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76)
76화 달려라 밴시
저택에 남은 여자들은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듣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마법 전문가가 아니었으며 전투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녀들에게 이것저것 조언해 주고 방범 마법도 걸어 준 여마법사 스텔라의 조언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제한적이었다.
정보가 부족하고 안목도 없는 상태. 적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하는지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그저 조금 모였다거나, 수상쩍은 게 보이기만 해도 여자들은 스크롤을 써 버렸다.
초반에는 그게 통해서 뭔가 대단한 마법사가 도사린 것처럼 보여 오크와 사교도들에 혼란을 가져왔지만, 곧 한계가 왔다.
마지막 짝퉁 스크롤이 불발 후 재로 변해 사라지는 걸 본 한 여자가 중얼거렸다.
“이제 마지막이야.”
몇몇 여자들은 탄식과 한숨을 내뱉었다. 물론 안 그런 여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방어 마법이 무너지지 않기를 기도하거나,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뭐든지 좋으니까 문과 창문을 더 보강해요! 집어던질 게 없으면 똥오줌이라도 던져야 할 거 아녜요!”
한 여자가 그렇게 소리지르며 뛰어갔다. 다른 여자는 책상 다리를 부러뜨린 다음 커튼을 감아 촛대 주변에 두었다.
그러나 일부의 희망이나 준비와 다르게 공포는 빠르게 번져 갔다. 위층에서 한 여자가 뛰어 내려오더니 외쳤다.
“지붕에서 뭔가 달려요! 싸움 소리가 나요!”
그 순간 여자들은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 올라갔지?!”
“마법이 깨진 거야!”
“우린 다 죽었어!”
그러나 잠시 뒤 위층에서 내려온 건 엘프 헬레나였다. 그녀는 피투성이였고 오른쪽 어깨엔 화살도 하나 꽂여 있었다. 그녀를 들여보내 준 여자는 다급하게 질문했다.
“괜찮으세요? 심하게 다치신 건가요?”
“대부분은 제 피가 아니에요.”
헬레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여자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기사님은요? 지원군은 안 오나요?”
“지금 악마와 싸우고 계세요. 스크롤은요?”
“한 장도 안 남았어요. 방금 다 써 버려서…….”
“벌써요?!”
헬레나가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낭패라는 듯 말했다.
“그걸로 오크들을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그녀의 발언은 안 그래도 초조했던 인간들의 불안감에 불을 질렀다.
“오크들이 또 와요?”
“기사님은 안 올 거야! 지원군도! 우린 끝났어!”
이성을 가까스로 유지한 여자들이 그녀들을 달래고 어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저택을 감싸던 푸른 빛이 사라지고 촛불만이 남았다. 여자들의 비명이 더 높아졌다.
헬레나는 글레이브를 들고 계단을 막아섰다.
“1층과 3층을 버리고, 계단에서 최대한 떨어져요! 창가에 서지 말고, 던질 수 있는 물건 전부 챙겨요!”
횃불을 만든 여자들이 다른 여자들을 데리고 더 깊은 안쪽으로 피했다. 비명 또는 침묵 사이에서 헬레나는 사방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방어 마법이 파훼되었으니 계단으로 몰려올 것은 자명했다. 하지만 다른 곳도 구멍이긴 마찬가지였다. 창문이라든가. 굴뚝은 오크가 통과하기엔 작지만 지나가던 마물을 잡아 넣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공격은 이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밖이 조용해졌다. 헬레나는 좀 더 정신을 집중해 보았다. 오크들이 뭔가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잠시 뒤, 그녀의 귀로 다시 찾아온 소리는 멀리 달려나가는 발소리들과 비명뿐이었다.
“도망치고 있어?”
“네?”
한 여자가 되물었다. 헬레나는 곧바로 자신이 들은 것을 말했다.
“오크들이 도망치고 있어요. 이게 대체…….”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뭔가 지붕을 강타하는 소리가 울렸다. 쾅! 다시 여자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헬레나는 냉정하게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뭔가가 바람을 가르며 떨어지고 있었고, 그 사이에 비명이 섞여 있었다. 헬레나는 다급히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어 보았다.
오크들이 하늘에서 추락하고 있었다.
“세상에…….”
헬레나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짐수레들은 그대로 건물이나 땅에 처박혀서 요란한 굉음과 함께 부서졌다. 첨탑, 동상, 분수대 따위에 떨어진 오크들은 그대로 꼬챙이가 되었다. 단단한 지붕 또는 바닥에 부딪힌 오크는 피떡이 되었다. 일부는 다른 오크나 마물 위로 떨어져 저승길 동무를 늘렸다.
땅에 있던 오크와 사교도들은 사기가 급락해 버렸다. 당연하지만 추락하는 오크들은 이미 시 외곽으로 내몰린 시민들보다 어둠의 군세 위에 더 집중적으로 떨어졌다. 증원군이 사실상 전멸한 것도 모자라 자기들 위로 떨어지는 데 평온을 유지할 군대 따위는 없었다.
헬레나를 따라왔다가 저택 주변을 포위했던 오크들도 혼란에 빠져 도망치기 바빴다.
“저기! 기사님이에요!”
얼이 빠진 헬레나 뒤에 슬쩍 다가왔던 한 여자가 외쳤다. 헬레나의 눈에도 에드워드 일행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들은 추락하는 오크들을 피하면서 저택까지 달려와, 지붕 아래에 숨은 오크들을 족쳤다. 성난 기사와 드워프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고, 그들은 곧 저택에 도착했다. 뒤이어 베로니카와 스텔라, 리안나도 도착했다.
“와우! 죽는 줄 알았네. 악마 새끼보다 이게 더 위기야.”
에드워드가 말했다. 그는 방금 베어낸 오크 모가지를 1층 구석에 던진 다음 2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헬레나한테 바로 질문했다.
“스크롤 남았어?”
“아뇨, 다 썼대요.”
“젠장. 벌써? 아슬아슬했구만.”
“악마는요?”
에드워드는 리안나를 가리켰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들기 싫은 물건 중 하나를 들고 있었다. 위턱부터 뜯겨나온, 불그스름한 염소 대가리. 눈 위로는 불에 탄 듯 그을려 있었다.
“이거 굉장히 무거운데요. 여기 둬도 돼요?”
“하급 악마는 부활 같은 거 못하니까 괜찮겠지.”
베로니카가 말했다. 헬레나가 다급하게 질문했다.
“끝난 건가요?”
“완전히는 아니에요. 이미 내려온 놈들은 아직 남았으니.”
가르달은 창문 밖을 내다보고 말했다.
“음. 붉은빛이 다 사라졌소. 저놈이 마지막 추락이겠구만.”
하늘 위를 떠다니며 꽥꽥 소리를 질러대던 마지막 오크가 결국 자유 낙하를 시작했다. 피할 수 없는 죽음. 그놈은 시야 밖 어딘가로 떨어졌고, 잠시 후 우지끈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에드워드는 짧게 투덜거렸다.
“빨리 오면 스크롤 한두 개는 남기겠지 했더만.”
헬레나는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 속셈으로 뛰어오신 거예요?”
“아니. 네 순결도 중요한 문제였어. 내 거잖아.”
“……고마운 듯 고맙지 않은 발언이군요.”
복잡한 감정을 뱉은 다음 헬레나는 여자들을 돌아보았다.
“이제 괜찮아요. 여기는 안전해요.”
여자들 사이에서 안도의 한숨과 감사의 기도가 터져 나왔다. 어떤 여자는 주저앉아서 울기도 했다. 뒤이어 그녀들은 에드워드 일행에게 몰려와 감사의 말을 하느라 갑작스레 소란스러워졌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것도 나쁘진 않구만.”
“좀 더 풍만한 여자들이었으면 좋을걸 그랬소. 인간들은 너무 말랐어.”
“드워프 기준이오?”
“그럼 다른 기준이 있소?”
“우리 이 대화 세 번은 하지 맙시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여자들의 감사에 대충 답한 다음, 다시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아침은 멀었고, 지원군은 오는지 안 오는지 파악도 못 하겠군.”
“소금산은 어렵지만 도시와 계약을 맺은 주변의 기사들이라면 이미 시 경비대와 합류했다고 봐야 할 거요. 어쩌면 지금 반격을 시작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오.”
가르달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뭐, 그들이 합류했든 아니든 지금쯤 생존자들은 오히려 밀어붙이고 있을 거요. 오크들이 추락하는 꼴을 봤을 테니. 하지만 기세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지. 우리가 휘저어 줍시다.”
“우리만으로는 조금 힘들지 않겠소?”
에드워드는 리안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리안나.”
“네?”
“너 최대한 짐 줄여라.”
리안나의 동공이 공포로 흔들렸다.
* * *
오크들의 비명이 어느 정도 잦아들자 교회의 두꺼운 문짝이 열리며 한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언제 그리 소란스럽고 붐볐냐는 듯, 교회 앞은 한적했다.
본당 바로 앞에는 오크들의 짐수레 하나가 박살이 나서 그 속을 까발려놨는데 검, 도끼, 창, 화살 등 무기가 한가득했다. 나귀는 곤죽이 되었지만 근처에 마부는 없었다. 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알 리가 없는 사내는 긴장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저 멀리서 은발 적안의 소녀가 도도도 달려오는 게 보였다. 처음엔 사교도인 줄 알고 놀란 남자가 문을 닫으려 했지만, 곧 그녀가 에드워드의 종인 밴시 리안나임을 알아보았다.
“쟤 기사님이 데려간 꼬맹이 집요정 아냐?”
사내가 교회 안쪽을 향해 질문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내밀었다.
“밴시 살려!”
광장을 가로질러 달려오던 리안나의 뒤에는 개 형태의 마물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어떤 사내들은 기겁해서 문을 닫으려 했고 다른 사내들은 그들을 말렸다.
“문 닫아!”
“야, 쟤는 들여보내고 닫아야지!”
“우리까지 죽어!”
“사제님들도 있잖아! 저 정도는 쫓아낼 수 있어!”
다행히 그들이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밴시 리안나는 교회 안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 사내들이 문을 닫자 뒤이어 마물들이 문짝에 부딪히는 소리가 교회를 울렸다. 쿵! 발톱이 문을 벅벅 긁는 소리, 개 울음소리 흡사한 마물들의 울음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리안나는 본당 바닥에 몸을 날린 자세 그대로 뻗어 버렸다.
“업무 외 노동이 너무 가혹해!”
밴시 리안나는 신세 한탄을 하며 겨우 일어나 앉았다. 곧 그녀 주변으로 피난민들과 사제들이 모여들었다.
“기사님과 이단심문관님은?”
“밖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어떻게 돌아왔지?”
무수히 많은 질문들을 싹 다 무시하고, 밴시 리안나는 할 말만 했다.
“기사님이 악마를 죽였어요. 오크들은 전부 겁먹었고요. 사교도들은 도망치거나 숨느라 바빠요.”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나왔다. 희소식이었다. 한 사제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럼 이제 끝난 거냐?”
“아뇨. 아직 적들이 시내를 누비고 있어요. 반격하면 내부에서 호응해야 하니까 당장 다들 무기 들고 나오래요.”
“그래, 알았다. 다들 들었죠? 무기를 들고 밖으로 나갑시다!”
사제가 외쳤다. 그러나 생각보다 호응하는 사람이 적었다.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반격이 시작되고 있긴 한 거야? 일단 지원군이 여기까지 온 다음에 나가는 게 안전하지 않아?”
“그래, 여길 지킬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여자와 아이들도 있고…….”
망설이는 자들의 표정을 한심하게 봐준 다음, 리안나는 숨을 잔뜩 들이마셨다. 그녀는 본당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이단심문관님이 오크나 마물 모가지 들고 오는 사람은 회개하거나 간증한 거로 쳐 줄 테니 고문 안 한대요!”
그 말은 저 안쪽에서 좌절과 걱정에 깔려 죽을 판이던 대학생들, 특히 불량학생들의 귀에 파고들었다. 베로니카한테 이미 경고를 받았던 그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진짜?!”
“사면이다!”
“사면이래!”
학생들은 각자 무기를 들고는 교회 정문을 박차고 나갔다. 교회 밖을 맴돌던 개 마물들이 깜짝 놀란 눈으로 교회를 돌아보더니, 눈이 뒤집힌 학생들을 보고는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교회 안 사제들은 황급히 그들에게 보호 주문을 걸어야 했다.
“주문은 받고 나가!”
사제가 외치는 것과 동시에 개 마물들은 뒤로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깨갱! 깽!”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함성을 지르며 교회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들은 오크 짐수레에서 무기를 약탈한 다음 사냥감을 찾아 달려나갔다. 마지막으로 나간 건 베로니카한테 정화 받은 불법 스크롤 제작자였다. 곧 죽을상의 환자였던 그마저 오크 짐수레에서 마지막 남은 도끼를 꺼내 들고는, 비틀거리며 사람들을 쫓아갔다.
“내 것도 남겨 줘요!”
몇몇 사람들과 본당 안에 남아 그들의 뒷모습을 보던 늙은 사제는 밴시 리안나를 돌아보았다.
“이래도 되는 거니?”
“제가 아나요? 어휴, 이제 또 달려야 되네.”
“어디로?”
“피난민들 있는 곳이면 닥치는 대로요. 다른 교회, 시청, 수도원, 교수 저택 등등. 기사님이 허리띠의 망령이랑 저더러 그러고 돌아다니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 알았다. 나도 가만히 있지는 못하겠구나.”
늙은 사제는 교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교회 종탑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사태 초기에 비상상황을 알리기 위해 울렸던 것과 반대로, 이번엔 반격 개시를 알리기 위함이었다.
밴시 리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회 밖으로 나섰다.
“그래도 희망을 전하는 일이라 좋긴 하네. 좀 천천히 뛸 수만 있으면 좋겠…….”
그 순간, 뭔가 붕붕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리안나는 옆을 돌아보았다.
큼직한 나방 마물 하나가 석상의 머리 위에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밴시는 작게 탄식했다.
“내 팔자야!”
밴시 리안나는 고통과 희망을 안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