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73)
73화 롤플레잉의 묘미는 선택의 갈등
일행은 교회 본당과 이어지는 부속 건물 중 하나로 이동했다. 그중에서도 창고라 그나마 피난민이 적은 쪽으로 나가, 큰 의자로 막혀 있던 뒷문을 찾았다. 그곳까지 안내해 준 한 사제가 말했다.
“평소엔 잠그고 안 쓰던 가구 따위로 막아 놨죠. 여기로 나가면 될 겁니다.”
가르달은 의자를 딛고 올라가 문짝의 눈구멍을 열어 보았다. 좌우를 살펴보던 그는 도로 내려와 말했다.
“조용하군. 포위할 생각은 없는 것 같소.”
“마물은 지성이 부족하니까요.”
베로니카가 말했다. 헬레나가 걱정스레 물었다.
“사교도가 있다면 어떻게 하죠?”
“어차피 도시를 함락하면, 교회를 이미 포위한 셈이에요. 사교도도 마물이 모인 곳에 집중해서 보호 주문이나 마법을 뚫는 게 더 합리적이겠죠.”
“하긴. 한 곳만 뚫어도 다른 곳의 보호 주문 따위는 무의미하지. 그럼 교회 정문에 늑대인간과 뱀파이어와 오크가 바글바글하게 모인단 말이겠군.”
에드워드가 결론을 내렸다. 그는 여마법사를 돌아보았다.
“설명해.”
“네. 저 붉은빛은 이상하게 오래 지속되고 있긴 하지만, 결국 마법의 문이에요. 도구와 술자 둘 중 하나만 사라져도 다시 닫혀 버리겠죠. 도구는 마도서, 술자는 하급 악마예요.”
“그리고?”
“목적지까지 직선거리로 뛰어가면 아주 가까워요. 교회로 올 게 아니라 숙소에서 바로 반격에 나섰다면 더 가까웠겠죠. 하지만 그랬다간 무시무시하게 많은 숫자의 마물들과 맞닥뜨릴 거예요. 그러니 우회 통로로 잠입할 필요가 있어요.”
스텔라는 지도를 펼쳤다.
“먼저 몸을 가볍게 해야 해요. 지도를 보니 주로 3층을 통하고요, 창문과 창문 사이를 뛰어넘어야 할 일이 많네요. 발판이 준비되어 있지만 너무 무거운 걸 올리지는 말래요.”
“드워프에겐 가혹한 조건이군…….”
가르달이 중얼거렸다. 에드워드는 그를 향해 말했다.
“일단 짐을 줄입시다.”
“그럽시다.”
그러더니 그 둘은 갑옷과 겉옷과 속옷을 한꺼번에 위로 올렸다.
촤르르르륵!
그들의 옷 틈새에서 금화와 은화가 쏟아져 바닥에 흩어졌다. 다른 일행들은 다들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렸다.
“니들이 도적이니?!”
베로니카가 에드워드의 등짝을 때렸다. 스텔라도 볼멘소리를 뱉었다.
“저더러는 당장 쓸 수 있는 시약만 챙기라시더니…….”
가르달과 에드워드는 각자 변명거리가 있었다.
“갑옷 보강용이었소.”
“두고 온 우리 마차가 불타면 적잖은 재산이 날아가는데 이 정도는 보험금으로 챙겨야지.”
에드워드는 돈을 쓸어 담아 자루에 넣은 다음, 교회 사제한테 맡겼다.
“보관료는 따로 내겠소.”
“그, 그러시죠.”
“얼굴 봤으니 도망가지 마쇼. 지옥 끝까지 쫓아갈 테니.”
사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자루를 받았다. 뭔 항의를 해도 안 먹힐 것 같자 베로니카와 스텔라는 빠르게 포기했다. 스텔라는 바로 말을 이었다.
“먼저 각 창문 사이에 놓을 발판이 숨겨져 있는 출발점으로 가야 해요. 발판은 책장의 형태로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데, 하나만 확보하면 그걸 계속 쓰죠.”
“난관은?”
“마법으로 잠긴 창문들이 있어요. 암호만 대도 열리는 것도 있고, 마법사가 있어야 열리는 것도 있어요.”
“좋아, 그럼 스텔라도 일행에 포함. 그리고?”
“악마를 상대로 싸우는 일이니 사제가 빠질 수는 없지. 나도 간다.”
베로니카가 말했다. 에드워드는 리안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이미 만사 포기한 표정이었다.
“또 오크한테 던질 거죠?”
“알면서 왜 묻냐, 무한리필 밴시탄.”
“꼭 지옥 가세요!”
에드워드가 밴시의 발목을 잡고 거꾸로 드는 걸 보자 스텔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제하는 게 좋아요. 밴시는 고향을 떠나면 힘이 줄어드는 타입이에요. 오크가 아니라 마물이라면 아예 안 통할 거고.”
“그런 것 같더라. 근데 넌 그거 어떻게 알아?”
“옛날에 어떤 선구자 밴시가 대륙까지 나와 본 모양이더라고요. 기록에 있어요.”
“쳇.”
“마법사 언니, 사랑해요!”
에드워드는 리안나의 망발을 무시하고 스텔라에게 질문했다.
“오크한테는 어디까지 통할 거라고 보냐?”
“능력 자체가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작은 방 안의 몇 명 정도는, 잠깐이라면?”
“그거면 충분해.”
“안 돼!”
리안나가 다시 외쳤다. 베로니카가 점잖게 덧붙였다.
“괜히 울음소리 때문에 주목만 더 끌 수도 있어. 꼭 필요할 때 아니면 던지지 마.”
“알았어. 나랑 베로니카 빼고, 각자 귀마개 준비해.”
헬레나는 천 뭉치 두 개를 스텔라에게 내밀었다.
“새 거예요.”
스텔라는 말없이 그걸 받았다. 교회 사제는 약병 몇 가지와 술이 든 가죽 주머니를 내밀었다.
“지금 교회에서 드릴 수 있는 게 이것뿐입니다. 무운을 빕니다.”
“뭐, 교회가 무너져도 좋은 꼴은 못 볼 테니 여기나 잘 지키쇼.”
에드워드는 리안나의 봇짐에서 빵 덩이와 치즈 조각을 꺼냈다.
“허기만 가실 정도로 체력 보충해. 뱃속에 뭐가 든 채로 뛰면 힘드니까.”
“현명한 판단이오.”
가르달은 빵 덩이를 받아 큼직하게 베어 물었다. 드워프 기준. 헬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 괜찮아요. 그동안 혹시 더 챙길 것 없나 살펴보고 오죠.”
베로니카는 한쪽에 앉아 쉬면서 기도를 시작했다. 스텔라는 각자의 행동을 살펴보다 에드워드에게 말을 붙였다.
“기사님, 저 위험수당 좀 주시면…….”
하지만 에드워드는 냉정했다.
“나중에.”
* * *
“나중에, 나중에 내가 그 말 참 듣기 싫어했는데. 악질 투자자들 단골 대사거든요. 기사님까지 그런 말을 할 줄이야.”
스텔라는 출발점에서 건너편 창문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가르달은 창문 옆 책장을 가리켰다.
“이게 발판이군. 책장으로는 참 어정쩡한 크기와 폭이오.”
가르달은 그 책장을 들어 올렸다. 쓸데없이 단단한 주제에 세로 폭이 좁아서 책을 꽂으면 떨어질 것 같았다. 실제로 책은 전혀 없이 비었다. 선반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가르달은 끄트머리의 장식에 균형 유지용 밧줄을 걸어본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발판이라는 걸 모르고 보면 평범한 가구 같긴 하군.”
스텔라는 지도에 적힌 암호를 읊었다.
“나는 무엇으로 너를 붙잡을 수 있는가?”
벌컥.
건너편 창문이 열렸다. 가르달은 곧바로 책장을 집어다 건너편 창틀까지 찔러넣었다. 헬레나는 건너편의 어둠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네요.”
가르달과 헬레나가 차례로 건너편에 돌입했다. 계단에서 대기하던 리안나는 아래층을 향해 말했다.
“기사님, 올라와도 돼요.”
아래층을 지키던 베로니카와 에드워드가 바로 올라왔다. 일행이 모두 건너온 다음, 책장을 끌어당기자 창문은 저절로 닫혔다.
이동 순서는 때때로 유동적이었지만 대개 가르달이 제일 먼저였다. 가분수 건물이래도 실내는 좁은 편이었고, 그런 곳에서 싸우는 건 드워프가 전문이니까. 만에 하나 이동 중 뭔가 등장하더라도 ‘도끼 투척’이 있는 가르달이 유리했다.
그래서 암호를 제일 먼저 듣는 것도 가르달이었다.
“병아리콩 호박벌 도리도리.”
“처음엔 그럴듯하더니 갈수록 암호가 이상해지고 있어.”
가르달이 중얼거렸다. 헬레나도 비슷한 소감이었다.
“인간들 센스는 이해가 안 가요.”
네 번째 창문부터는 변칙이었다. 스텔라는 말없이 지팡이를 휘둘렀고 곧바로 건너편 창문이 열렸다.
“이건 암호 필요 없나?”
“네. 대신 마법사만 열 수 있어요. 이 집에는 한패인 마법사가 상주했나 봐요.”
“머리 썼군. 문지기란 말이지.”
가르달은 곧바로 책장을 찔러넣었다. 그 순간 헬레나가 흠칫거렸다.
“적!”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건너편 어둠 속에서 검은 발이 튀어나와 책장 위를 눌렀다.
쿵!
“흐푸푸푸푸…….”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내민 건 찢어진 로브를 걸친 인간 여자였는데,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피부는 딱정벌레 같은 껍질로 덮였고 얼굴엔 염소 뿔이 돋아 있었다.
가르달은 정체를 묻기 전에 행동으로 나섰다. 그는 투척용 도끼를 냅다 던졌다.
퍽!
표적은 얼굴에 도끼가 박히자 비명을 지르며 도로 물러섰다. 드워프는 주 무기인 도끼를 들고 책장 위를 달려가 괴물의 몸 위로 뛰어올랐다.
“뒈져!”
“께에에엑!”
드워프가 혼자 적을 족치는 동안 다른 일행이 빠르게 넘어왔다. 헬레나는 주변에 다른 적이 없는지 귀를 기울였고, 에드워드와 베로니카는 턱과 머리가 집중적으로 짓뭉개진 여자를 살펴보았다.
“와, 이렇게 안 야한 여자는 처음 봐.”
“감상이 대체 왜 그래?”
베로니카는 핀잔을 준 다음, 시체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되다 만 악마네.”
“무슨 뜻이야?”
“쉽게 말해서, 악마에 한없이 가까운 인간. 이성을 유지한 채 승진 중이던 사교도야. 우리가 조금만 더 늦게 왔으면, 더 골치 아팠을 거야.”
“악마는 아니고?”
“그냥 통틀어 악마라고 흔히 부르긴 해. 하지만 지상의 종족은 죽었다 깨어나도 천사나 악마가 되지는 못해. 굳이 따지자면 최상급 사교도, 인간과 악마 사이의 무언가라고 해야지.”
“호오. 내가 그런 걸 죽인 건가!”
가르달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도끼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에드워드의 관심은 그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거, 되기 쉽냐?”
“글쎄? 쉽지는 않겠지만 그리 어렵지도 않을걸. 왜?”
“이런 게 드글거리는 건 아닐까 해서.”
“꺄악! 기사님! 뭐가 움직여요!”
리안나가 외쳤다. 그 말대로 죽은 여자의 뱃가죽 안에서 무언가 날뛰기 시작했다. 그게 뱃가죽을 뚫고 나오려던 참에 에드워드는 열쇠검으로 내리찍었다.
콰직!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잠입이라기에 [콜 오브 듀티>인 줄 알았더니 [에일리언>이네.”
“너, 나중에 그거 다 글로 써 봐. 대체 평소에 무슨 희·비극을 보며 지내는지 궁금해졌어.”
베로니카가 답했다. 그러나 둘의 만담과 달리 헬레나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 여자, 악마의 신부였나 본데요? 임산부는 절대 혼자 있지 않아요. 아마도 아래층에 뭔가 같이 있을 것 같은데.”
“알 게 뭐야. 안 올라오면 우리 일 아니야. 다음 건물로 가자.”
가르달이 책장을 집으며 말했다. 그 순간, 뭔가가 문을 조그맣게 두드렸다.
“거기, 사람 있어요?”
여자 목소리였다. 일행 사이에서 눈이 빠르게 오갔다. 악마? 사교도? 아니면 앵무새처럼 사람 말을 흉내 내는 마물? 에드워드는 가르달에게 눈짓했다. 드워프는 심호흡을 한 다음, 빗장을 열고 도끼를 들이밀었다.
“꺄아아악!”
문 뒤에 있는 건 알몸의 여자였다.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다행히 도끼날은 그녀의 코앞에서 멈췄다. 에드워드는 그녀를 살펴보고 말했다.
“56점.”
“점수를 짜게 주네.”
“너랑 헬레나를 끼고 사니 눈이 높아져서.”
“오해의 여지가 많은 농담은 그만둬.”
평범한 여자 같지만 의심은 쉽게 거두지 못하는 법이다. 험상궂게 생긴 드워프는 그녀의 콧등을 도끼날로 누르며 물었다.
“넌 뭐냐?”
“저, 저는 인간이에요! 이 방에 있던 여악마한테 붙잡혀 있었어요! 다른 여자들도 있어요!”
그제야 가르달은 그녀의 뒤, 계단 아래에 두려움으로 떠는 많은 눈동자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베로니카는 성큼 걸어가 여자를 살펴보더니 말했다.
“약간의 정신 오염이 의심되긴 하지만, 응. 평범한 인간 여자야.”
그녀의 시선은 계단 아래로 향했다. 아래층에는 알몸의 여자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악마의 신부가 스스로 첩들을 준비했나 보네.”
“지극정성이구만. 내 마누라도 그랬으면 좋겠다.”
에드워드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웃지 못했다.
“큰일 났어.”
“왜?”
“계획이 다 헝클어진 셈이야. 우린 이 여자들을 데리고 갈 수 없어. 너무 많아!”
“몽둥이라도 쥐여주고 동행시킬까?”
“도움이 될 것 같니? 게다가 이 숫자를 어떻게 한꺼번에 이동시켜?”
당연히 무리였다. 비명을 지르거나 소란을 떨면 더 곤란해진다. 에드워드는 얼굴을 찌푸리곤 머리를 굴렸다.
“두고 가면?”
“아까 그 여자 사교도 못 봤어? 우리가 그냥 가면, 그녀들은 결국 악마나 사교도의 힘으로 타락할 거야. 아까 그게 막 늘어날 수도 있다고.”
“젠장. 그럼 어떻게 해?”
“이들을 살리려면, 왔던 길로 천천히 되돌아가야 해. 전부 교회로 보내는 수밖에 없어.”
“그랬다간 시간이 무진장 걸릴 텐데.”
발판은 하나뿐이고, 마법사도 하나뿐이다. 통로는 비좁다. 그런데 사람은 많았다. 이들이 모두 이동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냉정해져야 하오.”
가르달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더 시간을 지체하면 큰일 나오. 저들과 함께 교회로 돌아갔다가 다시 온다는 선택은 할 수 없소. 그사이에 도시가 완전히 함락되거나, 교회가 무너질 거요.”
“다른 방법 있소?”
에드워드의 질문에 가르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우선시하는 게 이들도 구하는 길이오. 몽둥이라도 쥐여주고 아래층의 문을 열어 줍시다. 이들이 선택하는 수밖에 없소. 여기서 구원과 타락 중 무엇이 먼저 오는가 기다릴지, 스스로 살길을 찾을지.”
“바깥엔 마물과 오크가 득시글거려요. 아무런 훈련도 준비도 안 된 사람들을 거기로 들이밀면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가능성 없는 소리는 하지 마요.”
헬레나가 쏘아붙였다. 스텔라는 슬쩍 에드워드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저 사람들 풀어주고 소동을 일으키면, 적들의 주의가 분산되지 않을까요?”
에드워드는 쓰게 웃었다.
“그것도 매력적인 선택지이긴 한데.”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돌아보았다.
“어쩔래?”
“어, 내가 결정해야 하나? 리더는 너잖아?”
“전술·전략은 네가 전문가잖아. 네가 결정해야 돼.”
그 순간 주변의 모든 시선이 에드워드에게 박혔다. 그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아, 젠장. 나 이런 거 약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