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70)
70화 투자자는 다 똑같다
방음 따위는 수도원이나 고급 저택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기에, 스텔라는 침대 위에 누운 채 온갖 잡다한 소음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바깥소리, 아니면 손님들의 소리. 주로 낯 뜨거운 소리들이었다. 당연히 체면도 부끄러움도 없고, 때로는 오히려 자랑하는 것 같은 천박함. 그중에는 에드워드와 캐슬린의 것도 있었다.
“생각보다는 좀 거친 기사려나?”
스텔라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생각보다 나쁘지도 않았다. 여자의 비중이 높고 남자는 기사와 드워프뿐인 일행. 이런 일행은 여자에게 해롭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여자들이 기사를 통제하고 있거나, 적어도 기사가 해를 끼치진 않는단 뜻일 테니까.
적어도, 거친 남자 용병들과 창녀만 있는 일행보다는 믿을 만했다. 그런 일행은 악덕 소영주의 비서관으로 일하는 것만큼이나 나쁜 조건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 나쁘다. 악당들에게 강간당하고 구타당한 끝에 ‘시약을 조금씩 주면 재주 부리는 노예’로 전락한 여마법사가 있다는 소문도 돌 지경이니.
사실 마법사 스텔라의 상황은 에드워드에게 말한 것보다 더 나빴다.
학파는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 명성도 높지 않다.
젊은 나이에 상급 마법사가 되면 수재라고 하지만, 학교 밖에서는 경험 없는 젊은 여자라고 인건비를 후려치는 결과로 돌아왔다.
인맥을 대줄 본가 따위는 없다.
학당 친구들은 돈 있는 집안들이긴 하지만, 대개는 자기들도 살아가기 바쁘다.
소영주들 아래에서 1년 미만으로 구르다 쫓겨나거나 그만둔 경력은 성과가 없었다.
의심증 걸린 고용주 부인이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 통에 평판이 떨어졌다.
무리하게 강행한 연구 중 하나가 ‘해 봤는데 안 되더라’라는 결론만 나왔다. 학문적으로는 그것도 성취지만, 투자자들은 그런 결론을 싫어한다.
그나마 남은 돈은 빚 갚고 먹고 사는 데 거의 다 썼다.
불리한 조건만 이어지는 끝에 그녀가 선택 가능한 일자리는 중퇴하거나 갓 졸업한 대학생, 또는 하급 마법사 수준으로 추락했다. 글 읽고 써주는 품팔이, 책 베껴 옮기기, 복채 받는 점쟁이……. 당연히 그런 것으로는 박사 과정에 필요한 돈을 모을 수 없었다.
이단심문관이 속한 일행에 ‘점’을 화두로 꺼내 이목을 끌고, 혈기왕성한 기사한테 성적인 유혹을 암시하는 건 분명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할 만한 도박이었다. 에드워드 일행을 붙잡지 못했다면 순결과 인생을 말아먹을 위험을 무릅쓰고 결국 용병들 틈바구니에 끼는 것 외엔 답이 없었다.
‘떠돌이 기사를 따라다니는 비서라니, 여전히 하급 마법사들이나 할 짓이지만…….’
그 대신, 여기는 반등이 약속된 바닥이다. 스텔라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더 낮은 계층으로 떨어질 것을 걱정한 것에 비하면 큰 성과다. 이단심문관이 리더고 기사는 만티코어를 잡았으며 엘프와 드워프도 인맥도 하나씩 기대해 볼 만한 파티. 성장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내겐 돈과 시간과 인맥이 없었을 뿐, 이 도시의 어중이떠중이 마법사들보다는 훨씬 우수해! 게다가 발 빠르게 붙어서 이 일행을 선점했지. 기사가 영주로 대성하면 좋고, 만에 하나 뭐가 잘못되더라도 다른 사람들한테 붙으면 돼.’
성직자야 마법사와 데면데면하니까 베로니카와 친해지기는 힘들겠지만 엘프와 드워프 쪽은 기대해 볼 만하다. 그 두 종족은 인간보다 솔직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도 강하기 때문에, 인맥에 이용할 여지가 많았다.
게다가 부려먹는 집요정이 있으니, 스텔라 자신이 자질구레한 일을 안 맡아도 된다. 그건 매우 큰 장점이었다.
‘아무리 추락해도, 나 정도로 재능 있고 노력한 상급 마법사면 좀 편한 일자리를 찾아도 되는 거잖아? 내게 불운만 주는 세상이 잘못된 거지!’
스텔라가 나름 장밋빛 미래를 그려 보던 중, 문이 열리더니 밴시 리안나가 빼꼼 고개를 들이밀었다.
“세탁물 있어요?”
“없어. 단벌옷이거든.”
“저한테서 옷 사실래요?”
“돈 들어오면. 나중에.”
나중에. 그 단어에서 게으름이 잔뜩 배어 나왔다. 밴시는 고개를 크게 까딱거렸다.
“충고하는데, 여벌 옷은 꼭 한 벌 사 두세요.”
“밴시가 마법사에게 충고하다니, 재밌네. 왜?”
“이 일행은 꼭 옷 더럽힐 일이 생기거든요.”
“무슨 뜻이야?”
“별 뜻은 없어요. 사실이지.”
하수구 밑바닥에 빠져 보고 사우나에 갇혀 보고 만티코어 발바닥 밑에서 진흙탕을 허우적대고 거대 토끼굴에 던져진 경험자의 말이었지만, 스텔라가 그 내역을 전부 알아볼 순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표면적인 뜻만 곱씹어보았다.
“하기야, 여행길에는 여벌 옷이 있는 게 좋지. 그런데 돈이 없는데.”
“일행에 들어오셨으니까 외상으로 해 드릴게요.”
“할인은 안 되니?”
“안 돼요.”
“알뜰하기는. 왜 안 되는데?”
“할인을 남발하면 할인가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정가대로 안 산대요.”
“누가 그래?”
“기사님이요.”
“기사님이 외상은 된대?”
“마법사 언니가 죽어도 시체에서 옷 벗겨내면 되니까 상관없어요. 어디 흘러가거나 불타지만 않으면요.”
스텔라는 어이가 없어서 웃어 버렸다.
“어린이 모습으로 말을 무시무시하게 하는구나?”
“사실인걸요.”
스텔라는 뭔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집요정의 인성은 주인과 경험을 따라간다. 주인은 오늘 봤지만, 경험은?
“기사님 따라다니는 거 많이 힘드니?”
대답이 나오기 전에, 열린 창문으로 불길한 붉은빛이 번쩍거렸다. 어두컴컴한 도시의 하늘 위로 붉은빛이 치솟자 스텔라는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그게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악마 소환? 그런데 뭐가 저렇게 대놓고 쳐들어와?!”
밴시 리안나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매일 저렇죠 뭐.”
* * *
군주급 대악마, 악마, 하급 악마 등 다양하게 구분되는 악마들 중에 소환에 응하는 것은 대개 하급 악마다. 그들은 사교도들로부터 숭배받으며, 보다 상급의 악마들을 연결해 주고, 숭배자들에게 자신과 같은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속삭인다.
물론 적지 않은 수가 그저 이용당하는 불쌍한 영혼이나 마물로 전락하지만, 사교도는 그들이 ‘정성이 부족했거나 임무에 실패해서’ 그 대가를 받았을 뿐이라 믿는다.
그리고 아예 사교도도 아닌 인간은 대개 미치거나 살해당하거나 마물이 된다.
투리치의 책 도둑 범죄 조직은 제일 안 좋은 케이스였다. 조직원들은 제 형태를 잃고 온갖 모습의 마물이 되어 날뛰었고, 변하지 않은 자들을 죽였다. 방법도 다양해서 찌르고 베고 짓밟고 녹이는 것은 물론, 성별과 구멍을 가리지 않고 마물의 씨앗을 심어 숙주로 삼았다.
재앙은 범죄자들의 소굴만이 아니라 그 주변 건물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붉은빛으로 구멍이 뚫린 하늘에서는 오크 군대가 쏟아졌다.
이 사태의 배후인 소년은 거죽만 소년일 뿐이었다. 그 거죽을 찢고 본래 모습을 되찾은 하급 악마는 커다란 뿔을 가진 염소의 얼굴에 붉은 피부를 가진, 나체의 근육질 남자 모습이었다. 놈은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레피림 님의 거대한 계획은 불행히 단절되었으나 여전히 강력하다!”
* * *
베로니카와 헬레나는 숙소에 거의 도착할 때쯤 그 광경을 보았다. 이단심문관은 붉은빛이 무엇인지 알아보았고, 엘프는 오크 군대의 깃발을 알아보았다.
“악마 소환?!”
“오크도 있어요. 붉은 바탕에 흰 격자무늬 깃발.”
“아는 깃발이네요. 저지대 오크 부족 중 하나죠?”
“네. 후릿그물 부족이죠. 대부족으로 알고 있는데. 적지만 대열이 끊기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요. 대이주 내지는 원정군 같군요.”
“저게 특정 장소와 연결된 거라면, 부족 하나만 오는 게 아니라 저지대 일대의 부족들이 연이어 올 수도 있겠네요.”
아퀴타니아 남부의 이단 반란 지역, 소금산 일대의 옛 종족, 교육도시 투리치, 그리고 트레베리아의 오크 점령지를 연결하는 거대한 타락. 그게 악마들의 계획임에는 분명했다. 베로니카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저렇게 크고 지속적인 구멍이라. 대체 어떻게 열었고 어떻게 닫아야 할지. 여기가 넘어가면 소금산도 다시 위협받을 텐데.”
“우리부터 걱정해야 할 것 같네요. 너무 가까워요.”
헬레나의 지적대로였다. 붉은빛과 숙소는 꽤 가까웠다. 비명이 고스란히 들릴 지경이었다. 헬레나가 건의했다.
“일단 물러나서 상황을 살피죠.”
“우리 생각보다 사태가 더 급박한 것 같은데요?”
베로니카가 말하기가 무섭게 주변 건물들의 지붕 위로 뭔가 빠르게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벼룩처럼 점프를 거듭한 그놈들은 다른 가옥과 인간들을 무시하고 일행의 숙소를 빙 둘러 포위하는 형태로 포진했다. 꽤 넓지만 촘촘한 포위망이었다. 헬레나는 글레이브를 고쳐 잡았다.
“이놈들, 우릴 노리고 있네요.”
“이단심문관이 있다는 걸 알아본 거려나?”
베로니카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철퇴를 손에 쥐었다. 뒤이어 에드워드가 숙소 창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저 빛이 뭔데?”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누군가 설명을 하기도 전에 한 마물이 쏜살같이 허공을 갈라 그 창문으로 뛰어들었다.
우당탕!
숙소 안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지만 잠시 뒤 반 토막이 난 마물이 창밖으로 튕겨 나왔다. 거대한 벼룩의 모양새였다.
“이 미친 거대벼룩은 또 뭐야? 연금술사야? 아니면 주술사 니코스야?”
성난 기사의 외침에 마물들은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리며 몸을 웅크렸다. 다들 방금 처음 뛰어든 그놈과 비슷한 타입이었다. 베로니카는 바로 큰소리를 쳤다.
“벽 뒤로 숨어!”
그녀의 경고가 나오고 몇 초 뒤, 여관은 육탄돌격을 하는 마물들에 난타당했다.
우지끈! 쿠당탕!
몇몇 마물이 나무 기둥을 강타하자 여관은 크게 한쪽으로 기울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너진다!”
몇몇 사람들이 여관 밖으로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그리고 밴시 리안나는 벼룩의 주둥이를 양손으로 붙잡은 채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밴시 살려!”
아깝게 놓친 밴시를 다시 찍어 죽이기 위해 벼룩은 몇 번이고 주둥이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때마다 리안나는 좌로 우로 구르면서 그 섬뜩한 주둥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다행히 베로니카와 헬레나는 그 벼룩을 때려잡고 아래에 깔린 리안나를 구조했다. 리안나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기사님이 대학생들 굴리는 거 봐두길 잘했네요!”
“좌로 굴러 우로 굴러 그거?”
“네! 이놈은 제 마법약이 안 통해요! 벼룩과 이 잡기는 제 전문인데!”
“겉모습만 벼룩인 거니까 나서지 마! 저건 마물이야!”
베로니카는 리안나를 데리고 마구간 뒤로 피했다. 그 순간 여관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우르릉 소리가 났다. 베로니카는 리안나에게 물었다.
“에드워드는?”
“몰라요! 전 가르달 아저씨가 올라가는 것만 보고 나왔어요!”
벼룩 모양의 마물들은 그저 점프만 할 줄 아는 게 아니었다. 놈들은 긴 주둥이로 사람들을 덮쳐 찔러 죽이고 찢어 죽여댔다. 헬레나는 가장 가까이 다가오는 놈을 글레이브로 내리쳐 죽이고는 외쳤다.
“퇴로를 열게요! 방향을 정하세요!”
그러나 마물들이 의사결정 속도보다 빨랐다. 벼룩 마물들은 빠르게 베로니카, 헬레나, 리안나를 포위했다. 그 숫자는 빠르게 늘어나서 이제 자기들끼리 부대낄 지경이었다. 놈들이 한 번씩 뛰어오르기만 하면 인간 따위는 곤죽이 된다. 베로니카는 보호 마법을 외웠지만 몇 번이나 버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악마가 콕 찍어 죽이려 들다니, 순교 중에서는 꽤 명예로운 경우네.”
콰르르릉!
굉음이 터졌다. 그러나 세 여자가 으깨지는 결말이 오지는 않았다. 흰 번개 마법이 벼룩 마물들을 죄다 쓸어 불태우는 소리였다. 가득 밀집했던 벼룩들은 선 채로 불타 버렸다. 잠시 뒤 먼지투성이가 된 에드워드, 가르달, 스텔라가 새카맣게 탄 시체들을 헤치고 걸어 나왔다.
에드워드는 스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얘 이제 시약이 없댄다. 방금 그게 마지막이래.”
일행의 시선이 스텔라에게 향했다. 그녀는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면서 말했다.
“이제 저 진짜 파산했어요. 마법사로서나 자유인으로서나.”
“그거 유감이네요.”
베로니카가 겨우 웃으면서 말했다. 에드워드는 시체 하나를 걷어차며 말했다.
“시약만 있으면 되나?”
“그래도 아까 같은 광경은 기대하지 마세요. 벼룩들이 서로 밀착해서 다 감전된 덕이니까. 항상 이런 숫자를 처리할 수는 없어요.”
“어쨌든 주문 쓰려면 시약이 필요하단 말이지?”
“네, 저에게 시간과 예산이 더 있었더라면…… 그게 가능하다면요. 어서 도망이나 쳐요.”
스텔라는 리안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멍한 표정을 짓는 밴시를 향해 여마법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네 말이 옳았어. 옷 더러워질 일 많네. 하나 외상으로 줄래?”
“시작부터 파산했다는 분에게 뭘 팔아요?”
“애가 영악하네.”
스텔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고용주 잘못 선택한 것 같네요.”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방법은 다 있어. 지금 옷 사지 마.”
“네?”
“시약 살 때 같이 사.”
“전 이제 돈 없는데요? 그리고 시약을 어디서 사요? 옷을 시약과 같이 팔아요?”
여러 질문이 이어졌지만 에드워드의 답은 간결했다. 그는 검으로 아수라장이 된 시내를 가리켰다.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검 끝에 있었다.
자고로 좀비물의 로망 중 하나는 공짜 쇼핑이었고, 용사물의 수입원은 시체 루팅과 빈집털이랬다.
“공짜 쇼핑 행사 중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