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90)
90화 초원부족의 방식
항카이부의 버일러와 제사장은 호들갑 떠는 보고에 놀라 친히 산을 올랐다. 그리고 카치운이 잡았다는 흰털코뿔소를 보았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런 모습이 되는 거지?”
한 전사의 감탄이었다. 흰털코뿔소는 벼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목이 졸린 건 아니었다. 밧줄과 덩굴 따위로 얽매이긴 했지만, 결정타는 심장에 박힌 화살이었다. 그것도 첫 번째 화살의 뒤꽁무니로 두 번째 화살이 들어가 촉을 더 밀어 넣은 것이다.
“뒈지는 줄 알았네. 맹수 타입은 이제 싫어.”
에드워드는 속된 표현과 함께 나타났다. 온몸에 부상을 입었지만 베로니카가 회복 주문을 때려박아 준 덕에 움직일 수는 있었다. 피로 해소가 안 되었을 뿐. 카치운도 그의 뒤를 이어 나타났다.
“버일러께서 친히 오셨군요.”
버일러는 흰털코뿔소를 구경하기 바빠서 제대로 된 대답도 하지 못했다. 쿠쿠슈의 얼굴은 납빛이 되었다.
“이, 이런 건 인정 못 해. 혼자 힘으로 잡은 게…….”
“상처 보면 알 거 아뇨? 혹시라도 땅에 떨어질까 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에드워드가 퉁명스레 말했다. 버일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치명상은 심장에 박힌 저 두 개의 화살이 분명하오. 놀랍군.”
쿠쿠슈 제사장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 버일러는 주변의 부하들을 향해 말했다.
“도와줘라. 저걸 끌고 내려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다.”
전사들은 황급히 달려갔다. 잠시 뒤 밧줄에서 풀려난 흰털코뿔소의 사체가 땅으로 추락해, 미리 그 자리에 놓인 두꺼운 천 위에 놓였다. 한 전사는 열쇠검을 회수해 에드워드에게 내밀었다.
“이건 어디서 만든 검이기에 저 무게를 버틴 겁니까?”
에드워드는 성의 없게 대답했다.
“모릅니다.”
흰털코뿔소를 천으로 싸매고 여러 가닥의 밧줄을 연결한 전사들은 그걸 자신들의 말로 질질 끌었다. 무게와 덩치 때문에 한참을 애쓴 뒤에야 산 아래까지 내려갈 수 있을 것이었다. 버일러는 제사장을 향해 말했다.
“이젠 당신이 약속을 지킬 차례요.”
“하지만 버일러시여. 그런 귀한 물건을 버일러도 아닌 일개 백인대장, 그것도 병사 하나 없는 자에게 내줘도 될지요? 하다못해 버일러께서 가지셔야…….”
“약속은 약속이오. 반대로 카치운이 결국 자기 말을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해 보시오. 내가 누구 편을 들겠소?”
버일러는 듣기 싫다는 듯 제사장의 말허리를 자르고는 에드워드 일행과 합류했다. 쿠쿠슈 제사장은 이를 악물고는 다른 길로, 털코뿔소를 나르느라 낑낑거리는 사람들보다 더 빠른 길로 산을 내려갔다.
* * *
행사의 주인공들은 흰털코뿔소보다 더 빨리 숙영지에 도착했다. 버일러가 미리 준비시킨 연회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회는 급히 열린 것 치고는 성대했다. 참석자들은 내심 제사장을 멸시하거나 경계했던 사람들인지 카치운에게 찬사를 아낌없이 퍼부었다. 버일러의 눈치를 볼 생각도 있던 것이겠지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자 버일러는 카치운에게 정식으로 부대를 맡을 생각이 있냐 물어봤다. 예민한 질문이었다. 버일러보다 큰 사냥감을 잡고, 제사장을 망신 주었으며, 시조 영웅의 신물을 받게 된 자가 부대까지 맡는다면? 카치운은 사양했다. 버일러는 기분이 더 좋아졌다.
“네 조부께서도 자수성가하셨지.”
버일러의 부족을 갈라치거나 그 지위를 위협하지 않겠다는 의미에 더 기꺼워한 것이겠지만, 어쨌든 그는 카치운의 후원자로 남기로 했다. 그는 에드워드에게도 축하와 감사, 당부의 말을 꺼냈다.
“카치운은 신의가 있고 용맹하며 기예가 뛰어난 자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거요.”
“날뛰는 털코뿔소 심장에 화살을 한 번 더 꽂는 걸 보니 그런 것 같더군요.”
에드워드한테 털코뿔소가 부딪히기 직전, 카치운은 결정타를 날리는 데 성공했다. 힘이 빠진 털코뿔소는 쓰러진 채 벼랑 위, 에드워드의 옆을 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졌다. 에드워드는 다른 틈새를 찾아 열쇠검을 꽂고 거기에 밧줄을 더 걸면서 싸움을 끝냈다.
아슬아슬한 싸움이었다. 만약 그 화살이 없었다면 에드워드는 털코뿔소와 함께 떨어졌을 것이다. 다른 틈새를 찾는 것이 늦었다면, 털코뿔소의 사망 원인을 두고 누구의 공인가 하는 논쟁이 터졌을 것이다.
“뭐, 난 떨어졌어도 살아남기는 했을 것 같지만.”
연회 참석자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참을 웃던 버일러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제사장은 왜 이리 늦는가? 속이 상했다면 대리인이라도 보내서 약속을 지켜야…….”
그 순간, 갑자기 유르트 안으로 무장한 전사들이 들이닥쳤다. 대충 보아도 스물이 넘을 숫자. 버일러는 기겁해서 외쳤다.
“웬 놈들이냐! 경비병!”
“이게 다 버일러를 위한 일입니다.”
쿠쿠슈 제사장의 목소리였다. 그는 전사들을 헤치고 버일러 앞에 나서 무릎을 꿇었다.
“제 점괘에 따르면 카치운이 버일러를 배반하고 신물을 토대로 이 부족을 뺏을 거라 합니다. 제가 평소 버일러께 입은 은혜가 한둘이 아닌데, 어찌 이를 가만히 두겠습니까?”
버일러의 눈이 흔들렸다. 개도 안 믿을 말이었지만, 에드워드는 주술사가 가라앉은 불안감을 교묘하게 다시 부추기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가 벌떡 일어나자 주술사는 손을 내저었다.
“손님은 가만히 계시오. 이건 우리 부족의 일이오.”
“대놓고 구라질을 치는데 그걸 믿으라고?”
“손님, 말조심하시오. 당신이 카치운을 변호한다면 우리도 당신을 죽일 수밖에 없소.”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쳤다.
“여자 탐나서 저지르는 거짓말인 걸 모를 줄 아냐? 아재, 서요?”
영웅의 입에서 나온 천박한 말에 쿠쿠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에드워드는 버일러를 돌아보았다.
“과연 누가 신의를 지키는지는 신의 뜻에 따라 물어봅시다.”
“그게 무슨 뜻이오?”
“이기는 놈이 옳다.”
쿠쿠슈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새삼 이제 와서 결투 재판 따위를…….”
에드워드도 더는 안 기다렸다.
“캐시!”
에드워드가 부르자마자 허리띠가 유르트를 가로질러 날아왔다. 에드워드는 거기서 열쇠검을 뽑아 들고는 가장 가까운 전사의 머리통을 쪼갰다. 사람들이 잠시 얼이 빠진 사이에 카치운은 죽은 자의 활을 빼앗아 들었다.
“쳐, 쳐라!”
쿠쿠슈가 엉거주춤 일어서며 외쳤다. 그러나 캐슬린이 잽싸게 그의 발목을 붙잡고는 거꾸로 매달더니 질질 끌고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얼굴이 바닥에 끌리자 주술사는 더 말을 하지 못했다.
“깔깔깔!”
제사장이 농락당하고 여자의 웃는 소리가 유르트를 울리자 전사들은 패닉에 빠졌다. 에드워드와 카치운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유르트 안은 순식간에 도살장이 되었다.
바깥에서 제사장의 제지에 발길을 멈춘 채 판세를 가늠해 보던 경비병들도 곧 편을 정했다. 버일러를 등 뒤에 두고 싸움에 나선 기사와 카치운에게 일방적으로 떠밀리는 놈들을 따를 이유는 없었다. 그들은 도망치려던 제사장네 전사들을 향해 창칼을 휘둘렀다.
“연회에 칼을 들고 온 놈들을 죽여라!”
경비병들의 함성, 그리고 도망칠 곳이 없어진 전사들의 절규 속에서 쿠쿠슈는 시퍼렇게 질려 버렸다.
“악당은 항상 혓바닥이 긴 게 문제야.”
에드워드는 자기 앞에 끌려온 쿠쿠슈의 입에 피 묻은 열쇠검을 겨누고 말했다. 뒷감당을 생각하면 쿠쿠슈가 입을 털 필요가 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패착이었다.
카치운은 에드워드의 어깨를 짚었다.
“이놈은 우리가 죽이면 안 되오.”
“엥? 그래?”
“그건 버일러의 권한이오.”
“아, 하긴.”
에드워드는 버일러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카치운은 버일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가족을 두고 먼 길을 떠나게 되었으니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버일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질. 그는 쿠쿠슈 제사장 앞에 섰다. 제사장은 황급히 혀를 놀렸다.
“버일러시여! 카치운은 언젠가 당신을 위협할 겁니다! 믿지 마소서!”
“초원의 법도를 어기고 내 연회에 칼을 들고 들어온 자네는 날 위협한 게 아닌가?”
“버일러를 생각해서 한 짓입니다! 절 살려 주시고 만에 하나를 대비하십시오!”
“그래, 그런 방법도 있겠지.”
버일러는 에드워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역시 손님이 칼을 갖고 있는 건 안 맞는 듯하오. 내게 잠깐 맡기시겠소?”
에드워드는 기꺼이 열쇠검을 넘겼다. 쿠쿠슈는 질겁해서 소리쳤다.
“버일러시여! 현명한 선택을! 자비를!”
“허리띠, 이 자를 놓아주거라.”
버일러가 명령하고 에드워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캐슬린은 쿠쿠슈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쿠쿠슈는 황급히 버일러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버일러의 굳은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그는 경비병들에게 말했다.
“이자를 자루에 넣어라.”
“안 돼!”
쿠쿠슈는 바닥을 부여잡았지만 곧 경비병들에게 끌려나갔다. 에드워드는 유르트 밖으로 나가 제사장의 최후를 보았다. 경비병들은 그를 자루에 집어넣더니, 말을 탄 기수들 앞에 던져 버렸다. 말들에게 짓밟히며 바닥을 구르는 포대를 보고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 버렸다.
“저렇게 죽이는 거 재밌어 보이네.”
“피가 안 흐르는 명예로운 처형 방식이오. 사실 저것도 아까운 놈이지.”
카치운이 씹어 내뱉듯 말했다. 버일러는 열쇠검을 닦아 캐슬린에 매달린 검집에 집어넣고는 에드워드의 옆에 섰다.
“손님한테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구려.”
“멋진 연회가 엉망이 되어서 유감입니다.”
버일러는 웃었다.
“더 크게 다시 열면 되오.”
* * *
“여기도 몇몇 끄나풀이 와서 집적거리긴 했어요. 하지만 대세가 바뀐 걸 알자 순식간에 도망치더군요.”
카치운네를 지키던 헬레나의 말이었다. 가르달은 자기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놈들은 지금쯤 버일러한테 변명하느라 바쁘겠지.”
버일러는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움직였다. 쿠쿠슈가 부인과 노예로 착취하던 여자들을 풀어주고, 남은 일족들은 노예로 만들었으며, 주술사들 가운데서 고분고분한 사람을 제사장으로 발탁했다. 쿠쿠슈의 재산은 몰수되거나 분배되었다.
예기치 않게 일이 흘러가긴 했지만, 버일러도 엄연히 유목민족의 우두머리로 이 기회를 이용할 줄 알았다.
“쿠쿠슈라는 남자도 바보네. 남의 여자가 탐난다고 그런 무리수를 두다니.”
베로니카의 평이었다. 카치운은 고개를 저었다.
“버일러도 함부로 못 건드리던 자였으니, 오히려 그 오만함이 그를 이끈 거요.”
카치운을 죽이고 어떻게든 무마하면, 버일러가 넘어갈 것이라 기대했다는 이야기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하긴. 있는 놈들이 더하지.”
“와, 기사님도 기득권이신데 혼자 양심적인 것처럼 말하…….”
리안나가 쓸데없이 끼어들었다가 다시 거꾸로 매달렸다. 그걸 본 소라야는 짧은 아퀴타니아어로 외쳤다.
“악당!”
“아버지, 신임 제사장이 왔습니다.”
그때 무클이 유르트 안을 향해 말했다. 카치운과 에드워드가 나가보자, 신임 제사장이 큰 활과 화살집을 들고 서 있었다. 그 뒤에는 금빛 말안장을 든 전사, 그리고 몇몇 여자가 있었다.
제사장은 카치운을 향해 공손히 활과 화살집을 내밀었다. 활은 들소 뿔로 활대를 만든 것에 검은색 칠을 하고 붉은 가죽을 덮은 것이었다. 활줄걸이는 뼈로 만들었다. 화살집도 같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카치운은 그 활을 받고는 가죽 부분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용의 뼈와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활과 화살집…… 잘 관리했군.”
영웅의 활을 손에 넣은 기쁨과 감격이 묻어났지만, 체면 탓인지 꾹 억누르는 모양새였다.
그다음은 전사가 나섰다. 그는 에드워드를 향해 말안장을 내밀었다.
“버일러께서 말안장을 선물하셨소. 본디 쿠쿠슈의 것인데, 에드워드 경의 말에 더 어울릴 거라 하셨소.”
에드워드는 말안장을 먼저 살펴보았다. 그 안장은 번쩍번쩍 빛났는데, 황금 틀 밑에 비단벌레 날개를 잔뜩 집어넣어 꾸민 것이었다. 고급 마구는 기사의 격을 드러내 주므로 에드워드는 기쁘게 받았다.
“이거 말에다 얹고 다니면 주목받겠군.”
“혼자 좋은 대접 다 받네.”
베로니카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전사가 말했다.
“물론 버일러께서는 에드워드 경의 일행께도 적절한 선물들을 마련토록 명하셨소.”
리안나는 조그맣게 투덜거렸다.
“내가 관리할 물건만 늘어나네.”
그때 저 멀리서 함성이 들렸다. 에드워드 일행이 돌아보니, 저 멀리서 흰털코뿔소가 뗏목을 타고 강을 내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강변에 몰려가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카치운이 에드워드의 어깨를 짚었다.
“저것도 처분해야지. 머리는 아들놈에게 남기고, 털가죽은 당신에게 주겠소.”
“그럼 댁은 적자 아니오?”
카치운은 고개를 저었다.
“몰이꾼 역할의 보수요. 그리고 난 가족과 명예를 지켰으니 괜찮소.”
“그런가.”
에드워드는 천천히 흘러내려 오는 흰털코뿔소, 그리고 카치운네 가족들을 번갈아 보고는 중얼거렸다.
“가족이라.”
“저기, 기사님?”
스텔라가 에드워드의 등을 툭툭 쳤다. 에드워드는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쿠쿠슈의 노예 중 몇 명이 카치운네로 주어졌대요. 부족민이 아니라 채무나 전쟁포로 노예라 해방시킬 이유가 없다나.”
“그런 노예도 있겠지. 그런데 왜?”
“여자 노예들이래요.”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다음 카치운에게 속삭였다.
“댁은 마누라 이미 있으니까 쟤들은 내가 좀 빌립시다.”
어느새 다가온 베로니카가 에드워드의 등짝을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