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91)
91화 이단 반란의 전조
에드워드 일행은 첫눈이 얼어붙을 때까지 항카이부 숙영지에 머물렀다.
스텔라는 점쟁이 짓의 약발이 다할 때쯤엔 애들하고 놀았다. 그녀는 때때로 교사였고, 때때로 악동이었다. 무클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낚시에서 여자한테 패하다니.”
낚시왕에 등극한 스텔라는 평소의 나긋나긋하던 말투를 집어던지고 승리자로서 최대한 경박하게 깔깔깔 웃었다.
“더 수련하고 오렴!”
“마법사니까 번개 마법으로 사기친 거 아니에요?”
“어머나, 그게 무슨 말일까?”
무클은 의심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지만 결국 증거를 잡지 못했다.
에드워드는 애들과 어울려 잘 노는 스텔라를 보고 중얼거렸다.
“좋댄다.”
그의 옆에는 카치운네 새 여자 노예가 술병을 기울였다. 새로 온 노예들 중에서는 제일 미녀였고, 에드워드의 잔은 흰털코뿔소의 작은 뿔로 만든 것이었다. 전리품과 술과 여자. 나쁘지 않은 조합이었지만, 노예는 손님 접대와 애들 감시 사이에서 우왕좌왕했다. 에드워드는 보다 못해 그 노예한테 손짓했다.
“됐으니까 가 봐.”
노예는 알아듣고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물러났다. 에드워드는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스텔라와 애들을 기다렸다.
“기사님은 낚시 안 하시나요?”
스텔라의 말에 에드워드는 손가락으로 해체된 사슴을 가리켰다.
“저거 잡기도 바빠.”
“아직도 사냥감이 있나 보네요.”
“요즘은 보기 힘들어.”
“버일러랑 사냥 나가셨던 거예요?”
“그래. 수시로 불려 나가지. 그때마다 선물도 받고.”
버일러는 일행에게 적절한 선물을 주문 제작 후 전달했다. 스텔라는 큰뿔사슴 가죽으로 짜고 은 단추가 달린 대용량 시약 가방을, 가르달은 고급 연초 한 꾸러미를, 헬레나는 금 세공된 허리띠를, 베로니카한테는 호박 단추를 단 검은 담비 코트를.
흡족한 표정으로 연초를 뻑뻑 피워대는 가르달과 카치운을 보던 스텔라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리안나만 받은 게 없네요.”
“노예한테 선물을 주겠냐. 세운 공도 없는데.”
“그래도 시린 씨한테 선물 받았으니 다행이네요.”
밴시 리안나는 시린이 직접 멧소 가죽으로 짠 신발을 받았는데, 저번에 얻은 거대 토끼 가죽이랑 같이 착용하고는 신나게 돌아다녔다. 자수를 놓거나 카펫을 짜는 여자들 틈바구니에 끼면서 문양을 배우기도 했다.
“요정이 뭔가를 배우는 건 처음 보네요. 보통 집요정은 자기들이 하는 일만 하는데.”
“죽어라 굴리면 살아남으려고 뭐라도 하겠지.”
“와, 악덕 사장.”
“아껴야 잘 살지.”
“그건 시린 씨가 할 소리 같은데.”
카치운은 여자 노예가 셋 늘었고 가축도 소와 양을 합쳐 스무 마리를 더 받았다. 에드워드 일행이 지불한 돈까지 합쳐서, 가계부에는 좀 더 숨통이 트였고 시린은 안도할 수 있었다.
“뭐, 카치운네 신세 지는 것도 슬슬 끝내야지.”
“이동하시게요?”
“응. 진창이 얼어서 이젠 마차도 그냥 다닐 수 있겠더라. 베로니카도 완전히 회복됐고.”
“어디로 가죠?”
“베로니카는 남쪽을 생각하는 모양인데, 일단 북쪽으로 갈 거야.”
“네? 완전히 반대쪽 아니에요?”
“베니아 시에 들른대. 그간 밀린 우편물도 받아야 하고.”
한두 번은 베니아 시로 가는 부족민에게 부탁해 편지를 확인했지만, 길이 진창이 된 뒤에는 그것도 한동안 뜸했다.
“땅은 진창이어도 수운으로 계속 상인들이 오가는 것 같던데 그쪽으로 수령 안 하셨어요?”
“편지와 증표를 줘도 베니아 시민들이 의심하더라나.”
“그게 뭐야. 이곳 사람들 의심받아요?”
“의심이야 누구나 다 받고 있겠지. 전쟁통이니.”
이 근방은 겨울을 맞아 잠시 소강상태지만 트레베리아의 전쟁은 점점 더 처절해지고 있었다. 난세 중에서도 난세였다.
“그래도 그쪽으로 가실 건가요?”
“저것들 처분해야지.”
에드워드는 한쪽에 틀을 잡아 말리는 가죽들을 가리켰다. 휴식 기간 동안 카치운네와 에드워드가 모은 가죽들이었다.
월동에 필요한 물자 중 상당수는 항카이부에서 선물 받거나 사들일 수 있었지만, 모은 가죽들을 비싸게 팔려면 역시 도시로 가야 했다.
“여기서 처분하면 그리 비싸게 못 팔고, 베니아 인근에서 처분하면 더 이익이래.”
“슬슬 가죽값은 떨어져야 하는 것 아니에요?”
가죽 가격은 겨울 직전에 급등했다가 다들 월동물자를 갖추기 시작할 때쯤 정체되고 곧 하락세로 접어든다. 하지만 이번엔 예외다.
“전쟁이 길어지니까 사재기 열풍도 있고, 병사들의 갑옷이나 일상용품 수요도 크게 늘어서 아직도 고공행진 중이란다. 이곳 사냥꾼들만 살판났지.”
“또 전쟁 이야기군요. 무슨 화제든 전쟁으로 귀결되네요.”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전쟁이 다 그렇지.”
그때 시린이 모두를 향해 외쳤다.
“저녁 식사 준비 다 됐어요!”
식사는 꼬치구이 위주로 거의 만찬이었다. 에드워드 일행이 곧 출발할 거란 걸 모두가 알았기 때문에 근래 식사는 매일 후했다.
“여기는 고기를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네요.”
유르트 안에서 리안나가 행복한 표정으로 꼬치를 뜯으면서 말했다. 베로니카도 웃으면서 말했다.
“곧 익숙한 문화권으로 돌아가겠네. 여기에 이미 적응했다 생각했는데.”
에드워드는 그 말에 바로 농을 걸었다.
“여기서 평생 살 거냐?”
“그럴까? 선교하는 셈 치고. 여기 주술사들 안 그래도 세가 약해졌던데.”
“진지하게 말하는 것 같아서 좀 무섭군.”
“농담이야. 이곳 주술사들 중에도 빛에 닿은 자들이 있어서 교회가 일방적으로 나서긴 힘들어.”
사악한 주술사는 아니고 교회의 계급과 전례를 따르지도 않지만 어쨌든 빛의 세력.
“교회 밖 사람들이라.”
“성지로 가면 갈수록 흔하게 만날 거야. 비텔리아 교황청에도, 시오니아 총대주교좌에도 안 속하지만 빛에는 닿은 세력들. 아예 다른 종족인 엘프 교회나 드워프 교회보다 까다롭지.”
에드워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교회랑 사이가 좋나?”
“다 다르지. 교회도 그들을 흡수하거나 굴복시키려고 애쓰고 있지만.”
빛으로 향하는 길이 오직 비텔리아 교회에만 있다고 할 수 없는 상황. 지역과 경우에 따라서는 종족의 벽마저 무너져 엘프 교회 영역에 인간 평신도가 속하기도 한다. 비텔리아 교회가 세력 확대에 전념하고, 이단심문관들이 유독 투철하고 잔혹한 것도 이런 상황에서 우위와 기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 반대도 있겠지?”
“그야 물론. 세상에는 어둠을 더 두려워하고 공경하거나 처음부터 그 세력권에서 자라는 자들도 있어. 세트렛인이라든가. 너는 상상도 못 하겠지만.”
에드워드는 염통을 씹으면서 중얼거렸다.
“복잡해지겠군.”
“빛과 어둠의 싸움에 중립은 없다는 것만 명심해.”
“너 혹시 선글라스라고 들어는 봤냐.”
“응?”
“아무것도 아냐.”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염통을 삼켰다. 이 땅에 안경은 있지만, 착색 렌즈를 사용한 안경은 없었다. 그걸 햇빛을 가리기 위해 쓴다는 개념도 빈약했다. 눈에서 반사된 빛에 눈이 머는 현상, 즉 설맹을 막기 위해 작은 구멍을 뚫은 나무 고글 정도가 고작이었다.
에드워드는 이 세상에서 혼자 선글라스를 낀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든 일단 그는 빛 세력의 사람이고, 항상 이겨야 한다. 저주가 풀리고 출세할 때까지.
후회와 의심은 어둠의 강력한 도구.
에드워드는 다음 꼬치를 집어 들며 말했다.
“뭐든지 오라 그래. 적이면 그냥 다 대가리를 깨 놓을 테니.”
* * *
이틀 뒤, 날은 더 추워졌다. 길은 봄이 오기 전에는 진창으로 돌아갈 일이 없었다.
일행은 큰 배를 빌려 거기에 마차와 가죽 등을 실었다. 카치운은 아들 무클에게 흰털코뿔소의 큰 뿔로 만든 나팔과 자기가 쓰던 활을 넘겼다.
“난 이제 영웅의 신물을 가졌으니 이건 네가 써라. 무클아, 사내답게 살아가거라. 집안을 잘 부탁한다. 자주 편지하마.”
무클은 눈물을 그렁그렁 쏟으면서 활을 받았다. 카치운은 버일러와 한번 포옹한 다음, 선박에 올랐다. 부족민들의 환송을 보면서 에드워드는 중얼거렸다.
“나는 저렇게 못 떠났지.”
“어떻게 떠났소?”
“이 여행? 아니면 기사 서임 후 베레스포드 공작가를 떠날 때? 아니면 7살에 집을 떠날 때?”
“……다 좋은 기억이 없나 보군.”
“시냇물 위 낙엽 같은 신세지. 태어나기 전부터 따로 산 기분이오.”
실은 환생했지만. 그 말은 안 했다. 에드워드는 넋두리처럼 말했다.
“이 여행만 해도 시작부터 말이 죽었소.”
“저런.”
“내가 죽였지. 젠장. 이 손에 적응이 안 되어서.”
“실수로 사람은 죽인 적 없소?”
“죽이지는 않았는데. 저주에 걸린 지 이틀째였나. 손목 한번 잘못 잡았다가…….”
“용케도 우리 집 노예는 안 잡았구만.”
둘의 대화를 듣던 베로니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주먹을 묶으면 불만족스러워도 여자와 관계할 수 있다고 알려 준 아가씨가 때때로 원망스럽죠.”
에드워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왜?”
“몰라서 묻냐, 이 종마 새끼야. 유르트 안에서 여자 노예랑 놀면 안 들킬 것 같니? 칸막이를 해도 소리는 들리잖아.”
“어라, 그게 들렸나.”
에드워드 일행이 옥신각신 티격태격하는 동안 배는 반쯤 언 강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배를 끄는 건 바람도 아니고 노도 아니었다. 커다란 짐말들이 육지에서 끌면 배가 따라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느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았다.
며칠을 그렇게 강을 거슬러 올라가자 곧 거대한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왕위 계승 요구자인 공작의 거점 중 하나고, 트레베리아 남부의 대도시 중 하나인 베니아 시. 두꺼운 성벽으로 둘러싸이고 붉은 지붕들이 가득했다. 에드워드 일행은 소금산을 벗어난 이후 그간 소도시와 마을 위주로 다니던 기간이 길었던 탓에, 오랜만에 보는 대도시의 위용은 인상 깊었다.
“버일러가 섭섭해하겠지만, 저거에 비하면 오르도는 진짜 캠프군.”
에드워드가 중얼거렸다. 카치운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공작한테는 중요한 도시요.”
그런데 그 대도시를 뒤덮고 있는 건 불길한 검은 연기였다. 화재는 아니었다. 전쟁 중인 것도 아니고. 한가운데서 시커먼 연기의 기둥이 치솟았는데 대충 3개쯤. 어디선가 맡아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에드워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거 시체 태우는 냄새인데.”
“그렇군. 역병이 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카치운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베로니카는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보았다.
“시체가 아니야.”
“응?”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턱으로 연기를 가리켰다.
“화형이야.”
“산 채로 태우고 있단 거야?”
“그렇지.”
에드워드는 다시 연기를 보았다. 그러나 절대 한두 사람을 태우는 양이 아니었다. 자세히 들어 보니 비명과 함성 같은 것도 아스라이 들렸다.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렇게 많이 태우는 건 처음 보는데.”
“난 간혹 봤어. 이단 반란 같은 거라도 적발했으려나. 수십 명은 넘겠네.”
섬뜩한 이야기였다. 카치운은 침을 삼켰다.
“전부터 불길한 소문이 돌더니 결국…… 우린 안전한 거요?”
“우린 이단심문관의 동료니까 안심하쇼. 게다가 엘프와 드워프도 있잖소.”
에드워드는 잔뜩 겁을 먹은 리안나를 돌아보았다.
“넌 어찌 될지 모르겠다.”
“왜요?!”
“원래 이단 사냥할 때 요정과 마법사는 일 순위로 불태우는 거야.”
“저까지 포함이에요?!”
스텔라도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등짝을 때렸다.
“법관들이 우글거릴 저 정도 도시에서 그런 막무가내급 이단 재판을 할 리가 없잖아! 괜히 사람들 겁주지 마!”
“아, 그런가?”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 버렸다. 베로니카는 그를 흘겨보고는 자기 치맛자락을 꽉 붙잡은 리안나를 달랬다.
“괜찮아. 저건 고르고 골라서…… 한 100명쯤 태우는 걸 거야.”
“그렇게 골라서 저 지경이에요?!”
“그럼.”
베로니카는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전에 이단자 난동까지 겹치는데 100명이면 꽤 절제한 거란다?”
“무서워! 인간 무서워!”
리안나는 경악하며 입을 떡 벌렸다. 스텔라는 자신의 신앙심을 증명할 물건이 뭐 없으려나 짐짝을 뒤지기 시작했다. 가르달과 헬레나도 얼굴을 찌푸렸다.
“뭐, 우리네 이단심문관들도 종종 극단적인 처방을 내릴 때가 있지만…….”
“엘프들의 이단심문관은 일이 없어서 밥벌레 취급을 받고 잊히는데, 인간들의 이단심문관은 참 바쁘고 부지런하군요.”
베로니카는 쓰게 웃으면서 에드워드를 흘겨보았다.
“그야 인간 사회엔 저렇게 유혹에 약하고 죄를 쌓는 애들이 많으니까요.”
가르달과 헬레나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고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였다.
“그래, 나 죄 많다.”