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85)
85화 심심한 남자들
에드워드와 가르달과 카치운은 한 탁자에 앉았다. 에드워드는 쉴 새 없이 떠들었고, 가르달은 거기에 드워프식으로 맞장구를 쳤고, 카치운은 말을 안 했다.
그들은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참가자는 여관 주인까지 4명이었고, 이 넷의 출신은 전부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룰은 장시간의 합의를 거쳐야 했다. 각자가 사는 곳마다 룰이 다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합의된 그 룰에 익숙해지기 위한 연습 게임이 한창이었다.
“사실 제일 간단한 놀이는 주사위인데.”
에드워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관 주인이 그 말을 받았다.
“사제님을 호위하시는 분이 주사위놀음을 하면 안 되죠.”
“카드놀이는 되고?”
“이건 운이 아니라 지성과 전술의 대결이죠.”
“그건 체스지. 그나저나 이 카드 좀 더 얇게 만들었으면 좋겠어.”
플레잉 카드는 두꺼운 종이로 만들고 무늬를 그린 것이었다. 가르달은 그 말에 흥미를 보였다.
“내가 다루기로는 이것도 얇은데. 대체 얼마나 더 얇게 만들길 원하는 거요?”
“편지지만큼 얇게 만들어서 방수막을 얇게 붙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좀 드는데. 그 방수막이 뻣뻣하기까지 해서 종이가 쉽게 휘거나 찌그러지지 않게.”
“에이, 그런 거는 드워프도 못 만들지…….”
“그렇소?”
“기름칠 좀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소. 재료부터 발명되면 그때 이야기합시다.”
“발명의 욕구가 솟구치는군.”
게임은 가장 말 없는 자가 이겼다. 카치운, 투 페어. 에드워드는 만들어지지 못한 패를 탁자 위로 내던지며 한탄했다.
“카드는 내 마음대로 안 되는구만. 연습게임 두 판 다 카치운이 가져가네.”
“본 게임에서 이겨 봅시다!”
가르달이 호기롭게 말하며 카드를 섞었다. 카치운은 에드워드의 패를 내려보더니 말했다.
“두 게임 다 너무 높은 패를 만들려고 하니까 지는 거요.”
“그런가?”
“욕심을 적당히 부리쇼.”
카치운은 끝내 율리아를 생포하거나 죽이지 못했기 때문에 현상금을 받으러 돌아가지 못했다. 대신 전리품을 처분하고 베로니카한테서 사례금을 받는 거로 주머니를 채웠다. 돈이 생긴 그는 은도금한 화살촉도 열두 개 만들었다.
“본 게임에는 다들 돈 걸고 하셔야죠?”
여관 주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 순간 스텔라, 리안나가 여관 안으로 들어왔다. 스텔라는 남자들의 카드놀이를 보고 짧게 한탄했다.
“와! 여자들은 일하는데 남자들은 놀고 있어!”
밴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 노예니까 일하는 게 당연한데요.”
“넌 그거 스스로 말하고도 좀 안 불행하니?”
“노예 아니어도 집요정은 일하잖아요.”
“어라?”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그렇게 말하니 어째 아내한테 생계 떠맡기고 노는 기둥서방이 된 기분이네.”
“잘 아시네요!”
“근데 난 돈 있고, 넌 네 돈 벌러 나간 거잖아.”
“월급 좀 늘려 주세요! 시약값만 딱 주시고!”
“그 시약값이 감당이 안 되잖아. 덕택에 궁수를 고용하려고 베로니카한테 아쉬운 소리를 더 해야 했다니까.”
카치운이 은도금한 화살까지 만든 이유는 그가 에드워드한테 정식으로 고용되었기 때문이었다. 고정급여가 생겼으니 투자할 여력도 생기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에드워드의 지갑 사정이 더 열악해졌기 때문에 베로니카가 돈을 댔다. 실력 좋은 기마궁수가 있으면 좋을 거라는 설득은 그녀한테 효과가 있었다.
베로니카가 카치운을 직접 고용하는 수도 있었지만, 그는 기사를 놔두고 여자한테 고용된다는 걸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는 에드워드의 괴력, 그리고 투리치에 자자한 명성에 혹했다.
그러나 스텔라의 노동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점치는 것도 노동인가?”
“와! 꼰대다! 가르달도 있는데 꼰대가 더 늘었어!”
“난 또 왜 걸고넘어져!”
가르달이 항의했다. 여관 주인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아가씨, 돈벌이 역전의 기회가 여기 있는데.”
여관 주인은 탁자를 가리켰다. 스텔라는 입가를 씰룩거렸다.
“종일 읽고 쓰고 점쳐 주며 번 귀한 돈을 도박에…….”
“오늘 밤은 바쁘지만 한 명 낄 자리는 얼마든지 있죠!”
여관 주인은 그녀의 말을 싹 무시하고는 옆 탁자에서 의자를 가져와 자리를 만들었다. 가르달은 카드를 5명분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싫으면 관둬. 계속 읽고 쓰고 점쳐 주면 되지.”
카치운은 에드워드를 가리켰다.
“두 번 다 기사 양반이 졌어.”
스텔라는 결국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일행을 향해 질문했다.
“룰이 어떻게 되는데요?”
* * *
일행이 휴식에 들어간 지 한 달째. 베로니카는 2주일 전부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의사와 사제는 ‘더 쉬라’라고 강권했고 일행은 그렇게 시간을 죽이기 시작했다.
리안나는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일꾼으로 ‘대여’되었고, 스텔라는 글 읽고 써 주거나 점을 쳐 주는 일을 했다.
나머지는 그냥 놀았다. 가르달은 자원봉사만 간간이 나갔고, 카치운은 가끔 사냥이나 말의 운동을 핑계로 나가 버렸으며, 에드워드는 교황청 교리법무성이 베로니카 앞으로 보낸 활동비를 대리 수령한 다음 이제껏 모은 돈과 함께 까먹었다.
“저도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요.”
헬레나가 베로니카 옆에서 말했다. 베로니카는 피식 웃어 버렸다.
“그럼 누가 제 간호를 하게요?”
“그렇긴 한데…… 이렇게 계속 앉아 있자니 불안하긴 하네요. 환자도 아니면서 놀고먹는 것 같아서.”
“설마 돈이 궁한 건 아니죠?”
“아뇨. 챙겨온 것도 있고, 전리품에서 분배받은 것도 있고, 씨족에서 보내 주는 돈도 있으니 돈 문제는 아니에요.”
“그럼 다행이네요. 정 가만히 있는 게 힘들면 자수라도 놓지 그래요?”
헬레나의 귀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
“성격에 안 맞아서…….”
“아.”
겉으로 안 드러나서 그렇지, 헬레나는 활 조준도 대충 하다 못해 못 견디는 성격이다. 전투 때도 먼저 달려나가는 쪽에 더 가깝다.
“음. 그럼 내려가서 남자들과 적당히 대화라도 하시는 건?”
“스텔라 양처럼 되기는 싫어서요. 이틀 전부터 눈물 나게 고생하던데.”
“네? 스텔라 양이 어쨌는데요? 설마 여자한테 엄한 일이라도 시키는 건?”
“카드로 도박하다 다 털리던데요?”
베로니카는 바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잠시 뒤, 대낮부터 호구 하나 잡아서 털어먹던 도박단이 베로니카한테 일망타진당했다. 피해자는 스텔라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여행자나 방문한 귀족 등 다양했지만 일단 베로니카에게 구원받은 건 스텔라뿐이었다.
“이 타락의 온상들아!”
에드워드가 고백한 도박단의 필승 전략은 의외로 간단했다. 카운터에 여종업원을 넣고 그녀의 시야에 호구의 패를 두는 것이었다. 여종업원은 표정과 호기심이 풍부한 사람이었고 그건 좋은 신호였다. 원래는 여관 주인이 쓰던 수법이랬다.
“잘못인 건 아는데, 공범을 놓고 신호를 주고받는 사기는 아니잖아? 지형지물을 이용한 전략이었다고. 필승도 아냐. 표정과 타이밍만으로 정보를 얻어야 하니까. 굳이 따지자면, 결정적일 때 분위기로 정보 얻기?”
“궤변이잖아! 말이 길다!”
베로니카는 자기 손에 압수된 카드를 북북 찢어 버렸다. 그녀는 찍소리도 못하는 남자들을 보고 중얼거렸다.
“왜 내 일행에는 이런 남자들만 모이지? 지금이라도 내가 직접 고용으로 바꾸고 사람들도 새로 모집해야 하나?”
“에이, 챔피언을 어떻게 이 가격에 고용하냐.”
“드워프 대장장이가 무료인데.”
“난 제값을 받기는 하지만, 나 정도의 실력자는 못 구할걸.”
사내들이 한마디씩 얹자 베로니카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너무 적나라한 사실들이라 할 말이 없네.”
가르달은 껄껄 웃으며 파이프에 연초를 채웠다.
“따지고 보면 이런 인재들을 헐값에 후려친 베로니카 양이 잘못한 거요.”
“당신은 자발적으로 따라온 거고, 에드워드는 그게 정가였거든요?”
베로니카는 한숨을 푹푹 내쉬고는 명령했다.
“스텔라 양 돈은 돌려줘.”
“개평 줬어.”
“개평 말고 전액!”
“개평도 적게 주진 않았는데.”
“적게 줬으면 진즉 뒤에서 칼 맞았지. 그리고 너 저 마법사 아가씨한테 시약값과 의식주 비용만 주잖아?”
에드워드는 웃으면서 주머니를 열었다.
“알았어, 알았어.”
에드워드는 은화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스텔라는 얼른 그걸 챙기고는 베로니카한테 엉겨 붙었다.
“사제님은 천사예요!”
“도박하지 마요. 제발 좀. 마법사가 도박을 하다니 무슨 생각이야.”
“교수들도 도박하는데요.”
“그러니까 사회가 타락으로 치닫지!”
잠시 열이 올라 기력을 발산하던 베로니카는 지친 듯 비틀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여종업원과 여관 주인이 잽싸게 간단한 음식과 음료수를 세팅했지만 그녀는 음료수만 맛보았다.
“남자들은 가만히 놔두면 엉뚱한 짓을 한댔는데, 우리 일행도 그 지경인 것 같아. 안 되겠어. 휴식을 해도 좀 다른 데로 옮기자.”
“엥? 여기보다 치료받기 좋은 곳이 있나?”
“치료는 이제 필요 없어. 휴식은 교외가 차라리 더 낫지. 대자연이나. 진즉 옮겼어야 했는데.”
“가는 길에 송사 처리하게?”
“침대에 누워서 서류 처리한 적 없는 것 아냐. 그리고 휴식처로 삼을 만한 곳들은 별 대단한 송사도 없겠지.”
에드워드는 머릿속에서 지도를 펼쳐보고 생각에 잠겼다. 그때 카치운이 말했다.
“그럼 우리 캠프로 갑시다.”
“응? 캠프?”
“팔츠 지방의 베니아 시 남쪽에 항카이부 캠프가 있소.”
에드워드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말했다.
“아니, 쉬는 건 좋은데, 캠프에서 쉴 수 있나?”
“사람 머릿수만 수만 단위의 부족 캠프요. 교역도 활발하니까 원하는 물건을 구할 수도 있소. 적당한 데 땅 좀 고르고 유르트…… 그러니까 우리식 천막 하나 임차해서 설치하면 여기만큼 좋을 거요.”
“도시 바로 남쪽에 댁 같은 인간이 수만씩이나 있다고?”
카치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트레베리아의 왕위요구자인 공작님이 통째로 불렀지. 원래는 오크들과 인간들이 서로 가축만 풀어놓은 채 눈치싸움 하던 땅이었소. 거길 겨울 목초지로 넘길 테니 용병을 제공해 달라더군.”
“그런 일도 있었나.”
“교회 사제한테 귀찮게 전례나 송사를 부탁할 일도 없을 거요. 부족은 부족의 규칙대로 돌아가니까. 거기서 첫눈이 얼 때까지 쉬면 되겠지.”
“오크의 위협은?”
“버일러께서 다 죽인 지 오래요.”
“버일러?”
“항카이부의 수장 작위요.”
“흠.”
에드워드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내 유르트 근처로 오면 될 거요. 내 가족 중에 시중들어줄 사람도 있소.”
“유료지?”
“유료지.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손님 대접해 드리리다. 내 유르트 옆이면 누가 땅 임대료까지 달란 소리는 안 할 거요.”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베로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부족 캠프 한복판에서 사제가 뭘 해?”
“할 게 없으니까 쉬기는 더 적당한 거잖아. 가는 길에 간단한 송사나 처리해 주고, 거기서는 굳이 찾아오는 사람의 송사만 처리해 주면 되는 거지.”
베로니카도 생각에 잠겼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며 덧붙였다.
“거기서는 도박 안 할게.”
“거기서는?”
베로니카가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자 에드워드는 슬쩍 시선을 회피했다. 카치운은 덤덤하게 말했다.
“뭐, 거기서 이런 도박을 했다간 서로 칼질하게 될 거요. 사냥이나 합시다.”
“거긴 대장장이가 할 일 있소?”
가르달이 묻자 카치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장이 조합 따위 없으니 언제든 환영이오.”
“글 읽고 쓰거나 점치는 일은요?”
스텔라가 묻자 카치운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인기폭발이지.”
밴시 리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 어딜 가나 마찬가지라 상관없어요. 이번 생은 망했어.”
“내 딸들이 너랑 비슷한 나이일 텐데.”
“인간인데 애들이 그렇게 늙었어요?!”
“너 대체 몇 살이냐?”
카치운과 리안나가 만담하는 걸 보던 베로니카는 겨우 웃어 버렸다.
“좋아. 알았어. 그럼 그쪽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