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89)
89화 대 맹수 노가다
몇몇 오크 사냥꾼들이 들소 무리에서 낙오된 수컷을 잡아 해체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지만, 카치운과 에드워드는 나서지 않았다. 그 들소들은 크기가 작았다. 오크들이야 일용할 식량을 구하기 위해 온 거지만, 인간 사내들은 가장 크고 강한 놈을 노려야 했기 때문이다.
“마땅한 게 안 보이는데.”
에드워드가 수풀 속에 숨은 채 중얼거렸다. 카치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최악의 경우엔 정말로 털코뿔소를 노려야 할지도 모르겠소. 그건 가장 작은놈도 들소 크기니까.”
“화살이 꽂히긴 하나, 그거?”
에드워드의 말에 카치운은 자신의 가장 큰 화살을 들어 보였다.
“급소 없는 생물은 없는 법이오.”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시드 마이어는 창병으로도 탱크 잡게 만들어 놓더라만.”
“탱크?”
“코뿔소 같은 거……를 말하는 속어요.”
“시드 마이어란 사람은 앵글리아의 명군인가 보군.”
“아니, 사람을 순식간에 늙게 하는 악마요.”
카치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은 그런 악마가 거래를 제안해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소. 더 깊게 들어가 봅시다.”
* * *
베로니카는 모닥불 옆에 펼친 접이식 의자 위에 누워 쉬고 있었다. 그녀의 양옆으로는 삭정이를 줍는 밴시 리안나, 그리고 활을 든 채 주변을 경계하는 무클이 있었다. 베로니카는 불안하게 좌우를 두리번거리는 무클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긴장했어?”
“숙영지에서 그리 먼 건 아니지만, 혹시 누가 덤빌지도 모르니까요.”
“그래? 사람이나 짐승한테 공격받는 게 흔해?”
“아뇨. 하지만 쿠쿠슈가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죠.”
“흠.”
베로니카는 담요를 끌어 올렸다. 온몸을 싸매고 누운 채 머리만 내놓아 시원한 산속 공기를 즐기기. 건강이 나쁜 사람들의 전형적인 요양법이었다.
“병도 없는데 이 나이에 산골 요양원 사람들 흉내를 내게 될 줄이야.”
“불편하신가요?”
“아니. 딱 좋아.”
“다행이네요.”
무클은 다시 주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리안나는 모은 삭정이를 모닥불 옆에 놓으며 말했다.
“우린 여기 계속 있어도 돼요?”
“괜찮아. 여기가 중간 보급소 겸 의료캠프인 셈이지. 우리 도움이 필요하면 캐슬린이 올 거야.”
“캐슬린?”
무클이 되물었다. 베로니카는 인상을 썼다.
“그런 게 있어. 멍청한 거.”
무클은 남이 대답하고 싶지 않은 것을 묻지는 않았다. 그는 화제를 돌렸다.
“기사님도 아버지도 강한 분들이니까 사냥은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그래? 네 아버지는 몰라도 에드워드는 사냥꾼으로서의 재능은 별로 없을 텐데.”
“기사는 다 사냥도 하지 않나요?”
“기사는 매사냥과 몰이 사냥이 주류지, 추적 사냥을 하지는 않아. 뭐, 늑대는 결국 추적 사냥으로 잡지만. 게다가 지금 걔는 안 부러지는 검을 들었을 뿐이지, 적당한 도구도 없잖아.”
“평가가 박하시군요.”
“내가 못 움직이니까 놈의 콧대만 높아져서 말이야. 흥.”
베로니카는 흥흥거리면서 돌아누웠다. 무클은 그녀를 향해 질문했다.
“그런데 기사님 이야기에서요.”
“응?”
“그 검이 안 부러진다는 건 누가 알려 준 거예요?”
“무슨 말이야?”
“기사님은 왕실 보검이 저주받은 힘을 버틸 수 있다고 해서 훔쳤다고 했잖아요?”
“그래.”
“하지만 그 검은 왕실 보물고에 있었다면서요. 그럼 그게 안 부러지는지 어떤지 어떻게 알아요?”
“그야 전승 같은 게 있었겠지. 절대 부러지지 않는 검이라든가, 거인의 힘도 버텼다든가.”
“그런가요?”
“당연하겠지. 그런 것까지 시시콜콜하게 묻다니, 애는 애네.”
“애 아니에요.”
무클이 볼멘소리를 뱉었다. 그러나 베로니카의 머릿속은 대수롭지 않게 말한 것과 달리, 복잡하게 돌아갔다.
‘그러게. 그 자식이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까? 어딘가의 기록? 소문?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다.’
물론 대단한 게 아닐 수도 있다. 왕실 보물에는 온갖 이야기가 얽히기 마련이고 그게 다 공식 기록으로 남지는 않는다. 게다가 한낱 소문이나 허풍으로도, 에드워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움직였을 것이다.
‘안 그래도 기록이 모자라서 확인이 안 되던 참이니 그쪽부터 확인해 보면 새로운 단서가…….’
“사제님, 밑에서 누가 올라옵니다.”
무클이 다시 입을 열었다. 베로니카는 고개를 들어 산 아래를 보았다. 헬레나와 처음 보는 남자 하나, 여자 둘.
잠시 뒤 헬레나는 베로니카 앞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았다.
“집은 가르달과 스텔라가 지키고 있고, 몇 가지 더 챙겨왔어요.”
“고마워요. 그런데 저분들은?”
“쿠쿠슈 제사장이 보낸 전사와 노예예요. 전사는 매일 올라와서 소식을 확인해 볼 거고, 노예는 여기 둔대요. 베로니카 양의 시중을 들라나.”
베로니카의 눈이 가늘어졌다. 전사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카치운은 벌써 들어갔소?”
“늦으셨군요. 들어간 지가 이미 한나절인데.”
“소득이 없나 보군. 하긴, 추적 사냥이 쉽게 끝날 일은 아니지. 그것도 ‘가장 큰 짐승’이라니.”
베로니카는 더 대화를 이어 갈 마음이 없어 바로 거절의 말부터 꺼냈다.
“여자들은 도로 데리고 내려가시죠. 이미 우수한 집요정이 있어서요.”
“제사장께서 보내신 호의요. 도로 내려보내면 얘들이 더 혼날 거요. 뭐, 카치운이 아내를 잃거든, 산 내려가기 전에는 얘들이 잠시나마 달래 줄 수도 있겠지.”
전사가 낄낄 웃으면서 말하자 무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버지께서는 충분히 크고 강한 놈을 잡아 내려가실 테니 걱정 마쇼!”
“그럼 네 동정 떼는 데나 써라. 왕가의 후사는 이어야지.”
무클이 발끈해서 뭐라 더 말하려 할 때, 베로니카가 말했다.
“소식은 다 확인하신 듯한데, 그만 내려가시죠. 아니면 설마 교회의 사제는 증인으로서 못 미더운가요?”
“그럴 리가. 증거야 상처만 봐도 알 일이오. 에드워드 경은 활을 못 쓰니까, 화살이 아닌 다른 것으로 치명상을 입었다면 카치운이 아니라 그의 업적이겠지.”
“그럼 감시는 필요 없겠군요. 내려가시죠. 두 번 다시 올라오지 마시고.”
전사는 피식 웃었다.
“영웅의 꽃들은 가시가 너무 날카롭군.”
전사는 바로 산을 내려갔다. 헬레나가 베로니카를 향해 말했다.
“저도 여기 있을까요? 저자들이 무슨 수작질을 부릴까 불안한데.”
“놈들이 바보라면 카치운뿐만 아니라 버일러의 손님과 그 일행한테도 손을 대겠죠. 걱정 마요. 그럴 일은 없어요. 듣자니, 교활한 늙은이라더군요. 그보다는 카치운 일가가 남자들 없이 놓인 게 더 불안하죠. 헬레나 양도 내려가는 게 좋겠어요.”
“그러죠. 몸조심해요.”
헬레나도 바로 산을 내려갔다. 아까 그 전사와는 다른 길이었다. 그녀도 전사한테 짜증이 났던 모양이었다. 베로니카는 도로 의자에 누우며 중얼거렸다.
“언제쯤 사냥이 끝나려나?”
* * *
에드워드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들소 대신 여기까지 왔네.”
카치운이 작은 소리로 경고를 내렸다.
“쉿. 조용히 하쇼.”
“아니 저건 뭐 인간이 소리를 내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쓸 괴물딱지잖아.”
그의 시야에 들어온 건 털코뿔소였다. 보통은 단독 행동을 하는 대형종인데 드물게 다섯 마리 이하의 무리를 짓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 드문 경우가 에드워드와 카치운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하나하나가 대형이긴 하지만, 특히 눈에 띄는 건…….”
카치운의 말에 에드워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버일러와 제사장 앞에 가져갈 사이즈는 아니다?”
“그런 것 같소.”
“그럼 저것들도 패스군. 이러다 산속에 뿌리 박히겠소.”
“각오하고 온 거요.”
“시간과 예산에는 한계가 있으니 적당히 고릅시다. 아까 들소들보다는 크잖소?”
“털코뿔소는 버일러나 쿠쿠슈도 잡은 적 있소. 저것들과 비슷했지.”
“젠장. 비슷하면 안 되나?”
“기왕이면 좀 더…….”
“알았어, 알았어. [몬스터 헌터> 생각나네.”
에드워드는 털코뿔소 무리를 내려다보았다. 놈들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던 그는 곧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카치운, 질문 좀 합시다.”
“뭐요?”
“아까 그 들소 잡은 오크 사냥꾼들이 여긴 피해 가는 것 같은데?”
“그야, 털코뿔소가 한 놈도 아닌 무리를 지었는데 그걸 건드리긴 싫을 테니까.”
“그런 것치고도 상당히 멀리 돌아서 가는데. 마치 털코뿔소들한테 망꾼이 있는 것처럼…….”
카치운은 그 말을 듣고는 다시 주변을 살폈다. 그의 시선이 곧 한곳에 못 박혔다.
“맙소사.”
카치운의 시선을 따라간 에드워드도 잠시 숨 쉬는 걸 잊었다.
암반 벼랑 위, 벼랑과 같은 색깔의 흰색 털코뿔소.
그 아래 있는 놈들보다 더 컸다. 거리 차이를 감안해도 1.5배 이상. 체고만 10피트에 몸길이는 16피트가 넘었다. 흰털의 군데군데는 색이 바랬는지 금빛처럼 보이기도 했다. 깊게 패인 주름과 흉터에서는 연륜까지 묻어나왔다.
카치운과 에드워드는 각자의 방식대로 소감을 꺼냈다.
“말 그대로 산의 왕이군.”
“뭐 시발 저런 게 다 있어?”
에드워드의 소감은 질겁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카치운은 바로 활과 화살을 챙겨 들고 일어났다.
“베로니카 양한테 연락하쇼. 여기서 결판을 볼 거라고.”
“난 말리고 싶은데. 만티코어 때보다 더 위험할 것 같아.”
“그럼 다른 방법 있소?”
에드워드는 다시 털코뿔소 무리를 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이런 노가다를 두 번이나 뛰게 될 줄은.”
* * *
밴시 리안나는 허리띠 캐슬린을 만나 산속을 걸었다. 에드워드와 카치운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털코뿔소라니, 진짜 그걸 잡네요.”
“그러게. 무모해 보일 지경이었다니까.”
“전 털코뿔소 본 적 없는데. 어떻게 생겼어요? 유니콘이랑 비슷해요?”
리안나가 그렇게 말하며 전나무 뒤에서 나가는 순간, 갈색 털코뿔소 한 마리가 그 나무를 짓밟고 밴시 리안나를 들이받았다.
“끼야아아아악!”
리안나는 털코뿔소의 뿔에 걸린 채 비명을 질렀다. 허리띠 캐슬린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저렇게 생겼어.”
흰털코뿔소가 공격받는 순간, 다른 털코뿔소들까지 날뛰기 시작하면서 인근의 다른 동물들과 사냥꾼들에게는 재앙이 닥쳤다. 털코뿔소는 피아를 구분할 능력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그 앞에 놓인 게 들소건 오크 사냥꾼이건 그냥 짓밟아 버렸다.
무리를 향해 비명과 경고를 내질렀던 흰털코뿔소는 곧바로 카치운을 향해 달려왔다. 에드워드와 카치운은 정면 돌격을 가까스로 피했다. 쿵! 놈과 바위가 부딪히는 순간 땅이 울리더니, 집채만 한 바위가 들썩거렸다. 에드워드는 열쇠검과 올가미를 들고 외쳤다.
“원샷 원킬 좀 제발!”
“그게 쉬운 줄 아쇼?”
첫 일격이 심장을 노리고 꽂히긴 했지만, 가죽이 두꺼웠는지 근육이 단단했는지 흰털코뿔소는 쓰러지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놈을 향해 올가미를 던졌고, 다행히 만티코어 때와 달리 놈은 목에 올가미가 걸렸다.
“새끼, 잡았다!”
에드워드는 올가미 반대쪽에 묶인 열쇠검을 쥐고 있는 힘껏 당기며 돌렸다. 그러나 만티코어 때와 거의 비슷한 광경이 다시 펼쳐졌다. 놈의 질량이 너무 커서 에드워드가 오히려 끌려나가게 된 꼴이었다.
털코뿔소가 머리를 한번 흔들자 에드워드는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했다.
“미친!”
에드워드는 짧은 감탄사 겸 비명을 내질렀다. 이빨도 발톱도 없지만 힘은 만티코어와 동급, 방어력은 그 이상.
“빨리 좀 죽여!”
에드워드의 외침대로 카치운은 계속해서 놈의 급소를 향해 화살을 쏴댔다. 머리, 심장, 눈 등등. 어떤 것은 맞고 어떤 것은 빗나갔지만 어쨌든 털코뿔소는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화살에 맞을 때마다 카치운을 향해 달려들기도 했다. 에드워드는 갖은 수단으로 놈을 붙들면서 외쳤다.
“언제까지 버텨야 되는데?”
“계속! 놈이 쓰러질 때까지!”
카치운은 바위 위로 올라가서 흰털코뿔소의 목에도 화살을 몇 개씩 꽂아 넣고는 다시 내려와 쫓아가다 도망치기를 반복했다.
에드워드는 밧줄을 나무에 묶어 코뿔소의 움직임을 봉쇄하길 시도했다. 물론 한두 그루로는 어림도 없었다. 에드워드는 흰털코뿔소의 돌격을 피하고, 나무에 밧줄을 묶고, 뽑히면 다시 다른 나무에 묶기를 반복했다. 밧줄이 점점 짧아지고 끌려다니는 나무들의 숫자가 늘어난 끝에 에드워드와 흰털코뿔소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졌다.
“또 돌격해 봐, 이 소 같지도 않은 새끼야!”
에드워드는 놈과 눈을 마주치고 외쳤다. 한국어에 기반한 욕이었지만 앵글리아어나 아퀴타니아어였어도 놈이 알아들을 리는 없었다. 그래도 눈빛으로 도발은 충분히 되었다.
“아버지!”
무클이 화살통을 끌어안은 채 달려왔다. 그 옆에는 요정이 아니라 산골 귀신 몰골이 된 리안나도 있었다. 둘이서 안고 온 화살통에서, 이제껏 쏜 것과 같은 크기의 화살들이 쏟아졌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 화살을 장전해 에드워드와 대적하는 털코뿔소에게 마구 쏴대기 시작했다. 리안나는 세 남자를 응원했다.
“기사님! 사제님은 안전한 데서 잘 구경하고 계신대요!”
“으어어어어어!”
에드워드는 대답하지 못하고 다시 날아다녔다. 이번엔 이미 뽑힌 나무들과 같이 날아다녔다. 한참 전신을 두들겨 맞다시피 하며 땅을 구른 그는 열쇠검을 어느 바위 틈새에 내리꽂았다.
“됐다!”
에드워드가 간신히 일어선 순간, 피투성이에 화살투성이가 된 흰털코뿔소는 씩씩거리며 주저앉았다. 에드워드는 그제야 놈이 점점 죽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좀! 제발 죽어라!”
생각 같아선 올가미를 쥐어 잡고 어떻게든 목을 졸라 버리고 싶지만, 그래서야 카치운이 잡은 게 아니라 에드워드가 잡은 게 되어 버린다. 게다가 놈에게 붙어 목을 조른다는 선택지도 그리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기사님! 피해요! 거기 있으면 위험해요!”
에드워드가 한참 머리를 굴리던 와중에 리안나가 외쳤다. 에드워드는 그제야 자기가 어디 섰는지 둘러보았다. 아까까지 흰털코뿔소가 서 있던 암반 벼랑 위. 처음 그 장소였다. 에드워드와 털코뿔소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
에드워드는 짧게 한탄했다.
“아.”
털코뿔소는 다시 일어나더니 에드워드를 향해 돌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