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74)
74화 대업적 2호: 돈지랄
투리치 시를 침공한 사교도 중에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같은 케이스는 사실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악마숭배자, 잡스러운 주술사 수준이다. 그러나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은 선택된 존재로, 널린 악마숭배자와는 급이 달랐다. 굳이 따지자면 기사나 마법사에 대응한다. 그들은 변신 능력을 손에 넣고 빛의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엘리트였다.
그런데 그게 역전되는 케이스가 있다. 악마숭배자들 중 일부가 ‘축복’을 받아 정말로 악마와 같은 힘을 얻어 버리는 것이다.
“가랑이 한번 잘 벌린 얼간이한테 내가 굽신거려야 한다니!”
어느 사교도의 행운과 노력을 극도로 폄하한 늑대인간은 인간 여자의 덜미를 붙잡고 ‘감옥’으로 향했다. 말이 감옥이지만 진짜 감옥은 아니었다. 크고 단단한 저택 중 하나로, 악마의 총애를 받은 사교도가 새 보금자리로 선정한 곳이었다. 그는 여자를 향해 말했다.
“넌 운이 나쁘구나. 차라리 늑대인간의 종이 되는 게 나았다고 생각하게 될 거다.”
여자는 말없이 축 늘어져 있기만 했다. 재미가 없었다. 늑대인간은 ‘이년을 확 물어뜯어 하위 늑대인간으로 만들까’ 고민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할당량을 채우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고 하위 늑대인간은 상위 늑대인간과 달리 변신을 못 하는 그저 그런 전투원에 불과했다. 악마의 첩이 늘어나는 게, 지금 상황에 전체적으로는 더 도움이 된다. 전투원 노릇을 할 마물과 오크는 어차피 계속 증원될 테니까.
늑대인간은 감옥 1층에 도착했다. 그는 큰소리로 외쳤다.
“도토리! 침묵! 배꼽!”
끼이익.
마법의 암호를 듣고 문이 열리자 늑대인간은 그 안으로 들어섰다. 1층과 2층에는 여자들이 가득했고 별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만 빼고. 바로 여자들의 분위기.
“너네 어째 얌전해졌다? 드디어 포기했냐?”
여자들은 대꾸가 없었다. 늑대인간은 코웃음을 치고 문을 닫았다.
“도토리! 침묵! 배꼽!”
덜컹.
늑대인간은 돌아서서 다시 작업에 착수하려 했다. 그런데 멀리서 한 무리의 사교도들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뭐야? 네놈들이 여긴 왜 와?”
늑대인간의 질문에 선두의 사교도가 소리쳤다.
“집을 뺏겼어! 첫 번째 첩이 죽었다!”
늑대인간은 당황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저택은 새파란 빛의 방어막으로 덮였다. 늑대인간은 이를 갈았다.
“어떤 잡놈이 숨어들어온 거냐!”
그가 방어막을 후려쳤지만 그건 분풀이에 지나지 않았다. 사교도들은 서둘러 주문을 외웠다.
“접근 방지 마법이다! 파훼하라!”
그 순간, 저택의 한쪽 다락방이 번쩍거렸다. 늑대인간은 기겁해서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사교도 대열 한복판에서 불꽃이 치솟았다.
콰과광!
사교도들은 육편이 되거나 혼비백산해 도망쳐 버렸고 저택 주변은 침묵을 되찾았다. 저능한 마물들은 시체 조각으로 만찬을 즐길 뿐, 저택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물론 사교도들이나 오크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잠시 뒤 그들은 더욱 많은 부대를 꾸려 나타났지만, 마법이 겁나서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다. 적 대마법사에 대한 파훼법을 찾느라 저택 주변은 잔뜩 소란스러워졌다.
물론 대마법사 같은 건 그 저택 안에 없었다.
* * *
저택을 떠나기 전, 에드워드는 머리를 굴린 끝에 첫마디를 어렵게 꺼냈다.
“악마 새끼가 임신시키기 전에 먼저 임신시킨다 같은 건 안 되나?”
베로니카는 바로 그의 등짝을 때렸다.
“이 색욕 죄악의 대악마야! 농담하니? 그랬다간 쟤들 바로 푸줏간 고기 신세야!”
“젠장.”
가르달도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사 양반이라도 수십 명은 좀 힘들 것 같소. 시간이 꽤 걸릴걸.”
“농담이오, 농담. 에휴. 아무튼, 두고 간다. 차라리 여길 요새화하라 해. 그게 합리적이야. 악마 새끼를 해결하고 빨리 돌아오면 되겠지.”
“에드워드 경, 여기는 제법 튼튼한 저택이지만, 사교도들이 이상을 눈치채고 몰려온다면 오래 버틸 수 없소.”
가르달이 다시 지적했다. 베로니카도 마찬가지 의견이었다.
“죽은 사교도는 완성되지 않아. 소식이 없으면 이상을 눈치채겠지. 우리가 싸우는 동안 아무 일 없기를 바라는 건 무리야.”
“버리고 가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누가 남아서 돕기라도 해야죠. 아니면 뭔가 쓸 만한 걸 쥐여주든가.”
헬레나도 힐난했다. 에드워드는 최대한 항변했다.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돌아온다고 했잖아. 그게 도시도 구하고 여자들도 구하는 거야. 우린 소수고, 팀을 가를 여유 없어.”
“가능성 낮은 도박에 도전하는 건 당신 자유지만, 무력한 여자들 목숨까지 판돈으로 올리지는 마세요.”
“어차피 모두가 안전한 길 따위는 없어.”
“진심인가요?”
에드워드는 뭐라 더 말하려다 헬레나와 눈이 마주쳤다. 잠시 뒤 그는 스텔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최대한 조치는 해 주고 간다. 적당한 마법 걸어놓을 수 있지?”
“몇 가지는요. 하지만 제 수준에서는 도움 될 게 없네요.”
“방범 마법 같은 거 있잖아?”
“방범 마법은 문을 잠근다거나, 끔찍한 경보음을 낸다든가, 서류나 자물쇠를 건드리는 순간 감전시키거나 폭발하는 정도예요. 다수의 사교도를 상대로 작동하는 자동 마법 같은 게 어딨어요? 그런 건 박사 정도는 되어야 쓸까 말까 한데.”
“잡다한 거라도 잔뜩 걸어놓는다면?”
“여기서 시약과 시간 다 쓰게요?”
“해 줄 수 있는 만큼만 해 줘. 없는 것보단 낫잖아.”
“해 줄 수 있는 만큼이 얼마만큼인데요? 악질 투자자들은 꼭 애매한 요구 조건을 내걸더라.”
둘의 대화를 듣던 리안나는 자기 봇짐을 내밀었다.
“이거 쓰면 안 되나요?”
그 봇짐 안에는 마법 두루마리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스텔라가 시약 상점과 전당포를 오가며 챙긴 노획물 중의 일부. 에드워드와 스텔라는 서로를 다시 마주 보았다.
“저것까지 감안하고 한 이야기지?”
침묵. 에드워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야?”
“기사님이 내용물 확인한 거 아니었어요?”
“아니, 마법사가 내용 먼저 확인해야 하는 거 아냐?”
“준비물 체크는 기사님이 하셨잖아요?!”
둘 다 스크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둘의 모습을 보고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잘 준비했다 싶어도 이런 구멍이 생기네.”
“그러게 말이오.”
가르달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동의를 표했다. 헬레나는 스텔라의 어깨를 짚었다.
“스텔라 양, 쓸데없는 책임 소재 논쟁은 그만하고 당장 스크롤부터 확인해 봐요. 쓸 만한 게 있는지.”
“아, 정말! 이런 건 결국 다 고용인 잘못이지!”
스텔라는 투덜거리면서 두루마리들을 펼쳤다. 내용의 확인은 금방 끝났다.
“정품 7개, 짝퉁 3개요. 짝퉁은 사용을 권장하지 못하겠네요.”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짝퉁은 빼고, 정품을 나누자. 뭐 뭐 있는데?”
“접근 방지형 거점 방어 1개, 나머지는 전부 광역 공격이에요. 그런데 2개는 마법적 재능이 있는 사람만 쓸 수 있어요.”
“그럼 거점 방어 1개, 공격 마법 4개군. 거점 방어는 쓸 만하나?”
“짧아도 반나절은 가겠네요.”
“잘됐네. 역시 난 운이 좋아. 해결책이 보따리 안에 있었다니. 착하게 산 보람이 있네.”
“너 지금 회개하니?”
베로니카가 어이없다는 듯이 딴죽을 걸었다. 에드워드는 피식 웃는 거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앓던 이가 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거 주고 가자.”
스텔라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무런 견제수단 없이 방어 마법만 쓰면 사교도들이 파훼할 거예요.”
“그 말은?”
“공격 수단도 필요하단 거죠.”
“아, 젠장. 공격 스크롤도 2개 넘겨줘.”
“겨우 2개로 이 사람들이 사교도들을 상대할 수 있으려나요?”
에드워드는 앓는 소리를 낸 다음 결론을 내렸다.
“그냥 다 넘겨줘. 짝퉁도.”
“그래도 되나요?”
“우린 마법사 데려가잖아. 거기다 너만 쓸 수 있는 스크롤도 2개 있다며. 그 정도면 우리도 비상대응에 잘 쓰겠지.”
“그렇긴 한데요…….”
“뭐가 문제야?”
스텔라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들 생각보다 수준이 높아요. 이 정도 레벨의 마법을, 재능 없는 사람도 쓸 수 있는, 정품에, 신품인 두루마리는 절대 싼 게 아니에요.”
불길한 시작. 에드워드는 갑자기 입안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쯤 하는데?”
“1개가 작은 성 1채 값이에요.”
각종 포션을 갖고 다니며 마법사에게 인챈트받기만 해도 부유한 기사, 영주 소릴 듣는 세상이다. 그런 곳에서 좋은 조건을 4가지나 달고 있는 고급 스크롤. 숨이 막힌 에드워드는 쥐어짜듯 말했다.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뭐 어때. 대업적이잖아. 명성은 무지 높아질걸.”
베로니카가 웃으면서 말했다. 말 그대로였다. 돈으로 명성 사기. 다른 뾰족한 수를 생각하기에 시간이 모자랐다. 에드워드는 짧은 갈등 끝에 결정을 내렸다.
“단숨에 성 5채 값이 날아가는 업적이라니, 비싸!”
“그 정도는 되어야 저택도 마법 요새로 바꿔 놓을 수 있겠지. 너무 아까워하지 마. 어차피 공짜로 얻은 거고,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하잖아?”
베로니카가 어린애 달래듯 에드워드를 달랬다. 헬레나도 한마디 얹었다.
“한두 명 목숨도 아니고, 수십 명이에요. 악마의 첩이 늘어나 더 불리해지는 것도 막을 수 있겠죠.”
“뭐, 이 저택이 악마와 사교도들의 관심을 끈다면 우리가 잠입하는 게 더 쉬워질 수도 있소.”
가르달도 거들었다. 스텔라만이 눈을 굴리다 후회 섞인 말을 뱉었다.
“어떤 건지 미리 볼걸.”
에드워드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알았어, 알았어! 다들 그만. 나만 나쁜 놈 되겠네, 이거.”
에드워드는 미련을 떨쳐내고 일어섰다.
“악마 새끼한테서 그만큼 뜯어내고 말 테다.”
베로니카는 웃어 버렸다.
“이번엔 안 말릴게.”
* * *
붉은빛 아래에서, 제물과 사교도와 시체들 사이에서, 환락과 전략을 오가며 즐기던 염소 뿔 악마는 곧 자신의 새 영지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차렸다.
“저기는 내 새집이 아니더냐? 왜 저기에 마법사가 있는 거냐?”
악마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붕 아래의 한 사교도가 당혹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안 좋은 소식을 전했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만, 시간이 지나도 여자분께서 집 밖으로 나오질 않아 뭔가 잘못된 줄 알고 모시러 가 봤는데, 갑자기 마법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고…….”
“어떤 놈들이냐! 교수들은 제집 밖으로도 못 나오고 있을 텐데!”
저 정도 수준의 마법을 부릴 수 있는 마법사 교수들, 스스로 방호가 가능한 성직자 교수들은 자기 집을 중심으로 지인들을 지키는 데 여념이 없었다. 아니면 이미 피난민 행렬에 합류했거나. 괜히 소굴까지 쳐들어올 이유나 연대 따위는 없었다.
“병력을 더 보내라! 방어 마법을 파훼하라! 내 것을 조금이라도 잃는다면 네놈들을 전부 마물로 전락시킬 테다!”
사교도는 기겁하여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씩씩거리던 염소 대가리 악마는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민들레 씨처럼 천천히, 산발적으로 내려오는 오크들의 무리. 마음 같아서는 저것들을 모아서 한꺼번에 저택으로 투입하고 싶지만, 미리 조율한 게 아닌 이상 오크들의 움직임은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도시에 항상 있기 마련인 교회, 광장 따위를 집결지로 약속했을 뿐이다. 그나마도 대개는 눈앞의 약탈이나 싸움에 정신이 팔려서 지휘관들 마음대로 모이질 않았다.
“전령! 전령은 더 없느냐!”
이번엔 악마를 보자마자 무릎 꿇고 배교한 자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새 주인을 향해 빌었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쓸모를 증명하겠습니다!”
악마는 염소 머리가 그려진 천 쪼가리들을 그들에게 뿌렸다.
“가라! 가서 새로 도착한 오크들에게 전해라! 얼른 광장으로 집결하라고!”
배교자들마저 뿔뿔이 흩어지자 제정신을 못 차리는 희생자들과 사교도들, 떠돌이 개 같은 마물들, 그리고 악마만 남았다. 그는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딘가 불길한 침묵. 설명하기 힘든 불안감. 마치 커다란 쇠공이 가느다란 실에 묶여 머리 위에 매달린 것 같은…….
콰과광!
그 순간 악마는 허공에 떠올랐다. 거대한 폭음이 그가 딛고 선 건물을 날려 버린 것이다. 악마는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순간 격통을 느꼈다. 다른 마물이나 사교도는 비명도 못 지르고 찢겨 나갔다.
하지만 악마의 목숨은 질겼다. 지상으로 추락한 그는 먼지 더미 사이로 인간들의 그림자를 보았다. 제일 앞에 선 그림자가 경망스럽게 말했다.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야?”
기사.
“번개 마법이 특기라고 다른 마법을 못 쓰는 건 아니에요. 효율이 안 좋아서 그렇지.”
마법사.
“하늘 위에 떠다니는 것 보여? 저게 마도서네. 내려오고 있어.”
사제.
“저걸 찢으면 되는 거요?”
드워프.
“악마부터 잡아야죠.”
엘프.
“악마가 어딨는데요?”
밴시.
악마는 이를 갈면서 일어났다.
“이 잡동사니 같은 놈들이 기어코 여기까지!”
그러나 그 순간, 악마는 목에 뭔가 걸려 도로 뒤로 넘어졌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악마의 위로 허리띠의 망령이 깔깔깔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여기다! 여기 있어요, 기사님!”
먼지구름 속을 헤치고 에드워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주저앉은 하급 악마를 향해 말했다.
“앵글리아식 자유가 왔다. 값은 성채 5개. 어떻게 물어낼래, 이 염소 대가리 새끼야.”
처음부터 끝까지 악마는 영문 모를 소리였다. 그는 분노에 차서 다시 일어섰다. 근육으로 가득 찬 붉은빛 피부, 머리 몇 개는 더 올려야 맞먹을 키, 허리춤에는 무수히 달린 단검들. 당연하지만, 악마는 이미 싸울 준비를 끝냈다.
“기사 주제에 더럽게 기습을 걸다니!”
에드워드는 씩 웃으면서 열쇠검을 겨눴다.
“내 돈 내놔.”
에드워드한테는 그게 가장 기사다운 언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