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81)
81화 수녀원 탐험 (1)
에드워드는 수녀원 밖을 한 바퀴 돌면서 화살이 들어올 만한 공간은 전부 막도록 하인들과 하녀들을 지도한 뒤, 한 수녀의 안내를 받아 본관으로 돌아왔다. 수녀원은 좌우 비대칭으로 식당과 반대편에 위층으로 가는 계단이 있었다.
그 계단 입구에는 외부인에게 출입금지구역임을 알리는 밧줄이 걸려 있었다. 높이가 낮아서 그냥 넘으려면 얼마든지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냥 넘지 않고 기다렸다. 수녀는 한쪽 밧줄 끝을 풀어 길을 열었다.
초대.
에드워드는 긴장한 채 2층으로 올라갔다. 수녀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바깥손님을 이 안으로 들이는 건 오랜만이군요.”
“귀부인들께서는 심심하지 않으신가?”
“이미 나이가 드시고 그저 평온을 찾으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럼 소란스럽게 하면 안 되겠군.”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어요. 그분들 방은 거리가 좀 있답니다.”
수녀는 살짝 눈웃음을 치고는 가장 가까운 방의 문을 열었다. 에드워드는 당황했다.
“아니, 노크 정도는 해야…….”
“즐거운 시간 되세요.”
수녀는 복도로 계속 나아가 사라졌다. 에드워드는 심호흡을 한 다음 촛불빛이 어른거리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 안은 다른 가구 없이 침대만 덜렁 있었다.
그리고 얇은 속내의만 입은 율리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벽에 걸린 양초는 그녀의 매혹적인 몸매를 비추었다. 에드워드가 침을 삼키자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오래 걸렸네?”
“생각보다 구조가 복잡했습니다.”
“이제 단 둘뿐이잖아. 옛날처럼 편하게 불러.”
하얀 팔이 에드워드를 감쌌다. 왼팔은 목을 두르고 오른팔은 가슴팍에 닿았다.
“아까 이야기 안 한 게 있는데, 누님.”
“응?”
“내 손에 성인이 좀 이상한 주문 같은 걸 걸었거든?”
에드워드는 저주를 최대한 우회적으로 표현한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했다. 율리아는 놀란 눈으로 그의 손을 보았다.
“엄청난 힘이라.”
“그래서 좀 싸매고 시작해야 할 것 같아. 아니면 누님한테 해로울 것 같거든.”
여자는 손을 떼고 뒤로 물러서서 옷을 양 갈래로 쭉 짖은 다음 에드워드에게 내밀었다.
“많이 힘들었겠네.”
“뭐, 그렇지.”
에드워드는 그걸로 천천히 손을 싸맸다. 레이디가 건네는 옷으로 손을 봉인하다니 묘한 기분이었다.
“레이디의 속내의를 이런 용도로 쓰는 기사는 네가 처음이야.”
율리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에드워드도 동의했다.
“그러게.”
에드워드는 오른손을 율리아에게 내밀었다. 율리아는 남은 천으로 오른손을 싸맨 다음, 그 천 끄트머리를 붙잡고 그를 자기 침대로 이끌었다. 그녀는 에드워드의 가슴을 밀쳐 침대에 쓰러뜨리곤 말했다.
“위로가 필요하겠네. 오늘 밤은 참 길고 달콤할 거야.”
“기대되네.”
“놀라지나 마.”
* * *
다음날, 여마법사 스텔라는 객관 앞 나무 그늘 아래 긴 의자를 갖다 놓고 드러누워 햇빛과 바람을 즐겼다.
“아아, 평화롭다.”
식사 후 촛불 끄개로 불 끄고 다니던 밴시 리안나는 그녀를 발견하고 퉁명스레 말했다.
“식사하고 바로 쉬시네요?”
“수녀원은 아침 식사를 너무 일찍 먹어. 쓸데없이 일찍 일어났으니 잠을 보충해야지.”
“할 일 없어요?”
“없어. 손님이 왜 일을 하겠어. 마법사로서 할 일도 없고. 아아, 잠을 마음껏 잘 수 있는 고용인이라니, 기사 따라다니는 것도 할 만하네. 사제님 놀리는 것도 재밌고.”
“사제님이랑 기사님이랑 서로 좋아해요?”
“아냐? 며칠 전에 합류한 나보다는, 오래 따라다닌 네가 더 잘 알 것 같은데?”
밴시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스텔라는 킥 웃었다.
“그럼 사제님의 연심이 슬슬 싹 트고 있다는 거려나.”
“그런 거예요?”
“어제부터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더니 오늘은 아주 뻗어 버렸잖아. 아까 아침 식사도 먹는 둥 마는 둥. 의심할 만하지 않아?”
“오오, 뭔가 재밌어질 것 같아!”
“그치?”
“그다음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몰라. 곁에서 지켜봐야지. 흥미진진하겠어. 아, 물론 넌 일하고.”
스텔라는 깔깔 웃어 버렸고 리안나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기지개를 한번 켜더니 돌아누웠다.
“점심때 깨워라?”
스텔라는 그 말만 남기고 잠들어 버렸다. 리안나는 그녀를 안 깨울 만큼 조그맣게 투덜거렸다.
“안 깨우고 굶겨 버릴까 보다.”
헬레나는 가르달과 경계를 교대한 후 잠들었다. 베로니카는 침실에서 안 나왔다. 밴시가 말을 붙일 상대는 더 없었다. 그래서 리안나는 자기 일에 착실했다. 그녀는 말과 마구를 관리하기 위해 마구간으로 갔다.
웬만한 일은 이 수녀원의 하인·하녀들이 귀신같이 해치웠지만, 은촛대의 불을 끄는 것과 이 마구간 일만은 마치 그녀가 하라는 듯 남겨 두고 있었다. 손댈 마음이 없는 듯했다.
“왜 남의 마구간 일을 내가 대신해 줘야 하지? 난 노예이긴 하지만 손님의 노예인데.”
밴시는 투덜거리면서 마구간을 청소하고 여물통을 채웠다. 편자를 갈 정도의 재주는 없었기 때문에 말을 빗질하고 마구에 기름칠하는 것으로 관리를 마친 다음, 그녀는 다음 일에 착수했다. 어제 가르달과 에드워드가 땅을 파헤치느라 더러워진 옷을 세탁하고, 에드워드가 두고 간 사슬갑옷에 기름칠을 하고.
그 모든 일이 점심 되기 전에 끝났다.
“난 너무 우수한 집요정인가 봐.”
심심해진 밴시는 유일하게 말을 붙여줄 대상인 베로니카의 방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침대에 옆으로 길게 누운 채 꿈쩍도 안 했다. 기분이 안 좋은 듯했다. 심기 불편한 주인에게 말을 붙이는 건 좋은 행동이 아니다. 옥상의 가르달에게도 올라가 봤지만 그는 손짓으로 내려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결국 밴시는 수녀원 본관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심심해. 벌레 우는 소리도 안 들려.”
한참 뒤 리안나는 남녀가 뒤엉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밴시는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 보았다. 에드워드와 율리아는 아침 식사 때 안 나타났다. 리안나는 곧 그들의 방이 어딘지 확인할 수 있었다.
“와, 기운도 좋아라“
보이지는 않지만 소리는 들렸다. 그녀는 잠시 그 주변을 맴돌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안 보이니까 재미없어. 기껏 귀족들끼리 하는데.”
게다가 둘이 엉겨 붙는 소리는 이제껏 들은 짐승들의 소리와 별로 차이가 없었다.
“귀족이면 서로 좀 달콤한 말도 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냐? 로망이 없어.”
밴시는 투덜거리면서 수녀원을 끼고 돌았다. 잠시 뒤 그녀는 거대한 닭장 같은 것을 발견했다.
“와! 새!”
리안나는 쪼르르 달려가 닭장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새똥 냄새는 나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리안나는 빗장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가 보았다. 깃털이 조금 붙은 비둘기 둥지들이 한가득했다.
“비둘기 키우는 곳인가?”
그러나 비둘기는 한 마리도 없었다. 물통은 말랐고 모이통은 비었다. 묵은 새똥 냄새만 났다. 용도는 쓰레기장으로 바뀌었는지, 바닥은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마른 뼛조각 같은 것도 보였다.
“에이, 아무것도 없잖아.”
리안나는 쓰레기더미에서 부서진 수레바퀴를 걷어찬 다음 도로 나가 버렸다.
리안나는 오전 모험을 끝냈다.
* * *
점심. 잠시 잠에서 깬 스텔라, 헬레나, 베로니카는 리안나와 함께 식당에 앉았다.
“망을 보시는 드워프 분께는 식사를 가져다드리겠습니다.”
한 하녀의 말이었다. 율리아와 에드워드는 여전히 안 내려왔다. 하녀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에게도 식사를 따로 갖다 준다고 했다.
베로니카의 안색이 더 안 좋아졌다.
“아주 살림을 차려라.”
“뭐, 빠르면 내일쯤엔 여길 떠나겠죠. 그전까지는 달라붙은 두 남녀를 무슨 말로 떼어내겠어요? 불꽃으로도 어려울 걸요.”
스텔라가 웃으면서 말했다. 베로니카는 그녀를 흘겨보았다.
그때, 리안나가 말했다.
“이 수도원 진짜 심심해요. 쥐 죽은 듯 조용해요. 기사님이 일 치르는 소리 빼고요.”
베로니카는 관심 없다는 듯 답했다.
“수도원이 다 그렇지. 소란 피우면 못 쓴다?”
“조용히 다녔어요. 시끄럽게 놀 방법도 없던데요 뭘. 잡아서 놀 풀벌레도 안 보이고.”
“이 수도원의 가축이라도 보고 있든가. 거위나 염소는 있던데.”
“하인들이 지키고 있고, 전 거위와 염소 별로예요. 비둘기가 제일 좋은데.”
“그럼 비둘기를 봐.”
“없어요.”
“비둘기가 없다고?”
“네. 한 마리도 없더라고요.”
베로니카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헬레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가르달이 옳았네요. 여긴 전서구까진 안 키우나 봐요. 하긴, 훈련시키기가 힘들죠.”
“그래도 보통은 감사를 피하기 위해 생색내기로나마 몇 마리는 키우는데.”
“인간들의 교회 행정은 잘 모르겠는데, 귀족 수녀원을 감사할 만한 기관이 있나요?”
“……주교나 그 부하가 눈감아 주고 있나 보군요. 그럼 백작 부인은 어떻게 외부와 연락을 취하는 거지?”
“사람을 보냈겠죠.”
“심부름꾼이라.”
무슨 수를 써도 비둘기보다는 느린 정보 전달 수단이다. 베로니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술잔을 기울였다.
“그럼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르겠군요.”
* * *
저녁. 헬레나와 교대해 내려온 가르달은 크게 투덜거리면서 나타났다.
“망할 놈의 현상금 사냥꾼!”
“진정하세요. 무슨 일이죠?”
베로니카가 묻자 가르달은 화살 하나를 들어 보였다.
“그 개자식이 나한테 화살을 쐈소. 내가 미리 가져간 탁자 뒤에 숨는 걸 봤지만 그래도 쏘지 뭐요. 도발하는 셈이지.”
리안나는 다른 단어에 관심을 가졌다.
“탁자요? 그건 어디서 났어요?”
“본관 동쪽 창고에 안 쓰는 가구들과 잡기들 쌓아 놨더라. 여기 있는 동안은 마음대로 쓰라던데.”
“뭐 뭐 있었어요?”
“그냥 잡동사니들이지. 왜?”
“심심하니 그거라도 갖고 놀게요.”
“그러던가. 그래도 일은 해라.”
“안 시켜도 해요.”
리안나는 양초 랜턴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은촛대에 불을 켤 시간이다. 문을 나서는 순간 그녀와 하녀가 교차했다. 하녀는 일행을 향해 고개를 숙이더니 말했다.
“손님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때를 놓치면 끼니를 제공하기 어려우니 바로 나와 주십사 합니다.”
베로니카는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에드워드는?”
“전과 같이 백작 부인과 식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리안나, 들었지?”
베로니카가 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리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녀올게요!”
그녀는 쌩 하고 노동과 저녁 탐험을 향해 달렸다. 미리 배치한 은촛대마다 불을 붙이는 건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의욕적으로 해낸 끝에 시간을 단축한 리안나는 가르달이 말한 잡동사니 창고로 놀러 갈 수 있었다.
“오오! 이상한 게 가득!”
주로 안 쓰는 가구와 도구들이었다. 개중에는 진기한 고문 도구들, 쓰다 만 육아용품들, 그리고 다소 음험한 욕망을 위한 도구들도 있어 리안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건 어떻게 쓰는 거지? 이건 또 뭐지?”
리안나는 규율위반자를 공개 처벌하는 용도의 삼각 목마를 발견해 걷어차 보고, 준비된 철 가면들을 발견해 크기별로 갖다 놓고 두드렸다.
한참 발굴하며 재밌게 놀던 리안나는 문득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수녀원은 특히 조용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 소리는 밴시의 귀에 잘 스며들었다. 창고 밖 먼 곳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그녀는 랜턴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처럼 에드워드와 율리아가 일 치르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건 건물 반대편이라 들릴 리도 없었다. 뭔가 고통스러운 신음 같은 소리. 흐느껴 우는 소리. 등골이 오싹해지는 소리였다.
“어디서 나는 소리지?”
리안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어쩌면 이 수녀원은 감옥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갈등한 끝에 밴시 리안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괜찮아. 난 안 죽는데 뭘…….”
밴시는 스스로 자신감을 북돋우며 어둠 속을 나아갔다. 예상과 달리 지하 감옥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긴 복도로 이어지는 출입구 하나를 발견했을 뿐. 리안나는 침을 꼴깍 삼킨 다음 작은 소리로 빈 복도에 말을 던졌다.
“저기요오? 아무도 없나요?”
대답은 없었다. 리안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좌우의 벽은 많은 문이 달렸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소리는 계단으로 이어졌다. 그 좁은 계단은 본관 서쪽 계단과 마찬가지로 외부인 출입금지를 알리는 밧줄이 있었다. 리안나는 그 밧줄 밑으로 기었다.
올라가 보니 건물 2층 반대편 끝에는 에드워드가 방문한 율리아의 방이 있었다. 문은 활짝 열려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는데, 그림자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마치 그곳만 딴 세상 같았다.
그때 더 위층에서 아까 들었던 고통스러운 소리가 울렸다. 리안나는 율리아의 방을 곁눈질하다 위층으로 올라갔다.
“여기는 죄수들을 높은 데 가두는……?”
리안나는 3층 복도로 들어서는 순간 기겁했다. 거기 있는 건 죄수들이 아니었다.
3층 복도는 떠다니는 촛대와 가구들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