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67)
67화 교육도시의 교육 실패
루이사는 나름 집요했다. 그녀는 왕실의 건축사이기 때문에 크게 파괴된 오로트와 소금산을 두고 떠날 수가 없었으므로, 대신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오로트는 산 아랫마을과 도시로 서신을 빠르게 내는 수단이 있었다.
“또 편지 왔는데?”
에드워드가 베로니카한테 원통에 든 편지를 보여 줬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죽을상이었다.
“집요하시네…….”
그 마을에는 오로트에서 내려오는 밧줄이 있었다. 작은 수레를 달아 서신을 내려보내는 것인데, 거슬러 올라갈 방법은 없는 일방통행 통신수단이라 오로트에서 긴급명령을 하달할 때만 쓰는 물건이었다. 그나마도 그렇게 급한 명령을 내릴 일은 잘 없어서 봉화, 전서구, 전령에 비하면 쓸 일이 없다. 사실상 오로트 왕실의 권위 과시용이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편지를 펼쳤다.
“읽어 줘?”
“실례야!”
베로니카는 그 편지를 냅다 뺏은 다음 소매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루이사 못지않게 집요히 공격했다.
“이런 데는 면역 없나 보네? 의외로 순진한 처녀였군.”
“웃기지 마. 신학과 여자기숙사의 색욕과 광기를 보면 너도 도망칠걸.”
“뭐야, 그럼 왜 거절하는 건데?”
베로니카는 잠시 침묵하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내가 주도권 잃는 건 안 익숙해…….”
“아, 네가 공이어야 되는 거냐? 근데 그게 그리 중요해?”
“중요해! 공과 수가 바뀌는 건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것 이상이라고!”
“난 모르겠다.”
티격태격하는 둘을 보고 가르달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해 넘어가겠구먼.”
아직 아침이니까 명백한 과장법이었다. 리안나는 흥미진진하게 음담패설을 듣다가 헬레나를 올려다보았다. 헬레나가 먼저 말했다.
“애들은 저런 거 몰라도 돼.”
헬레나는 기겁했다. 가르달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네가 방앗간에서 남녀 교접을 몰래 엿보는 거랑 심리가 비슷하겠지.”
“오, 이해했어요.”
헬레나는 작게 입을 벌린 다음 고개를 저었다.
“애가 그런 말 해도 되니?”
“저 애 아니에요. 밴시지.”
“그럼.”
가르달의 맞장구에 헬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가 색욕 죄악의 소굴이군요.”
“리더들부터 저러잖아.”
가르달의 짧은 평이었다. 헬레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드워프는 끝내 한마디를 더 얹었다.
“너도 기사 양반의 침실에 들어가면서 뭘 그래?”
“전 사전학습이거든요?”
“그거나 그거나.”
에드워드와 베로니카에 뒤이어 헬레나와 가르달이 티격태격하기 시작했지만 그건 오래 못 갔다. 베로니카는 넋두리 끝에 일행 전체를 향해 선언했다.
“여하튼! 다음 목적지는 투리치로 하겠어!”
“거기가 어딘데?”
“신학대학과 마법학당이 다 있는 교육도시지. 원래는 작은 소도시였는데, 명망 높은 교수들이 모이면서 급격히 발달한 곳이야.”
“왜 하필 거기에 모였대?”
“집세가 쌌어.”
“저런.”
에드워드는 웃었다. 학교가 땅값 싼 곳에 자리 잡는 건 어디나 똑같았다.
“지금은 비싸지만. 여하튼 그곳으로 방향을 잡으면 드워프 영역을 가장 빨리 벗어날 수 있어.”
“루이사 님이 쫓아내려올까 봐 무서운 거군. 신학대학 여자기숙사의 지배자께서.”
“아니거든?”
“너 대학 어디 나왔는데?”
“메디올리눔 대학 신학과.”
에드워드는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다음 사서의 투로 입을 열었다.
“메디올리눔 여자기숙사의 지배자 베로니카 캠벨이 드워프 도시 오로트에서 패퇴하고 투리치 여자기숙사로 세력을 확장하다…….”
베로니카는 기어이 에드워드의 등짝을 다시 때렸다.
* * *
투리치는 오로트와 트레베리아 영주들 사이에서 줄타기하던 독립도시였다. 처음에는 어느 영주의 지배와 간섭 아래 있었지만 학자들이 모이고 도시의 힘이 커지자 독립한 경우였다.
“최근 트레베리아 지도가 좀 걸레짝이긴 하지.”
에드워드의 논평이었다. 그의 앞에는 기사 셋이 흙먼지 속을 뒹굴고 있었다. 에드워드한테 시비를 건 편력기사들이었다. 이유는 다 달랐지만 에드워드의 돈과 노예와 일행을 노린 건 분명했다.
저주받은 손 때문에 동급 기사와 마상 전투로 붙으면 불리한 구석이 한둘이 아니긴 했지만, 다행히 그들은 에드워드와 동급은 아니었고 하나씩 차례대로 덤볐다.
“져, 졌다! 몸값을 내겠다…….”
한 기사가 말했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닭을 잡았는데 닭장이 없네.”
“투리치에 도착하면 감옥을 빌려.”
“어, 포로는 손님 대접이 기본인데 감옥도 괜찮은가?”
“우린 차분히 손님 접대할 상황이 아니야. 그리고 특별사법관 일행에 덤볐으면 그 정도 곤욕은 치러야지.”
“흠. 감옥 빌리는 것도 돈 내야겠지?”
“그렇지.”
“월세 내면 내 몫이 줄어드는데.”
“어쩌겠니.”
“더러운 부동산 제일주의.”
에드워드가 투덜거리거나 말거나, 가르달과 리안나는 신나게 기사들의 물건을 뺏었다. 이제 그들의 말, 무기, 갑옷과 소지품은 전부 에드워드의 소유였다. 리안나는 주인을 떨어뜨린 채 멍청히 서 있던 말들을 끌고 오면서 말했다.
“기사님 말대로 대륙은 치안이 개판이네요. 갑자기 시비가 붙다니. 교육도시 근처라도 별수 없나 봐요?”
“그게 뭔 상관이야?”
“인성교육 없어요?”
“없어. 그리고 얘들은 기사야. 기사가 왜 대학에 다녀? 이런 노래도 있다고. 영웅은 공부 따위 안 한다네.”
“그런 노래도 있어요?”
“곧이곧대로 믿지 마.”
베로니카가 점잖게 태클을 걸었다. 결투에 진 기사들은 투덜거리며 자신들의 말에 올랐다. 기사들의 하인들도 눈치를 보다가 일행에 따라붙었다. 리안나는 그들을 곁눈질하다가 물었다.
“안 묶어요?”
“안 묶어. 안 도망갈 테니까.”
“어, 왜요?”
“몸값을 안 낸다고 소문난 기사는 포로로 잡을 필요가 없게 되거든.”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그 자리에서 살해당하지. 노예로 팔리거나.”
리안나는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고급 교육이 아니라 폭력의 법칙이 남자들 사이를 돌았다. 그러던 중 한 기사가 에드워드에게 흥정을 붙였다.
“몸값을 후하게 쳐 줄 테니 난 감옥 말고 다른 곳으로 합시다.”
“그럽시다. 그래서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소?”
에드워드는 선선히 응했다. 그러자 다른 두 기사도 에드워드와 교섭에 나섰다. 언제 싸웠냐는 듯이 진지하게 협상하는 자들을 보고 헬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란 족속들은…….”
베로니카는 쓴웃음을 지었다.
“폭력의 시대죠. 특히 트레베리아는요.”
* * *
투리치로 들어서자마자 에드워드는 바쁘게 움직였다. 그는 제일 싼 하숙집을 계약하여 선금을 낸 다음 세 기사를 그곳에 집어넣고, 뒷일을 부탁하기 위해 교회로 갔다.
교회는 신뢰할 만한 상회를 소개해 줬고, 에드워드는 그곳에 기사들의 편지를 맡겼다. 몸값이 도착하면 하숙비 잔금과 수수료를 뗀 나머지를 에드워드의 앞으로 송금하는 계약까지 끝냈다.
기사들의 하인들은 에드워드를 졸졸 따라다니다, 주인이 억류된 동안 상회에서 막일이라도 소개받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에드워드는 투덜거리며 숙소 로비로 돌아왔다.
“아, 귀찮고 피곤하다. 닭 세 마리 처분하는 것도 이렇게 피곤해서야.”
“수고했어.”
베로니카가 웃으면서 말했다. 가르달은 준엄하게 말했다.
“노동을 해야 돈이 들어오잖소.”
“우리 드워프 대장장이 양반은 일 안 하쇼? 돈 많이 가져왔나 봐?”
가르달은 구멍 난 냄비를 들어 보였다. 숙소 물건이었다.
“도시에서 간이대장간을 열었다간 대장장이 조합이 죽이려고 쫓아올 테니 남는 게 땜장이 일뿐이라오. 뭐, 여비에 보탬은 되겠지요.”
“조합이라.”
“텃세는 어쩔 수 없잖소.”
“텃세하니까 생각났는데, 여기 하숙집 주인들 다 목매달아 버리고 싶어.”
에드워드의 말에 베로니카는 웃음을 터뜨렸다.
“왜? 숙소 수준과 비교하면 값이 너무 비싸서?”
“비싼 수준이 아니야. 살인적이야. 대체 왜 이래?”
“이곳 사람들은 학생들과 교수들 뜯어먹어야 살지. 게다가 지금 트레베리아는 혼란기잖아.”
“이해는 하겠는데, 참 증오스럽군.”
“이해해. 나도 학생 때 바가지 참 많이 썼으니.”
에드워드는 투덜거리며 물 주전자를 들었다. 그러나 분노 때문에 힘이 너무 들어갔는지, 주전자가 약한 탓인지 손잡이가 뎅강 부러져 버렸다.
“젠장. 야, 밴시.”
“넵.”
리안나는 잽싸게 손잡이 나간 물 주전자를 대신 잡고 에드워드의 잔을 채웠다. 베로니카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주전자는 네 월급에서 빼서 배상해 줘.”
“망할 놈의 저주, 망할 놈의 트레베리아. 이 동네랑은 좋은 기억이 없어.”
저주와 트레베리아는 아무런 상관도 없지만 에드워드에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리안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트레베리아 왕이 무능한가요? 저번에 왕세자는 유능하다고 들었는데.”
“그 반대야. 무능이고 나발이고…… 그냥 대가 끊겼어.”
“네?”
“내가 감옥에 갇히기 1년 전이었나? 그때쯤 큰 돌림병이 돌면서 왕도 왕세자도 갑자기 죽어 버렸지.”
“다른 후계자는 없어요?”
“전사하거나, 감옥에서 죽거나, 제정신이 아니거나.”
“와! 운 없다!”
“남은 사람들은 정통성이나 실력이나 다 고만고만하거든. 이때다 싶어서 서로 미친 듯이 싸우기 시작했지.”
“인간은 혈연에 전적으로 의존하니 그렇죠. 아르데니아의 집정관처럼 선출직이면 문제없었을 텐데.”
헬레나가 끼어들었다.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였다.
“그 얘기도 나왔지. 아예 새로 뽑자고. 그런데 누가 누굴 뽑겠어? 그 문제로 또 개판 났지.”
“길고 긴 암흑기가 될 거요.”
가르달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위험할 거야. 비용도 많이 들 거고.”
그때였다. 한 여자가 숙소를 기웃거리더니 그 로비로 들어섰다. 붉은 줄무늬가 들어간 남색 옷과 고깔모자를 착용한 분홍색 단발머리의 여자였는데, 커다란 책을 한 권 끌어안고 있었다. 나이는 젊은 편. 눈매가 살짝 아래로 처지고 졸려 보이는 표정이었다. 에드워드는 빠르게 그녀를 살펴보았다.
“학생인가? 학교 관계자?”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 마법학당에서 지급하는 교복이야. 그런데 이상하네.”
“왜?”
“이곳 교복이 아니야. 색도 다르고. 어디 학파지?”
그때였다. 여자는 에드워드와 눈이 마주치더니 일행의 탁자에 총총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에드워드한테 밝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기사님!”
“반갑긴 한데, 우리 초면이지?”
“네! 점 봐 드릴까요?”
“점?”
“저 점칠 줄 알거든요.”
베로니카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교회는 점과 주술을 싫어한다. 애매한 영역이 많아서 대놓고 어둠의 힘을 빌리는 게 아니면 제지하지 않을 뿐. 그런데 이단심문관 일행에게 와서 점을 화두로 하다니, 주의가 확 쏠릴 수밖에 없었다. 여자한테 노림수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학비를 벌려고 종종 부업을 한다고 듣긴 했는데…….”
“전 학생이 아니에요. 술사지.”
에드워드의 고개가 옆으로 크게 기울었다.
“술사?”
“네.”
“술사면 학생 위 박사 아래지?”
“……네.”
“이 도시 학당 출신인가?”
“아뇨. 프리시아 시 출신이에요. 점 안 쳐 보실래요?”
“혹시 약도 파쇼?”
“어떻게 아셨어요? 사실래요?”
에드워드는 다시 고개를 까딱거렸다.
“젊은 나이에 마법사라니 대단하긴 한데…… 박사 과정 안 하고 여기서 뭐 하슈?”
“돈이 들어와야 하죠. 어휴.”
술사 아가씨가 웃으면서 손사래를 치는 순간, 그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지자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한 끼 사고 복채 따로 줄 테니 점 하나 쳐 주쇼.”
“……좋아요. 어떤 걸 알아봐 드릴까요?”
“연애운. 아가씨가 오늘 밤 내 침대에 있을지 어떨지 알고 싶은데.”
술사는 난처하다는 듯이 웃었다.
“기사님들은 다 그런 식으로 시작하시더군요.”
하지만 도망가지는 않았다. 그녀는 에드워드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가르달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배가 많이 고팠나 보군. 남자한테 꼬리를 치다니.”
“다른 학당 출신이래도 여기 오면 일자리가 생길 줄 알았거든요. 여비도 바닥인 참이었어요.”
에드워드는 다시 농을 걸었다.
“내 연애운 결과는 언제 나오나?”
“식사 끝나면?”
“당차구만. 꽝이 나올 수도 있나?”
“어떤 꽝을 피하고 싶으세요?”
“식사하고 복채만 받고 헤어지는 거?”
“기사님 하는 거 봐서요.”
그때였다. 숙소 로비에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쳐들어온 것은. 형형색색의 옷차림을 한 10대들은 에드워드 일행을 손가락질하면서 말했다.
“거기 점쟁이! 여기서 영업하지 말랬지!”
“어머나, 영업 안 했어. 기사님이 사 주시는 거야.”
에드워드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너 이거 알면서 앉았지?”
“끝나면 더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생들, 남의 연애와 사업에 끼어들지 말고 물러서지?”
그러나 그 순간, 다른 일이 벌어졌다. 학생 무리의 뒤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마법학당 새끼들이다!”
또 다른 학생 무리가 쳐들어왔다. 두 번째 무리는 비교적 통일된 옷차림으로 황갈색 옷이었다. 여자 점쟁이와 비슷한 고깔모자를 썼는데 높이는 낮고 챙은 더 넓었다.
“신학대학 새끼들을 족쳐라!”
와장창.
에드워드가 나서기 전에 두 학생 무리가 먼저 서로를 죽일 듯이 싸워대기 시작했다. 온갖 잡동사니와 쓰레기와 사람이 날아다니는 난장판을 한참 감상하던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향해 질문했다.
“이게 대학가 평균이냐?”
베로니카는 웃으면서 자기 물잔을 비웠다.
“왜 아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