되었다.
“뭐, 그것도 나쁘진 않네.”
화물 승강기 앞에서 에드워드가 낄낄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앞에는 드워프 장인들이 준 선물과 장비들이 한가득이었다. 제일 인상적인 것은 겉옷 밑에 철판을 추가한 것, 그리고 새 장갑이었다. 그건 가죽장갑 위에 철판을 연이어 붙여서 흡사 쇠로 만든 장갑처럼 보였다.
“에드워드 경에게 진즉 이 장비들을 줬어야 했는데, 가스관과 환풍 설비를 뜯어 옮기는 문제로 다들 바쁜지라 전투 뒤에야 내주게 되었다는군.”
가르달이 설명했다. 에드워드는 개의치 않았다.
“괜찮소. 그런데 이걸 다 입으면 몸이 좀 무거워지긴 하는군.”
“갑옷을 두 벌 입은 꼴에 가까워지니까. 평소에는 평범한 서코트를 걸칠 것을 권하는 바요.”
에드워드는 새 장갑을 손에 끼고 쥐었다 폈다 해 보았다. 괴력 때문에 방패를 못 쥐니 쇠장갑을 그럴듯한 방어구로 써먹을 수 있을 듯했다. 다만 유지·보수가 문제였다.
“이거 혹시 떨어지거나 찌그러지면 그땐 어쩌지?”
“인간 대장장이도 고칠 수는 있을 거요. 뭐, 내가 따라다니겠지만.”
“댁이? 댁은 상인 아니오?”
“처음부터 상인이었던 건 아니오. 쇠 두드릴 줄도 알지. 내 본가에 이동식 대장간과 노새가 있으니 끌고 나오리다.”
“그럼 문제는 해결이군.”
에드워드는 자기 앞에 놓인 선물들을 둘러보다가 중얼거렸다.
“루이사 님의 선물 같은 건 없나?”
리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거요?”
“작게는 손수건 같은 것부터…… 자기가 입던 내의를 주는 레이디도 있지.”
“그걸 기사님이 입으라고요?”
“그럴 리가 있냐? 기념품으로 주는 거야.”
“옷이 왜 기념품이에요? 옷은 입는 건데?”
세탁노예다운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말했다.
“뭐, 난 여자 방에 직접 들어가서 받는 걸 선호하지만.”
그때였다. 베로니카가 저 멀리서 일행들을 향해 후다닥 달려 나왔다. 그녀는 마차 위로 뛰어오르더니 소리쳤다.
“올려!”
어리둥절한 일행들 가운데 드워프 승강기 안내원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화물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는 건 마부로만 제한되는…….”
“닥치고 올려! 너희들도 얼른 타!”
에드워드 일행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승강기에 올랐다. 가져올 짐이 남은 가르달만 아래에 남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곧 따라가리다!”
곧바로 승강기가 움직이면서 일행은 햇빛이 비치는 곳까지 올라갔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향해 물었다.
“야, 무슨 일인데?”
“말하기 싫어. 아니, 하면 안 돼.”
베로니카는 대답을 회피했다. 헬레나가 대신 답했다.
“루이사 님이 베로니카 님의 지식에 많은 관심을 갖더군요. 학식은 물론이고 최근에 접한 어인들의 문명까지요.”
“뭐야. 좋은 일 아닌가. 그런 관심이면 내가 받고 싶구만.”
“당신은 건설사의 업무를 가중시키는 해로운 인간으로 간주되는 거 같던데요.”
“젠장. 궁합이 안 좋았어. 하여튼, 고위인사와 친하게 지내는 건 나쁠 게 없잖아? 좀 상대해 드리지 그랬어?”
“했어! 지식은!”
“지식은?”
에드워드가 되묻는 순간, 리안나가 짐꾸러미 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이게 뭐예요?”
리안나가 꺼내든 건 반투명하고 하늘하늘한 여성용 긴 속내의였다. 에드워드는 매의 눈으로 그걸 살펴보다 말했다.
“크기로 보니까 체구가 딱…… 루이사 님 속옷 같은데?”
“그게 왜 여기 있죠?”
“부끄러움이 많아서 몰래 넣어 둔 선물인가?”
“기사님께 준 선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왜?”
“베로니카 님 짐꾸러미에서 나왔어요.”
툭.
“가르달! 누가 몰래 넣어 놓은 것이니까 갖다 버리고 올라와요!”
베로니카는 빽 소리친 다음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았다. 에드워드는 피식 웃으면서 승강기 아래를 내다보았다.
“나도 잘 관람하고 도와줄 수 있는데.”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밀쳐 떨어뜨릴 기세로 그의 어깨를 강하게 때렸다.
* * *
늙은 오크 주술사 하나가 으슥한 계곡의 좁은 길을 따라 올랐다. 그 끝에는 불길한 금빛의 동굴이 있었다. 그는 그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검은색의 짙은 눈화장을 하고 황금빛 로브를 입었으며 검은 머리에 붉은빛이 감도는 여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술사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악마 레피림이여! 이제 저희는 바칠 것이 없습니다! 너무 많은 물자를 써버려 오는 겨울을 나기도 어렵습니다…….”
여자는 눈을 빛내며 매섭게 쏘아붙였다.
“내게 그 소리 하던 오크들은 이미 다 죽인 줄 알았는데?”
“더 빌지는 않을 터이니 더 내놓으라 하지만 말아 주십시오!”
오크 주술사는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악마는 코웃음을 쳤다.
“결국 일을 그르쳤지만 소금산도 크게 약화되었다. 그걸로 만족하마. 너희가 충직하게 내 계시를 따랐으니, 나도 너희에게 보답하겠다. 하지만 너희가 먼저 불경히 청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라. 가서 얌전히 기다려라.”
주술사는 땅에 이마를 부딪친 다음, 뒤로 기다시피 물러섰다. 악마 레피림은 소매에서 파이프를 꺼내 입에 물었다. 허공에서 저절로 불이 튀더니 연초에 불이 붙었다. 그녀는 연기를 깊게 빨아들인 다음 허공에 고리 모양으로 뱉었다. 그 안에는 서로 티격태격하는 에드워드 일행이 비추어졌다.
악마 레피림은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소문은 들었다만, 마법 반지 하나 얻었다고 불장난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구나. 분명 화공은 효과적이지…… 하지만 다음에도 그럴 수 있을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으로 연기를 흩어 버렸다.
“내 사업을 망쳤으니, 네놈도 꼭 보답을 받게 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