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7)
7화 위험한 초대 (2)
3년 전, 앵글리아 수도 콜체스터.
굴다리 밑에서 술에 만취한 에드워드는 친구들과 함께 한 노인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 노인은 덕망 있기로 소문난 은자였다. 하지만 기사들은 그에게 존경을 드러내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쓰레기더미 위에 빈 술통을 올리고, 은자를 번쩍 들어 그 위에 올린 다음, 그의 머리에 썩은 생선 냄새가 밴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왕관을 씌우곤 조롱했다.
“굴다리 성의 은자가 왕좌에 올랐도다. 삼라만상의 악마들은 이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회개할지어다. 대악마가 먼저 머리를 숙이리라.”
에드워드는 은자 앞에 한쪽 무릎을 꿇는 시늉을 했다. 친구들은 왁자하게 웃어 버렸다. 은자는 점잖은 목소리로 그들을 훈계했다.
“악마는 굳이 초대하거나 이름을 부를 필요가 없다네, 젊은 기사여. 그들은 독사보다 기척이 없으나 바람처럼 찾아와 고리대금업자처럼 인간을 농락한다네.”
에드워드는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그는 취기에 다시 비틀거렸다.
“악마? 그까짓 악마가 온들 어떠합니까? 나는 그와의 어떤 내기에서도 이길 것이고, 바람보다 빠르게 벗어날 것이며, 독사의 머리를 깰 것입니다. 내가 누굽니까? 오늘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가장 젊은 기사!”
에드워드의 친구들이 손뼉을 쳤다. 에드워드는 그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그의 손에는 상으로 받은 금빛 기마상이 들려 있었다. 에드워드는 괴성을 지르더니 그 조각상을 양손으로 두 동강 내 버렸다. 이제 기마상은 그의 양손에 나누어 들려 있었다. 에드워드는 술 냄새 가득한 숨을 뿜어낸 후 말했다.
“이렇게 강한 기사가 당신을 굴다리의 옥좌에 올려놓았습니다. 아직도 거기서 내려오고 싶으십니까?”
에드워드의 이죽거림에 은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앙상한 손가락을 내밀어 에드워드의 양손을 가리켰다.
“너는 네 힘부터 조절하는 법을 좀 깨달아야겠다.”
* * *
“X발. 그 영감탱이. 가르침을 주고 갈 거면 끝은 내고 가야 할 거 아냐. 검 하나 제대로 못 쥐는 손을 줘 놓고는, 저주를 풀지 않고 편하게 저세상 갔더라고. 장례식 때 얼마나 허탈했는지. 덕택에 성지까지 가야 하는 신세가 됐어.”
에드워드는 악령의 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악령의 목에서 피리 소리 같은 비명이 새어 나왔다.
“고명한 성인은 손끝으로 십자가를 긋는 것만으로도 악령을 내쫓았다지. 그분이 지목한 주먹으로 한번 시험해 볼까?”
“하찮은 인간이! 그저 잡고 버티기만 할 뿐인 주제에, 악령을 이길 것 같으냐!”
악령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에드워드는 씩 웃었다.
“버티기만 할 뿐이라고?”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바로 행동에 나섰다. 그는 악령의 뿔을 붙잡은 채 한쪽 다리를 땅에서 떼었다. 악령은 이때다 싶어 뛰쳐 나가려 했으나, 그건 에드워드가 의도한 바였다.
“으헉?!”
악령은 크게 반 바퀴를 돌더니 어느 폐가의 벽에 부딪혔다. 꽝! 에드워드는 악령을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넌 네 힘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냐? 이거 싸움질에는 영 초짜구만?”
그리고는 오른손을 들어 악령의 몸통을 내리찍었다. 쾅! 악령은 다시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 댔다.
“살려 주십쇼! 지하와 천상에 맹세코 기사님께서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악령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에드워드는 패자의 애원을 즐겼다.
“태세 전환 빠르니 좋네. 맹세한다고?”
“지하 72좌의 대악마들과 천국의 수문장께 맹세합니다!”
“좋아. 맹세를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는 잘 알지? 지상 지하의 모든 악마가 너를 가만 안 놔둘 거야.”
악령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 명령은 두 가지다. 첫째, 계속 잡고 있기 불편하니까 캐슬린의 모습으로 돌아가.”
그 순간, 거대한 악령의 모습은 쪼그라들고 대신 부드러운 여인의 살갗과 옷자락이 나타났다. 위기감이 반영됐는지 땀에 흠뻑 젖은 모양새였다. 인간의 형상을 한 악령은 이제 에드워드의 팔에 대롱대롱 안겨 있었다. 그는 그걸 들고 가 물레방앗간 벽 아래에 내팽개쳤다.
“꺅!”
“목소리도 돌아왔군. 악령보다는 보기 좋고 듣기 좋고. 앞으로 넌 계속 이 모습이다.”
캐슬린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악령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검을 돌려드릴게요. 갑옷도요. 그리고 원하시는 보물을…….”
“아니, 그건 당연하고.”
에드워드가 말을 잘랐다. 그는 캐슬린의 앞에 섰다. 악령이 그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기사님?”
“두 번째 명령이다.”
에드워드의 입에서 뜨거운 숨이 튀어나왔다.
“네가 하려던 것, 지금부터 반대로 한다.”
캐슬린의 얼굴이 공포에 질렸다.
“저기, 기사님? 저 악령인데요? 이거 제 진짜 모습 아니거든요?”
“그래서? 악령 덩어리가 원래 네 이름들 제대로 기억은 하냐?”
캐슬린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 그렇긴 한데…….”
“그리고, 지금은 여자 모습이잖아. 악령은 옛 육체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왜 이리 혓바닥이 길어?”
캐슬린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벽이 있어 더 물러설 수가 없었다.
“내가 아까도 말했지만, 이 손으로 인간 여자를 만지면 대형 참사가 나거든? 근데 넌 인간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살아 있지도 않잖아.”
“기, 기사님…….”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선고했다.
“남자를 놀렸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 * *
이단심문관 베로니카는 말에서 내린 다음, 폐허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 위에 올라섰다. 아직 동쪽 하늘은 어두컴컴했지만, 달은 여전히 밝았기 때문에 그림자 아래 있는 것만 아니면 다 훤히 보였다. 아스라이 들려오는 소리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무리.”
해 뜨기 전에는 안 내려가겠다는 방침을 굳힌 베로니카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리안나를 돌아보았다. 그녀도 말에서 내려 고삐를 쥔 채 베로니카의 뒤에 섰다. 그녀는 고삐를 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두 눈은 손가락 틈으로 그 광경을 다 보고 있었다.
“우와, 와, 와, 와아아아. 어떻게 저런 자세가…….”
귀 끝부터 목까지 시뻘게진 밴시를 보고,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리안나에게 가서 두 눈을 제대로 가려 주었다.
“저런 거 처음 보니?”
“어, 음. 야외서 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는데, 제가 먼저 도망을 갔어요. 보통은.”
리안나가 대답했다.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이 볼 건 아니야.”
“개끼리 하는 건 많이 봤는데요.”
“개 같은 놈이긴 하지만, 진짜 개는 아니잖아. 하나는 종마고, 하나는 악령이지.”
베로니카는 리안나를 끌어안은 채 풀밭 위에 앉았다. 끝은 아직 멀었다. 그녀는 날뛰는 에드워드를 보고 중얼거렸다.
“가끔은 인간이 개처럼 구는 것도 볼만하네.”
* * *
에드워드는 햇빛과 안개 속에서 거친 숨을 쉬며 홀로 섰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새 지저귀는 소리만이 밤의 끝과 평화의 시작을 알렸다. 주변은 온갖 잡동사니가 부서진 채 널려, 전투가 끝난 자리 같았다.
해방자에서 정복자로 업종을 전환했던 사내는 자리에 주저앉았다가 대자로 드러누웠다. 정복자는 이제 모든 번뇌를 해소하고, 진리를 깨달은 현자의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자연인이다.”
“헛소리 좀 줄여.”
안개 속에서 베로니카가 나타났다. 그는 깜짝 놀라서 질문했다.
“언제 왔냐?”
“한참 전에. 넌 대체 무슨 깡으로 악령과 논 거야? 수상한 여인들과 즐거운 밤을 보낸 다음 날 일어나 보니 교수대 밑 시체들 틈바구니에 누워 있더라는 괴담 몰라? 여자가 악마로 변해서 목을 물어뜯었다던가. 악령한테 역전당하면 어쩌려고 그랬어?”
“나 시체랑 있었냐?”
“아니, 사람 모양 악령. 처음엔 홀린 건가 했어.”
“나 아직 홀린 것 같아?”
“아니. 악령이 더 불쌍하던데?”
“그럼, 그 자식은 지가 더 간절할 기회를 잡고도 진 거네.”
“합리화하기는. 종마 같은 녀석. 넌 앞으로 귀신 들린 여자한테는 접근 금지야.”
“왜? 신박한 퇴치 방법 아냐? 진짜 여자한테도 써 보면…….”
“여자가 천국 가면 무슨 소용이니?”
에드워드는 웃어 버렸다. 베로니카는 그를 흘겨보고는 말했다.
“그리고 이번엔 악령이라서 넘어가는데, 진짜 여자 다루는 건 좀 주의해라?”
빛과 어둠의 무한 투쟁 세계. 요정과 악령과 악마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이단과 악령과 악마는 빛의 이름으로 무조건 정화되어야 한다. 선악이 비교적 명확하고 폭력에 관대한, 편한 세상이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단심문관과 더 말하지 않고, 뒤따라오는 리안나를 향해 명령했다.
“야, 저 집안에 니 약병 있더라. 가서 빨래통도 찾아봐라. 내친김에 내 검과 갑옷도 찾아. 아,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은 이제 전부 내 것이니까 밖으로 꺼내.”
리안나는 에드워드를 곁눈질하더니 곧 쏜살처럼 뛰어갔다. 에드워드는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밴시 리안나가 바쁘게 여관 안을 들락날락하는 것을 보며 그는 새삼 노동의 보람을 느꼈다.
“저 가구들 팔면 돈 좀 받겠지?”
“너 때문에 구멍 난 여비에 보탬이 되긴 하겠네. 어쩌다 저런 것들이 여기까지 왔지?”
“몰라. 악령 말로는 무슨 명문가 딸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 같은데, 지어낸 이야기인지 아닌지 모르겠어.”
“어쨌든 저건 보물 창고겠지?”
“아마도. 좀 귀한 보물이 있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은 것 같은데. 뭐 저 안에 있겠지.”
“좋아. 인정할게. 구멍 난 여비 메우고, 남은 건 다 네 거야.”
“악령 퇴치도 기록해 줘.”
“좋아.”
에드워드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할 만하네. 성지 순례.’
리안나는 에드워드의 옆에 옷가지와 검, 갑옷을 내려다 놓았다. 그는 엉거주춤 일어나서는 바지를 입었다.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열쇠검을 들고 말했다.
“검 좀 빌린다.”
“뭐 하게?”
“땅 좀 파려고. 마땅한 도구가 없네.”
“땅? 왜?”
베로니카는 대답 대신 잠시 주변을 맴돌더니 어느 공터에 섰다. 그리고는 열쇠검으로 시커먼 흙을 조금씩 파헤쳤다.
“뭐 하는 거야?”
“악령이 일정 영역 이상으로는 ‘못’ 벗어나는 것 같더라고. 그 영역의 가운데가 여기쯤이야. 깊게 묻힌 게 아니라면 좋겠는데.”
잠시 뒤 주먹만 한 작은 함이 흙 밑에서 나왔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이마를 딱 쳤다.
“아, 씁. 그걸 놓쳤네.”
“응. 여관 안에 있는 것만 네 거야. 이건 내 거고.”
“일은 내가 다 했는데?”
“찾은 건 나야.”
베로니카는 웃으면서 함을 열었다. 그 안에는 루비로 장식한 작은 금반지 하나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혀를 찼다.
“비싸 보이네.”
“그냥 비싼 게 아니야. 마법의 반지야.”
“오, 진짜?”
“문구가 새겨져 있네. 해누아 여왕 즉위 원년.”
“악령 새끼, 아주 거짓말을 한 건 아니네. 그래서 그 반지는 뭐 어떤 거야?”
“그것까지는 몰라. 내 능력으로는 저주받은 게 아니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어.”
“낭패군.”
“이런 유물을 전문적으로 감정하는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가야 해. 큰 교회나 고미술상, 아니면 마법사들의 학당이 있는 곳.”
“우리 다음 목적지를 그런 도시로 잡으면 되겠네.”
그 말에 베로니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마침, 경로상에 그런 도시가 있지. 암브로즈 시. 거기에 학당은 없지만, 주교좌성당이 있어. 감정사도 있겠지.”
“암브로즈라. 거기서 동쪽으로 산을 넘으면 바로 항구가 나오지?”
“맞아. 군대나 상단이 쓸 큰길은 아니지만, 순례자에게는 나쁘지 않은 지름길이지.”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결정됐군. 도착하자마자 그 반지부터 감정하자고.”
“내 건데, 네가 더 안달이 난 것 같다?”
“그 반지가 뭔지 알아야 내 업적 목록에 한 줄이라도 더 써 넣지.”
“없어도 별 지장은 없을걸? 결과야 악령 퇴치로 한 줄이 전부니. 게다가 이 업적, 속죄 순례 중의 일이라고 어디 자랑하기는 좀 까다로울걸.”
“왜?”
“네가 악령을 어떻게 퇴치했는지 다시 생각해 봐. 교황님도 폭소할걸.”
“좀 순화하면…….”
“기록 왜곡이야. 어쨌든 빛에 공헌한 거로는 기록될 테니 그걸 위안 삼도록 해.”
정곡이었다. 살짝 심통이 난 에드워드는 옷가지를 다 챙겨 입었다.
“교황청에 웃음거리 제공한 거로 만족해야겠네.”
일행은 정오가 되기 직전에야 다음 목적지인 암브로즈 시를 향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