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69)
69화 악마는 두루마리를 읽는다
대학생들은 난폭하고 야만스러웠다. 학당 입문생들과의 사투도 그들의 피를 식히지는 못했으며, 크고 작은 상처로 흐른 피는 몸속에 남은 피에 비하면 적어 보였다.
그 야만성을 제압하기 위해 에드워드는 내면에서 괴물을 꺼냈고 잠시 뒤 대학생들은 그 앞에서 구르게 되었다.
“형 지금 매우 기분이 더럽다. 이 대가리에 맥주 찌꺼기만 들어찬 민폐왕 새끼들. 3초 준다! 1초라도 늦으면 계속 맞는 거다!”
숙소 앞 굴다리 밑에서 신명 나게 맞고 구르는 대학생들을 보며 헬레나가 중얼거렸다.
“왜 우리가 쟤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걸까요?”
“우리는 에드워드 경의 동료 아닌가.”
가르달의 답변이었다. 헬레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당신은 에드워드 경이 강도질을 하라면 할 거예요?”
“못할 건 또 뭔가?”
“왜 판단 기준마저 그에게 넘긴 거죠?”
“에드워드 경은 항상 옳아. 만티코어를 잡고 소금산을 지킨 자야. 그리고 유쾌하지. 생각 없이 믿고 따르기엔 딱 좋은 자야.”
“드워프는 단순해서 좋겠네요. 저 양반이 속죄 중인 기사라는 걸 잊지 마요.”
“난 뭐 죄인 아닌가? 상인인데. 다들 그렇게 거기서 거기인 법이지.”
“사고팔 때 속임수 썼어요?”
“드워프를 뭐로 보고! 장담을 좀 남발했을 뿐이야!”
에드워드는 한참 뒤 씩씩거리며 굴다리 밑에서 올라왔다.
“가르달, 쟤들 좀 치료해 주쇼.”
“붕대나 약값은?”
“쟤들 주머니 텁시다.”
“알았소.”
가르달은 주저 없이 여섯 대학생의 현금과 물품을 강탈했다. 헬레나는 한숨을 내쉰 다음 자기 말을 지키는 드워프를 지켜봤다.
“이제 무슨 일 터져도 난 몰라.”
헬레나의 걱정은 에드워드가 숙소로 돌아오는 순간 터졌다. 더 많은 대학생들이 등장한 것이다. 스텔라가 웃으면서 말했다.
“대학생들 숫자가 학당 입문생들보다 많죠.”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쟤들도 조져?”
에드워드는 스텔라에게 가격표를 돌려준 다음 베로니카에게 물어보았다.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이거나 불구가 되지만 않으면. 몽둥이로 패.”
“좋아.”
에드워드는 허리띠를 풀고 열쇠검을 검집에 꽂은 채로 들었다. 그는 스텔라를 향해 도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상황에 맞게 쓸 수 있는 주문은?”
“호신용의 약한 번개 주문, 연쇄 충격 정도?”
“써 봐.”
“네.”
스텔라는 주저 없이 주문을 외웠다. 대학생들은 기겁해서 외쳤다.
“너 이 자식! 마법사가 대학생에게 주문을 쓴다는 건 우리 학교에 대한 선전포고……!”
콰광!
대학생들은 말을 마저 끝내지 못했다. 스텔라의 손에서 하얀 번개 사슬이 뛰쳐나와 그들을 강타한 것이다. 대여섯이 개구리 뛰듯 펄쩍 뛰며 쓰러지자, 에드워드는 비용부터 질문했다.
“방금 그거 쓸 만해 보이는데? 얼마야?”
“순은 은화 한 개요.”
“비싸!”
에드워드는 투덜거리면서 은화 두 개를 꺼내 스텔라에게 건넸다.
“넉넉하게는 못 줘. 일단은 의식주만 책임진다.”
“서로가 부족한 게 있는 입장이니, 그 정도로 하죠.”
“그래서, 아까 그 점 결과는?”
“오늘은 어렵겠지만, 이렇게 우호적인 관계가 계속된다면 오래 기다리실 필요가 없을지도?”
그녀의 점괘가 긍정으로 나오는 건 순전히 둘의 관계 개선에 달렸다는 말이지만, 완곡한 거절이 더 본뜻에 가깝다. 가능성만 얼핏 보여 주는 유혹이었던 셈이다. 에드워드는 앓는 소리를 냈다. 가벼운 여자도 아니고, 값싼 여자도 아니고, 실력도 있고, 재주껏 남자의 손길을 피하던 여자다. 쉽지는 않을 일이다. 게다가 강제로 하진 않겠다고 공언한 참이다.
“뭐, 밤일만 재미는 아니지.”
에드워드는 아직 많이 남은 대학생들을 가리켰다.
“한 발 더 쏴.”
“네.”
“이 망할 연놈들이!”
대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는 순간, 다시 번개 마법이 작렬했다. 뒤이어 에드워드는 검집에 끼운 열쇠검을 들고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10초 준다! 8초, 9초 그런 거 없다!”
잠시 뒤 다시 굴다리 밑에서 곡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베로니카는 웃어 버렸다.
“선전포고 운운하는 대학생들이라. 혈기와 얼간이가 넘치는 도시네.”
다행히 그 이상 일이 커지진 않았다. 뒤이어 달려온 시경비대, 상인회, 교수진을 향해 베로니카는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고 사태를 수습했다. 그리고 에드워드에게 대학생들이 받은 처벌에 대해 알려 주었다.
“다친 대학생들은 교내 감옥에 넣는대.”
“교내 감옥? 그런 것도 있어?”
“다락방에 며칠 가두고 빵과 물만 준다더라.”
“왜 시의 감옥에 안 넣고?”
“대학은 치외법권이니까. 학생의 처벌은 교수조합과 학생조합의 권한이야.”
“제대로 처벌이 되려나 모르겠네.”
에드워드는 투덜거리면서 허리띠를 도로 찼다. 베로니카는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잠깐 대학 좀 들렀다 올게.”
“왜?”
“온 김에 자료 조사. 외부인이라도 난 이단심문관이야. 교단이 후원하는 대학의 서고를 열람할 권한 정도는 있어.”
“무슨 자료를 볼 건데?”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열쇠검으로 시선을 흘렸다.
“뭐, 이것저것.”
“캐슬린 문제야?”
에드워드는 그 시선을 잘못 짚었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굳이 정정해 주지 않았다.
“이것저것.”
그녀는 숙소를 나섰다. 에드워드는 뚱한 표정을 짓고 잠깐 생각한 다음 일행에게 말했다.
“헬레나, 베로니카 따라가서 호위해. 가르달은 보초 좀 서 주고. 리안나는 돈 벌어와.”
“헌옷 대여요?”
“그래. 그리고 다른 옷은 사지 마. 당분간 긴축재정이다. 비싼 여자가 생겼으니.”
에드워드는 여마법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스텔라는 여자 방으로 가서 쉬어.”
“어머, 그래도 되나요?”
“주문 두 개 썼으면 그래도 되겠지. 아, 이단심문관의 책은 펼쳐 보지 마. 폈는지 안 폈는지 귀신같이 알더라.”
“관심 없어요. 제 분야가 아니라. 그래도 충고는 고마워요. 기사님은 이제 뭘 하실 건가요?”
에드워드는 다시 뚱한 표정을 지은 다음 말했다.
“캐슬린 테스트.”
“네?”
에드워드는 더 말하지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캐슬린의 비명이 새어 나왔다.
“꺄아아악!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그걸 네가 불어야 할 것 아냐?”
“와! 악당!”
쿵.
방문이 닫히자 스텔라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다음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헬레나와 리안나는 이미 나가 버렸고, 남은 건 가르달뿐이었다. 그는 파이프를 꺼내며 말했다.
“아가씨가 약 올려놔서 그래.”
“……주의하죠.”
스텔라는 당혹감 속에서 최대한 덤덤하게 말했다.
* * *
베로니카는 아르데니아, 오로트, 그리고 투리치까지. 서고란 서고는 다 들러보며 열쇠검의 내역을 조사해 보았다. 스트롬니스에서 찾은 암호문에 기록되어 있기를, 열쇠검은 대륙에서 왔다고 했다. 그러나 한 보물이 이동한 경로를 추적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그 이상의 정보는 많지 않았다.
“대학의 서고면 뭔가 건질 게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전에 내가 지치겠네.”
베로니카는 아쉽다는 듯 혼잣말을 했다. 그녀가 있는 곳은 좁고 높은 3층 건물로, 투리치 대학이 임대한 장소였다. 그곳은 다른 물건 없이 책으로만 가득 차 있었으며 급경사의 계단마저 책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책을 대충 분류해 쌓아 놓기만 했을 뿐, 뭐가 어디 있는지는 순전히 사서나 관리인의 기억에 의존해야 했다.
“어디 보자…… 고대 왕들의 편지에 대한 기록이…… 연구서와 사본이…….”
폭삭 늙은 사서 영감이 주절거리면서 사다리와 계단을 오가며 책을 세 권 꺼냈다.
“전부 사본입니다. 괜찮으십니까?”
“상관없어요. 내용이 중요하니까. 혹시 여기 말고도 책과 문서가 많은 곳 있나요?”
“여기 외에는 교수들의 개인 소장본, 도서대여점, 시청 문서고 정도겠지요. 마법학당 쪽 서고들은 저희가 건드릴 수 없으니 논외이지만.”
“거긴 제일 마지막으로 시도해 봐야겠군요. 가장 접근이 쉬운 곳은 도서대여점이나 시청문서고려나.”
“하지만 도서대여점은 추천해 드릴 수가 없군요.”
“어머, 왜죠?”
“대학과 학당의 학생들끼리 책을 빌리는 순서 따위로 싸우고 있거든요. 하나라도 더 많은 도서대여점을 자기들 세력권에 넣으려고 눈에 불을 켰죠. 하도 말썽이 잦다 보니 지금 도서대여점은 거의 요새 수준이랍니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바보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
“책 도둑이나 암거래상까지 나오는 판이죠.”
안 좋은 소식이었다. 책이나 마법 물품과 관련된 통제가 약해진다는 것은, 금지되거나 위험한 지식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베로니카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째 이단심문관의 본업과 관련된 냄새가 나는데.”
* * *
부동산 문제가 대폭발한 투리치의 건물들은 1층세가 부과된다. 1층의 면적에 따라 세를 거두는 것이다. 그래서 1층의 면적이 좁은 대신 2층, 3층부터는 오히려 넓어지는 가분수 건물들이 많았다
도서대여점 ‘부엉이눈’은 3층짜리 가분수 건물로 흡사 망루처럼 생겼다. 1층 주변에는 장애물을 설치하고 경비병까지 배치해 더 그렇게 보였다. 1층에는 철문과 작은 창문이 달렸고, 책은 창문으로만 출납이 됐다.
2층은 평범한 서고였지만 3층은 서고의 일부가 옆 건물과 바짝 붙어 있었다. 서로 근접한 가분수 건물끼리는 창문이 곧 통로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둘이 동시에 창문을 열면, 밖에서는 그 비밀통로로 뭐가 드나드는지 보이지 않으므로 ‘금지된 물건들’이 서로 오가기에 매우 적절했다.
물론 불량학생들이 범죄 조직과 결탁하는 용도로도 적절했다.
늦은 밤이 되자 도서대여점과 그 옆 건물의 3층 창문이 각각 열리고 나무 발판이 그사이에 놓였다. 검은 그림자가 도서대여점에서 옆 건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그러길 반복한 끝에, 그는 한 건물에 도착했다. 그림자는 후드를 벗으며 감탄했다.
“와아.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다니.”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소년의 감탄이었다. 그 건물 안은 학당과 대학의 불량학생들, 졸업시험을 통과 못 한 방랑학생들, 필사가들, 떠돌이 마법사와 수도사 따위가 북적거리는 작업실이었다. 돈, 책, 더 높은 수준의 주문, 더 편한 방법 따위를 원해 모인 그들은 뭔가를 바쁘게 옮겨 적는 중이었다.
“여기는 학당도 대학도 상관없지. 오직 돈과 지식만 중요한 곳이야. 이름 없는 용병, 소영주 따위를 따라다니며 비서관이나 히든카드 흉내를 내도 못 얻는 것들 말이야.”
그림자들을 맞은 사내가 말했다. 그는 수납장에 잔뜩 꽂힌 두루마리 중 하나를 빼냈다.
“이런 거 본 적 있나?”
사내에게서 두루마리를 넘겨받은 소년은 그 내용을 읽어 보고 다시 한번 감탄했다.
“마법 두루마리!”
마법 두루마리는 시약도 촉매도 필요 없이, 딱 한 번 마법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귀한 물건이다. 문맹도 쓸 수 있는 수준의 물건부터 최소한의 마법적 능력을 요구하는 것까지 다양하지만, 적어도 자기 수준보다 한두 단계 더 높은 마법을 아무런 준비 없이 곧바로 쓸 수 있게 해 주는 귀중품.
그걸 만드는 사람은 박사에 한정되며, 재료도 적지 않게 들어가고, 비싸며, 생산되는 양도 적다. 일단 종이와 잉크부터 재료를 크게 따진다. 시약과 촉매 또한 마법 두루마리 소유자가 갖고 다닐 필요가 없는 것이지, 만드는 데는 소모된다.
“박사급이 만드는 것과 놀랄 만큼 비슷하네요!”
“그렇지? 가끔 있다고. 실력은 있는데 그저 인정을 못 받는 사람들 말이야. 자격증은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일종의 진입장벽에 불과해.”
“하지만 뭔가 이상한데요? 독자적인 해석과 장치가 많이 들어간…….”
“어쩔 수 없지. 우리 중엔 진짜 박사급이 없으니. 그래도 불량률은 낮아. 3분의 1 정도만 불발이지.”
“네? 이렇게 잘 만들었는데 3분의 1이나 불발이 돼요?”
“겉보기는 따라 할 수 있지만 내용물이 문제지. 뭐, 감수하고 밀매되는 거야. 팔린 뒤에야 어떻게 되든 알 게 뭐야? 싼값에 가짜를 샀는데 불량이 나왔다고 항의를 하겠어?”
사내는 짓궂게 웃었다. 소년도 마주 웃어 버렸다.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이것만이 아니야. 금서를 베껴 팔거나, 사본과 원본을 바꿔 치는 일도 열심히 하고 있지. 이쪽은 신학을 배운 친구들의 담당이야.”
사내는 자신들의 책꽂이를 보여 주었다. 그곳에는 갓 만들어졌지만 100년은 넘은 것 같은 가짜 책들이 잔뜩 꽂혀 있었다. 소년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이게 책 도둑들과 암거래상들의 책장이군요.”
“그래. 고집 센 멍청이들끼리 싸워대는 동안 마음대로 훔쳤지. 이제 여기에 네가 가져온 걸 추가해야 돼. 그럼 너도 우리 조직의 일원이다. 우리의 자료들이면, 인챈트 노예나 하류 용병으로 끝날 도제 수준은 안녕이지. 돈이건 지식이건. 약속한 건 가져왔냐?”
소년은 잠시 머뭇거리다 등에 멘 봇짐에서 커다란 책 한 권을 꺼냈다. 가죽으로 제본한 낡은 책이었다. 사내는 소년에게서 그걸 빼앗다시피 받아낸 다음, 표지를 살펴보았다. 소년이 설명을 덧붙였다.
“악마 레피림이 오크 주술사들에게 내준 마도서의 파편들을 연구한 책입니다. 제 누님의 작품이죠. 이거 훔치느라 힘들었어요.”
“좋아. 어이, 이거 살펴봐.”
사내는 한 마법사에게 서적을 넘겨줬다. 마법사는 책을 펼쳐 첫 문장을 읽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도제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닌 듯한데 이거…….”
마법사는 천천히 책을 소리 내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그가 첫 페이지를 반절도 읽기 전에, 자기 작업에 몰두하던 신학 담당 수도사 하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안 돼! 그 책을 읽으면 안 돼!”
그러나 늦었다. 갑자기 방 안의 모든 책과 두루마리가 불길한 붉은빛으로 뒤덮였다. 사람들이 당황하는 순간, 소년이 입을 열었다.
“좀 이르지만, 도축의 시간이 왔다, 검은 양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