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79)
79화 여성의 문제는 곧 기사의 문제 (2)
백작 부인은 에드워드 일행 앞에서 말을 멈추고는 굴러떨어지듯 내렸다. 그녀는 에드워드를 향해 달려와 그 팔을 붙잡았다.
“에드워드? 너 에드워드 맞지?”
“백작 부인, 이게 대체 무슨 일인…….”
에드워드가 질문을 꺼내기 전에 헬레나가 말했다.
“추적자도 왔어요.”
길 위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짧은 콧수염을 기르고 금실로 수놓은 군청색 홑겹 옷을 입은 유목민이었다. 나이는 마흔쯤 될 것 같은 사내. 담비 가죽 털을 두른 모자형 철 투구, 활과 화살, 완만한 곡도로 무장했다. 활과 화살은 이미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는 에드워드 일행을 보고 속도를 늦추었다.
“동방 기마궁병이네. 부족까지는 모르겠지만.”
베로니카가 말했다. 에드워드는 그 말에 반응했다.
“트레베리아에 그런 애들도 있었나?”
“용병 일을 하느라 여기까지 오는 경우가 없진 않아. 대개는 더 동쪽으로 가야 보겠지만.”
조그맣게 속삭이는 사이, 백작 부인이 에드워드를 와락 끌어안았다.
“널 여기서 만나다니, 신의 축복이 틀림없어!”
에드워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백작 부인, 남들 앞입니다.”
여자는 특별히 해명하지 않고 재빨리 에드워드의 뒤에 숨었다.
“구원자를 본 심정이야. 저 불한당이 날 죽이려고 해!”
에드워드는 침묵했다. 베로니카가 질문했다.
“네 지인이면, 베레스포드 공작님과 관련된 사람?”
“아니. 트레베리아 원정 때 알게 됐어. 백작 부인이 앵글리아군에 포로로 잡혔거든.”
백작 부인은 도리질을 쳤다.
“이제 전 백작 부인이야. 이혼했어.”
“엥? 왜?”
에드워드가 물어볼 때 유목민이 제자리에 섰다. 그는 에드워드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그 여자는 살인자다!”
유창한 아퀴타니아어였다. 에드워드는 다시 놀랐다.
“아퀴타니아어?”
이 근방 토박이 용병들의 언어는 트레베리아어 아니면 비텔리아어다. 베로니카는 얼굴을 찌푸렸다.
“시오니아 영향권에서 용병 활동을 하는 부족인가?”
“네 고향?”
“그래. 시오니아 왕실은 아퀴타니아계니까. 그리고 그곳 용병들은 활동영역이 꽤 넓지. 나라 몇 개쯤은 가로지를 정도로. 아니면…….”
“아니면?”
“저자가 고위 전사라는 뜻이지. 아퀴타니아어는 귀족과 기사의 언어잖아. 복장도 낡았지만 고급이고.”
에드워드는 여자를 향해 눈을 돌렸다.
“백작 부인, 무슨 일입니까? 살인죄라니?”
여자는 세차게 도리질을 쳤다.
“누명이야! 난 그런 적 없어! 내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
에드워드는 고민 끝에 유목민을 향해 소리쳤다.
“이 여자의 죄는 어디에서 판결을 받았는가?”
“발텐호펜 시청에 고발장이 접수되었고 피해자의 유족들이 현상금을 내걸었다!”
“판결문은 나왔는가?”
“아직! 나는 그 여자를 재판에 보내기 위해 온 것이다!”
“너는 관료가 보낸 군인이냐?”
“아니, 유족의 현상금에 응했다!”
에드워드는 혀를 한 번 찬 다음 말했다.
“이 여자는 내가 아는 사람이다. 판결문이 없고 혐의만 있다면 내놓지 못하겠다!”
현상금 사냥꾼은 잠시 말이 없었다. 에드워드는 특별사법관을 돌아보았다.
“뒤탈은 없겠지?”
“재판에 응해서 무죄 판결을 받는 게 가장 뒤탈이 없는 방법이긴 해.”
그러나 백작 부인은 고개를 다시 세차게 저었다.
“제 위자료와 남은 재산을 욕심낸 사람들이 이미 시청을 매수했어요. 거기 가면 전 큰일 나요!”
“그럼 어쩔 거예요, 백작 부인?”
“제가 후원하던 수녀원으로 가서 보호를 요청한 다음, 공정한 재판을 위해 제3자를 개입시킬 거예요. 저자는 그걸 막으러 온 거고.”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돌아보았다.
“그렇다는데?”
“어쩔까?”
“좋은 이야기 하나. 저자는 혼자고 우리는 다수야. 나쁜 이야기 하나. 그래도 저자 같은 현상금 사냥꾼이나 기사가 수녀원 주변을 맴돌면, 그곳은 감옥이나 다름없어.”
“불공정한 재판에서 죽는 것보단 낫죠!”
백작 부인은 미리 준비한 결론을 내렸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옥이라. 그럼 그렇게 하지.”
그때 현상금 사냥꾼이 다시 나섰다.
“현상금 절반을 주겠다! 여자를 넘겨라!”
에드워드는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여 줬다.
“내가 그만큼 낼 테니 물러가라!”
일행은 그를 놀란 눈으로 보았다. 그러나 현상금 사냥꾼은 응하지 않았다.
“북비텔리아 금화 네 개면 물러나겠다!”
북비텔리아 금화들은 크기가 작아서 가치가 앵글리아 금화의 절반이니까, 환율을 계산하면 대충 앵글리아 금화 두 개. 베로니카는 얼굴을 찌푸렸다.
“폭리네.”
현상금 사냥꾼은 거절의 뜻을 보인 것이다. 에드워드는 다시 소리쳤다.
“은화 열 개!”
에드워드가 제시한 돈은 현상금 사냥꾼이 부른 돈에 비하면 푼돈이었다. 수십 분의 일 수준. 현상금의 절반이 아무리 적어도 은화 열 개보다는 많을 것이다. 현상금 사냥꾼은 침묵했다. 에드워드가 다시 쐐기를 박았다.
“오늘만 물러선다는 식의 말장난 따위는 안 하겠다고 네 조상한테 맹세해라!”
까놓고 말하면, 돈이건 조상이건 그 정도 수준밖에 못 쳐 주겠다는 말이었다. 현상금 사냥꾼은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너희는 그 여자를 내놓을 때까지 잠을 못 잘 것이다!”
현상금 사냥꾼은 곧바로 말을 돌려 왔던 길로 돌아갔다. 에드워드는 인상을 썼다.
“귀찮게 됐군.”
베로니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위 전사의 조상과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왜 해?”
“놈이 먼저 장난치잖아. 돈만 받은 뒤에 여자를 습격할 셈이었던 거야. 그러니 되갚아줬지.”
에드워드는 일행을 돌아보았다.
“최악의 경우 저자는 첨병이고, 뒤에 본대가 있을 수도 있어.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난다. 백작 부인, 수녀원까지 오래 걸립니까?”
“아니, 구석진 계곡 안에 있을 뿐 여기서 멀지는 않아. 고마워, 정말 고마워.”
백작 부인은 베일을 벗어 붉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드러냈다. 그 정열적인 머리카락은 얼굴에 조금 깃든 세월의 흔적마저 날려 버렸다. 그것에 대비되어 피부는 더 희어 보였다. 베로니카나 헬레나에게도 뒤지지 않는 미녀였다. 그녀는 에드워드의 뺨과 입에 키스를 퍼부었다.
에드워드는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어, 백작 부인. 조금만 더 주변의 눈치를…….”
“나 이혼했다니까?”
백작 부인은 바로 주변의 다른 일행들한테도 인사를 했다.
“폐를 끼쳤네요. 율리아라고 해요. 정말 고마워요.”
베로니카는 사무적인 투로 답했다.
“어쨌든 재판은 받는 게 조건이에요. 특별사법관으로서 넘어가지는 못해요.”
“그럼요. 물론이죠. 제3자를 자매님이 지정해도 좋아요.”
율리아는 베로니카 다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인사하기 시작했다. 베로니카는 에드워드한테 속삭였다.
“너 저 여자랑 무슨 관계야?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에드워드는 베로니카의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짐작하면서 뭘 묻냐?”
“네가 여자를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어려워하는 것은 처음 봐서 그래.”
에드워드는 멋쩍어하다 말했다.
“포로로 지내면서 엄청 심심해하는 거 말 상대를 해 주다가…… 불륜으로 넘어간 거지 뭐. 트레베리아 원정 때는 혈기가 더 넘쳤는데 미숙하긴 더 심했거든. 주도권을 내내 백작 부인한테 뺏겼지.”
“흐으음. 너도 초짜로 귀부인에게 농락당하던 시절 사람이다?”
“그렇게 말하니 새삼 부끄럽군.”
포로인 백작 부인과 놀아난 젊은 기사. 로망이라면 로망이지만, 한 번 선을 넘은 이상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도 했다. 백작이 진영을 옮긴다면 바로 들킬 수 있고, 그럴 일이 없더라도 상관의 눈치가 보인다. 누군가 불륜을 알아내서 백작에게 언질을 준다면, 결투나 암살 따위에 시달리게 된다.
실수든 뭐든 선을 넘어 버려 상하좌우로 흔들리는 젊은 기사. 기사를 농락하는 데 능란한 귀부인이라면, 말 그대로 그를 가지고 놀았을 것이다. 게다가 둘의 나이 차이로 보건대 원정 당시 에드워드는 10대 후반, 율리아는 20대 중반.
베로니카의 눈매가 좁아졌다.
“어째 재밌었을 것 같다?”
“뭐가?!”
에드워드가 기겁해서 외쳤다. 베로니카는 피식 웃어 버렸다.
“바로 그런 거.”
그다음 베로니카는 총총걸음으로 일행한테 돌아갔다. 에드워드는 잠시 할 말을 잃고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자기 손아귀의 괴력을 잊고 뒤통수를 긁을 뻔했다. 그는 나지막하게 투덜거렸다.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네, 젠장.”
* * *
수녀원은 지도에도 안 나오는 곳이었다. 높고 낮은 벼랑으로 둘러싸인 으슥한 계곡에 자리했고, 입구는 하나뿐이니 요새나 다름없었다.
경사로에 깔린 포도밭을 지나 수녀원 정문으로 들어서자 수녀들은 전 스폰하임 백작 부인 율리아를 반갑게 맞이하고는 일행을 객관으로 안내했다.
“본관 2층부터는 금남 구역이니 남자분들은 1층 식당 외에는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식사 시간 또한 내부인과 외부인이 엇갈리니, 식사 때는 하녀가 와서 알려 드릴 것입니다.”
한 수녀가 친절히 안내를 해 주곤 나갔다. 스텔라는 나름 꾸몄지만 작고 온기 없는 객관 안을 구경하다 말했다.
“손님 올 일이 없는 곳인가 봐요. 잘 관리하긴 했지만 작네요. 우리 말고 다른 사람도 없고. 지형 탓인가? 이런 곳에 수녀원이 있다니, 몰랐네요.”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부터 귀부인들이 고르고 골라서 후원해 온 곳이래. 늙으면 여기서 조용히 여생을 보낼 생각으로. 몇몇 귀부인들은 이미 들어와 있다던데.”
“아하. 그래서 돌로 크게 짓고 꾸며 놨군요.”
“하인과 하녀도 있대. 좋은 와인을 기대해 볼 수 있겠어. 아까 포도밭 봤어?”
생산기지, 요양원, 정신병원, 감옥, 문서고 등등 온갖 기능을 다 하는 게 수녀원이다. 이 수녀원은 그 지리적 위치 때문에 학교 등 사람이 모이는 용도의 것만 아니면 있을 게 다 있었다. 딱 하나, 무장한 병사만 빼고. 에드워드는 바로 헬레나를 돌아보았다.
“아까 그 현상금 사냥꾼이 걱정되네. 혹시 감시 좀 부탁할 수 있을까?”
“이런 돌벽 요새에 그자가 어떻게 들어오겠어요?”
“현상금 사냥꾼들은 집요해. 절벽이라도 기어 올라오지.”
에드워드의 말에 베로니카도 고개를 끄덕였다.
“유목민 전사들은 더 심하지. 절대 방심하면 안 되는 족속들이야. 이곳 하인들로는 택도 없을걸.”
헬레나는 납득했다.
“좋아요. 밤은 제가 경계하고, 낮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죠.”
베로니카가 걱정스레 물었다.
“혼자 잠을 안 자면 힘들 텐데, 괜찮겠어요?”
“아직은 밤이 짧으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낮에 쉬면 되겠죠.”
가르달은 쿵쾅거리며 객관 옥상으로 올라가더니 다시 내려왔다.
“본관으로 침입할 수 있는 루트는 둘이오. 뒤에서 내려오거나 앞에서 올라오거나. 놈의 말이 하늘을 나는 게 아니라면, 뒤에서 내려올 건 당분간 걱정할 필요가 없겠소.”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다행이군.”
“하지만 어디까지나 당분간이오. 뒤는 험준하지만, 근성 있는 놈은 올라갔다 내려오는 모험도 불사할 테니까. 만약 패거리가 더 있다면 양쪽 모두 공략하겠지.”
“시간이 모자랄 수도 있겠군. 이 수도원은 전서구 있겠지?”
“글쎄. 의무긴 하지만 못 갖춘 곳도 많잖소. 게다가 백작 부인이 말한 제3자에게 바로 갈 비둘기가 있을지 모르겠소.”
일부 교회는 주교의 감사를 피할 목적으로, 식용을 겸해서 비둘기를 키우기만 할 뿐 훈련을 게을리했다. 게다가 비둘기는 훈련된 장소로만 간다.
베로니카는 시큰둥했다.
“백작 부인이 말하는 제3자는 사실 백작 부인 편이고, 이 수녀원과는 당연히 연락책이 있겠지. 오래 안 걸릴걸.”
리안나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 그럼 재판 못 여는 거 아니에요?”
“양쪽이 대립하기 시작하면 누군가는 중재에 나서게 되어 있어. 결국 재판이 열리긴 하겠지.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고. 어쨌든 그들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야.”
“하긴. 투리치 시도 여기서 하루 거리잖소. 오래 안 걸리겠지.”
가르달도 동의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하녀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렸다.
“손님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때를 놓치면 끼니를 제공하기 어려우니 바로 나와 주십사 합니다.”
에드워드는 바로 갑옷을 벗고 검만 찼다. 그는 일행을 향해 말했다.
“뭐, 하루 이틀만 여기서 신세 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