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9)
9화 순례자의 죽음 (2)
농촌의 주점 겸 여관이 대낮부터 손님을 받는 건 드문 일이었다. 다들 일하러 나가고 없으니까. 그래도 아주 드문 일은 아니었다. 외부에서 온 손님이 있다면, 그리고 그 손님이 근처 도시에서 열린 대회의 우승자라면.
흑색 섞인 금발의 신인 기사는 주점 주인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원, 세상에. 우승하자마자 성지로 가는 중이시라고요?”
“그렇소.”
기사는 주머니에서 동전과 은전 몇 개를 주인에게 건넸다.
“피로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기에 오늘은 일찍 자야겠소. 식사 한 끼 가져오고, 내일까지 깨우지 마시오.”
“그럼요, 그럼요. 제일 좋은 방이 비었으니 편히 쉬시죠. 제 아들놈이 곧 식사를 갖다 드릴 겁니다.”
주인은 은화를 챙기면서 희희낙락했다. 대회 끝나고 처음 받는 기사 손님이 예의 바른 우승자라니,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난폭한 기사보다야 백배 나은 일이다.
우승자는 그런 주인의 모습을 힐끗 보고는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 *
에드워드와 베로니카는 부리나케 말을 몰았다. 추적 대상은 죽은 신인 기사의 말발굽 자국이었다. 그것은 시체의 위치에서 굽잇길 세 개를 더 달려가 낮은 고개 위의 마을로 이어지고 있었다. 낮잠을 끝내고 밭일을 재개하던 일꾼들은 에드워드 일행이 말을 급하게 몰고 오는 모습을 의아해했지만, 둘은 신경 쓰지 않았다.
말발굽 자국은 마을 입구의 주점에서 끊겼다. 에드워드는 마구간에서 희생자의 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에드워드는 말에서 내린 다음 열쇠검을 뽑았다. 그리고 주점의 문을 부술 기세로 열고 들어갔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저 말 타고 온 새끼는 살인범이다!”
짧고 굵은 상황 설명에 주점 안은 바로 뒤집히고 말았다. 주점 주인은 질겁해서 주방을 뛰쳐나왔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저 말은 대회 우승자의 말이다! 타고 온 새끼가 누구고, 어떻게 생겼는지 당장 말해!”
“그야 우승자분이 타고 오셨지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흑색 섞인 금발, 서코트는 초록색에 흰색 가로선 맞냐?”
“맞습니다!”
에드워드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불쌍한 새끼는 저 아래 길에 죽어서 나뒹굴고 있다! 너희들이 속은 거야!”
뒤이어 들이닥친 건 베로니카였다. 그녀는 나무망치를 들고 들어와 주점 안을 둘러보았다.
“누구래?”
“죽은 거랑 여기 온 놈이 똑같이 생겼대. 옷까지.”
짧은 말이었지만, 베로니카는 그 말만으로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망할. 골치 아픈 타입이네. 변신술이야.”
베로니카는 주점 주인의 멱살을 잡을 기세로 달려가 그의 앞에 섰다. 진짜로 망치를 들이대거나 멱살을 잡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충분히 다급해 보였다.
“그 가짜 기사 놈 어디 있어?”
여관 주인은 아직 얼떨떨한 표정이었고, 바로 답하지를 못했다. 베로니카는 그의 발가락을 짓밟았다. 주인이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숙이는 순간 베로니카가 다시 캐물었다.
“그 가짜 놈 어딨냐고?”
“1층 동쪽 방입니다! 피곤하니까 일찍 잔다고 했습니다! 그리곤 방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그다음 행동은 에드워드의 몫이었다. 그는 지목된 방의 문짝을 걷어찼다. 빈약한 나무문짝은 빗장째 뜯겨 나가 버렸다. 짚을 엮어 만들고, 요를 덮은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불이 불룩했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겨눈 채 왼손으로 그 이불을 걷어 냈다.
그 아래 있는 건 난생처음 보는 얼굴의 청년이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있었고, 입가엔 피가 조금 흘렀다. 에드워드는 주인을 돌아보았다.
“주인 양반, 이 얼굴 알아?”
주인은 바로 기절해 버렸다. 술꾼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신 대답했다.
“주인장의 아들입니다.”
“이미 바꿔치기했군. 젠장. 마지막으로 이 청년을 본 사람?”
“조금 전까지 여기 있었습니다. 기사님이 오기 전에…….”
에드워드는 낭패감을 느꼈다. 그는 시체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건 보이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도로 요를 덮었다.
“소개장은 여기도 없어. 놈이 갖고 있나 본데?”
베로니카는 시체의 옷을 보자 말했다.
“아주 질이 나쁜 사교도네.”
“왜?”
“놈은 죽은 기사도, 이 청년도 옷을 안 벗겼어. 옷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야. 이런 변신술은 들어 본 적 없어.”
에드워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질투에 미친 다른 기사 놈이 소개장을 뺏으려고 한 거라면 차라리 안심했을 텐데, 변신술을 쓰는 사교도라니.”
둘의 대화에 마을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베로니카는 바로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마을 사람들을 전부 성당으로 모아라! 한 명도 남김없이!”
사람들이 부리나케 주점을 나서자 에드워드는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뭐, 어떻게 하게?”
“놈은 자신감 과잉이야. 안 잡힐 자신이 있으니까 기사의 시체를 숨기지 않았고, 조금 전까지 이 집 아들 행세를 하며 여기 있던 거야. 아마 아직 이 마을 밖으로 안 나갔겠지.”
“그리고?”
“우리가 쫓아온 걸 알아차린 이상 또 다른 몸으로 변신했을 가능성이 있어. 마을 사람들을 다 모은 다음, 참석하지 않은 놈이 있다면, 최소한 그놈을 경계하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말해 줄 수는 있지.”
“똑똑하네. 그다음엔? 놈을 어디서 찾아? 우린 아직 그놈의 능력도 정확히 모르는데?”
“놈은 우리에게 수작질을 부리겠지. 추적자 따위는 달갑지 않을 테고, 기껏 빼앗은 소개장을 한 번쯤 써먹고 싶기도 할 테니.”
“어, 그 말은?”
베로니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유인하면 아마 달려들걸?”
* * *
나그네는 여행이 시작부터 불길하다고 느꼈다. 한적한 길로 들어서자마자 발견된 시체가 바로 그 증거였다. 젊은 기사였는데, 몸을 칼에 찔린 상태였다. 어쩌다 그렇게 죽었는지 판별할 지식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나그네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흔한 일이긴 했다. 맹세가 생생하고, 순진한 젊은 기사는 혈기가 넘치거나 속기 쉽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래서 다수의 도적이나, 더 숙련된 기사, 또는 비열한 강도들에게 죽기도 했다. 아마 이 불행한 기사도 그럴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 있었다. 우선 시체가 약탈당하지 않았고, 그 시체를 중심에 두고 누군가 원을 그려 놓았다는 것이다. 이런 예를 갖추는 건 ‘지나가던 기사’다. 그가 약탈자들을 내쫓고, 이곳을 ‘성스러운 땅’으로 선언한 것이리라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물론 약탈자들이 끈질긴 종자들이라면, 시체 주변에 있는 건 위험했기 때문에 나그네는 발길을 재촉했다. 마을 안에만 들어가면 일단 한숨 돌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마을에 들어서기를 주저했다.
‘왜 다들 알몸이지?!’
게다가 남자들만 있었다. 여자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 앞에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를 향해 잡담하고 있었다.
나그네는 가장 불길한 단어를 떠올렸다.
‘사교도들의 비역질!’
그렇다면 죽은 기사와 또 다른 기사의 존재도 설명이 된다. 아마도 그들 전부가 죽었을 것이다. 그는 들키기 전에 몸을 돌려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늦었다.
“거기 가는 놈, 정지!”
알몸의 남자가 검 하나를 든 채 말을 타고 달려왔다. 나그네는 걸음아 나 살려라 달리기 시작했지만, 말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그는 마지막 절규를 소리 높여 내뱉었다.
“사람 살려! 사교도다!”
떼엥!
에드워드는 그의 머리통을 검 등으로 가볍게 쳐서 쓰러뜨렸다. 균형을 잃어 넘어지게 하는 데는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는 말의 방향을 틀어 그 앞을 막았다. 뒤이어 마을 사람 다섯이 헐레벌떡 달려와 나그네를 붙들었다.
“이놈입니까? 이놈이 사교도인 겁니까?”
“누가 누구더러 사교도래!”
나그네는 비명을 질렀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일단 데려가서 벗겨 보자고.”
“으아아아악! 내 항문은 내가 지킨다!”
저게 변신술사의 연기라면 저놈은 왕궁에 배우로 들여도 될 것 같다. 에드워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의심을 쉽게 거두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나그네를 포획한 채 성당 앞으로 이동했다.
성당 앞에 모인 마을 사람들은 뻘쭘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말에서 내린 에드워드도, 이 마을 사제도 알몸이었다. 하루아침에 아들을 잃은 주인장도 훌쩍거리긴 했지만, 어쨌든 알몸이었다.
“다들 황당하다는 건 알겠는데, 이게 가장 최선이라는 것만 알아 둬.”
에드워드는 최대한 덤덤한 투로 말했다. 사제는 나그네한테 사정을 설명하고 간신히 협조를 구한 뒤 그의 옷을 헤집어 보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두루마리 같은 건 보이지 않는군요.”
“펼쳐서 옷 안감 뒤에 숨겼을 가능성은?”
“이 나그네도 마을 사람들도 다들 여름옷이라 그럴 여지는…….”
남자들 사이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에드워드는 교회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안에는 벌거벗은 여자들이 한가득이고, 베로니카가 몸소 수색 중이었다. 나름 절경이라면 절경이겠지만, 에드워드를 비롯한 남자들은 그쪽을 볼 수 없었다. 문이 닫혀 있었으니까.
에드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발, 허리띠, 검집만 찬 그는 알몸 군단을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너희는 서로 감시하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누구도 성당 안에 들어가면 안 되고, 이 자리를 이탈해도 안 된다. 내가 놈의 목을 베어서 돌아오기 전까지는. 이해했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워드는 성당 안을 향해 소리쳤다.
“여자 쪽은 이상 없냐?”
“이상 없어!”
베로니카의 맑은 목소리였다. 에드워드는 검을 빼든 채 집마다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건 도발이다.
놈은 에드워드에게 덤빌 것이다.
움직이는 게 있다면 무조건 베어야 한다.
물론, 놈이 이미 다른 누군가로 변신해 다른 마을로 떠났을 가능성도 있다. 사실 그게 더 합리적인 선택이긴 했다. 그러나 베로니카의 말대로, 소개장을 써 준 사람이자 이단심문관인 베로니카와 그 호위의 추격이 계속 따라붙는 건 변신술사 입장에서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소개장이 있으나 마나 한 꼴이 되니까.
베로니카가 말하기를, 상대방은 단순한 주술사나 마법사가 아니라 ‘악마의 선물’을 받은 사교도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놈이 자신감 넘치고, 업적에 욕심이 있다면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선물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육체는 물론 옷까지 흉내 내는 등 상당히 뛰어난 마법 도구라는 것이다. 그런 놈과 숨바꼭질을 해야 한다. 숨 막히는 일이었다.
못 보고 지나친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에드워드의 뒤를 밟고 있을지도 모른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이쪽이 지치기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에드워드의 곁에 다가올 것이다.
“꺄악!”
에드워드가 가장 외곽 쪽의 집을 수색하고 나오자마자 여자의 작은 비명이 들렸다. 에드워드는 홱 검을 겨누었다. 한 여자가 나무 아래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옷차림은 흔한 마을 처녀였다. 그녀는 에드워드와 눈이 마주치자 더 큰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미친놈이야!”
하지만, 에드워드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검을 겨눈 채 천천히 옆으로 돌았다. 여자는 꺅꺅거리길 멈추더니 곧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라면 보통 여자 앞에서 빈틈을 보여야 하는 거 아냐?”
“마을 여자들은 다 교회 안에 있거든.”
“그래도 너 누구냐, 왜 여기 있냐 정도는 안 물어봐?”
“얼마 전에 여자로 변신한 악령한테 그렇게 디질 뻔했지.”
“그 악령은 어떻게 됐는데?”
“천국의 수문장께 빌고 있을걸?”
여자는 씩 웃었다.
“온갖 변명을 생각해 봤는데, 참 부질없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입이 길쭉한 주둥이로 변하고, 옷이 털가죽으로 변하기 시작하자 에드워드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늑대 인간이라…….”
인간이 악마에게 혼을 팔고, 대신 고대 늑대의 힘을 얻는 사교도. 놈의 손에서 손톱이 길게 뻗어 나왔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의문을 드러냈다.
“늑대 인간이 변신한 거냐? 아니면, 늑대인간으로 변신한 거냐?”
좀 이상한 말이긴 했다. 늑대 인간도 흡혈귀도 다 원래는 인간이지만, 악마의 술수로 타락한 사교도니까. 하지만 변신술사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대충 이해했다. 늑대 인간은 콧김을 내뿜었다.
“늑대 인간은 옷까지 바꾸지는 못하지.”
“아, 역시 가짜로군.”
선공은 에드워드가 검을 휘두르며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