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87)
87화 사냥감은 항상 따로 있다
다음날, 가르달은 자신의 이동식 대장간을 노새한테서 풀었다. 그의 덩치만 한 화로에 몇 가지 물건들을 같이 실어놓은 그 작은 수레는 몇 분 만에 간이 대장간이 되었다.
쇠를 녹여 형틀에 붓는 주조는 불가능했지만 화로에 넣었다가 두들기는 단조 정도는 가능했다. 드워프가 대장간을 차렸다는 말에 손님 몇 명이 이미 물건을 맡긴 참이었다. 쇠를 맡기러 오는 사람들은 트레베리아어 정도는 했다.
“이건 고치느니 그냥 내가 고철로 사겠소.”
가르달은 엉망으로 망가진 검을 내려놓고 동전을 내밀었다. 손님은 마뜩잖은 표정으로 뭐라 말했는데 가르달은 바로 대답했다.
“이것도 후하게 쳐 주는 거요!”
설령 언어를 몰라도 뜻은 통했다. 게다가 몸짓, 손짓이 거드는 경우가 많아 통역이 크게 필요치 않았다.
스텔라는 마차 안 잡동사니들을 한구석으로 치운 다음, 그 안에 점방을 차렸다. 이쪽 손님들은 주로 여자였는데, 아퀴타니아어는커녕 트레베리아어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스텔라는 점성술과 명언 등을 토대로 말을 현란하게 구사해야 했으므로, 밴시 리안나가 통역을 맡았다.
오르도에 점쟁이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요정을 데리고 온 새 점쟁이’는 충분히 화제가 되고도 남았다. 점술사나 광대 등은 레퍼토리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신인이 주목을 받았다. 스텔라는 사람들이 자기한테 질리기 전에 최대한 뽕을 뽑을 생각이었다.
베로니카는 카치운의 딸들이 시중을 들었기 때문에, 헬레나는 할 일이 없었다. 그녀는 유르트 앞에 에드워드와 함께 앉아 구경거리가 되었다. 금발 엘프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에드워드는 미녀 셋을 데리고 다니는 남자로서 그 시선들을 즐기다 말했다.
“은근히 자랑스럽군.”
“천박한 쾌감이네요.”
헬레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시간이 계속 이어진다면 각자에게 만족스러운 휴식이 될 것이다. 그러나 버일러의 초대는 중요한 변수다. 에드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에서 내려놓은 짐을 뒤적거렸다.
“뭐 훈련이라도 할 거 없나?”
“훈련요?”
“손아귀 힘. 아직도 가끔 사고가 나오니 말이야.”
“요즘은 주전자 손잡이 파손시키거나 무심코 컵 깬 것 정도밖에 없지 않나요? 그 정도 실수는 항상 있는 건데.”
“내 기준으로 사소한 실수지. 버일러 앞에서 실수할 수는 없잖아. 연습 좀 더 해야지.”
이 세계에서 식사는 기본적으로 손과 칼만이 도구다. 하지만 항카이부도 그런지 에드워드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어제 카치운이 대접한 음식들은 손과 칼, 숟가락만으로도 해결됐다. 그러나 돈 많거나 높으신 분들의 식탁은 가끔, 아주 가끔 상황이 달라진다. 포크를 내놓는 별종이 있는 법이다. 혹시 젓가락이라는 신문물이라도 내놓는다면 그것도 난관이다. 소금산의 드워프들이 튀김 요리를 먹기 위해 긴 포크를 쓴 적도 있으니까.
에드워드는 적당한 길이의 나뭇가지 두 개를 집어다 젓가락처럼 집어 들어 보았다. 하지만 몇 초 만에 나뭇가지들은 박살이 나고 말았다.
“뭐 하세요?”
카치운의 아들 무클이 그 광경을 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퀴타니아어였다.
“너도 아퀴타니아어 할 줄 아냐?”
“아버지가 귀족의 덕목이라면서 배우게 하셨죠.”
“누가 가르쳐 주는데?”
“오르도에는 떠돌이 학생들도 종종 섞여 있어요. 그들이 돈 받고 가정교사 노릇을 하죠.”
“너도 그렇게 배웠어?”
“친구들 몇 명이랑 함께요.”
“가정교사라기보다는 집단과외군. 하긴, 그게 더 싸게 먹히려나.”
“나뭇가지를 왜 부수는 거예요?”
“혹시 너 젓가락이라고 들어 봤냐?”
“아뇨.”
“버일러가 식사하는 거 본 적 있어?”
“먼발치에서는요.”
“높으신 분들은 식사할 때 젓가락 안 써?”
“그게 어떻게 생긴 건데요?”
“에라이.”
에드워드는 조금 전까지 쥐어 보려 애쓰던 나뭇가지들을 내던졌다. 무클은 헬레나를 향해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도 에드워드의 행동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아는 한 성실하게 대답했다.
“손아귀에 힘이 너무 많이 돌아서, 세심하게 움직이는 연습을 하시는 거래.”
“버일러 앞에 가면 다들 그 힘에 관심이 많을지도 몰라요.”
“그래?”
“힘이 센 사람은 존경받으니까요.”
“그게 저주나 축복에 의한 거라도?”
“그건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마 그 저주에 비해 자기가 얼마나 센가 확인해 보려는 전사들은 많을걸요.”
에드워드는 그 대화를 듣고 코웃음을 쳤다.
“연속 악수회라도 하자는 건가. 아이돌도 아니고.”
헬레나는 그를 흘겨보았다.
“손병신 여럿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면 악수하지 마세요.”
“저쪽이 먼저 하고 싶다고 달려들면 내가 뭔 수로 피하냐. 매번 져 줘야 돼?”
에드워드는 주머니에서 힘 과시용 쇳조각을 꺼냈다. 그건 그런 바보들을 위한 미끼였다. 이번엔 이놈이 아주 바쁠 것이다. 무클은 그 쇳조각을 경이로운 눈으로 보았다.
“그거 진짜 쇠예요?”
에드워드는 말없이 그걸 종이 접듯 쉽게 비틀어 버린 다음, 무클에게 던져 줬다. 소년은 한참 그걸 붙잡고 낑낑거리다 포기해 버렸다.
“엄청난 힘이네요. 역시 이 정도 힘이 있어야 엘프 미녀를 얻나요?”
“왜? 너도 엘프한테 흥미 있냐?”
“기사님만 아니면 저 여자분께 벌써 남자들이 줄을 섰을걸요.”
헬레나는 그 말을 들어도 별로 기쁜 기색은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여기 남자들은 엘프기만 하면 좋은 거냐, 아니면 다른 요소 때문이냐?”
“전부 다겠죠? 엘프는 보기 힘드니까. 그리고…….”
무클의 눈이 슬쩍 헬레나를 향했다가 돌아왔다. 소년의 얼굴이 벌게진 걸 보자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쟤는 뒷모습보다 앞모습이 더 낫긴 해.”
“기사님, 저랑 대련 한번 할래요?”
헬레나의 말에 냉기가 묻어나왔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베로니카 칭찬하려던 거였어.”
“사제님한테 꼭 일러 드릴게요.”
무클은 두 남녀의 대화를 들으면서 입을 살짝 벌렸다.
“혹시 일행의 여자들이 전부 기사님 거예요?”
“그런 게 내 인생 목표이긴 해. 뭐, 결혼 대상은 좀 생각해 볼 요소들이 많으니 신중히 정해야겠지만.”
“와!”
“왜? 너도 아내 많이 갖고 싶냐?”
“항카이부는 일부일처제가 기본이지만, 능력 있으면 더 두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요. 버일러는 부인이 일곱이에요. 노예는 더 많고요. 돈과 힘만 있으면…….”
소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에드워드는 그걸 보다 물었다.
“어느 쪽이야?”
“네?”
“돈과 힘을 갖고 싶은 건 알겠는데. 여자와 권력 중에 어느 쪽에 더 흥미가 커?”
소년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솔직히, 둘 다요.”
“사내답구만.”
에드워드는 낄낄 웃고는 손등으로 소년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열심히 배우고 단련해 봐라. 그 쇳조각은 선물이다.”
그는 가르달의 대장간으로 가서는 대신할 쇳조각을 고르기 시작했다. 무클은 그의 뒷모습을 훔쳐보다 쇳조각을 들고 사내애들 사이로 사라졌다. 에드워드가 적당한 고철 조각을 대신 쥐고 오자 헬레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부다처제라니.”
“항카이부는 힘이 먼저니까 일부일처제 규칙 같은 게 잘 안 먹히는가 보지. 하기야, 교회 권역의 인간들도 돈 있으면 본처 외에 정부를 수두룩하게 두는데 뭘.”
“당신한테는 최적의 환경일지도 모르겠네요.”
힐난이 섞인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쳤다.
“그거야 여자 따라 다르지.”
그때 카치운이 말을 몰고 다가왔다. 무클은 그의 눈치를 보더니 다시 아이들 틈으로 달려갔다. 카치운이 에드워드에게 말했다.
“그만 갑시다. 슬슬 약속 시각이오.”
“댁도 가는 거요?”
“당신은 내 손님이니까. 그리고 버일러께서 내 아버지와 의형제이신지라.”
“그런 거는 좀 빨리 말하면 덧나쇼?”
에드워드는 툴툴거리며 채비를 갖췄다. 그는 카치운에게 무클 이야기를 꺼냈다.
“댁 아들은 벌써 여자를 밝히는 거 보니 곧 장가보내야겠소.”
카치운은 에드워드와 만나서 처음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서 걱정이오. 신붓값이 좀 높아야지.”
일부다처제의 단점. 여자가 부족해지니 신붓값이 미친 듯이 뛴다.
“내후년이면 쟤도 전장에 나가게 될 거요. 그 전에 신붓감도 알아봐야 하는데.”
“좀 이른 거 아뇨?”
“그때면 벌써 열다섯이오. 기사들도 대개 그 나이 때쯤 견습으로 출정하지 않소?”
“앵글리아는 열일곱쯤이오. 시동 과정까지 포함하면 더 이르게 나가긴 하는데…….”
두런두런 이야기하던 두 남자는 곧 군주의 유르트에 도착했다. 카치운은 버일러의 조카답게 경비병들이 그 얼굴을 익히 아는지, 누구라고 설명을 안 해도 곧바로 유르트 바로 앞까지 길이 열렸다.
항카이부의 버일러 울레그는 호기심 때문인지 예의 때문인지, 에드워드가 말에서 내리기 직전에 이미 유르트 앞으로 직접 나왔다. 풍채가 좋고 체취가 강한 남자였는데, 에드워드가 한쪽 무릎을 꿇기도 전에 걸어와 덥석 끌어안았다.
“환영하오! 명성이 자자한 전사를 보니 반갑소!”
유창한 아퀴타니아어였다.
유목민의 만찬은 무기 소지 금지였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유르트 입구에 허리띠를 걸고, 갑옷만 걸친 채 앉았다. 요리는 호화로웠다. 새끼 양과 송아지 통구이 같은 게 은쟁반에 얹혀서 튀어나왔으니까.
에드워드는 유목민 쪽 예법은 잘 몰랐지만 어쨌든 미리 준비한 선물을 꺼냈다. 수녀원 포도주. 그건 버일러가 가진 술이 무엇이든 절대 뒤지지 않을 고급품이었다. 과연 버일러는 크게 만족했다. 그는 답례로 연초 상자를 건넸다.
뒤이어 버일러는 에드워드가 만티코어를 잡은 증거물로 갖고 다니던 발톱과 이빨들을 구경했다. 그 뒤로는 에드워드의 무용담이 이어졌다. 소금산 속 옛 종족의 이야기, 투리치 시를 침공한 악마의 이야기. 순서가 조금 바뀌었지만 앵글리아와 앙베르에서 겪은 이야기들도.
“만티코어라!”
버일러는 새삼 감탄했다.
“쿠미크부 군대가 만티코어를 상대로 크게 싸웠다는 소문은 들은 적 있소. 가까운 곳도 아니고 내용도 중구난방이라 헛소문이려니 했는데.”
“그놈은 저와 싸우기도 전에 상처투성이였으니, 어쩌면 같은 놈일지도 모르겠군요.”
“만티코어가 두 마리씩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면, 그럴 거요. 쿠미크 놈들이 에드워드 경을 만나거든 사례를 해야겠구만.”
“제가 감사를 표해야 할지도 모르죠. 누가 놈의 꼬리를 잘라 놨더군요.”
“허! 놈들한테도 그 정도의 전사가 있었나.”
버일러의 정보 수집망은 빠르고 넓었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성지 쪽 이야기를 물어봤지만, 애석하게도 항카이부가 직접 겪고 본 정보는 이미 한참 전의 것이었다. 그들도 성지를 떠난 지 오래되어, 그쪽 정보는 돌아오는 순례자들에게서 얻고 있었다.
“왜 시오니아와 계약을 종료한 겁니까? 성지는 항상 군대가 부족하다던데.”
버일러는 씩 웃었다.
“이쪽 싸움이 더 크고 쉬워서.”
“합리적이군요.”
“게다가 트레베리아의 제후들이 돈을 많이 부르더라고.”
트레베리아 안의 가장 유력한 왕위 계승 요구자만 5명으로, 2명의 공작과 3명의 변경백이 있다. 거기다 남부 이단 반란으로 정신없는 아퀴타니아마저도 왕제가 왕실 혼맥을 근거 삼아 내전에 개입했다. 시오니아 왕실은 트레베리아 제후들을 향해 욕을 바가지로 하고 있을 것이다.
에드워드는 곧 항카이부, 버일러, 카치운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카치운의 할아버지는 위대한 전사로 스스로를 국왕급인 타이지로 칭했는데, 군대가 그의 카리스마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죽자마자 와해되었다고 했다. 주변의 견제와 형제 상속 분쟁이 결정타였다고. 유목민족의 전형적인 쇠락 패턴이었다. 버일러는 카치운의 아버지와 의형제였고 그의 편에 서서 싸웠지만 분열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결정적으로 카치운의 아버지한테 ‘불운’이 겹치면서 남은 군대는 와해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르트 안의 아무도 그 불운이 무엇인지는 입에도 안 올렸다. 매우 불명예스러운 것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카치운은 유능한 전사지. 제 앞길을 알아서 개척하리라 믿고 있소. 부인도 명문가 출신에 내조가 뛰어나지. 내가 지척에 있음에도 많이 도와주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오.”
현재 카치운의 지위는 백인대장, 즉 백 명의 전사를 통솔하는 위치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명령을 듣는 병사, 집안은 하나도 없었다. 간판만 왕족, 간판만 백인대장인 셈이다. 더부살이의 한계였다.
“이런, 벌써 시작하셨습니까?”
그때 한 늙은이가 유르트 안으로 들어왔다. 버일러 못지않게 비싼 비단으로 만든 화려한 옷을 입었는데, 형형색색의 끈 장식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머리 옆으로는 깃털을 잔뜩 꽂은 큰 가면을 걸쳤는데, 문외한인 에드워드도 그의 직업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 쿠쿠슈 제사장이 오셨군.”
버일러가 자리에서 직접 일어나 그의 인사를 받았다. 서로 짧은 덕담을 나눈 다음, 제사장은 버일러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에드워드는 버일러한테서 그의 소개를 받았다. 쿠쿠슈는 항카이부의 중요한 제사와 점괘를 도맡는 주술사였다.
에드워드는 제사장의 눈빛이 단검보다 서늘하고 날카롭게 내리꽂히는 걸 느꼈다. 의아한 건, 그 눈빛이 손님인 자신이 아니라 카치운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카치운도 그걸 아는지, 슬쩍 고개를 돌려 외면해 버렸다.
‘뭔가 귀찮아질 것 같은데.’
했던 이야기가 또 나오고 새로운 이야기가 추가되고 국그릇 크기의 술잔이 돌던 중, 제사장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그렇게 귀한 손님이셨군요! 앵글리아라니, 참 먼 곳에서 오셨습니다! 우리도 참 먼 길을 오긴 했지만요. 대륙의 한복판에서 영웅 둘이 만났는데 하루만의 연회로 충분할지요?”
“제사장의 말씀이 옳습니다. 혹여 부족한 대접으로 제가 스스로 명성을 깎는 건 아닐지 걱정되는군요.”
에드워드는 힘겨루기 등 기존의 예상과는 다르지만, 뭔가 귀찮은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는 바로 손을 내저었다.
“아니, 저는 이것도 과분합니다만…….”
“겸손하시긴!”
제사장이 크게 웃었다. 그는 마침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제안을 하나 꺼냈다.
“마침 사냥철이군요. 손님께서도 하루 이틀만 오르도에 계시다 가시는 건 아니라 하니, 버일러께서 손님 대접을 하기엔 최고의 기회입니다. 조만간 채비를 하여 사냥터로 나가는 게 어떨지요?”
카치운의 입가가 크게 실룩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