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84)
84화 보물찾기 성적표
식당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사실, 폭발이 터지고 바로 그 직후였다. 에드워드는 먼지구름을 보며 중얼거렸다.
“뱀파이어는 주문을 버텨도 건물은 못 버티겠지.”
다양한 이유로 금이 가고 깨진 벽돌 기둥들은 폭발의 충격을 못 버텼다. 그것이 비전문 마법이라 해도. 스텔라는 시약 주머니를 점검해 보았다.
“비전문 마법이다 보니 지출이 좀 크겠는데요.”
“여기서 보충해야지 뭐.”
에드워드는 헬레나를 돌아보았다.
“아직 살아 있지?”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는 것 보면, 그렇네요. 하지만 자기 힘으로 지붕을 들어 올리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도박인데 성공해서 다행이네.”
기둥이 생각보다 더 튼튼했다면, 폭발의 위력이 부족했다면, 무너지는 데 시간이 더 걸리거나 지붕이 무겁지 않았다면. 불안요소가 많긴 했다.
궁수는 에드워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런 수를 꾸미고 있었군. 덫사냥 같네. 늦었지만 통성명합시다. 항카이 부족 주르반 타이지의 손자, 카치운이오.”
“에드워드 드 클레어요.”
에드워드는 성의 없이 대답한 채 계속 먼지구름을 바라보았다. 카치운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뱀파이어에게 속은 사람에겐 잘못 없소. 상심이 깊은 건 알겠지만 서둘러야…….”
“아니. 그 고집 좀 꺾지, 싶어서 말이오.”
“응?”
“기다려 준다거나, 다른 여자들까지 전부 영생하는 노예로 만들어 준다 했으면 수락했을지도.”
헬레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바라보았다.
“설마 그게 뱀파이어의 유혹을 거절한 이유예요?”
“앞으로의 모든 걸 포기해야 하는데, 내가 그걸 받아들이겠냐?”
궁수도 입을 벌렸다가 말했다.
“댁들은 일부일처제 아니었소?”
“사람이 흰 빵에 버터만 먹고 사나.”
“그런 양반이 운운하니 웃기네.”
카치운은 진절머리를 내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챙길 게 있다면 서두릅시다. 오크들이 올 시간이 머지않았소. 얼마 챙기지도 못하겠지만.”
“그 정도로 가깝소?”
“고개를 하나만 남겼던데 지금쯤이면 이미 정상일 거요. 내려오는 일만 남았지. 후발대도 있는 것 같고.”
에드워드는 수녀원을 돌아보았다. 크고 장엄한 건물. 이제는 빈 무덤이나 마찬가지지만, 귀족 여성들의 요양원이었던 만큼 값진 물건이 많으리라 추측할 수 있었다. 에드워드는 바로 일행에게 역할을 할당했다.
“스텔라, 쓸 만한 거 죄다 챙겨. 가르달, 수레 하나 가져오쇼. 헬레나는 계속 주변 경계. 리안나는 베로니카 좀 지키고.”
“수레를 채워서 떠날 만큼 여유롭지는 않을 것 같소. 너무 늦게 떠나면, 오크들이 눈치채고 쫓아올 거요.”
카치운이 다시 말했다. 에드워드는 그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다 방법이 있소.”
* * *
빈 수녀원에 도착한 오크들은 지키는 이 없이 활짝 열린 문짝을 통과해 그 안으로 침입했다. 그들은 무너진 잔해 밑에서 뱀파이어의 비명을 들었고, 잠깐의 작업 후 그녀를 찾아냈다.
“아파!”
율리아가 오크들을 보고 내뱉은 첫 말이었다. 그녀의 왼팔, 왼 다리는 큼직한 잔해 아래에 깔려 있었다. 오크들은 심드렁하게 그걸 쳐다보더니 말했다.
“우리 힘과 숫자로도 이 지붕을 치울 수는 없다.”
“어떻게든 해 봐!”
명령조에 오크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해야 잔해를 치울 수 있을까 논의하던 중, 수녀원 안을 둘러본 오크들이 돌아왔다.
“식량은 좀 남았지만 술은 없습니다. 어떤 놈이 술통마다 구멍을 다 내놨습니다.”
“금은보화는 한 톨도 안 남겨 놨습니다. 책은 그대로 남았지만.”
오크 대장은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남은 게 정말 없나?”
“갖고 가기 어렵거나 인간들에게나 가치 있는 물건들뿐입니다.”
오크와 인간을 막론하고 가장 작고 비싼 것들은 금은보화였다. 오크 대장은 실망스럽다는 듯 혀를 차곤, 허리띠에 꽂아 둔 종이쪽지 뭉치를 꺼냈다. 사교도들의 지도와 편지였다. 그중 하나는 율리아의 쪽지였다.
“보물찾기는 실패했군.”
“이제 어떻게 할까요?”
“식량이라도 챙겨라. 요즘은 그것도 귀하니. 후발대가 도착하면 바로 약탈품을 갖고 귀환한다.”
“이 수도원을 점령하지 않고요?”
“인간 도시에 너무 가깝다. 우리만으로는 못 지킨다.”
오크대장은 경멸 가득한 표정으로 율리아를 내려다보았다.
“믿었던 뱀파이어가 이따위 신세가 되었으니.”
“……날 풀어주면, 그 은혜는 꼭 갚아 주지. 난 은원이 확실하거든.”
율리아가 씹어 내뱉듯 말했다. 오크들은 자기들끼리 다시 이야기하더니, 도끼를 들고 돌아왔다.
“이 방법뿐이다.”
“뭐, 잠깐……!”
율리아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도끼가 허공을 갈랐다. 콰직! 왼팔이 떨어져 나간 율리아는 격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녀가 정신을 수습하기도 전에 왼 다리에도 도끼가 떨어졌다. 콰직! 율리아는 비명을 지르다 말고 기절해 버렸다.
한 오크가 피 묻은 도낏자루로 그녀의 머리를 툭툭 쳤다.
“이래도 안 죽을까요?”
“뱀파이어는 안 죽는다. 상관없다.”
오크 대장은 단정적으로 말한 다음, 남은 두 팔다리도 가리켰다.
“저것도 잘라 버려. 갖고 가기 편하게.”
* * *
“오크 놈들,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군요.”
헬레나의 평이었다. 가까운 언덕 나무 위에서 수녀원을 굽어보던 그녀는 오크들이 저지르는 짓을 다 볼 수 있었다.
“뱀파이어를 꺼냈어요. 깔린 팔다리를 잘라 버리고요.”
“어차피 재생할 테니 잘라서 가져가려나 보군.”
수풀 아래 숨어 있던 에드워드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잠시 뒤 율리아의 비명이 다시 수녀원을 쩌렁쩌렁 울렸다. 처절한 목소리였다.
“그만둬! 나는 뱀파이어야!”
하지만 오크들의 웃음소리가 낮게 깔리더니 곧 율리아의 비명이 멎었다. 헬레나는 아까보다 더 낮아진 소리로 중얼거렸다.
“오크들한테는 혼혈이 없는 이유, 들어 본 적 있어요?”
“글쎄? 오크는 그놈이 다 그놈 같아서 혼혈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네.”
“놈들의 씨는 모체를 안 가리고 오크씨의 특성만 가진 채 자란다는군요. 그래서 노인도 불임도 소용없다나. 시체만 아니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진짜야?”
“그런 설은 있어요. 하지만 확인하고 싶은 여자가 어딨겠어요?”
에드워드는 잠시 그 이야기를 곱씹더니 말했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은 빛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은 대신 임신을 못한다고 들었거든? 하지만 오크들이라면…….”
“그 설이면, 가능하겠죠. 모체가 어떤 상태든 상관없으니까.”
“왜지? 누님을 살려 주고 대가를 받는 게 이익이 더 클 텐데?”
“오크들은 그렇게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족속들이 아니잖아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사들이 뱀파이어의 회복을 기다리겠어요?”
“젠장. 이해했어. 끔찍하군.”
오크들은 시간과 병력을 투자했지만 성에 차지 않는 대가만 얻었고, 실패한 사업자한테서 나머지 대가를 징수하고 있는 셈이다. 헬레나가 말한 설이 옳든 아니든, 만약 아니라면 그녀는 다른 노예들이 그렇듯 고기나 쓰레기 신세로 추락할 것이다.
에드워드는 탄식을 뱉었다.
“다시 만날 일은 없겠군.”
“저런 불로불사라면 사양하고 싶네요. 그만 떠나죠. 오크 정찰병들이 나왔어요. 들킬 것 같네요.”
“그래.”
에드워드는 수풀 너머로 보이는 수도원 첨탑들을 한번 돌아본 다음, 언덕을 내려갔다. 그 아래에는 마차와 수레가 기다리고 있었다. 짐을 잔뜩 실은지라, 그냥 달려봤자 정찰병들을 뿌리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스텔라는 타운 포탈 스크롤을 펼쳤다. 곧 새파란 빛과 함께 투리치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기왕이면 오크 정찰병 눈앞에서 쓰고 싶었는데. 허탕 치는 거 보여주면 약오르겠…….”
“조용.”
에드워드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스텔라는 입을 닫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일행이 문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말을 남긴 건 카치운이었다.
“난 혹시 모르니 오크들을 좀 더 감시하다 투리치로 가겠소. 내 물건들 좀 맡아주고, 거기서 정산합시다.”
“그럽시다. 시청으로 오면 우리가 어딨는지 알 거요.”
에드워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문으로 뛰어들었다.
* * *
투리치의 시민들은 떠났던 영웅이 며칠 만에 갑작스레 돌아오자 놀랐다. 그들은 에드워드가 혼수상태인 베로니카의 치료를 맡기자 또 제멋대로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다. 일부는 긍정해주기도 했지만, 에드워드는 그 이야기에 일조할 정신이 없었다. 그는 도시에서 가장 저명한 대마법사 중 하나를 찾아갔다.
“영웅이 갑자기 찾아와서 이상한 질문을 다 하다니, 그게 내 연구 분야라서 반갑긴 하지만 특이한 일이군요.”
주름살이 가득한 그 대마법사는 주변에서 미치광이 소리를 듣던 사람으로, 오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투리치가 오크들의 침공을 받았을 때, 그는 스스로 자기 연구실 겸 저택을 지킬 역량이 있긴 했지만, 많은 오크들이 그의 집을 엿보자마자 도망쳤다고 했다.
해부된 채 액침표본이 된 오크들이 가득가득한 집을 보면 인간도 도망치고 싶긴 했을 것이다.
“진짜 그런 설이 있습니까?”
“있다마다요. 저도 그 설을 지지하는 쪽입니다. 실험도 꾸미고 있는걸요.”
“실험?”
“오크 암컷은 정말 구하기 힘든데, 이번 소동에서 포획된 걸 하나 샀거든요. 그냥 죽이려고 하는 걸 말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 그렇습니까?”
“인간 남녀가 오크 남녀와 어떻게 다른지, 인간 남녀의 번식과 오크 남녀의 번식에 차이가 있는지, 우리가 인간 남녀의 번식에 대해서도 잘못 알고 있던 건 아닌지 등 실험할 게 참 많답니다.”
에드워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가끔 있는 미치광이나 천재들은 제법 진리에 가까이 가곤 했다. 오크 등 다른 종족과 비교해 볼 여지도 있으니. 아마 이 마법사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잘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어쨌든 드린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겁니다.”
에드워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치광이로 유명한 학자까지 찾아가면서 물어볼수록, 그는 율리아가 끔찍한 결말에 빠졌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는 고개를 숙였다.
“유감입니다. 뱀파이어에게 속은 사람들은 그것들을 물리치든, 그것들에게서 도망치든 후회가 깊게 남지요.”
“그렇습니까?”
“친한 자들부터 이용하고 잡아먹는 데 특화된 사교도니까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들이 비참해질수록 이쪽도 상처가 남습니다.”
“절 유혹하기에 나름 협상안을 제시했는데, 거절하더군요. 좀 더 달래 봐야 했을까요?”
“뱀파이어는 자기 자신만 중요하니까 소용없었을 겁니다. 결국 당신도 이용 대상이거나 먹이였던 겁니다.”
“씁쓸하군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후회와 의심은 어둠의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오직 빛에 대한 믿음과 만물에 대한 지식만이 우릴 지켜 주지요. 너무 마음 깊게 두지 마십시오. 손아귀에 남은 빛부터 지키셔야죠.”
손아귀에 남은 빛. 에드워드는 허리를 꼿꼿이 폈다. 그 말이 옳다. 이 세상은 이런 곳이다. 모르면서 적응한 게 아니지 않은가.
“뭐, 그렇게 흘러가는 거겠죠.”
“좋은 자세입니다. 회복이 빠르시군요.”
“사제의 길을 걸으셔도 되셨겠습니다.”
마법사는 웃었다.
“확고한 믿음 없이 오크 배를 가르긴 힘들죠.”
에드워드는 감사 인사를 전달한 뒤 마법사의 연구실을 나섰다. 광신과 대결의 세상, 그리고 손아귀에 남은 빛을 지켜야 하는 세상.
에드워드는 여관에 도착한 뒤 여자 침실로 갔다. 노크 후 문을 열어보니 다들 안에 있었다. 베로니카도.
“의사가 뭐래?”
“푹 쉬면 나을 거래요. 사제님도 왔다 가셨어요.”
리안나가 말했다. 에드워드는 다시 물었다.
“얼마나 푹 쉬라는 거야?”
“최소 한 달 이상이요.”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생기가 다시 돌아왔지만, 몸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질 못했다. 그녀는 겨우 입을 열었다.
“쪽팔려 죽겠네.”
“왜?”
“이단심문관이 초짜 뱀파이어에게 당해서 오히려 힘을 강화시켜 줬으니 하는 말이야.”
“이단심문관도 실수할 때가 있는 거지. 소금산에서도 그랬잖아.”
옛 종족의 신앙에 정신이 오염당했던 기억을 상기시켜 주자 베로니카는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이럴 땐 내가 널 구해 준 기억들부터 떠올리면서 격려해 주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
“난 네 호위니까, 난 널 구한 것부터 떠올려야지.”
“이단심문관을 말로 이기려 하다니.”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달 동안 쉬게 되었으니 뭐라도 해야겠군. 좀 돌아다니다 올게.”
“뭐 하시게요?”
리안나가 물어보자 에드워드는 지나가듯 말했다.
“부상자 회복에 좋은 거, 뭐 남은 게 없나 찾아봐야지.”
그가 나가자 스텔라는 베로니카를 보고 눈웃음을 쳤다.
“행복하시겠어요? 기사님이 챙겨 주시는데.”
“그건 쟤 일이죠. 그리고 제가 수녀원에서 기분 나빴던 건 뱀파이어 탓이었던 거예요. 쟤가 신경 쓰인 게 아니라.”
“아닌 것 같은데?”
“아, 때리고 싶다. 지금 정말 격하게 마법사를 때리고 싶다.”
“한 달 동안 기사님한테 애교나 잔뜩 부려 봐요. 이럴 기회가 또 어딨어?”
꼼짝도 못 하는 베로니카를 약 올리는 스텔라를 보고 리안나가 중얼거렸다.
“저렇게 놀리는 방법도 있네.”
그때 베로니카는 반격의 수단을 찾았다.
“리안나.”
“네?”
“이번에 정말 수고가 많았는데, 미안.”
“네?”
“너 앞으로 고기 금지.”
뒤이어 터진 밴시의 울음소리에 스텔라는 바로 뻗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